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25
제78장 삼문협 (5)
당황한 두 사람을 보며 채주 양후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내가 애송이들을 피해 함정이나 파야 하다니.’
비록 지금은 수채를 잃고 떠도는 처지지만, 한때 그는 장강수로채의 백여 수채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채의 주인이었다.
적벽수채(赤壁水埰).
험난한 적벽의 물길을 거슬러 움직이며 악명을 떨쳤고, 그의 배가 나타나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 그가 오지나 다름이 없는 삼문협까지 오게 된 것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 때문이었다.
‘씹어먹을 철사련 놈들. 놈들만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동정호의 싸움에서 대패한 철사련주 철무혼은 격분한 나머지 대대적인 장강수로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떨어진 위신을 살리기 위해, 직접 철사련주가 일으킨 전쟁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장강수로채의 대패.
밤에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며 보았던 불타는 적벽수채를 떠올리면 자다가도 이가 갈리는 심정이었다.
“으드득. 원한은 잊지 않겠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철사련의 맹공에 뿔뿔이 흩어진 수적들이 그의 휘하에 모여든 탓이었다.
덕분에 재기를 노릴 수 있게 되었고, 얼마 전 구미가 당기는 쏠쏠한 제안까지 받았다.
– 의뢰를 완성한다면, 북해는 그대를 도울 것일세.
지금까지야 북해와 인접한 곳에는 터를 잡을 생각조차 못 했지만, 북해빙궁의 조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북해의 자금으로 새로운 수채를 세운다.’
싶었지만 임무 시작도 전에 애송이 둘에 발각되고 말았으니, 자연스럽게 분노가 일었다.
“아니. 운이 아주 나쁘지는 않은 건가?”
멀대 같은 녀석 너머로 보이는 이국적인 여인을 본 채주의 눈빛이 욕정으로 번들거렸다.
“흐흐. 아니, 하늘이 나를 돕는 모양이야.”
목표물이 스스로 함정까지 걸어들어온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얘들아. 정중히 모셔라. 귀한 몸값을 가진 분이시다.”
서슬 퍼런 그의 외침에, 수적들이 일제히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옆의 멀대는 치우도록 하고.”
“하하! 알겠소, 채주!”
살기로 번들거리는 수십 쌍의 눈이 키 큰 놈을 향해 모여들었다.
***
‘좋지 않군.’
몰려드는 살기에 남궁윤호가 미간을 좁혔다.
“남궁 소협. 일개 수적이라고 보기에는 기세가 흉흉해요.”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저자.”
슬쩍 시선이 수적들의 뒤에 선 장한을 향했다.
“우두머리의 기세는 신무학관의 상급 교관을 훨씬 상회하는 것 같습니다.”
“싸워선 안 될 상대네요.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겁니다.”
입구는 쇠로 된 격자가 내려와 단단하게 막혀 있었다.
“소리조차 나갈 수 없는 곳이니, 문을 부수는 것도 상당히 고된 일일 테죠.”
“그동안 저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고요.”
“그렇습니다.”
뇌까린 남궁윤호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릴 때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물어왔다.
“어디서 온 아해들인가?”
“남궁가의 윤호다.”
“남궁세가의 사람인가?”
잠깐 놀라던 거한의 곁에서 수적들이 수군거렸다.
“채주. 남궁가의 사람을 건드려서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합니다.”
“혹여 모르니 생포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지만 채주는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놈들. 이곳이 적벽인줄 아느냐? 우리는 중원을 떠났다. 아무리 남궁가라 해도 북해의 앞마당까지 신경 쓰지는 못해.”
채주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고기밥이 되면 남궁씨든 뭐든 누가 알아본단 말이냐?”
명백한 조롱 섞인 외침에 남궁윤호가 잘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래도 대화로 풀어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군.’
그렇다면 싸울 뿐이다.
“호오. 어린 녀석이 패기가 있군.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야.”
스윽. 남궁윤호의 시선이 좌중을 포위한 수십여 명의 수적들을 담았다.
“내가 아는 어른은 이곳에 아무도 없는 것 같소.”
“뭐라?”
“어른 대신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자라 새끼들만 보이는 것 같군.”
챙! 날렵하게 검을 빼 들자 코웃음이 돌아왔다.
“오만방자한 애송이로군.”
자르르륵.
채주가 양손을 늘어트리자, 팔에 감겨 있던 쇠사슬이 풀려나며 바닥에 어지럽게 쏟아졌다.
“철편?”
철채찍은 다루기 까다로운 무기라 강호에도 채찍의 고수는 많지 않았다.
심지어 양손에 하나씩, 두 개의 철편을 가진 이는 더욱 드물었다.
