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악인은 지옥으로
이번 덕풍 윤가를 치는 데 동원된 전력은 모두 일곱이었다.
나와 신승 어르신, 장문경 선배, 백무호와 범각, 장소월 소저, 마지막으로 이화.
사천당가의 경우는 이번 임무의 특성 때문에 빼 주기로 했다.
독과 암기에 특화되어 있는 사천당가의 특성상, 만에 하나 생존해 있는 아이가 있을 경우 자칫 휘말려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가 특유의 정치적인 면을 고려해 준 점도 있었다.
‘장소월 소저나 이화도 오지 않는 게 나았겠네.’
장문경 선배가 말렸을 정도다.
평소 굳건해 보이던 장소월 소저가 평정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범각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토악질을 하며 약한 모습을 보였다.
“불제자란 녀석이! 불쌍한 아해들 앞에서! 제일 먼저 할 짓이 그것이더냐!!”
짜악! 짝!
“악! 아악! 죄, 죄송합니다!!”
등짝을 얻어맞은 범각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신승 어르신의 여래신장이라면 울 만큼 아플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저 눈물은 아파서 우는 것으로 해 두자.
“불제자라……. 허어, 불제자…….”
범각의 등짝을 후려치던 신승 어르신이 돌연 불제자라는 말을 거듭 입에 담으신다.
“이를 보고도 주먹 휘두를 생각을 먼저 한다면 불제자 자격이 없는 거겠지…….”
“빠지실 생각이십니까?”
“자네도 알 게 아닌가. 수준 차이를 모르고 자아도취에 빠져 헛바퀴만 돈 놈들이야. 이딴 식으로 만들어진 무인은 두려워할 것이 못 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평가가 신랄하다.
장문경 선배 하나만 나서도 정리될 것이란 의견에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눈앞의 싸움보다, 죽은 이의 안식을 우선하는 것도 납득했다.
“평생 무공에 미쳐 있던 땡중이지만…… 그래도 기억하는 불경 몇 줄 정도는 있으이.”
신승 어르신의 다른 면을 보는 기분이다.
‘하긴, 그저 무공만 강할 뿐이라면 신승(神僧)이라 불릴 일은 없었겠지.’
장문경 선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잘됐군요. 제가 벨 몫이 더 커진 것 같으니까요.”
장문경 선배의 시선이 잠시 장소월 소저를 향했다.
얼굴이 잔뜩 굳어진 장소월 소저를 보며 다시 한번 미간의 주름을 꿈틀거렸다.
“서로 바라는 바가 맞아서 다행입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기 때문일까.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느낄 정도로 분노한 감정이 장문경 선배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내리고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정을 되찾아라. 반각 준다.”
일행을 선도하는 입장이 된 장문경 선배가 흔들린 마음을 다잡을 것을 요구했다.
무공에 감정이 실리면 실수하기도 쉽다.
그런 점에선 유용한 지시다.
청명심법 덕에 빠르게 평정을 찾은 나는 작은 여유 시간에 문득 떠오른 것이 생겨 하늘을 올려보았다.
“사부님.”
[왜? 뭐 필요한 거라도 있냐?]덕풍 윤가 본가와의 싸움을 앞둔 상황에서 장삼풍 사부는 뭐라도 더 챙겨주려는 듯 말씀하셨다.
덕분에 나도 편히 궁금한 점을 입에 담았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요?”
[고통으로 죄를 덜어내는 곳이다. 앞으로 있을 무수한 윤회의 흐름 속에서도 다 해결하지 못할 죄의 인과를 덜어내는 곳이라 할 수 있겠지.]“그 고통…… 많이 괴롭습니까?”
[괴롭냐고? 하하하하!]내 물음에 장삼풍 사부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안다면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 죄를 지을 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장삼풍 사부는 일고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언하셨다.
“…….”
[사람은 무엇으로 고통을 느끼느냐?]“선문답 같은 질문이십니까?”
[있는 그대로다.]“그럼…… 신경이겠죠.”
살수들의 경우 고통을 도외시한 공격을 가하기 위해 통각을 끊고 달려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살수는 아니지만, 사천에서 도축장에 잠입해 있던 마교 잡졸이 비슷한 짓을 하기도 했었다.
[그럼 육신이 없는 영혼은 고통을 느낄까?]“어어…….”
