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51
제62장 마음을 채우다 (3)
으슥한 골목 어귀에 들어선 외팔이 노인은 해맑게 웃는 아이를 떠올렸다.
– 할아버지가, 하오문도예요?
가족을 잃고 낙심한 채 떠돌던 차에, 처음으로 다가온 아이였다.
– 저도 하오문에 들어가고 싶어요!
어린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그렇게 부탁했다.
빠진 젖니가 휑하니 빈 채로 웃는 모습이 수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기억에 남았다.
– 아버지가 그랬어요. 하오문에 들어가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대요.
이유는 가족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 동생만큼은 멋지게 키워낼 거예요.
저도 작은 주제에, 제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할 꼬마 여자아이를 데리고 어른스럽게 말하던 것을 보면.
– 절대 어머니처럼 기루에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이의 어미는 기녀였다던가?
나름 미색이 고운 아낙이었는데, 불행히 녹망문 문주에 들어, 팔려 갔다고 들은 것 같다.
‘불쌍한 아이.’
하지만 강한 아이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더욱 마음에 남는 아이였다.
“녀석에게 알려줘야겠어.”
시작된 쌍룡문의 반격은 심상치가 않았다.
비록 지금은 복건성 어귀의 판잣집 부근에서 사람이 잡혀가는 모양이지만, 언제 어느 누가 잡혀갈지 알 수가 없었다.
복건성에서 쌍룡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없으니까.
“당분간 녀석에게 동생과 숨어 있으라고 하면 되겠지.”
오래전 가족을 잃어 정을 붙일 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유독 아이만은 마음에 남았다.
그렇기에 안전했으면 했다.
– 하오문도가 되고 싶어요.
하오문은 낮은 자들의 문파라죠?
– 하오문도가 되어 어머니 같은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게 하고 싶어요.
“괜한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혹 자신을 따르는 시선을 경계하며 골목을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골목 너머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야율척이라고 했던가?’
그가 이곳에는 웬일일까?
다가가니 상대도 접근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눈을 빛내왔다.
“여기는 웬일인가?”
“화가 미치기 전에 은혜를 갚을 작정이라서 말이오.”
“은혜라니, 무슨 은혜 말인가?”
“내 은인이 약초를 캐는 작은 곡괭이를 잃었을 때, 공짜로 내어준 이가 있었소.”
“…그런가?”
무슨 은혜인가 싶었더니, 별것 아니었군.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상대가 엄하게 덧붙였다.
“간단한 은혜가 아니었소. 덕분에 은인은 밥을 굶지 않고, 약초를 캐와 네 식구가 밥을 먹을 수 있었거든.”
“…실례를 사과하네. 범상치 않은 은혜였군.”
“사과를 받아들이지.”
무뚝뚝한 대꾸를 한 채 향하는 방향이 익숙해 묻자, 다시 대꾸가 돌아왔다.
“은제철방에서 일하는 작은 소년인데 알지 모르겠군.”
“아….”
이 녀석이 오지랖 넓게 또 사람들을 보살핀 모양이구나 싶었다.
– 하오문은 천한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곳이라고 했죠? 미리 돕고 사는 거죠. 헤헤.
매번 공짜로 물건을 내어줄 때마다 혼을 냈더니, 하던 말에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같은 사람을 찾던 모양이오. 같이 가시구려.”
조금 마음이 따뜻해진 외팔이 노인이 덧붙였다.
“참. 그대의 주인에게….”
“아직은 아니오.”
“?”
“아직은 수하가 되지 않았단 말이오.”
“정정하지. 암존에게 전해주시오. 하오문은 부득이한 결정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참고하지.”
묘하게 겉도는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이 조심스레 골목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하지만, 골목의 끝에서 본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여기저기 부서진 집기 사이에, 철방의 주인이 멍든 얼굴로 앉아 있었다.
“가노… 로군.”
“이 사람아.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직 이곳까지는 쌍룡문의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그치자 그제서야 침묵하고 있던 대장장이가 입을 열었다.
“…하아. 모두 가노 탓이오.”
“뭐, 뭐가 말인가?”
“애에게 어찌해서 하오문에 대해서 알려주었단 말이요!”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사이, 대장장이가 노성을 연신 터트렸다.