“두 개의 철편을 독문무공으로 사용하는 수적이라. 귀하가 쌍두교룡이요?”
“흐흐. 어린 아해가 제법 식견이 높구나.”
남궁윤호의 눈가에 긴장에 서렸다.
“남궁 소협. 아는 자인가요?”
“적벽채주 쌍두교룡. 본가의 상단이 꽤 고생을 한 인물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적벽에 있어야 할 수채의 주인이 이곳에는 무슨 연유일까요.”
이어 탈인경의 고수로, 장강수로채의 채주들 중에서도 무공이 출중하다는 기억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졌다.
“걱정 마세요. 저도 쉽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요.”
설악약이 양손에 음한지공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남궁윤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떼었다.
‘탈인경의 고수는 현재 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관은 많은 것을 알려 주었지만, 한 가지 딱 배우지 못한 것이 있었다.
“저도 도망치는 방법만은 배우지 못한지라.”
기이이잉! 검지로 검신을 훑은 남궁윤호가 단단하게 속삭였다.
“일전을 불사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쳐라-!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포위한 수적들이 일제히 거리를 좁혀 왔다.
***
날아오는 투박한 검을 쳐낸다.
채앵!
동시에 검과 검이 부딪힌 반동으로 회전하며, 검신을 눕혀 밀어낸다.
촤악!
한 번의 회전으로 달려들던 수적 둘의 옆구리를 베었다.
“쿨럭!”
“컥!”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고꾸라지는 둘의 등판을 벤다.
‘혼자서 적진 한가운데 있는 것은 처음인 것 같군.’
언제나 곁에는 듬직한 교관과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일엽편주. 망망대해에 홀로 조각배처럼 놓인 상황은 외롭기까지 할 정도였다.
‘허나. 돌파한다.’
등판을 후비는 검을 상체를 숙여 피하며, 저돌맹진.
“어엇?”
무리 사이에 숨어있던 수적이 당황해 내지르는 도를 향해 좌수를 수도로 만들어 내리쳤다.
펑!
조잡한 칼날이 뚝 부러진 순간, 수도를 뒤집어 검지를 엄지에 걸며 공력을 일으켜 탄지공.
피리릭! 푹!
경력이 실린 검 조각이 날아가 누군가의 머리에 박혔다.
휙 돌아가는 머리 너머로 피가 튀는 것을 보아 필시 절명했으리라.
‘살인도 처음인 것 같군.’
지금까지는 자상한 교관의 배려에 의해 숨통을 끊는 것만은 피해왔으니까.
하지만 남궁윤호는 첫 경험의 충격을 해소할 여력이 없었다.
“죽엇!”
바로 옆구리를 쑤시는 검을 피해, 역공.
“게르륵!”
피를 흘리며 고꾸라지는 상대를 걷어차 날리며, 상대를 향해 활짝 몸을 날렸다.
푹! 푹푹!
시체를 꿰뚫고 찌른 검격에 동료를 받아내던 수적 하나가 또다시 일검고혼으로 화했다.
‘설 소저는?’
다행히 설악약은 빙공을 좌우로 쏟아내며 분전하고 있었다.
쩌적!
장력에 어린 음한지공에 적중당하면 검과 병기가 얼음이 되어 부숴지는 터라, 수적들마저 기가 질린 듯했다.
‘저것이 빙공인가?’
베고 부수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얼려 박살 낸다.
사람의 살과 뼈가 얼음이 되어 부숴지는 모습은 무척이나 살벌해서 두렵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동안은 괜찮겠군. 문제는 나야.’
잠깐 우위를 점했지만, 아직 적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더욱이 이쪽을 주시하는 채주의 눈빛이 요란하게 번들거린다.
“멍청한 것들! 애송이 따위에 겁을 먹은 거냐?”
채주가 좌수를 떨쳤다.
사사사삭-!
뱀이 수풀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발목을 감아오는 채찍에 남궁윤호는 검집으로 땅을 찍으며 훌쩍 몸을 띄웠다.
가가가각!
철편에 감긴 검집이 분쇄되며, 허공에서 휘청인 남궁윤호가 몸을 뒤집었다.
‘채찍이라. 무척이나 변화무쌍한 병기로군.’
지금까지 동수의 상대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공격의 궤적을 읽을 수 있는 미래시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채찍을, 살아 있는 뱀의 머리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궤적을 모두 읽어내는 것은 무리였다.
“좋지 않군.”
촤악!
또다시 달려드는 적을 베었지만, 빈자리를 또 다른 수적이 채운다.
촤악! 촤악!
연거푸 베었지만, 계속해서 밀려드는 수적들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내고, 수적들 사이를 쏜살같이 움직이며 빠르게 검을 놀렸다.
