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7
제11장 불청객 (5)
사마율.
신강에 있는 마도명문 중 하나인 사마세가의 적자.
자신의 수하였다.
초운휘는 무인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정수리를 내민 채 부복한 수하를 내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독안신검 독고율은 또 뭐냐고.”
깊게 머리를 숙이던 수하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강호행을 위해 만든 신분입니다.”
“강호행을 위해 만든 신분? 그런 게 있었어?”
수하의 입가가 죽 찢어졌다.
“무림맹주 놈을 암살하기 위해 공들여 만든 신분입니다.”
“…….”
“주군! 지금에라도 명령만 하시면, 이 사마율! 당장 맹주의 목을 따러 가겠나이다!”
아이고 골이야.
뒷목을 잡은 초운휘가 성을 냈다.
“야야. 무림맹주 가만히 좀 놔둬. 가만히 잘 지내는 사람 왜 자꾸 목을 따려고 그래?”
“원래 싸움 시작 전에 대가리부터 날리는 것이 보통 아닙니까?”
“싸움 안 한다고!”
이것이 두려웠다.
이 뒤도 없는 무식함이.
농담도 명령으로 알아듣고, 기름통을 안고 불길에 뛰어들던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골치가 아프다.
이놈만 해도 그렇다.
나름 머리 깨나 쓴다는 사마세가의 적손으로 꽤 똑똑한 놈인데 자신만 보면 단순해진다.
“아이고. 머리야. 가짜 신분 같은 편리한 것이 있었으면, 진작에 내가 쓸걸.”
괜히 동천관에 들어와서 고생이다. 하지만 수하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주군께서는 어려울 겁니다.”
“나는 왜 안 되는데?”
수하가 충직하게 덧붙였다.
“이 신분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 전부터 가짜 가문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대역을 세워 주기적으로 대외활동을 했습니다. 필요하면 매년 열댓 번은 찾아가 정파 회동에 참석하기도 했지요. 돈과 시간과 정성을 엄청나게 기울여 만들어낸 신분입니다.”
사마율의 말이 맞다.
자신이라면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았을 일이다. 도중에 때려치웠던가.
“그런 귀찮은 짓을 왜….”
“이것이 모두 무림맹주 놈 목을 따 주군께 강호를 바치기 위해.”
“그만! 그만!”
이번엔 다른 것을 물었다.
“좋아. 독안신검 독고율이 왜 생겨났는지는 알겠어. 그런데 그림 같은 정파인 같은 설정은 어떤 인간이 만든 거야?”
수하 사마율이 충직하게 답했다.
“모든 것이 현 무림맹주가 선호하는 이상적인 협객 상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현 무림 맹주는 밥을 먹을 때는 왼손을 주로 씁니다. 이 또한 설정에 포함되었으며, 선호하는 용정차의 기호도 동일하게 설정했고, 용변을 볼 때 두 번째 비단을 유독 거칠게 쓰는 것도.”
“그만! 그만!”
“이게 다 맹주 놈의 목을 따 주군께 정파 무림을 바치려….”
“입 다물어! 이 미친놈아!”
내가 졌다. 잘못했다.
드물게 초운휘는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말싸움에서 말이다.
“아이고. 머리야.”
뒷골을 잡은 초운휘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교주를 도우라고 하지 않았어? 날 따라오면 어떻게 해!”
“망천회의 끄나풀들은 전부 제거했습니다.”
“안 그래도 한번 흔들린 위신이다. 무슨 횡액이 있을지 몰라. 너희가 끝까지 챙겨줘야지.”
“적당한 후임자들을 찾아내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그랬겠지.
명령이었으니 이를 악물고 후임자를 찾아 죽어라 굴렸을 것이다.
후임자에게 애도를.
이번에는 사마율이 서운하다는 듯 주장했다.
“주군. 너무 하십니다. 그림자가 주인과 따로 떨어지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난 되는데?”
발치에서 지워지는 그림자를 보며 사마율이 얼른 덧붙였다.
“그림자 좀 가만히 내버려 두십시오. 그림자 체면도 생각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방 먹이긴 했네.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아 문제지.’