“지나가던 녹망문의 문도가 관아가 부르던 노래를 들었단 말이오!”
“무슨 노래를 말인가?”
“무슨 노래겠소! 하오문의 빌어먹을 문가(門歌) 말이오!”
하오문의 문가.
때때로 삶에 지친 이들이 고통을 잊기 위해 흥얼거리는 노래였다.
딱히 별것은 없었다. 각자 고됨을 잊기 위해 흥얼거리는 간단한 가락이니까.
“고작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정도로 아이를 잡아갔다는 말인가?”
“하아. 사실이 그런 것을 난들 어찌하겠소.”
성을 내던 대장장이가 부서진 의자를 세워 쪼그려 앉았다.
“이런 시국에 작은 트집이라도 잡힌 거지.”
“…맙소사.”
“또한, 녀석을 잡아가려는데 나타난 옥이를 보니 또 욕심이 난 게지.”
“으득.”
옥이는 관이의 여동생이다.
작고 어리던 아이가 이제 좀 자라 소녀태를 낸다 싶었더니, 욕심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막 자라난 여아를 기루에 팔아넘기는 것은 사망문의 오랜 사업이니까.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고 있는가?”
“잡혀간 이들은 복건성 중앙시장의 시전 한가운데 끌고 간다는 모양이오.”
“알겠네.”
말을 한 외팔이 노인이 서슬 퍼런 분노를 삼키며 돌아섰다.
“어쩔 심산이오?”
“내가 관이를 찾아오겠네.”
“멀쩡한 사람도 잡혀가면 병신이 되어오는데, 가노가 간다고 달라질 것이 있을 것 같소?”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나일세. 늙은 목숨으로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해야지.”
***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야율척은 뭔가 묘하게 상황이 돌아간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은인이 잡혀간 모양인데.’
시기가 참으로 좋지 않았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라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한걸음 나섰다.
“영감. 지금 아이가 잡혀간 것이오?”
“…그런 것 같네.”
“그렇군.”
입맛을 다신 야율척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쪽으로 쓰러진 철물 사이에서 길쭉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아쉽지만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군.”
그것은 고로에 철괴를 밀어 넣을 때 쓰는 철장이었다.
휙휙 휘둘러 무게를 가늠한 야율척이 옆구리에 철장을 푹 꽂았다.
“자네, 무엇을 하려는 건가?”
“지금 아이를 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소?”
“그건 그렇지만.”
“나도 동행하겠소.”
그 말에 외팔이 노인과 대장장이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가다니!”
“그대는 암존과 함께 한 이가 아닌가, 필시 죽임을 당할 걸세!”
크게 만류를 했지만 야율척은 딱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내 은인이 말하기를.”
대신 목을 꺾고 팔다리를 풀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원한은 되도록 잊고, 은혜는 갚을 수 있으면 갚으라고 했지.”
본인에게 은혜 갚는다는 말을 하면 한사코 거절했지만.
중얼거리며 문밖을 나서려 하자, 외팔이 노인이 소매를 잡아당겼다.
“자네가 입은 은원은 가벼운 것이네. 고작 그런 이유로 목숨을 버릴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거요.”
외팔이 노인은 물론이고, 일면식도 없는 대장장이까지 거들고 나섰다.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은인의 말은 틀렸소.”
하지만 야율척의 반응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원한은 열 배로 갚고, 은혜도 열 배로 갚아야지. 지금은 원한도 은혜도 갚을 수 있는 길이니, 목숨이 대수겠소?”
꿈쩍도 하지 않는 눈빛에 결국 외팔이 노인이 물러섰다.
“후우. 자네나 자네 주인이나 막무가내인 것은 마찬가지군.”
“아직은 내 주인이 아니요.”
“뭐, 알겠네. 하지만, 이왕이면 같이 가세. 무턱대고 덤벼드는 것보다야, 함께 가는 것이 좋을 테니까.”
어지간한 간담을 가진 야율척도 이 제안만큼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대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을 가능성이 더 높아질 테니, 허락하지.”
두 사람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
빠르게 철방을 나온 외팔이 노인은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 잡아들이고 있으니, 모두 합류하지는 못했을 걸세.”
