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46
제82장 정파의 등불(8)
백리설도 초조해졌다.
“제발 좀 꺼져욧!”
평소처럼 기세 좋게 검을 휘둘렀지만, 사방에서 덮쳐오는 적의인들은 도무지 떨쳐내기 어려웠다.
‘손이 무거워.’
적의인들의 합공은 교묘하면서도 잔인했다.
쥐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처럼 빠르게 엇박자로 베어오다 물러서는데, 한두 번 합공을 해본 것 같지 않았다. 능숙한 합격술이다.
‘쌍두교룡은 비교도 되지 않아.’
적벽수채의 쌍두교룡을 제압하고서, 백리설은 실력에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자신하던 실력은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우선 연무를 흡입할수록 정신이 아찔해져 검법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봉황염천무.’
봉황의 춤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쓰러진 동료 관도들이 발에 채인다.
마음껏 검기를 남발하기 어려웠다.
도도히 흐르던 공력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자꾸 수마가 눈꺼풀에 천근처럼 매달려 꿀잠을 종용하는 터라, 하나부터 열 끝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콰지직.
‘짜증 나. 진짜.’
반면에 상대는 연무 속에서 거침없이 움직인다.
자유롭게 펼쳐지던 보법이, 발목을 옭아매는 ‘빙천의 이능’에 막혀 좀처럼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언니!”
“난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무조건 괜찮아야 했다.
모용소혜도 상황이 좋지 않다.
허공을 날수록 짙어지는 연무도 문제지만, 가끔씩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얼음송곳에 몇 번이고 방향을 틀어 뱅글뱅글 움직여야 했다.
‘부유비공의 성취가 조금이라도 낮았으면 죽었어.’
최소한 계곡에서 흐름을 느끼는 법이라도 익히지 못했으면 예전에 격추당했을 것이다.
‘멍청이 교관님.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사실 교관이 가르친 것은 언제나 위급한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라도 덜 배우고, 덜 노력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서글펐다.
‘하필이면 이럴 때 곁에 계시지 않은 거야.’
절망에 가까울 때에 가장 든든한 존재의 부재는 시린 고통과도 같았다.
***
챙! 채챙!
“교관님!”
“거들겠습니다!”
“끌끌. 기가 찬 소리로구나.”
남궁용호와 청수가 여매홍을 보좌했지만, 장난스럽게 검강이 흩어질 때는 여기저기 피가 튀었다.
전황은 압도적이었다.
승리의 가능성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
지켜보던 복마신니가 숨을 빠르게 내쉬었다.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미파의 정순한 심법으로, 연무의 독기를 밀어내며 작은 진기를 채워낸 것이다.
한결 비장해진 그녀가 기댄 몸을 일으켰다.
“설향아. 너는 이곳에 있거라.”
“신니…. 스승님.”
“비록 잔혹한 자이나, 화검적자의 실력은 진짜다. 적의인들 하나하나가 불길하기 짝이 없구나.”
“…….”
“특히 저자.”
복마신니가 몸을 일으켜 검집으로 한군데를 가리켰다.
“싸움이 시작되고서도 계단에 걸터앉아 조금도 움직이고 있지 않다.”
“그 말뜻은.”
“사도라는 자들의 ‘이능’을 잴 능력은 내게 없으나, 화검적자의 충성은 오롯이 위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 이 안에서 가장 고강한 자는 저 자일 것이 분명하다.”
말을 하는 복마신니는 결연하게 옷자락을 여몄다.
그녀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진설향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어머니와 같아.’
먼저 가라 등을 떠밀던 어머니도 흐트러진 옷깃을 여몄다. 긴 도주를 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정돈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의 진설향은 의관을 정돈하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죽음을 각오한 거야. 마지막 모습을 깔끔하게 하려고.’
@@마지막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으로 기억되려고.
기억에서 되살아나 시선 속에서 겹쳐진 복마신니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표설천봉공을 완성하여, 네게 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구나.”
“…스승님.”
“누군가 그러더구나, 무공의 진정한 완성은 전투 속에서 벼려지는 것이라고.”
진설향은 그 말을 한 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초운휘 교관님.’
언제나 자상하던 교관님.
자신을 볼 때면 환하게 웃으며 매번 만둣집에 데려가던 자상한 교관님.
“죽기 전까지 무공을 벼려보겠다. 부디 지켜보거라. 완성을 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구나. 허나, 너라면 내가 마지막까지 만들어낸 무공을 참고해 진짜 표설천봉공을 완성할 수 있겠지.”
“…….”
복마신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싸움이 벌어지는 제단을 향해 걸어 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습기 어린 눈망울에 아무렇게나 이지러졌다.
챙!
복마신니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제 오는 건가? 기다리고 있었네. 늙은 비구니의 목은 꽤 좋은 제물이 될 거다.”
“강호의 도리를 저버린 것아. 너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모양이구나.”
이내 복마신니와 화검적자 사이에 날카로운 검격이 오갔다.
진설향은 입을 꾹 다문 채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손에 익은 아미파의 무공 대신, 표설천봉공만을 펼치겠다는 뜻은 하나였다.
목숨을 대가로.