썩을.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하오문에 백만 냥짜리 전표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했습니다.”
“백만 냥짜리 전표가 흔치는 않아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일반적인 상단이나 명문세가와 관련이 없는 이들을 중심으로 수소문했지요.”
주군께서는 허례허식에 매이는 것을 싫어하시니까요.
덧붙이는 말에 어떻게 이 넓은 강호에서 이곳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여러 가지 조건을 한정해 눈에 불을 켰던 것이다.
역시 머리가 좋은 놈이다.
‘이래서 전표를 쓰지 않았던 것인데.’
잠깐 마음을 놓은 것이 결국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물론 이 녀석 정도 되니 찾아낸 것이겠지만.’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율아. 설마 암혼흑풍사(暗魂血黑風士) 전원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
암혼흑풍사.
다시 눈을 뜨고 과거에 끝까지 등 뒤를 지킨 이들을 모아 직접 기르고 키운 조직.
다행히 사마율의 대답은 ‘아니오’ 였다.
“주군의 의향을 알지 못해, 지금이야 저 혼자만 왔습니다.”
“듣던 중 다행이군.”
“허나. 제 아비가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썩을.
사마율의 아비 사마백은 자신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인물이다.
이놈보다 눈치가 빠르면 빨랐지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을 터.
결국,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란 뜻.
“어휴. 진짜 어떻게 하지?”
“주군. 너무 하십니다. 어째서 속하들을 두고 혼자 독보강호 하십니까?”
“인마. 독보강호는 무슨.”
“혼자 강호 다 해 먹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전 다 압니다. 서운합니다.”
“아니라니까!”
강호 좀 가만히 둬!
울먹이는 수하를 보며 결국 초운휘는 현재 상황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사마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인을 찾으러 오셨다고요?”
“어, 그래.”
“연인은 몇 번째 부인입니까? 지금 딱 백여든두 번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백여든한 명은 대체 어떻게 나온 거야?”
당연하다는 듯 사마율이 대답했다.
“왜 있잖습니까? 주군께서 자리를 비운 사이, 천마신교의 명가에서 배필을 보내왔습니다.”
“생일 선물이랍시고, 마도십가에서 굴비처럼 엮은 여아들을 보내온 것은 봤지. 그런데 네 명 아니었어?”
“자리를 비운 사이, 경쟁이 붙어 늘어났습니다. 주군께서 성년식을 치를 때 즈음이면, 이백 명이 넘을지도 모르겠군요.”
아, 골이 아프다 못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이래서 신강을 떠나려 한 건데.’
눈을 뜨자마자 복수심에 불타 신강의 천년마교에서 피바람을 일으킨 것이 화근이었다.
더욱 실수한 점은, 워낙 강렬한 경천동지한 복수극을 벌인 탓에 헤아릴 수 없는 추종자들이 생긴 것을 짐작 못 한 것이고.
“다섯 번째입니까? 마도십가의 여식들은 극히 뛰어난 재녀로 격이 다르니, 매난국죽으로 따로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누구 마음대로?
왜 얼굴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멋대로 짝으로 만드는 건데?
지친 초운휘가 대꾸했다.
“아냐. 인마. 연인은 한 명으로 족해.”
“그렇다면….”
사도율의 눈에 기광이 일었다.
“정! 실! 부! 인!”
“정실부인이 아니면 또 뭔데?”
“아닙니다. 역시 주군입니다. 정실부인을 맞이하기 위함이라면, 무림맹주 목따는 것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일이군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이다. 찾지도 못했고, 나를 받아들인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
“본 교의 강시술은 천하제일입니다. 정 안되면. 강시로 만들어.”
“…….”
사마율이 바로 목소리를 깔았다.
“주군께서 예전처럼만 하고 다니면 만사형통입니다. 지금 꼴이 뭡니까? 전 웬 거지가 주군 행세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거지? 꼴?”
목소리가 가라앉자 사마율이 일단 머리부터 바닥에 쿵쿵 박았다.
