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54
제85장 여름방학을 앞두고 (2)
“야율 대인. 안녕하십니까?”
“마침 신선한 생선이 들어왔습니다. 한 번 보고나 가시지요.”
“저…. 대인.”
시장을 지나는 내내 사람들은 야율척을 알아보고 몇 번이나 말을 붙여왔다.
“…….”
하지만 야율척이 대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며, 새로 들어온 상점이나, 폐업한 상점을 보면 기억해둔다.
이제는 습관이 된 그의 일과였다.
하지만, 오늘은 대범하게 그의 길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아저씨. 가장 좋은 배추를 뽑아왔어요. 부디 받아주세요.”
길을 가로막은 작은 소녀를 보며, 야율척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
서늘한 시선으로 비키라고 눈짓을 했지만, 소녀는 오히려 다가와 억지로 품에 배추를 안겨준다.
“또 굶고 다니고 하지 말고요.”
“…….”
가장 좋은 배추를 뽑아왔다는 것은 정말인 것 같았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푸릇했으며, 코끝에서는 달짝지근한 배추 향이 맡아졌으니까.
“…….”
그럼에도 반응하지 않던 야율척은 소녀가 생긋 웃으며 물러서고 나서야 입술을 달싹였다.
“낙룡문의 문주께서는 대가 없이 물건을 취하지 말라 하셨다.”
“대가는 이미 받았어요.”
“…그런가?”
소녀의 말에 야율척은 눈을 끔벅거렸다. 묘하게 엉성한 모습인지라 소녀가 킥 웃었다.
“녀석은 잘 있느냐?”
“어제 정식으로 망치질을 허락받았다고 신나서 돌아왔어요.”
“요 노사는.”
“요명 할아버지도 이제 쓸만하게 되었다고 하시던걸요?”
“그렇군.”
야율척이 배추를 받아들여 품에 안았다.
“잘 받았다. 감사한다. 배추도 좋은 소식도.”
“네! 또 좋은 물건 들어오면 가져올게요!”
‘그럴 필요 없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손을 흔들며 쪼르르 달려가는 소녀에 야율척은 입술을 다물었다.
한때 대장간에서 일을 배우던 소년의 동생은 벌써 머리 하나는 자라난 것 같다. 구김살이 없이 자란 것이 무엇보다 보기 좋아 쉽사리 밀어낼 수가 없다는 점은 흠이었지만.
그러자 시장 상인들이 너도나도 말을 걸어왔다.
“대인. 저희도 진상할 것이….”
“싱싱한 생선을 그냥 드리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로.”
“대인!”
채소나 건어물, 혹은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든 상인들이 다가왔지만, 야율척은 철저히 무시했다.
저들은 소녀와 다르다.
순순한 호의가 아니라, 낙룡문의, 혹은 새로운 복건성의 암중 지배자의 비호를 받고 싶어 계산적으로 굴 뿐이다.
그렇기에 야율척은 철저하게 무시했고, 배추를 안고 빠르게 지나쳤다.
“문주님의 명령은 지엄하다.”
호혜를 받아두면 갚아야 한다.
그렇기에 은혜를 받아두는 것은 야율척에게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복건성의 시장과 거리를 돌며, 일상을 반복했다.
솔직히 이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처음 쌍룡문이 무너졌을 때는, 빈자리를 노리던 몇 개 문파가 들어왔지만, 적당히 쫓아 보내자 이제는 번거롭게 하는 이도 없어져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야율척은 일과를 이어가며, 성내를 걷고 새로운 것을 눈에 담아 두었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홍수가 났을 때도 변함없이 이어진 일과였다.
오늘 차이가 있다면, 품에 신선한 배추가 안겨있다는 정도일까?
‘좋은 배추를 구했군.’
적당히 데쳐 먹고, 부쳐 먹고, 날로 먹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이어 문주가 익힌 무공을 익히는 것.
이인문파 낙룡문의 유일한 문도, 야율척이 내내 겪어온 일상이었다.
***
“네가 야율척인가?”
식칼을 들고 배추를 어떤 각도로 썰까 고민하던 때 들려온 목소리에 야율척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어디서 온 객이요?”
돌아보니 문가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얼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상이 유독 눈에 띄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자다.’
야율척은 자연스럽게 공력을 일으키는 한편, 근육을 긴장시켰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철사련에서 몇 번 사람을 보낸 적이 있었으니, 오늘도 비슷한 날이 아닐까 싶었다.
‘수왕진결을 노리는 자인가?’
