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축기비경(築基祕境) (3)
상품 단약?
그 말에 난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천 공자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한데,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숨이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내 영력을 흩어 버리는 느낌.
이 사실을 눈치챈 천 공자 놈이 이죽거렸다.
“왜? 계속 다가오지 그러냐? 나도 마침 너와 할 이야기가 있었다. 하하하!”
“음……. 이게 뭐냐? 왜 이렇게 답답해지는 거지?”
“내가 말했지 않느냐. 멸영단(滅靈丹)이라고! 이것은 가까이 있는 모든 영력을 구속시킨다. 결단의 경지에 오른 수도자가 아니고선 벗어날 길이 없다! 흐흐흐.”
“그, 그럴 수가…….”
멸영단의 의미가, 영력을 멸(滅)한다는 것이었나.
한데, 천 공자 놈은 멀쩡해 보인다.
멸영단의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모종의 단약을 먹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후기지수 중 누구도 천 공자를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다가가는 것조차 힘겨울 것이었다.
역시 집안이 빵빵한 놈이다 보니, 귀물을 얻어 왔음이 틀림없었다. 하나뿐인 장자(長子)의 안전을 위해 투자한 것일 터.
“이제 알겠지? 어디 비경에 들어가면 두고 보자고. 장철!”
그동안 나에게 쌓인 것이 많았는지 놈의 눈빛이 불타오르고 있다.
나는 이대로 가다간 괜히 적을 늘리는 꼴이 될 것 같아 천 공자의 비위를 맞춰 주기 시작했다.
“하, 하하……. 천 공자. 왜 그래? 우린 친구 아니었어? 친구끼리 서로 죽이고 그러는 거 아니야.”
“친구?”
놈이 반응을 보이는 듯싶자, 나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러자 천 공자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미소 지었다.
“친구라……. 그래, 네가 그랬었지! 친구가 되기 위해선 친구비를 받아야 한다고! 좋아. 너는 내게 뭘 줄 수 있지? 흐흐흐.”
젠장.
내가 놈을 놀렸던 방식을 그대로 돌려받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단한 가문 출신인 이놈에게 재물을 주어 기분을 달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놈은 축기단조차 별 고민 없이 내주던 갑부(甲富)가 아니던가.
“으음…….”
내가 머뭇거리자, 기회를 잡은 천 공자 놈이 버럭 고함을 지른다.
“설마 아무것도 주기 싫다는 것이냐!”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천 공자.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지금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그게…….”
나는 이쯤에서 한발 물러나 약한 모습을 내보였다.
마치 허세를 부리다 된통 걸린 모양새.
그러자, 천 공자 놈은 이때다 싶었는지 언성을 높이며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크하하하! 장철, 네가 내 앞에서 뭘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여태껏 나에게 당하기만 하던 천 공자 놈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놈이 된 듯했다.
후기지수들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나는 네 비밀을 알고 있다.”
“오호. 내 비밀이라고? 네가 나에 대해 무얼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하하하!”
“네가 사실 주 노조님을 좋……. 읍읍!!”
파밧!
내가 엄청난 사실을 폭로하려 하자, 놈이 다급히 뛰어와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 탓에 나는 멸영단의 기운에 완전히 노출되어 안색이 핼쑥하게 질려 버렸다.
마치 범인(凡人)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
하지만 천 공자 놈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놈이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닥쳐! 이 새끼야.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야!”
“오호……. 네가 그런 상소리도 할 줄 알았나? 이거 놀라운데?”
놈이 시선을 끌어모은 탓에 모든 후기지수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언급한 ‘주 노조’란 단어 탓인지 오 장로는 물론이고 외당주마저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었다.
외당주가 말했다.
“장철, 주 노조님이 뭐가 어쨌다는 말이냐?”
“하, 하하! 아닙니다. 그저 일반 단약사 시험을 잘 치르면 제자가 될 것이 기대된 나머지…….”
외당주는 자신도 부럽다는 눈빛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멀어졌다.
나의 자비심 덕분에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천 공자 놈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나는 귀여운 천 공자 놈을 바라보며 실컷 조롱해 줬다.
“보았겠지? 다시는 나를 몰아붙이지 마라. 천 공자. 흐흐흐.”
“으드득……! 두고 보자.”
“어허! 그 부끄러운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해야 하겠느냐!”
“아, 알겠다. 하, 하지 마라. 장철…….”
* * *
그렇게 한참 동안 천 공자 놈을 다시 한번 교육시켰을 때.
섬에 내려가 있던 결단기 수도자들이 외쳤다.
“모두들 내려오거라!”
그 말을 들은 후기지수들이 하나둘씩 비행법기에서 뛰어내렸다.
비행법기는 족히 허공 십 장(30m) 높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후기지수들은 뛰어내리는 것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다들 한가락 한다 이거지……?’
모든 후기지수들이 섬의 중앙으로 모였을 때, 각 종문의 인솔자로 보이는 결단기 수도자들이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십시다.”
“좋소. 일찍 끝마치고 종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지…….”
“어차피 비경 안에서 6개월은 지낼 터인데 우리 마음대로 되겠소? 허허허.”
우리가 모인 섬의 중앙에는 모종의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저곳에 결단기 수도자들이 합심해 영력을 쏟아부어야 발동되는 것으로 보였다.
우우웅─!
인솔자들이 제멋대로 한마디씩 뱉고 나서 다들 영력을 끌어올렸다. 한데, 유독 백혼종의 인솔자로 보이는 놈은 멀뚱히 선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진법을 발동시키기에 영력이 부족했던 탓.
한참 동안 진법을 구동시키려 영력을 주입했지만 내내 반응이 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영력을 쥐어짜던 와중 짜증스럽게 외쳤다.