“앞으로 속하가 주군의 연애 사업을 적극 보좌하겠습니다. 암혼흑풍사로서의 사마율은 어렵지만, 독안신검 독고율의 신분이라면 주군께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정론을 펴는 수하에 결국 화를 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래서 싫었던 것이다.
‘너무 날 잘 알아.’
딱 한계까지 몰아붙이다, 납작 엎드린다.
모든 것이 충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딱히 몰아붙이기도 뭣하다.
그저 피곤할 뿐.
‘어이구. 내 팔자야.’
학수고대하는 연인과의 조우 대신, 가장 만나기 싫던 수하와 먼저 얽히고 말았다.
***
“이제 어쩌나.”
방으로 돌아온 초운휘가 침상을 뒹굴거리며 끙끙댔다.
충직하고 무식하면 걱정 안 한다.
대충 두들겨 쫓아내면 되니까. 문제는 충직한 주제에 머리를 잘 굴리는 놈이라 문제다.
“받으십시오.”
“이건 뭐냐?”
“오는 길에 흑도 문파 몇 개 털었습니다.”
“그럼. 오는 길에 흑도 문파를 족족 부순 것이….”
“전표를 쓰신 것을 보니, 잔돈이 없으신 것 같아서요. 뭐, 이 독안신검의 설정을 유지하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받을까 말까 망설여졌지만, 사마율이 덧붙였다.
“후일 정실부인께 꽃 비녀라도 사주려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덥석 받았다.
눈치가 빠른 녀석은 정확히 필요한 것을 꿰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은천관에 가고자 하시면 이야기 주십시오. 임시 교두이긴 하지만,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얼마간 행사할 수 있거든요.”
지독하게 편리하다.
문제는 이 편의에 익숙해진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안방에 곰같이 용맹하고, 뱀처럼 영리한 수하들이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었다.
다 같이 모이면, 이제 신강 찍고, 무림맹 먹고, 철사련마저 먹어 치우자 주장할 것이 뻔하고 말이다.
“유능해도 걱정이네.”
유능하게 강호를 먹어 치울 것 같거든.
솔직히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다.
수하들만으로 무림맹과 일전을 불사해도 밀리지 않을 저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것이 싫어서 아저씨를 교주로 만들었는데, 정말 하나 같이 말을 들어먹지를 않아.”
지금쯤 천년마교의 교주 아저씨는 텅 빈 전각에서 눈물을 흘리며, 혼밥을 먹고 있지 않을까?
[왜! 내가 교주를 해 먹어야 하냔 말이다! 나도! 나도 암혼흑풍사에 들어가고 싶다!]울며 매달리던 것이 기억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당장 앞으로가 걱정이다.
“다른 흑풍사들이라도 바로 알아채는 것은 어려울 거야.”
눈치를 채지 못하게 무종의 수를 써야 할 때였다.
‘어떻게 한다….’
골똘히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덜그럭.
인기척이 들리더니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 교관님. 주무세요?”
“아뇨?”
“이것 좀 받아보세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찬합이 구멍 안에서 튀어나왔다.
“이건 뭡니까?”
“야근을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독고율 대협께서 직접 찾아오시지 뭐예요?”
독고율이?
“고생한다고 한껏 치하하시더니 사비를 털어 비싼 도시락을 주문해 주셨어요. 무한성에서도 유명한 백가객잔의 도시락인데, 엄청 맛있어요. 넉넉하게 주문해 주셔서 초 교관님 것도 챙겨왔고요.”
“아, 그러세요?”
떨떠름하게 벽 너머에서 건너온 도시락을 받아들고 있자니, 이내 작은 호리병도 넘어왔다.
“헤헤. 이건 몰래 챙긴 거예요.”
“잘하셨습니다.”
“자. 늦었지만, 건배라도 한번 할까요?”
“그럴까요?”
채앵.
잔을 부딪친 초운휘가 호리병을 기울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흑도 문파를 털어 뺏은 돈으로 정파인들의 환심을 사다니.’
그림 같은 정파의 대협이라는 놈의 꿈이 무림맹주 목을 따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헤헤. 좋은 날이죠?”
“아. 그렇네요.”
정파 강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