여기저기에서 부딪히고 깨지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 작은 포목점의 문이 부서지며 녹망문의 문도들이 나타났다.
“이리 나와!”
그들의 손에는 양팔을 붙잡힌 채 끌려가는 여인이 있었는데.
“아악. 어머니!”
“양아! 양아!”
울부짖으며 따라나서려던 소녀가 녹망문 문도의 발길질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야율척이 지체 없이 철장을 뽑아 들었다.
“지금 나서려고 하는 건가?”
“내 은인에게 해진 옷을 기울 천을 나눠주던 여인이요.”
“그런 것까지 기억하는 건가?”
“정확히 은혜를 갚아야 할 일흔두 명 중, 마흔여섯 번째 은사라오.”
“…….”
혀를 내두르는 사이, 야율척은 이미 자리를 박차며 튀어 나가고 있었다.
쉬익!
갑작스러운 파공음에 여인을 끌고 가던 녹망문도 두 명이 비명처럼 외쳤다.
“웬 놈이냐!”
달려가는 사이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몸을 굽혔다 튕긴 야율척이 야수처럼 녹망문도들을 덮쳤다.
쉬이익! 퍼억!
철장 끝이 흔들거린다 싶더니, 녹망문도의 옆구리에 사정없이 틀어박혔다.
“컥!”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며 신음을 토하는 적의 머리를 밟고 재차 도약한 야율척이 발끝을 까딱였다.
타탁!
첫 번째 문도가 쓰러지며 놓친 검을 차올려, 허공에서 낚아채더니, 거침없는 일검.
쉬이익!
공력을 더하고, 이제는 한층 더 정교해진 구천염왕검이 맹수의 이빨처럼 번뜩였다.
촤아아악!
분명 종으로 휘둘렸는데, 횡으로 검을 들어 막던 두 손목이 잘린 채 허공에 빙글빙글 떠올랐다.
“아아아아아악!”
푹.
비명을 지르던 문도가 뒤로 고꾸라졌다. 다음은 검을 쥔 야율척의 독무대였다.
푹푹.
순식간에 숨이 끊어지지 않은 둘을 죽인 야율척이 멀건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눈을 빛냈다.
“이제야 쓸만한 검을 얻었군.”
“…이렇게 무턱대고 죽여도 괜찮은가? 암존이 싫어할 것 같은데.”
암존은 냉정한 사람이다.
자신과 무관한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에 야율척이 대꾸했다.
“암존은 내 원한을 갚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소. 그전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던 상관이 없지.”
“…묘한 관계로군.”
“묘한 관계라…. 그럴지도 모르지.”
문득 야율척은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는 말에 흔쾌히 보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 인연을 정리하겠다면 말리지 않아.
‘과연 그가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죽립을 눌러써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가세. 저쪽에 또 다른 이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니.”
“알겠소.”
상념을 접은 야율척이 검을 꽂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사망문의 문도들과 몇 번이고 마주쳤다.
대략 쓰러트린 수만 해도 백여 명을 넘어갔고, 풀려난 사람들만 해도 이십여 명을 넘어섰다.
개중에는 천검 또한 다수 있어 꽤 격전을 펼쳤지만, 구천염왕검에 익숙해진 야율척은 어렵지 않게 적을 고꾸라트릴 수 있었다.
“곧 도착할 것 같네.”
소년이 잡혀간 곳까지 얼마 두지 않았을 때 즈음.
마냥 운이 좋던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열다섯 번째 기습을 준비하는 가운데, 어딘가에서 돌풍이 불어오더니.
“후후후. 이런 곳에 숨어 있었던 거냐?”
적색 장포를 입은 노인이 훌쩍 처마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무도적룡검 관악!”
그와 함께 가지런히 지붕에 내려앉는 열 개의 신형을 보며, 외팔이 노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십검… 십검까지….”
꾸욱.
숨이 텁텁 막히는 살기가 목을 죄어오자 야율척이 쥐고 있던 검을 한층 억세게 틀어쥐었다.
그런 그의 귀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의 주인은 어디 가고 홀로 있더냐? 끌끌끌.”
월광을 등지고 선 적포 노인의 눈빛 위로 섬뜩한 살기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