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26
제119장 왕묘진입 (3)
뻐-엉!
춤의 근본이 저 정신 없이 쏟아지고 날아오르는 칠검(七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소매 아래의 연통을 잡아당겨 허공을 향해 내쏘았다.
두두두두.
철환을 가득 담은 폭기가 폭사하며, 그녀를 맴돌던 검들이 일제히 튕겨 나갔다.
“아.”
무공과 무공의 대결을 생각했지, 이런 암기를 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빌어먹을 년. 귀한 폭우총통을 쓰게 만들다니! 네년은 곱게 보내지 않겠다. 채찍질을 가해 피투성이로 만들고, 매음굴에 팔아 돌려먹으며 손실을 메꿔야겠다.”
“…….”
사나운 욕설에도 그녀는 오직 손에 잡히지 않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아.’
총통이 쏟아낸 철환에 얻어맞아 구르는 검들을 수습하기에는 강림이 가만두지 않으리라.
“흐흐흐. 이제 끝이다.”
“…….”
고개를 떨구며 백리설이 입술을 깨물 때 즈음.
[얌마. 검이 어디 쇠로 만든 것만 검이냐?]꿈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교관님.’
감동을 채 감상할 틈도 없이 재차 전음이 이어졌다.
[신검합일. 검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경지라지.]‘그런 것을 왜 지금 언급하시는 걸까?’
[검과 사람이 하나가 되려 용쓰는데, 애초에 사람을 검 대신 휘두르지 못할 이유가 있냐?]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방점을 찍었다.
“!”
또렷한 백리설의 시선이 살아난 순간, 그녀는 좌중을 훑었다.
낭패한 기색으로 주저앉은 백리세가의 무인들. 그들의 검에 시선이 닿았다.
나아가, 그들의 눈빛에 또한 시선이 머물렀다.
“아버지!”
“서, 설아!”
“검을 주세요!”
“???”
비록 실전과 한동안 멀리했지만, 백리설의 몸놀림에서 뜻을 알아챈 백리정순은 검을 뽑아 던졌다.
탓!
허공에서 유려하게 날아 검을 받아 든 그녀는 재차 외쳤다.
“그대들이 백리세가의 가솔이라면, 스스로 검이 되세요!”
“아가씨!”
무슨 뜻인가 싶었던 그들은, 강림을 향해 달려들다 휙 방향을 트는 백리설에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백리설은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손목을 잡고, 등 뒤를 휘젓고, 빙그르르 춤을 추며, 자신의 검무 안에 백리세가의 무인들을 뒤섞어 넣었다.
“아….”
그제야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백리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병장기가 아닌, 무인으로서 검이 되어 주는 것임을.
그녀의 검무에 어울려줄 검이 되는 것임을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순식간에 주저앉은 백리세가 무인들의 경혈을 누르고, 손목을 쥐어 검을 떨치며, 때로는 검을 빼앗아 휘리릭 움직이자, 강력하게 몰아가던 수하들이 우수수 낙엽처럼 쓰러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한껏 얕잡아 봤던 소녀는 검과 사람을 마치 자신의 도구라도 되는 양, 완벽하게 조율하며 거대한 난전의 흐름을 반전시키고 있었다.
개화(開花).
마치 봉우리가 꽃으로 피어나듯 순식간에 변하는 몸놀림에 강림의 뇌리에는 경고성이 요란히 울렸다.
‘검후의 재능이라더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구나.’
어린 나이에 실전에서 깨달음을 얻어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경악스러운 모습을 본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일대종사. 검후를 넘어, 일파를 이끌 대종사의 자질이다!’
뇌리에 울리는 경각심에 강림이 재차 신법을 뽑아 올리며 장법을 펼쳐냈다.
“어딜! 큭!”
하지만, 장법은 몸을 던지며 뛰어든 백리세가의 무인 탓에 그녀에 닿지 못했다.
쉬익.
그 사이, 비죽이 사각에서 검이 날아와, 목에 독아를 쉭쉭 들이민다.
“크윽!”
검을 잡아채려다 손아귀를 베인 그는 잇소리를 내며 어지럽게 보법을 펼쳐 검을 피해냈다.
‘내 귀곡혈장을 두부처럼 베어냈다고?’
위기감에 그는 생포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죽음을 머리에 담았다.
‘살려 보내서는 안 될 재능이다. 아깝지만. 이곳에서 죽여….’
하지만, 그는 채 마지막 말을 내놓지 못했으니.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인마.”
어느새 귀신처럼 나타나 수하들을 깔고 앉아있는, 덥수룩한 머리의 청년이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냐!”
“시발. 내가 네 친구야?”