철사련주는 사도가 남긴 ‘이능을 다루는 무공’을 원했고, 수왕진결은 그의 품 안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기척을 놓친 것도 문제지만, 상대가 뒤를 잡았음에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철사련이 보냈다면 지금까지 와 달리 진짜배기 고수를 보냈다는 뜻.
어쩌면 그가 손쓸 수 없는 강자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야율척은 염왕구천검법의 초식을 손끝에 담았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문주가 준 영약을 완전히 녹여내 무공은 만개했지만, 등 뒤를 잡은 이는 고수다.
전의를 일으키는 것은 그저 그가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 아닌 탓이다.
‘어쩌면 쌍룡의 후예일지도 모르겠군.’
폐허가 된 이곳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쌍룡문의 연무장이었던 곳이다. 강호를 떠돌던 문파의 사람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곁에 둔 검을 뽑아 들려는 순간,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께서 보내셨다.”
“주군?”
“암존최선래. 아, 그대는 문주님이라고 부른다던가?”
야율척의 눈빛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근육에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증거를 보여라.”
격차를 느꼈음에도 엄지로 검을 밀어낸다.
위지극이 비죽 웃었다.
“거둘 때는 파지법도 모르는 애송이라고 하시더니 많이 컸군.”
“열심히 수련을 했소.”
“그런 것 같아. 기세도 남다르고. 하긴, 그분께서 거두었다면 이유가 있었겠지. 안 그러냐, 막내야?”
‘막내라.’
기억에 있던 호칭이라 야율척이 되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암혼흑풍사.”
그제야 야율척이 기세를 풀어냈다.
시험을 끝낸 위지극이 다 허물어진 폐허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왜 이런 곳에서 지내는 거지? 비가 새는 정도가 아니라, 지붕도 멀쩡한 곳이 없군.”
“달리 지낼 곳이 없어서.”
“수왕진결이나 백검 등 돈이 될 물건을 맡겼다고 들었는데?”
“백검과 천검은 녹여 원주인들에게 돌려줬소. 요 노야에게 주었으니 분명 빈틈없이 처리했을 것이오.”
“요 노야?”
“외팔이 노인이오. 듣자 하니 하오문도라 하더군.”
“요란 루주의 아비로군.”
“남은 돈은 은원을 갚는 데 모두 썼소. 문주의 허락이 있었지. 다만, 수왕진결은 용처를 허락받지 못해 맡아두고 있소. 원한다면 바로 내어주겠소.”
말을 하는 야율척을 보는 위지극은 헛헛하게 웃어 버렸다.
‘이런 요령이 없는 사람이 있나?’
고작 이인문파에, 일 년 가까이 소식이 없던 문주다.
듣기로는 만난 지 며칠도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야율척은 홀로 이인문파를 지키고, 둘만의 문규를 지키며 지내고 있었다.
‘거지꼴을 하고.’
빈말로도 잘 지낸 것 같지 않다.
옷은 다 해져 너덜거리고, 거처는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폐허다.
위지극의 느낌상 허락이 없다면, 평생을 야율척은 이곳에서 소리 없이 둘만의 문파를 지키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지독하게 요령이 없는 우둔한 놈이야.’
우둔하지 않은데, 단순하게 행동하고, 요령을 부릴 머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요령을 부리지 않는다.
혈교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다루었던 위지극은 이런 부류의 인간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꽉 막혔으니 은원을 목숨보다 귀히 여기고, 지금까지 뜻을 꺾지 않고 살아온 것이겠지.’
대견한 마음마저 든다.
“주군의 명이다. 일단 멀쩡한 거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겠어.”
내민 전표는 황금 만 냥짜리 거금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전표와 묵직한 전낭을 응시하는 시선에는 감정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도로 절제한 계산만 깔려 있었다.
“문주의 명령 없이 사사롭게 대가를 받을 수는 없소.”
“주군이 명했다. 문주의 뜻이라는 말이지.”
“당신의 주군으로서 명과, 내가 아는 문주로서의 명이 같을지 알 수가 없소.”
“뻑뻑하게 굴면 엉덩이를 걷어차라던데, 그쪽이 취향인가?”
“…….”
눈을 껌뻑거린 야율척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긴 전언을 보니, 당신의 주군이 저의 문주가 맞습니다.”
처음으로 나온 존대에 위지극이 바람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시험했단 것을 깨달은 것이다.
“좋아. 회포부터 풀고 싶지만, 일단은 실력부터 점검할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적의를 거둔 야율척은 의심하지 않았고, 속내를 밝힘에 거리끼지 않았다.
