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7
제22장 은천관 입관 (3)
“…….”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다.
“…….”
심지어 나름 잘 지낸다고 생각하던 조현은 물론이고, 양 교두의 얼굴이 귀신처럼 변했다.
눈에서 빛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자네는 정말.”
어지간히 기가 막히던지 입을 뻐끔거리던 양 교두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때.
“와아아! 교관님! 반가워요!”
등 뒤에서 활발한 망아지가 덮쳐왔다.
“백리 관도.”
“아이참. 설아. 라고 불러달라니까요. 여보까지는 괜찮아요.”
여보는 무슨 여보냐.
뒷덜미를 잡아 죽죽 당기자, 이내 아침 점심 저녁 불행만을 먹고 배를 채운 표정의 모용소혜가 나타났다.
“어휴. 언니. 제발 때와 장소를 좀 가려요.”
“충분히 가리고 있다니깐.”
“충분에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요. 한 동해에서 서해까지 거리만큼?”
모용소혜가 백리설을 질질 끌고 가자, 이번에는 훤칠한 두 사람도 모습을 드러냈다.
“교관님.”
“분부한 대로 도착했습니다.”
신기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두 사람에 양 교두가 알은 척을 했다.
“제갈 관도. 남궁 관도.”
“교두로 임명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듬직하게 포권을 하는 두 사람의 등장에 긴장한 교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린 관도 앞에서 기가 죽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장철심과의 대면에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살리고자 애써 노력하던 차였다.
시선에 짓눌려 있던 초운휘가 날름 손을 내밀었다.
“제갈아. 준비됐냐?”
“교관님. 성만으로 부르는 것은 조금 자제를 부탁….”
“이런 제갈. 준비됐어? 안 됐어?”
한숨을 푹 내쉰 제갈탄이 품속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들었다.
“빈틈없이 준비했습니다.”
새 책임을 증명하듯 매끄러운 표지를 보며, 여매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뭔가요?”
“아, 이거요?”
촤라락. 펼치는 책은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었다. 제목도 없고, 글자만 가득했으니까.
곁에 있던 제갈탄이 대신 대답했다.
“족보입니다.”
“조, 족보?”
“최근 오 년 내 나온 은천관의 시험 문제를 모으고, 평가 기준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던, 교관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런 것을 왜 준비했냐는 뜻이다.
이런 장대한 내용을 준비한 노고는 놀랍지만, 매사에 건성건성이라, 교관일지도 읽지 않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런 인간이 이런 수고를 들여 준비까지 하다니.
어쩌면 의외로 성실하게 은천관의 생활을 하려는 것일까?
“좋아. 모두 외웠겠지?”
“네.”
“남궁이는?”
“저도 모두 외웠습니다. 필사적으로 익혔습니다.”
“저! 저도요! 집에서 놀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으윽. 이런 것을 열흘 만에 외우라니 너무 하잖아요.”
“좋아. 이제 잘 가르칠 준비가 되었어. 열심히 해.”
그럴 리가 없지.
눈앞에서 가르침의 대상이 되어야 할 관도들에게 일을 떠맡기는 모습을 보며, 어지간한 양 교두도 혀를 찼다.
“초 교관. 자네 설마 이 어린 관도들에게 일을 떠맡기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작은 도움만 받을 겁니다.”
“어째 조금도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로군.”
“그것은 오해입니다. 제 마음은 열정으로 빵빵.”
이 정도로 철면피인 것도 재주다.
“끄응. 자네.”
동천관 교관 일동이 한가득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참이었다.
“거기. 이쪽으로 오게.”
저 멀리서 은천관 교관들이 불퉁한 모습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은천관 교관들이 각종 집기들을 가리키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몸 쓰는 일은 보통 어린 신참들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임시 교관들에게 떠맡기려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곳에 막 온 신참인 것은 사실이니까.”
“괜찮아요. 동천관에서도 매번 해오던 일인 걸요, 뭐.”
“어서 가서 시작하죠.”
쭈뼛쭈뼛 교관들이 움직이는 사이, 초운휘가 넷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을 받은 네 사람이 슬금슬금 연무장으로 움직였다.
