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3
152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무언가 잔뜩 의미를 담아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물어봤더니 다들 말을 돌렸다.
일단 가족들에게 돌아왔단 안부 인사를 하러 간단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떼어내곤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반도를 선물하면 서운한 마음이 있더라도 다 풀 줄 알았는데…….”
[선물 좀 안겨줬다고 해서 화난 마음을 푼다는 건 그만큼 속물이란 소리지. 그 아이가 그렇게 속물이더냐?]“그건…… 아니죠.”
[사람마다 우선시하는 것이 다르다. 이성적으론 네 판단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감성적인 면에선 영 아니었지.]“이성과 감성은 다르다…….”
설아 누나를 위한다는 마음에 성급히 움직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설아 누나가 우선시하는 것은 아니다.
“알 것 같네요. 아니, 알고 있는 거였는데…….”
나라고 해서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 입장이 되었을 때와 지난 다음 돌아봤을 때의 생각이란 건 역시 달랐다.
[뭣보다, 그 반도를 당장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잖느냐?]“……예?”
이건 또 뭔.
나는 무척 억울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설마 그냥 먹일 생각이었냐?]장삼풍 사부는 되려 이상하다는 듯 되물으셨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천고의 영약인 반도에 어린 것은 천상 도화 나무에 어린 목기의 정화다.
목기라면 설아 누나 내부의 냉기를 누르는 상극의 기운이 되어줄 거라 굳게 믿었는데…….
[그래, 그 설아라는 아이 몸뚱이가 너보다 튼튼하다면야 탈 날 일은 없겠지.]“…….”
[상생상극에 대해서 그렇게 경험해보고도 몰라? 기운 자체가 상극인데, 반발이 없겠냐?]이렇게 들으니 납득이 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연단을 해야지. 좋은 기운은 북돋고, 해롭거나 과한 기운은 거르고. 명문 정파마다 대표하는 영약이 있는 게 왜인데. 그냥 먹으면 제대로 약효를 받지 못하거나, 너무 받아서 훅 가거나 둘 중 하나다.]“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설아 누나의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은 먼 훗날의 일인 것 같다.
‘소주를 다녀온 내 노력은 대체…….’
물론 소득은 많았다.
나무의 신력을 얻었고, 좀 더 효율적으로 힘을 움직일 방도를 찾았으며, 새로운 무공의 기반도 하나 마련했다.
용린대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었고, 신비세력인 학에 대해서도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
녹림과 장강수로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도 파악했으며, 남궁세가 인사들과도 안면을 텄다.
과할 정도로 많은 것을 얻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 여겼던 일의 성과가 가시적이지 못하니 기운이 쭉 빠졌다.
***
요 근래 계속 바깥을 싸돌아다닌 탓인지 이번 소주 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부모님들은 별말 하지 않았다.
“흥!”
도도도!
대신 동생 청우가 이른 사춘기라도 왔는지 질풍노도의 반응을 보여주며 도망가 버렸다.
착한 청우가 저런 행동을 하다니…….
백무호 그놈에게 물든 것이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의 대면은 생각했던 것보다 싱거웠다.
그저 딱 한마디만 하셨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렵다.
용린대만이 아니라 황궁 그리고 학이라는 존재까지 포괄한 말로 들렸다.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것이 많다는 느낌이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굳이 캐묻진 않았다.
물어도 소용없을 테니까.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을 꺼낼 때부터 할아버지 입에서 뭔가가 나올 거란 기대는 접었다.
‘저게 할아버지 방식인 걸 어쩌겠어.’
사실 나도 그것보다는 이쪽이 더 급하다.
***
“잘 지냈냐?”
“잘 물어봤다, 이 새끼야!”
내가 아는 백무호로 돌아온 놈이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죽어라 이 새끼야!”
“아니, 그건 좀.”
할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벌써 죽는 건 곤란하다.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반만 죽어!”
“반만?”
‘그래, 그 정도는…… 인정이지.’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긴 했으니까.