“뭣들 하시오! 다들 힘을 좀 내 보시오!”
“우리는 뭐 놀고 있는 줄 아시오? 이게 다 백혼종에서 저자를 보낸 탓이지 않소?”
“허 참,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영력을 쥐어짜던 와중 단문종의 인솔자, 외당주가 눈을 빛냈다.
“그렇지! 오 장로가 있었지! 어서 와서 도우시오. 오 장로.”
구경만 하고 있던 오 장로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진법을 향해 다가갔고, 이내 전력을 끌어올려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우우웅─!
총 여덟 명의 결단기 수도자가 모였기 때문일까?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진법이 활성화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외당주의 안색은 여전히 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직 영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인솔자급인 결단 후기 수도자 여덟 명의 영력이 필요한 모양이구나. 하지만 백혼종이 이상한 놈을 보내서 문제가 생겼고……. 오 장로는 결단 중기에 불과하니 힘이 부족할 수밖에……. 결단 중기와 후기의 차이가 꽤 큰 모양이군.’
후기지수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상황을 알아채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그들의 일생에 있어 단 한 번 찾아오는 큰 기회인데 잘못하면 그것이 통째로 날아갈 상황인 것.
그때 다혈질인 외당주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위로 올려 소리쳤다.
“호법존자들! 당신들도 구경만 하지 말고 내려와 도우시오!!”
이에 호법존자들 중 하나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느릿하게 대꾸했다.
“허허허. 우리의 임무는 이곳을 지키는 것이 전부인데……. 백 년간 고생을 한 우리에게 아무 대가도 없이 힘을 쓰라는 것입니까?”
“그렇지, 그렇지. 종문의 어르신들이라면 우리 같은 것들에게도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시지 않겠소?”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대가를 내놓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
순간 외당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저것들을 전부 죽여 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축기비경은 모든 종문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으므로 이것을 망친다면 자신에게도 문책이 떨어질 것에 생각이 미쳤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외당주가 외쳤다.
“알겠다. 황룡단(黃龍丹)을 하나씩 지급하겠다. 그러니 어서 내려와라!”
“오호! 황룡단이라면 상품 3급의 귀물(貴物)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마땅히 명에 따라야지요. 하하핫!”
호법존자들은 상품의 단약을 준다는 소리에 기뻐하며 내려섰고, 이내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네 명의 결단기 수도자가 추가되자, 순식간에 영력이 충족되어 진법이 활성화되어 갔다.
그리고 다른 종문의 인솔자들이 감탄한 얼굴로 외당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외당주, 우리를 위해 그토록 큰 희생을 하시다니……. 참으로 고맙소이다.”
그 소리를 들은 외당주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시오? 마땅히 대가는 백혼종에서 치러야지? 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소? 내 말이 틀렸소이까?”
외당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모든 수도자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단문종과 백혼종의 문제. 다들 자신과는 연관이 없으니 분쟁에 끼어들기 싫다는 태도였다.
나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수도자들은 참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이든 절대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구나.’
호법존자는 물론이고, 외당주, 그리고 다른 수도자들까지. 모두들 손해를 보지 않으려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 염마종의 이 장좌 놈이 눈에 띄었다. 놈은 이상하게도 아까 전부터 한 사람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는 바로 백혼종에서 나왔다는 수상한 사내였다.
이 장좌 놈이 노려보는 눈빛엔 마치 오래 묵은 원한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시선을 받으면 정신 수양이 뛰어난 나라고 해도 짜증이 날 것 같았건만, 백혼종의 사내는 그를 흘긋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무시해 버렸다.
우우우웅!!
진법이 완전히 활성화되었다.
약 10장이 넘어가는 거대한 크기의 진법 위에 새겨진, 처음 보는 신비로운 문양에 따라 영력이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순환했다.
그러면서 점점 그 기운이 증폭되어 갔고, 이내 엄청난 굉음을 내뿜으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쩌어어엉─!!
깜짝 놀란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높이 쳐들어 그 기운의 움직임에 시선을 맞췄다.
한데, 영력으로 이루어진 그 빛기둥은 마치 하늘을 꿰뚫어 버릴 것인 양 한도 끝도 없이 솟구쳐 시야에 담아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제야 결단기 수도자들이 손을 털며 주변을 돌아본다.
“이제 된 것 같군.”
“그렇소. 다들 고생 많으셨소이다.”
“30년마다 매번 전력을 쏟아부어야 하다니! 이 영력을 보충하려면 도대체 단약이 얼마인가! 왜 종문에선 나만 보낸단 말인가? 쯧!”
불평을 쏟아 내던 수도자는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변명을 내뱉었다.
“흠흠! 그래도 종문의 명이니 마땅히 따르는 것이오. 내 다른 뜻이 있던 것은 아니니 다들 오해 마시오!”
그때까지도 후기지수들은 진법의 빛기둥에 매료되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빛기둥을 자세히 관찰하며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점점 빛기둥이 사그라들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길래 이만한 영력을 품고도 부족하다는 것일까?’
내 생각엔 서둘러 진법에 들어가지 않으면 다시금 가동시켜야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멍청한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는 후기지수들을 발견한 결단기 수도자 하나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어서 들어가지 않고 무엇 하느냐!!”
화들짝 놀란 후기지수들이 허둥지둥 진법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나는 몸이 붕 뜨는 것을 느끼며 어딘가로 전송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때 단문종 후기지수들에게 외당주의 전음성이 들려왔다.
– 앞서 말했다시피 모두들 제각각의 공간으로 전송될 터이니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방패 역할을 해야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
전송이 진행됨에 따라 전음성이 흔들리더니 이내 끊겨 버렸다.
결단 후기의 술법도 무색하게 만드는 곳.
우리는 축기비경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