쉬익! 섬전 같은 검이 목 어름을 훑는 것으로 그의 마지막 말은 유언이 되었다.
“존댓말! 마! 존댓말!”
자욱한 시야가 이내 어둠에 잠겼다.
***
“교관님!”
달려오던 백리설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난전을 치른 그녀의 몰골은 꽤나 험했다.
곱게 빚었던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고, 얼굴에는 핏물과 흙먼지가 뒤섞여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헤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화장이 지워졌네요.”
하지만, 그녀의 환한 미소는 전에 없이 찬란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잘했다. 제갈탄 녀석의 진법을 구경하더니 꽤 흉내를 냈구나.”
“…헤헤. 알아보셨군요. 워낙 몸에 익어 반사적으로 떠올린 것 같아요.”
백리설이 히히 웃었다.
“저. 강호인으로 잘 성장한 것 맞죠?”
“그래. 엿 같은 강호인이 된 것. 축하하마.”
정수리를 쓰다듬으니, 말갛게 웃으며 커다란 두 눈에 물기가 차오른다.
‘탈진했구나.’
본인은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개화를 통해 한계를 넘어선 심력을 쏟아부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벤 첫 싸움이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갈이 될 수밖에 없지.’
땀으로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주자 백리설의 눈가에 장난기가 어렸다.
“어쩐지 옛날 생각나는걸요?”
“옛날 생각은.”
그녀를 부축해 한쪽에 앉히는 사이, 백리정순이 다가왔다.
“초운휘 교관.”
“상처가 위중하군요.”
“괜찮네. 이 정도쯤은 운기조식으로 밀어낼 수 있네.”
“혈장의 독기를 말입니까? 허세는 여전하군요. 입을 다무십시오. 꽤 아플 겁니다.”
“응? 크윽!”
어깨에 손을 얹고 진기를 밀어 넣자,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오며, 그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무, 무엇을 한 건가?”
“독을 몰아냈습니다.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훨씬 나을 겁니다.”
“혈수독장의 독기를 말인가? 믿을 수 없네. 헉. 정말이로군. 어떻게.”
“독왕께서 저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독왕이라면.”
납득한 백리정순의 눈에서 이채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의구심에 답해줄 여력이 없다.
“설아. 다른 녀석들은 보지 못했냐?”
“오는 길에 남궁 관도는 마주쳤어요. 남궁세가의 분들과 함께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것을 봤는데.”
“알겠다.”
아직 살아 있는 백리세가 무인들의 독기를 밀어낸 후 몸을 일으키자 백리정순이 놀라 물었다.
“어찌할 셈인가?”
“뒤쫓아 안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우리도 세가의 주력들과 합류해 진입할 생각이네. 그때 함께 움직이는 것이 어떤가?”
“맞아요. 교관님. 저와 함께….”
고개를 가로젓자, 백리설의 눈빛에 아쉬움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녀는 금방 감정을 떨쳐 내고는 웃었다.
“충분히 회복하고 따라갈게요. 지금의 저는 방해만 될 뿐이니까요.”
따라오겠다며 칭얼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담담한 분위기였다.
“이제 저도 성인이니까요.”
“성인은 무슨.”
의젓하게 허리에 두 손을 얹고 가슴을 내미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꼬맹이가.”
딱콩.
“아얏.”
콧등에 딱밤을 날려 주었다.
***
백리설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나아가자, 안에서 무시무시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으아아악!”
“악마다!”
좁은 동공을 울려대는 비명은 워낙 끔찍해서,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이게 무슨….”
뒤이어 통로 너머에서 우르르 뛰어오는 일단의 사내들은 혼백이 빠져 있었다.
흡사 호랑이에 쫓기는 어린아이들 같은 모습이 아닌가.
그 뒤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 피해요오오-!”
“…….”
퍽퍽퍽퍽! 가죽부대를 무참히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폴짝 내려선 것은 익숙한 앙증맞은 인형이었으니.
“어? 교관님!”
모용소혜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손을 늘어트린 채, 해맑게 웃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 뭐랄까.
‘무척 미안한 기분이군.’
발치에서 구르는 몰골들을 보아하니 철사련 쪽의 무인들 같았다.
그런 사파인들을 무참히 박살 내는 비행박쥐를 보니, 어쩐지 순백의 도화지에 엉망으로 그림을 그린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이게 다 뭐냐?”
“헤헤. 무서워서 도망치다가 보니, 어느새 이렇게.”
“누가 누구를 무서워 도망쳤다는 거냐? 반대 같은데?”
“히잉. 갑자기 땅이 무너져서 뚝 떨어지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너 혼자 떨어진 거냐?”
“아, 그게 말이에요.”