***
첫 수업 준비부터 꽤 힘쓸 일이 많았다.
목각 허수아비며, 각종 돌과 모래로 만든 무게추.
거기에 수련용 검까지 하나같이 밖으로 끄집어내야 했다.
이해가 안 가는 점은 이 많은 물건들을 모두 수련에 쓰냐는 점이다.
밖에 있는 아이들은 고작 오십여 명 남짓인 데 반해, 물건은 이백 명은 족히 쓰고 남을 양이었으니까.
진땀을 흘리며 물건을 나르던 조현 교관이 물었다.
그러자 유들유들한 대답이 돌아왔다.
“때때로 맑은 날 이렇게 건조를 해야 하거든. 은천관은 하나같이 비싼 집기들을 써서 관리가 중요하니까.”
일광건조라고 합니다.
덧붙이는 그에 여매홍이 물었다.
“이번 수업은 약초학 수업 아니었어요?”
얼굴을 붉힌 교관이 한결 누그러진 기색으로 대꾸했다.
“맞습니다. 다음으로 할 일은 약초를 모두 꺼내 햇빛에 말려야 하고요.”
“이 모든 것을 전부.”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백여 개에 가까운 사람 키만 한 자루들이 쌓여 있었다.
수업에 쓰는 것은 고작 한섬도 되지 않을 약초뿐인데, 이 모든 것을 꺼내 말리라니.
‘신고식을 단단히 치르려는 모양이네.’
눈앞이 암담해졌다.
그러는 가운데 시선의 한구석에서 옥신각신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은천관의 젊은 교관이 누군가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너! 일을 할 생각이 있긴 있냐?”
“제가 뭘요.”
“가벼운 주머니 들고 오락가락하면 모를 것이라 생각했어?”
“아-. 아니라고요.”
생사람 잡는다는 듯 역정을 내는 초운휘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주머니가 달랑 들려 있었다.
“하면 될 거 아니에요! 하면!”
어쩐지 오늘만큼은 무척 초 교관이 얄미웠다.
***
교관들 사이에서 은근히 신고식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
관도들은 새롭게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낸 네 사람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백리설이었다.
가장 튀는 외모 탓인지 남자 관도들의 눈에 호기심이 일렁거렸다.
“이야-. 우리 학관에 저런 미녀가 있었다고?”
“옷을 봐. 동천관도면 모를 수도 있지. 잠깐. 저 완장은 조교 표시 아냐? 동천관도가 조교라고?”
“뭐 어때 예쁘면 그만이지.”
“난 작은 쪽이 취향인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자 관도들의 관심과 별개로, 여자 관도들의 시선도 남궁윤호와 제갈탄에 꽂혀있었다.
“저 키 큰 분은 어째 눈에 익는데.”
“어머. 크고 듬직한 쪽이 취향이니? 난 옆에 눈매가 날카로운 분 쪽이 더.”
“지금 네가 취향 따질 때니?”
“얘 말하는 것 좀 봐.”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애초에 별도의 관리가 필요한 낙제생들을 모아 놓는 곳이다.
어떻게 은천관에 입관할 수준은 되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관도들이 태반.
딱히 명가의 출신도 없었고, 갑자기 불려 나온 보충수련에 따분하다 못해 작은 유흥거리를 찾아 눈을 빛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도 명문가 출신이거나, 나름 귀가 밝은 관도들도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네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하. 귀여운 새파란 후배네. 말이라도 붙여 볼까?”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다.”
“응? 왜 갑자기 목소리 깔고 그러냐?”
“저 사람. 교관 사냥꾼이다. 하긴. 넌 모를 수도 있겠군.”
“교, 교관 사냥꾼? 진짜?”
기관과 진법을 배우는 문(文)과 관도이면서, 검술 교관을 여럿 씹어먹은 존재.
강력한 무공에 성격도 사나워 적수를 찾을 수 없다 하였다.
지금도 은천관 관도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회자되는 존재.
“허. 허억. 크, 큰일 날 뻔했네.”
화들짝 놀라는 가운데 더러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었다.
“뭐야? 평범한데….”
“교관 사냥꾼이 저렇게 범생이 같았다고?”