“마침 석 달 전부터 복건성에서는 제 검을 받아내는 자가 없어서 말입니다.”
“흐흐.”
호기로운 말에 위지극이 웃었다.
“내가 십 년 전에 주군에게 했던 말이로구나. 그리고 개처럼 쥐어 터졌지.”
그가 검집을 달칵이며 덧붙였다.
“운명은 돌고 도는 모양이구나. 막내야.”
처음으로 야율척의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
잠깐의 비무 후.
야율척은 대(大)자로 뻗어 버렸다.
“헉. 헉.”
이런 압도적인 패배는 얼마 만에 당한 것일까?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패배마저도 즐거웠다.
반면에 위지극은 별반 감흥이 없이 검을 수습하며 중얼거렸다.
“듣던 것보다는 나아.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구나.”
“…나도 알고 있습니다.”
“염왕구천검은 칠성에 올라섰군. 성장세가 상당한 수준이야. 내가 이끌던 수라검대에도 너 같은 재능은 없었다.”
“쓸모가 있다니 다행이군요.”
헐떡이던 야율척이 부스스 일어나, 검을 수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위지극이 물었다.
“막내야. 네 별호를 들었다. 인형술사라지?”
“그렇습니다.”
“검사가 얻을 만한 별호가 아닌 것 같은데, 어찌 그렇게 불리는 거냐?”
“아. 그건 바로 이것 때문일 겁니다.”
야율척이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검만 들고 있을 때와는 달리, 왼팔을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염왕구천검의 기수식이 아니다.
‘스스로 무공을 만든 건가?’
어쩌면 변형을 했을지도.
상승 무공을 멋대로 변주하는 것은 어지간한 무인들에게는 권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빈틈이 없는 모습에 위지극은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시작하겠습니다.”
쉬익.
검을 세우며 달려드는 야율척의 공격은 비무 때와 다르지 않았다.
어렵지 않게 검을 들어 막은 순간, 위지극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은사?’
투명한 은사가 어느새 검신에 감겼기 때문.
파팟!
검신을 기울여 떨치며 은사를 떨쳐냈지만, 발목과 팔목, 더러는 주변의 물건이 절로 움직여 다가오자, 꽤 신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검술로는 입신경에 이른데다, 온갖 마공을 지켜본 바 있는 위지극은 야율척의 전투방식을 바로 파악했다.
‘은사로 상대를 묶어 인형처럼 조종하는 건가?’
투명한 은사는 그로서도 기척을 쉽사리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살수들이 꿈꾸는 보물, 무영사(無影絲)임을 직감했다.
‘단야가 울며 매달려도 내어주지 않으시던 것을 이 녀석에게 줄 줄이야.’
단야는 서운하겠지만, 은밀히 무영사를 다루는 모습을 보니, 역시 주군의 판단이 옳다 싶었다.
단순히 상대를 암살하는 데 쓰지 않고, 저돌적으로 검술을 믿고 돌진하는 모습에 어째서 주군이 이 녀석을 두고 가장 선두에서 활약할 자라 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돌적으로 뛰어들어 전열을 무너트리고, 한편으로는 인형술로 적을 조종한다라. 멧돼지가 돌격하는 가운데, 동료의 검이 날아들면 죽을 때도 저를 누가 죽인지도 모르겠군.’
어떻게 이 녀석을 가르쳐야 할지 바로 그려졌다.
스스로도 수라검마라 불리는 대단한 검사였지만, 수라검마대의 모두는 그의 지도를 받았다.
암혼흑풍사 중에서도 무공 지도에 대해서는 유독 특출난 것이 바로 위지극이었다.
‘주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분께서는 항상 바쁘시지.’
가르치는 방식도 세세하게 전하기보다, 백귀야행을 조율하며, 전장에 수하들을 밀어 넣는 쪽이다.
“후우.”
몇 차례 검을 맞댄 위지극이 물러났다.
“좋아. 앞으로 한동안 잘 지내보자고. 막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둘째 대형.”
“둘째 대형? 그건 뭐냐?”
“일전에 저를 가르친 대형이 무조건 전 막내, 그리고 자신은 첫째 대형이라고 부르라고 하시더군요.”
본인이 주군의 오른팔이라며 호칭을 강요했다는 말에 위지극은 다시 껄껄 웃고 말았다.
단야가 막내가 들어왔다며 얼마나 신나했을지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위지극은 대답했다.
“위지 형이면 된다.”
“그럼, 단야 대형은.”
“그 새끼는 그냥 토끼야.”
욕설처럼 내뱉으며 위지극이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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