일검에 하나씩.
검광이 번뜩이면 꼭 하나씩 고꾸라지는 수하들을 보며, 쌍두교룡이 뇌까렸다.
“엄청난 검공이로군.”
장강수로채의 대채주 중 한 명인 그가 인정할 정도로 남궁윤호의 검공은 무척이나 치명적이었다.
– 걸인의 제왕.
모든 것을 내려놓은 빈털터리 제왕의 검은 평범했으나, 만들어내는 결과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으니.
“이번 의뢰는 수지가 맞지 않아.”
우수수 쓰러지는 수하들을 보며 그가 잇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목청을 다잡아 외쳤다.
“몰려 있지 마라! 검법의 고수에게 거리를 내주지 말란 말이다!”
뭉쳐 있던 수적들이 거리를 벌리며, 차륜진을 만들었다.
“놈은 하나다! 난전에 익숙지 않은 애송이란 말이다!”
각자 병기를 든 손에 암기가 들렸다.
누군가는 우모침을, 누군가는 수전을, 또 다른 누군가는 비도를 꺼내 들었다.
암기로 견제하며,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번갈아 공격할 셈인 것이다.
남궁윤호의 표정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이쪽의 힘을 뺄 셈인가?’
노련한 자들답게 한순간에 체력적인 부담을 간파한 것이다.
“흐흐. 놈의 힘을 빼라. 어린놈이 벌써부터 헐떡이는구나.”
체력도 문제였지만, 더욱 큰 문제는 정신 쪽이었다.
‘힘의 배분을 놓쳤다.’
나름대로 무시하려 노력했지만, 첫 살인의 경험은 손발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체력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물속에서의 수련이 아니었다면 벌써 지쳐 나가떨어졌을 거다.’
잘게 떨리는 손을 들어 미간을 쓴 남궁윤호는 애써 바닥에 쓰러져 식어가는 수적들을 눈에 담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희생양.
그들은 뜨거운 피를 게워내며 생의 마지막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익숙해지자. 아니, 익숙해져야 한다.’
이것이 교관님이 보던 세상이라면, 자신도 빨리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동천관의 지박령으로 살 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삶을 얻었다.
그렇다면.
“죽음에서 돌아온 이상, 다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투박한 검에 의지가 어렸다.
***
다시 기세를 얻어 수하를 베어가는 모습에 쌍두교룡이 혀를 찼다.
“말도 안 되는 재능이로군. 싸우는 와중에 성장한다는 건가?”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보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돌연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찬란한 새싹을 짓밟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지. 흐흐.”
차라락! 바닥을 스쳐 간 채찍이 순식간에 애송이 놈의 다리를 휘감았다.
“잡았다!”
뒤늦게 채찍을 발견하고 신형을 뛰어오르려 했지만, 암기를 쳐내며 기우뚱하던 탓에 철편에 다리가 감겼다.
퓨퓻!
“남다른 반사신경 하나는 칭찬해줘야 하겠지만.”
“크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며 내려선 놈의 허벅지 살이 한 움큼 떨어져 내렸다.
“남궁 소협!”
“괜찮습니다.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보법이 봉쇄되자, 수적들이 기회를 틈타 일제히 병기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이제야 다시 다가와 주는군요.”
공처럼 뭉치며 내리누르는 수적들 사이로 은빛 선이 종횡무진으로 치달았다.
촤아아악!
이내 한편의 육편이 되어 피를 뿌리는 수적들.
피의 비로 화한 수하들을 보며, 쌍두교룡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가 막힌 놈이군.”
채찍에 당해 보법을 봉쇄당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하는 대신, 반전의 묘수로 만든다.
남을 죽일 때는 정의니 뭐니 떠들지만, 제가 생채기라도 입으면 고래고래 울고 짜는 애송이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남궁가에서 검귀가 태어났구나. 필히 살려둬서는 안 되겠다.”
그가 작심하고 처음으로 남궁윤호의 죽음을 위해 발걸음을 뗄 때였다.
냐~아옹~.
나른한 울음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보니, 창가에 검은 고양이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뭐야. 고양이인가? 생선 냄새라도 맡고 찾아온 모양이군.”
피식 웃으며 돌아서던 그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어떻게 들어온 거지? 분명 모든 문이 막혀 있을 텐데.”
휑하니 뚫린 창문에 의아함을 느끼려는 순간.
폴짝.
높은 창가에서 뛰어내린 고양이가 그의 머리 위를 덮쳐왔다.
커허허헝!
순식간에 다섯 배쯤 몸집을 부풀리며 범과 같은 호성을 내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