통각이 없으니 고통을 느끼지 않아야 할 것 같지만, 지옥은 고통으로 죄를 덜어내는 곳이라 했다.
“느낄 것 같습니다.”
[맞다. 영혼은 고통을 느낀다. 영혼이라는 존재 자체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구조라는 것이지. 그리고 지옥에서는 집행자의 임의에 따라 고통의 배수를 늘릴 수 있다. 집행을 받는 영혼은 미칠 수도 없고, 기절할 수도 없으며, 망가지지도 않는다.]끔찍한 소리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천마가 신선한 방법으로 시건방진 놈 하나를 짓이겨 놓은 적도 있구나. 고통의 배수를 십억 배로 늘리고, 저 하늘의 별 하나를 주둥이에 쑤셔 넣었지. 지상에서 온갖 고문에 익숙해 있다며 실실 쪼개던 녀석이 단번에 예의가 발라지더구나.]“……십억 배.”
저 정도면 내가 상상한 수치를 까마득히 넘겼다.
미칠 수도 없고, 기절할 수도 없으며 망가지지도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 순간 상상한 것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 아득함에 얼굴이 뻣뻣해지는 사이 장삼풍 사부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뭘 궁금해하는지 알겠다. 훗날 네가 천상에 올랐을 그때, 저것들이 지옥에 남아 있겠냐는 것이지?]“……예.”
[안심해라. 저 정도면 최소로 잡아도 천 년짜리다. 지옥의 어느 판관도 관대함을 보이지 않을 테니 감형도 어려울 거고. 네가 올라올 때까진 지옥에 처박혀 있을 게다.]“다행이네요.”
분노로 흔들리려던 마음이 평안하게 가라앉았다.
동시에 짙은 사명감이 생겨났다.
그 끔찍한 곳에 엿 같은 쓰레기들을 처넣는 일이라니.
아주 보람찰 것 같다.
“뭘 그리 혼자 중얼거려?”
되도록 조용히 대화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흘러나가는 것을 아주 막을 수는 없었는지 백무호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백무호의 얼굴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게 있어.”
이미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보란 듯이 웃어주었다.
하지만.
“선배님, 이 새끼 웃는데요?”
“……응?”
“어린 동생 녀석도 있는 놈이라 저걸 보고 충격이 큰 것 같은데, 얘도 빼고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백무호 녀석이 괜한 걱정으로 쓸데없는 소릴 했다.
‘뭐래…… 어?’
당황스러운 건 주변 반응도 백무호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무리하지 마라.”
심지어 장문경 선배가 심란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무척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
덕풍 윤가의 가주 윤진혁은 최근 발생한 일들을 초조한 마음으로 주시하는 중이었다.
“짜증 나는군.”
우리에 갇힌 짐승이 된 기분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있음에도, 다른 이들의 눈길이 두려워 자발적으로 숨을 죽이고 웅크려 있어야 하는 점이 특히 답답했다.
“윤지승, 멍청한 늙은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얼간이인 줄은 알았지만, 천하십검 앞에서도 그 지랄을 떨다니…….”
비교할 대상이 없는 곳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주제 파악을 하는 능력이 상실되곤 한다.
윤진혁은 윤지승이 딱 그런 꼴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가문 사당에 몰아넣은 혈족 중에선 그런 성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은 뒷산에서 호랑이처럼 군림한다고 하여 진짜 호랑이라도 된 줄 알았던가.”
주제 파악을 상실한 윤지승이 중신상회에서 벌인 일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신상회와 홍무문 그리고 명운표국이 얽혀 있는 이야기는 딱 대중이 좋아할 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몰락한 것이나 다름없던 명운표국이 깃발을 다시 세우고 원수인 중신상회와 홍무문에 통쾌한 복수를 행했다.
전형적인 왕도적 이야기다.
그런 명운표국의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자연스럽게 윤지승이 벌인 일 역시 같이 언급되고 있다.
악당 취급을 받는 중신상회를 도운 것만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려운데, 피에 미친 괴물처럼 날뛰었다고 한다.
덩달아 덕풍 윤가 역시 악의 축으로 낙인찍힌 상황인 것이다.
“그것도 하필 장문경 앞에서…….”
허나 윤진혁의 두통을 일으키는 것은 세간의 소문 따위가 아니었다.