백무호 놈은 정확히 한 식경 동안이나 내 모가지를 잡고 흔들었다.
***
백무호와의 면담(?) 다음 순서는, 신승 어르신과 장문경 선배다.
장소월 소저와 당사연 소저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무서운 분들만 남아서 나를 주시하고 계셨다.
“어째 떠나기 전보다 더 다듬어진 것 같구나?”
“기연이라도 있었나 보군.”
옆에 있던 백무호가 나를 수상쩍게 바라봤다.
‘니 차례는 지나갔다, 인마.’
한 식경이나 멱살 잡혀 줬으면 됐지. 뭘 더 바라.
나는 백무호 녀석을 치우고, 두 분 어르신께 집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다행히도 신승 어르신이 이야기가 나아갈 길을 터주셔서, 소주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풀어내기가 쉬워졌다.
천상의 사부님들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나무의 신력이라든가 하는 밝히기 어려운 이야기는 접어야겠지만.
‘뭐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소주에 볼일이 생겨서 잠시 다녀왔습니다만, 이야깃거리가 좀 있긴 합니다. 장강에서 일위도강을 해봤다든가.”
“……그게 되든?”
일위도강이라는 말에 신승 어르신이 흥미를 보이셨다.
“아뇨. 그냥 중간에 다 때려치우고 등평도수로 때웠습니다.”
“그랬겠지……. 크흠!”
[해 봤나 보군.]장삼풍 사부가 역시나, 라는 기색으로 웃으셨다.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집중하자.’
적당히 분위기를 풀어줄 이야기로 주목을 끈 다음, 제대로 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용린대라는 황실 비밀조직과 학이라 명명한 자들과의 싸움.
돌아오는 길에 부딪힌 녹림과의 싸움.
“대통합이라…….”
안휘에서 녹림과 남궁세가가 전투를 벌였다는 것에는 꽤나 놀라신 눈치였다.
“성공하면 파란이 일긴 하겠군.”
“성공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개방 제자의 의견에는 냉소적이었다.
사실,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무공에서 시작해서 터전도, 규범도, 사상도, 사고도, 방식도 다른 일흔두 개의 세력이 하나로 뭉친다니.
설령 녹림의 일부 세력에 그런 뜻이 있다 한들 쉬이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구파가 하나의 문파로 일통되는 것만큼이나 난해한 일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녹림칠십이채가 진실로 하나의 세력을 이룬 일은 전무했다.
외부에 적이 생기면 내부가 단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지만, 꼭 그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다.
‘하지만 역시 걸리는 점이 있어.’
자꾸 학이라 명명한 세력이 마음에 걸린다.
사천에서의 일도 그랬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다만 근거가 없는 그저 육감(六感)에 가까운 것이기에 의견을 낼 수는 없었다.
“그럼 네 기량이 늘어난 것도 강한 놈들과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올라갔다는 소리구나?”
“예…….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천상의 사부님들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취들이었기에 대답에 자신감이 없었다.
“경악할 만한 성과를 보인 녀석이 맥아리가 없구나. 거록채의 채주를 상대로 사지 멀쩡히 돌아온 것만 해도 괄목(刮目)할 일이거늘.”
“아십니까?”
“거록채라면 소림의 가시 같은 곳이니까. 오래전 모종의 일로 소림의 무상곤과 연금강의 비전이 일부 흘러 들어갔지. 덕분에 그곳 놈들이 펼치는 무공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파훼하기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곳 채주라면 만만치 않을 고수일 터인데…….”
신승 어르신의 평가대로 거록채주 악군패가 펼치던 부법(斧法)은 단순해 보였지만 피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이 무상곤이라는 무공의 묘리였나 보다.
다만, 무공을 펼칠 때 정파의 것으로 볼 수 없는 기운을 흘리던 것을 보면 제대로 된 비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행했으면 좋을 뻔했구나. 이번 기회에 박살 낼 수 있었을 것을……. 쯧!”
