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4
153화 덕풍 윤가의 어둠
백무호가 가져온 정보 앞에 덕풍 윤가로 쳐들어갈 전력들이 모였다.
그곳에 웃음은 없었다.
무거운 공기만이 있었다.
적어도 덕풍 윤가를 찢어버리기 전까진 이 분위기가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죄라도 지은 기분이네.’
내게 잘못은 없다.
하지만 정보의 내용은 내게 숙연해질 것을 강요하고 있다.
나는 그 강압에 기꺼이 따랐다.
더러운 것을 봤더니 기분이 더럽다.
자연스럽게 청명심법의 호흡이 올라와 흔들린 심기를 잡고 있음에도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다.
“지옥 가장 깊은 곳에 처박아야 할 놈들이로고! 어디 건드릴 게 없어서 아이들을…….”
다들 하는 생각들은 비슷한 것 같다.
심장 한편에 불쾌한 것들을 달고 있는 모습들이다.
타인을 위해 화를 낸다.
누군가에겐 괜한 오지랖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나는… 아니, 우리는 생각보다 오지랖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다.
“가죠, 박살 내러.”
나는 이 불쾌한 것을 떼어내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을 제안했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
혈족 중심의 세가에서 직계였던 이들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방계로 밀려나게 된다.
세대를 거칠 때마다 촌수가 밀려나니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윤상인 역시 그런 유형이었다.
한때 직계였지만, 밀려난 촌수로 인해 방계로 떨어지게 된.
자질이 뛰어나 두각을 보이면 세가 내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을 수 있지만, 윤상인의 자질은 평범한 축이었다.
하나를 배우면 죽어라 매달려야 간신히 그 하나를 터득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아마도 특별하게 이름을 날릴 기회 없이 그저 덕풍 윤가라는 가문의 한 명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랬던 적도 있었지.”
윤상인은 어딘가 탁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정해져 있던 미래는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미래가 바뀌기 시작한 곳. 가문의 선조를 모시는 사당을 바라보며 윤상인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덕풍 윤가의 선조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가문의 사당은 본가에서 다소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한 곳으로 가문의 무공을 수련하는 수련장으로 쓰였다.
직계 혈족의 손발이 될 무인을 길러내기 위한 곳으로, 외부에서 받아들인 어린 동량들이 가득했다.
다양한 재능을 뽐내는 기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두각을 드러냈다.
덕풍 윤가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구파 무공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속가 무공이라고는 하나, 담고 있는 무리는 상승 무공을 지향하고 있는바.
하나같이 난해하기에 평범한 재능으론 성취하기 어려웠다.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면서 재능의 격차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죽어라 매달려서 간신히 잡은 실마리를 어렵지 않게 터득해내는 재능 충만한 녀석들과 부대끼며 어두운 감정들이 꾸물꾸물 올라왔다.
그렇게 이곳에 오기 전에 미리 가문의 무공을 익혔다는 이점이 흐릿해지기 충분할 무렵.
“푸흐!”
윤상인은 가문의 비밀을 맛봤다.
이곳은 가문의 수족이 될 기재를 기르는 곳이 아니었다.
여긴 거대한 도살장이었다.
동량을 기른다며 끌어모은 아이들의 피를 탐하는 괴물들이 모인 곳이다.
본가가 아닌 산속에 마련된 것도 일을 끝내고 남은 부산물들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함이다.
어린 동량들의 피를 통해 특수한 대법을 받고 나자, 윤상인은 스스로가 달라지는 것을 빠르게 느꼈다.
그저 어렵기만 했던 가문의 무공들이 쉬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죽어라 노력해야 간신히 손에 잡히던 것들이 한결 쉽게 얻어졌다.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당황하던 어린 동기들의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다.
먹잇감이 되어 먹힐 때의 얼굴도.
“좋았지. 좋았어.”
구역질 나던 첫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빛나는 미래를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이젠 쾌감마저 느껴졌다.
가히 중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자연히 한 번이라도 더 대법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는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부랑자를 잡아 오기까지 했다.
탁한 피는 성과가 미비했지만, 목마름을 채워 줄 정도는 됐다.
윤상인은 괴물이 되었음을 받아들였다.
약해빠진 것들은 먹잇감이 될 뿐이라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합리화했다.