힘없는 것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일쯤이야 시간만 지나면 쉽게 가라앉힐 수 있다.
하지만 장문경이 걸린 문제는 이야기가 달랐다.
무공에 미친 장문경과 절정검도에 관한 이야기는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안목이 넓은 장문경이라면 혈교의 흔적을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윤진혁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일이다.
“나 왔소.”
“진오냐?”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던 윤진혁은 덕풍 윤가의 직계 윤진오의 방문에 반색했다.
“그래, 갔던 일은 잘됐고?”
“……글렀소이다. 찔러주는 돈이 부족해 그러는가 싶어 중신상황에서 받았던 재물 전부를 넘긴다 했는데도 거절했소.”
“나 현감이 우릴 버렸다고?”
윤진혁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만한 재물을 내밀었음에도 우릴 쳐냈단 말이냐?”
“이빨도 안 먹히더이다. 무슨 조건을…… 내밀어도 들어주지 않을 생각인 걸로 보였소.”
“빌어먹을 작자가…… 대를 이어 맺은 인연을 이리 홀대하다니!”
직계가 받는 혈교의 대법은 오로지 순수한 동정동녀의 피만을 사용했다.
게다가 그 수가 적지 않다.
아무리 덕풍 윤가가 힘이 있어도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다.
그런 덕풍 윤가를 도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의 현감인 나 현감이다.
그의 부친이 그러했고, 자식인 나 현감 역시 적극적으로 덕풍 윤가를 도왔다.
해서 관병 일부를 동원해 주길 청했다.
관병이 경계를 서는 곳을 함부로 공격하는 것은 장문경으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한데 돌아온 것은 냉정한 손절이었다.
“중신상회 그 늙은이가 관리를 주살했단 소문 때문이냐? 우리가 그를 도와서?”
“아마도 그렇지 않겠소? 먹물 놈들, 지들끼리 끈끈할 때는 엿같이 끈끈한 거야 세상 다 아는 일 아니오.”
“아니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해.”
나 현감이나 그의 부친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덕풍 윤가를 도와 왔다.
다른 관리들은 청탁 같은 것을 할 때마다 큰돈을 들여야 했지만, 나 현감은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진해서 일을 해결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 자가 그저 관리들끼리의 의리 때문에 덕풍 윤가와의 관계를 이리 차갑게 끊어버린다는 것은 쉬이 납득되지 않았다.
“쯧쯧! 형님, 이유가 뭐든 나 현감이 우릴 끊어버린 건 현실이오. 이만 정신 차리시구려.”
“으음…….”
“그리고, 솔직히 걱정이 너무 과한 것 같소. 물론 나도 윤지승 그 병신 같은 늙은이가 장문경에게 뒈졌다는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나긴 했었지만, 조용하잖소. 다른 놈도 아니고 장문경 그 작자가 뭔가를 발견했다면 당장 대문을 깨부수며 쳐들어오지 않았겠소?”
윤진오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았다.
“그것도…… 그렇구나…….”
초조함에 시달렸기 때문일까? 윤진혁은 입안의 꿀과 같은 윤진오의 말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때였다.
“가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라니? 당분간 사람을 받지 않겠다고 했거늘!”
“……허도진인이십니다.”
“뭐라?”
천하십검의 필두인 허도진인의 방문.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의 방문 소식에 윤진혁은 윤진오와 한차례 눈을 맞춘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뫼셔라.”
윤진혁은 허도진인을 이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가문의 후계자인 윤시후가 속가라고는 해도 무당파의 제자로 있다.
이를 강조하며 읍소한다면 뭔가 방법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허도진인은 윤진혁을 보자마자 묘한 표정으로 뜻밖의 말을 했다.
“위중하다 들었네만, 멀쩡해 보이는군.”
“그게 무슨……?”
“내 모종의 일로 그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네. 다만 무당파 내부에 생각 이상으로 곪은 부분이 많아 그쪽에 신경을 쓰는 사이 부친이 위독하다는 이유로 하산했더군. 한데 여기 와 보니 자네는 이리 멀쩡해 보이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쯧쯧.”
“허허…….”
윤진혁은 무슨 일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윤시후가 무당파에서 도망쳤다.
장문경과 윤지승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들었는지, 사태가 커지기 전에 도주한 것이 분명했다.
‘이…… 빌어먹을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