“하하…….”
소림 역시 좋아서 거록채를 내버려두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거리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사 간 세력 구도상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란 말이지. 재능만으로 될 일은 아닐 테고……. 팍팍 굴리면 뭐든 결과물이 나오는 유형인가? 이게 중토신공의 성과 같은 거라면 이 녀석을 통해서 얻을 것이 있다는 건데…… 작정하고 한번 굴려봐?”
‘……왜 갑자기 신승 어르신이 사부님들처럼 보이지?’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신승 어르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신승 어르신이 오랜 은거를 깨고 나를 만나러 온 이유는 필시 중토신공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얼거리듯 하신 혼잣말엔 절대 얽혀선 안 된다.
“덕풍 윤가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모양이군.”
“눈치채셨습니까?”
“네 녀석을 본 것은 얼마 안 되었지만, 자기 자랑하듯 무림행을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성정이 아니니까.”
신승 어르신 못지않게 무공에 미쳐 사는 장문경 선배지만, 지금은 다소나마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다.
“안 그래도 조만간 움직일 참이었다. 네가 오기 전에 알아보고 있는 것도 있었고. 손 써놓은 것도 있고.”
“아…….”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다.
신승 어르신이나, 장문경 선배나 무공 말고는 주변에 신경을 쓰는 성격들이 아니다.
사실 장문경 선배의 말처럼 굳이 이번 소주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떠든 것도 두 분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덕풍 윤가가 혈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장문경 선배는 이전에 혈교와 부딪친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쪽으로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기대 이상으로 잘 풀렸다고…….’
“이화랑은 뭐 재미있는 일 없었냐?”
“……있을 리가 없잖아!”
갑자기 백무호 놈이 훅 치고 들어왔다.
왠지 장문경 선배도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오셨다.
“같이 뱃놀이 같은 거 안 했어?”
“뱃놀이는 개뿔. 흙탕물이라면 토할 정도로 마시긴 했지.”
“뭐야, 재미없게.”
백무호가 투덜거렸다.
갑자기 이놈 마빡을 땅에다 꽂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러고 보니 이화는 어떻게 됐으려나?’
설아 누나가 아무 죄 없는(?) 이화에게 해코지를 할 리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런 설아 누나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인지라 마냥 안심이 되진 않았다.
‘설아 누나와 이화라…….’
둘 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걱정되기도 했고.
***
어르신들이 기거하시는 별채에서 나오자 저쪽에서 설아 누나와 이화가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중간에 합류라도 했던 것인지, 장소월 소저와 당사연 소저도 함께였다.
다행히 설아 누나는 마을 외곽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침착해진 것 같은 모습이다.
‘어? 표정이 왜 저래?’
아니, 저건 침착해졌다기보단, 질렸다는 표현이 맞으려나?
특이한 건 같이 오고 있는 장소월 소저나 당사연 소저도 비슷한 얼굴이란 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싸운 흔적은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이화가 내 옆에 섰다.
“……굉장히 특이한 아이네.”
“……예?”
“특이하다고. 엄청.”
설아 누나의 입에서 내 상상력으론 도무지 유추가 불가능한 말이 흘러나왔다.
괴랄한 것은 장소월 소저와 당사연 소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쪽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삼양현에 돌아오고 좌충우돌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여러 생각들이 난무하고 부딪쳤지만, 그런대로 이야기들이 잘 매듭지어진 듯 보였다.
해가 저문 저녁 무렵, 뭔가 가득 쓰인 종이 한 장을 들고 온 백무호를 보기 전까진.
“중신상회에서 덕풍 윤가의 약점을 잡아보려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한 것 중에 어린아이에 대해 언급된 이야기가 있었던 거 기억하지?”
“뭔가 있어?”
“많아.”
뭔가가 있냐고 물었더니 많다고 한다.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인가 싶어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백무호는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많아.”
잠시 뜸을 들이고 입을 연 백무호의 말은 있는 그대로의 표현이란 걸 깨달았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