“소문은 믿을 것이 없다더니.”
“크큭. 난 ‘교관 사냥꾼의 사냥꾼’이 되어볼까?”
***
연무장 한구석에 서 있던 네 사람은 들려오는 중얼거리는 소리를 모두 듣고 있었다.
여름 방학에 얻은 기연은 작은 소리도 간단히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청력을 주었으니까.
각을 잡고 선 네 사람의 얼굴 근육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러다 결국 터졌다.
“푸흡.”
시작은 백리설이었다.
“푸흡. 교관. 푸흡. 사냥꾼.”
“…끄응. 웃을 것까지야.”
“쿅쿅쿅쿅. 정말 어울리는 별명이네요. 제갈세가가 낳은 이단아. 교관 사냥꾼. 안 그래요, 남궁관도?”
평소에 무표정 일색인 남궁윤호지만 지금만큼은 입 근육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푸험. 제갈. 커흑. 탄. 괜찮아. 가끔. 피힉. 과오도 실수도 생기는 거. 크헉. 지.”
언제나 편이 되어주던 친구의 배신에 제갈탄은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는. 백리 소저도. 꽤 인기가 좋은 것 같소만.”
“하나같이 미모 칭찬인걸요? 말상에 생긴 건 빚다 만 만두 같은 주제에 눈깔은 제대로 박혀 있네요. 가까이 오거나 말을 걸면 걷어찬 다음 옥상에서 몇 번 떨어트린 후, 뒷마당에 파묻을 테지만.”
“…….”
제갈탄은 새삼 깨달았다.
집안은 한없이 백도에 가깝지만, 시커먼 속내는 한없이 흑도에 가까운 이 여자는 어지간한 말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음을 말이다.
“아. 쪽팔려. 교관 사냥꾼에 사냥꾼? 차라리 교관 사냥꾼의 사냥꾼을 사냥하자. 라고 하시지?”
“으득.”
제갈탄의 인내가 바닥났다.
그때 솜씨 좋게 모용소혜가 끼어들었다.
“그. 그래도. 덕분에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잖아요.”
“뭐, 그런 이점은 있지.”
남궁윤호도 재빨리 편을 들었지만, 백리설의 독설은 멈추지 않았다.
“지박령에 사냥꾼. 어째 하나같이 제대로 된 사람이 없네.”
“언니 별명은 동천관의 마녀잖아요.”
“헤엥-. 동천관의 설녀란다, 다르거든?”
“설녀도 귀신이에요. 얼음 귀신.”
“동천관의 피주먹만 하겠니.”
“으윽. 정곡이네요.”
역시 말로는 백리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침묵하는 가운데, 코를 흥흥거린 백리설이 한쪽에 우르르 나오는 교관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어머. 이제 시작인가 봐.”
가장 뒤쪽에 처진 채 게으른 당나귀처럼 발을 질질 끌며 움직이는 이를 보며 백리설이 생글생글 웃었다.
“오늘도 늠름한 모습이시네.”
“언니는 눈만 빼고 다 좋은 것 같아요.”
투덜댄 모용소혜가 제갈탄을 향해 물었다.
“첫 수업은 약초 수업이었죠?”
“그래. 정확하게는 약초와 독초를 구분하는 시험이지.”
여름 방학의 특훈에서 얻은 성과를 선보일 때가 되었다.
특히 제갈탄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완성해낸 족보까지 있으니, 낙승이나 다름이 없다.
“교관님이 말씀하셨어요. 무조건 실력행사가 답이라고.”
“교관님께 배운 ‘아무거나 주워 먹고도 죽지 않는 법’에 따르면 세상에 독초는 없는데 말이지.”
“…남궁 오라버니. 그 인간의 가르침은 논외로 쳐요. 일반적인 상식의 세계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참고하지.”
“실력을 증명해야, 잡음이 나오지 않고, 잡음이 나오지 않아야, 편하게 일을 떠맡길 수 있다. 잊지 않았죠?”
글러 먹은 부탁이었지만, 이미 교관의 거미줄에 걸린 네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갈까?”
“가지.”
네 사람이 당당하게 연무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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