모용소혜에 따르면 바닥이 무너지는 통에 황급히 피막을 펼쳐 날아올랐는데,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던 모양이다.
“다들 바닥으로 추락했는데, 저만 갱도 안에 난 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왔거든요. 근데, 거기에 사파의 무시무시한 고수들이 있어서 그만.”
“피바다를 만들고 말았군.”
“아니라고요!”
모용소혜가 절규했다.
“살아남기 위해 쪼금 열심히 반격한 것뿐이라고요!”
“반격이 아니라 공격을 했다면 아주 시체의 산을 쌓았겠네.”
“으앙. 교관님. 바보.”
공허한 통로 속에서 으앙 하고 무방비하게 울고 있는 모용소혜를 보니 좀 미안하기도 하다.
평생 조용히 아름다운 것만 보고 자라날 세가의 금지옥엽을 비행괴수로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기분이 있었으니.
‘배덕감이 장난 아니야. 짜릿해. 즐거워. 완전 좋아.’
물론 모용소혜에게 말했다가는 철권이 명치를 칠지 모르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보지 못했어?”
“다른 분들이요? 남궁 오라버니와 당 언니는 맹주님과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럼 안전하겠네.”
맹주와 같이 있는 이들은 역시 가장 고수들 뿐일 테니까.
‘우선 무림맹주나 신승을 마주치는 것은 좀 거북하다.’
주변에 있는 고수들도 한둘이 아닐 테니, 굳이 먼저 만나볼 필요는 없겠지.
“제갈 오라버니는 저와 함께 다녔어요. 지금은 진법을 펼치고 숨어 있지만.”
“뺀질이 녀석답게 잘도 숨어 있는 군.”
“관도분들을 지키느라, 어쩔 수 없죠. 동천관의 관도들 몇도 휘말린 모양이었거든요.”
“안내해. 멀지 않은 곳에 있지?”
“네. 그런데, 백리 언니는요?”
“무사하다. 입구 쪽에 있으니 위험하지 않을 거야.”
“다행이네요.”
모용소혜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
투명한 장막이 갈라지며, 진법에 숨어 있던 제갈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관님!”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갑자기 사람들에 떠밀려 입구 쪽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인파에 휩쓸렸군. 괜찮았냐?”
“네. 다행히 저희를 공격하는 대신, 왕묘의 안쪽으로 향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던 터라. 저는 관도들을 수습해 이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잘했네.”
“잘한 겁니까? 함께 들어가 맹의 분들을 도와야 했던 것이 아닐는지.”
“여기 뭐가 있는 줄 안다고 네가 돕겠냐? 오히려 욕심에 눈이 돌아간 칼 든 놈들 사이에서 죽을 고생이나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해주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요. 스스로 패기가 없는 것이 아닐까 자괴감에 빠져 있던 차였습니다.”
“자괴감은 무슨.”
제갈탄은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어린 관도들을 보호하고, 최대한 피해를 줄일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 들어와 혼란에 빠진 무림의 고수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제갈세가의 녀석이라 그런가? 냉철한 판단력이 장점이란 말이지.’
녀석의 빠른 판단 덕분에 꽤 많은 관도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은천관과 동천관의 관도들이 약 서른 명가량 있었는데, 이만한 인원을 숨기기 위해 진법을 펼치는 것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훨씬 크고 난해한 진법을 계산해야 하니까.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제 한 몸 챙기기에 급급하던 뺀질이 녀석이 타인을 위해 품을 내어주었다는 것이 아닐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녀석도 성장했다는 뜻이겠지.’
더 이상 동생에게 추월당했다는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교, 교관님.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서운 분들이 지나갔어요. 어떻게 나갈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는 이런 곳에 조금도 있고 싶지 않아요. 흑흑.”
두려움에 질려 눈물을 짜는 관도들을 보니, 제갈탄의 평정심이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제갈탄. 너는 모용소혜와 함께 내가 가리킨 길로 나아가. 그곳에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있을 거다. 그들과 합류해 이동해라. 통로가 바뀌기 전에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다.”
“교관님은 어쩌실 요량이십니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흐흐. 위험하다고?”
실실거리는 웃음에 제갈탄이 피식거렸다.
“제가 천하의 경천검괴를 의심했군요.”
“옴마? 너 뭐 잘 못 먹었냐?”
“그럴 리가요. 진실을 말했을 따름입니다.”
착착. 옷자락을 잡아당겨 신색을 바로 한 녀석이 공손하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부디 녀석을 돌봐 주십시오.”
다부진 얼굴로 요구해오는 녀석에.
“당연한 소릴.”
초운휘는 녀석의 정수리에 딱밤을 먹이는 것으로 응수했다.
“모두 무사히 돌아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