‘표설천봉공의 완성에 바치려는 거야.’
자신에게 유지를 남긴 복마신니의 뜻을 거스를 수 없기에.
***
나름 팽팽하다 생각했거늘.
“화검적자. 본 공자는 지루하구나.”
“죄송합니다. 공자님.”
설악벽의 한 마디에 화검적자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거리를 두며 빙공을 펼치거나, 날카로운 검강의 눈보라를 일으켜 사람을 기겁하게 만드는 것.
모든 것이 장난일 뿐이었다는 듯, 그가 기세를 발휘하자 여매홍과 복마신니가 왈칵 피를 토했다.
“흐윽.”
“큭.”
애초에 이것이 당연한 결말이었다.
입신경. 신의 영역에 일말의 발을 딛은 이의 무공은 아직 인간의 껍질을 탈피하지 못한 이는 절대로 넘을 수 없다.
“영광으로 알거라. 직접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니.”
– 혈풍적설.
피바람과 붉은 눈의 경계.
입신경에 오른 자의 압박.
인간의 경지를 탈피하며 얻은 무공의 기적에, 사도의 ‘이능’을 더한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그가 검을 수평으로 세우자, 검신에서 싸늘한 눈보라가 흘러나왔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붉은 색을 한 눈 알갱이.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땅에 혹한이 임하며, 달려드는 것을 얼어붙게 만들고, 움직이는 것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후후. 언제봐도 장관이군.”
마지막을 예언하는 듯한 설악벽의 목소리는 이 일방적인 전투에 종말을 고하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제대로 마약에 취했어. 감각이 둔해질 대로 둔해졌으니, 산 채로 심장을 뽑고, 팔다리를 뽑아도 움직이지 못할 테지.”
처음으로 설악벽이 계단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귀한 제물들이다. 하나씩 정성 들여 제단에 공양한다. 그 전에.”
설악벽의 시선이 설악약을 향했다.
“난 이년과 즐기고 있지.”
“으득.”
이미 적의인들에게 제압당한 설악약은 자랑하는 무공마저 봉쇄된 채였다.
약기운을 너무 많이 들이마신 데다, 화검적자의 검격을 받아내느라 녹초가 되기까지 했다.
“악!”
여매홍이 쓰러졌고.
“쿨럭!”
적설에 휘말린 복마신니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졌다.
– 어른들이 쓰러졌다.
어떻게든 움직이던 청수도, 남궁용호도 무릎을 꿇었다.
당애희는 암기 주머니가 비었으며, 남은 관도들도 복마신니의 패퇴에 입을 악물었다.
“소혜야!”
설악벽이 튕긴 검지에 하늘을 가로지르던 모용소혜가 비명과 함께 뚝 떨어졌다.
백리설은 그녀를 감싸 안고, 검을 들어 견제하려 했지만, 덜덜 떨리는 검 끝에 긴장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강 정리가 된 것 같군.”
“욱.”
화검적자가 발을 들어, 복마신니의 몸을 걷어찼다.
몇 번을 굴러 드러누운 그녀의 얼굴에 화검적자가 발끝을 올렸다.
“가장 먼저 왔으니, 가장 일찍 가도 불만이 없겠지?”
관도들 사이에 빠르게 번지는 패배감을 느낀 화검적자는 복마신니를 죽여, 남은 한 가닥 미련마저 잘라낼 생각이었다.
“너는 그래도 꽤 오래 살았으니, 어린 관도들보다는 아쉽지는 않을 거다. 비구니.”
스윽.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복마신니는 한 톨도 움직이지 않는 진기에 어금니를 잘근 깨물었다.
‘마지막까지 보았을까?’
표설천봉공을.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목숨을 대가로 마지막까지 벼려낸 무공을 말이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저 아이가 뒤를 이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
솔직히 자신의 목숨 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진설향이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자신의 검법을 완성하는 것.
아니, 검술의 완성은 어렵더라도, 이곳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살아가기를 바랬다.
‘잘 있거라.’
서서히 심장으로 떨어지는 검끝을 보며, 눈을 감을 때였다.
쉬이이익! 챙!
허공에서 튀어나온 검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망하고 웅크리고 있더니, 갑자기 마음이라도 변한 건가?”
화검적자는 자신의 검을 막은 검신을 타고 올라, 덜덜 떨리는 양손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서 있는 소녀를 보고 웃었다.
울먹이는 눈과, 그렁한 눈물은 필사적이기 까지 해보였지만, 화검적자에게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가겠다면 어쩔 수 없지.”
챙!
“윽!”
검에 담긴 역도에 두 팔을 활짝 올린 진설향이 몇 번이나 뒷걸음질 쳤다.
“얼어붙어라. 내 붉은 눈의 세계에서.”
눈보라를 일으킨, 화검적자는 이내 관심을 껐다.
검을 막은 용기는 가상하지만, 어차피 일개 관도.
자신이 만든 적설 속에서 죽어갈 것이라고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차악!
잘린 소매를 보며, 화검적자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소매를 잘랐다?
고작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녀가?
화검적자의 얼굴이 기울어졌다.
“뭐지? 아니,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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