“아…… 고프다…….”
짙은 허기를 느끼며 윤상인은 가문 직계를 향해 질투심을 불태웠다.
가문 직계가 받는 대법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 들었다.
사실 여기 모인 동량들의 피 대부분이 직계를 위해 쓰인다.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것은 만찬 위의 부스러기에 불과할 뿐이다.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을 기른다며 대대적으로 어린아이들을 모을 때가 바로 직계를 위한 준비를 할 때다.
이번 세대는 후계자가 바뀌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끌어모은 아이들의 숫자도 많았다.
근방의 고아나 어린 거지들의 씨가 마른 수준이다.
윤상인이 아쉬워하는 부분이었다.
“윤시후 그놈도 뒈져 버렸으면 참 좋을 텐데…….”
혹시 아는가.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지.
윤상인은 작게 불씨를 피우는 야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러기 위해선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나 더 먹어 볼까.”
본가에서는 근래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다며 모든 것을 폐기하고 흔적을 지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몸을 낮췄을 뿐, 본가의 시선을 피해 거듭 대법을 행했다.
덕풍 윤가의 대법이 오랫동안 외부에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나름의 은밀한 절차와 방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세대에는 좀 무리한 경향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들통 날 리는 없다.
지금까지 그런 전례는 없었으니까.
하물며 비교적 태평성대인 세상이다.
정사마의 대대적인 격돌이 없는 탓에 어디나 사람들이 그득하다.
“그래, 하자.”
결심과 함께 윤상인은 대문으로 향했다.
나름 몇몇 사냥감을 알아봐 뒀다.
경솔하다며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 다들 나눠 먹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래 왔듯.
그렇게 대문으로 다가간 순간,
콰아아앙!!
대문이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불한당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청년이 분노한 모습으로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역겹다.”
윤상인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분명 그것이었다.
***
덕풍 윤가에서 어린아이들을 모으는 방법은 무척이나 용의주도했다.
처지가 곤궁한 집에 돈을 주고 사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없어져도 찾지 않는 고아들을 주로 끌어모았다.
요 근래 묘하게 무리수를 둔 정황이 없었다면 꼬리를 잡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모인 정보들이 덕풍 윤가에서 소유한 산으로 이어졌다.
“여기긴 한데…….”
백무호는 덕풍 윤가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자 수련장인 곳 대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제대로 왔는지 주변을 살폈다.
시조를 모시는 사당이라더니, 탈속한 도가의 느낌이 짙은 정갈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겉모습뿐이다.
“여기 맞아.”
이곳을 앞에 둠과 동시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뭔가 거대한 똥덩이를 보는 느낌이다. 거부감을 넘은 역겨움에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원활한 뒤처리를 위한 증거를 모을 필요가 있지만, 이곳에는 구역질 나는 증거들이 넘쳐날 것이 분명했다.
‘설령 증거 따위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힘을 모았다.
움직이는 몸에 내력이 호응한다. 여기에 내가 느끼는 역겨움이 더해져 주먹에 실렸다.
콰아아앙!
두꺼운 대문이 부서짐과 동시에 역겨운 똥덩어리가 하나 보였다.
“역겹다.”
지금 나는 맨정신으로 온몸에 똥칠하는 기분이다.
저것이 주둥이를 여는 것조차 용납하기 어려웠다.
콰득!
일격에 머리통을 부수며 앞으로 달렸다.
“……저 녀석, 완전 오늘만 살 것처럼 날뛰네. 저런 성격이 아닌데?”
“확신을 가지고 박살 내러 온 마당에 혓바닥 길어서 뭐 하겠느냐. 장가 애송이가 혈교의 흔적을 보았다 확신했으면 그 자체가 증거인 것을.”
백무호와 신승 어르신의 대화가 끝남과 동시에 뭔가 거대한 것이 내 옆을 지나갔다.
신승 어르신과 장문경 선배.
“천천히 따라오너라.”
두 거인이 작정하고 움직였다.
두 분이 향하는 방향에서 대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나온 자들이 노호를 내질렀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소…….”
퍼억!
노성을 내지르던 머리가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털썩!
고요한 가운데 머리를 잃은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백보신권?”
모여들었던 똥덩어리들 중 가장 늙어 보이는 자가 뒤늦게 신승 어르신의 무공을 알아보고 얼굴을 굳혔다.
“소림이…… 왜?”
“왜 왔을 것 같으냐?”
“…….”
“아이들은 어디 있느냐? 이만한 소란이 일었는데 도통 기척이 느껴지질 않는구나?”
“허어…….”
모든 걸 다 알고 왔다 생각한 걸까.
똥덩어리들이 살기를 드러내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제법 한가락 한다는 건 알겠다만, 고작 그 머릿수로 여길 오다니.”
“흐흐흐.”
‘……저 늙은이가 돌았나?’
혈교의 역겨운 수법에는 간덩이를 붓게 만드는 비법이 담겨 있는 게 틀림없다.
“허허허!”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신승 어르신께서 웃으셨다.
그에 맞춰 따라 웃는 적들의 웃음 속에 광기가 스멀스멀 느껴진다.
중신상회에서 느꼈던 그 역겨움이 일순간 치솟았다.
저 똥덩어리들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 때는 말이다.”
“컥!”
순간적으로 코앞에 나타나 목을 움켜쥐는 신승 어르신의 모습에 경악하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유일하게 목이 잡힌 노인만을 빼고.
‘저게 경지에 다다른 금강부동신법인가.’
뒤에서 지켜본 나는 달마 사부의 말처럼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나타나는 경세의 신법이자 보법을 볼 수 있었다.
정면이었다면 낌새도 차리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소림과 맞섰던 자들이 듣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말이 있었느니라.”
“커컥!!”
“내 지옥에 처박히는 한이 있어도, 살.계.를.열.겠.노.라.”
우득!
목이 잡혀 꼼짝 못 하는 늙은 똥덩어리 머리 위로 신승 어르신의 반대편 손이 떨어졌다.
파각!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눈이 뒤집힌 자들이 일거에 신승 어르신에게 달려드는 순간 신승 어르신의 신형이 아홉으로 나뉘었다.
“연대구품!”
콰콰콰콰콰콰!!
사방에서 달려들던 똥덩어리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때서야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자들이 몸을 피하려 했지만.
서걱! 콰칵!!
그중 절반이 채 두 걸음을 떼기 전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세로로 쪼개졌다.
“천의무봉?”
“장문경이라니…… 이 무슨!”
주제도 모르고 날뛰던 똥덩어리들의 기세가 단번에 꺾였다.
소림의 정점과 천하십검이 지닌 위용이 드러나는 무위였다.
그사이 나는 눈치 빠르게 몸을 빼려던 자들에게로 향했다.
“비켜라!”
도주하려는 주제에 앞을 막아선 내가 만만해 보였는지 자신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단번에 때려죽이겠다는 듯, 내게 붉은 기운을 담은 일장을 뻗었다.
나 역시 정면으로 맞서며 주먹을 뻗었다.
퍼억!
나무의 신력을 담은 일격이 붉은 기운을 관통했다.
팔과 어깨를 통째로 지워버리며 그대로 심장을 찢어버렸다.
벽처럼 막아선 나를 향해 똥덩어리들이 차례차례 쇄도해왔다.
‘천라무결.’
종횡무진 움직이는 몸이 본능대로 손을 뻗었다.
무거운 족쇄를 푼 사람처럼 거침없이 활보했다.
“커헉!”
“면장공?! 무당…… 쿠왁!”
스치기만 해도 죽어 나간다.
나와 손속을 교환하며 지나쳐간 자들이 피를 토하며 꼬꾸라졌다.
***
걸리적거리는 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다음, 신승 어르신과 장문경 선배가 중심부에 있는 건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덕풍 윤가 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라 했으니, 이 건물이 아마 그 역할을 하는 곳일 거다.
“……아미타불.”
그곳의 문을 열었던 신승 어르신이 나지막이 불호를 외었다.
뒤에서 보이는 등과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오지 마라.”
신승 어르신과 같이 나아갔던 장문경 선배의 말이다.
처음 알았다.
장문경 선배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대체 저기 보이는 것이 무엇이기에 저리 말하는 건지 두려울 정도다.
허나 두렵다고 한들 피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
덕풍 윤가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고 싶어지는 참상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