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9
158화 다시 한번 초심으로
덕풍 윤가의 사건은 생각 이상으로 큰 파급을 일으킬 것 같았다.
허도진인께서 무당파를 뒤집었을 때 현도당주 그 작자가 박살이 났는데, 덕분에 쫄리게 된 사람들도 많았단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다고,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 꼭 자기 같은 작자들을 끌어모아 여론을 만들어 저항했다나.
그 중심에는 윤시후가 있었고.
잘못 도려냈다간 무당파가 크게 휘청일 수도 있을 정도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때마침 덕풍 윤가의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허도진인은 무당파의 암덩어리들을 도려낼 완벽한 명분을 쥐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다.
겸사겸사 시끄러운 종남파도 누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무당파 내부 문제를 더욱 엄격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신제현 그 양반은 엿 됐다 이거지.’
나와 관련된 일을 혼자 떠안으며 거의 유폐된 상태라던데, 유일한 동아줄로 생각한 윤시후가 온갖 똥을 싸지르고 튀어 버렸으니 이젠 유폐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그만큼 고생해야 할 허도진인의 노고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지만, 나름 보람을 느끼시는 것 같으니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 뒤에 사당에서 신승 어르신과 합류하면서가 문제였다.
‘사당에서 그걸 보시곤 십 년은 젊어진 듯 보였던 웃음도 싹 사라지셨으니까.’
기억에 담아두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허도진인께서는 모든 것이 잘되었다며 웃으시던 본인을 책망하시곤, 신승 어르신과 함께 사흘 밤낮으로 제(祭)를 지내셨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무당파로 귀환하셨으니, 모르긴 몰라도 제법 곡소리가 나올 거다.
뭐, 내 일은 아니니 멀리서나마 잘 풀리길 기원할 따름이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먼저라서.
삼양현에 돌아오고 이제 좀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겠다 생각하려는 찰나에 내 평안에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다.
대연기공과 십육식이 그 원인이었다.
대연기공은 소림의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 수련 무공이라 대외 불출의 느낌이 있어 범각만 익혔다.
반면 십육식은 장삼풍 사부의 손길이 진하게 묻은 수련 무공이었다.
무당의 태극권이 보편적으로 보급된 바도 있다 보니 그런 느낌으로 명운표국과 내 친구들에게 전했는데, 이걸 신승 어르신이 봐 버렸다.
십육식의 진가를 알아차린 신승 어르신이 날 잡아먹을 눈길로 보셨다.
뭔가 벼려왔는데 잘 걸렸다는 느낌이다.
“종사(宗師)의 자질이 있구나.”
‘아니요. 그냥 뒷배가 좋을 뿐인데요.’
천상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내 입장에선 아무래도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내게도 가르침을 내린 아이인데.”
“오호!”
“…….”
이런 환경이니 내가 맛이 갔던 거다.
무림 최정점에서 노는 양반들이 어화둥둥 치켜세워 주는데 헛바람이 안 들어가는 게 더 이상한 거다.
지금도 둘이서 손발 맞추고 몰아가는 솜씨가 천상에 계신 사부님들 뺨 때릴 수준이다.
‘……어라? 손발 맞추고 몰아가? 이거 좀… 이상한데?’
뭐랄까, 두 분 사이에서 묘한 냄새가 난다.
이분들, 원래 이렇게 잘 맞았나?
‘짠 거 아냐?’
생각해 보면 장문경 선배는 명운표국에서 이미 십육식을 보았고, 그 효용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내가 없는 사이 신승 어르신과 뭔가 교감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범각이 대연기공을 수련하는 것을 신승 어르신이 이미 보셨다고 가정한다면?
“굴리다 보면 뭐가 더 나올 것 같지 않나?”
“그거 좋군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니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지요.”
“…….”
‘염병! 짠 거 맞네.’
손발이 맞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영혼의 단짝이다.
신승 어르신이야 첫 만남부터 또라이란 것을 알았지만, 장문경 저 양반도 만만치 않다.
대체 첫인상에서 본 그 중후함은 어디로 팔아먹었는지 모르겠다.
‘이 양반들, 빨리 이승 탈출이라도 시켜 드려야 하나?’
빨리 물 좋고 공기 좋은 천상으로 보내드릴 방법을 찾아 봐야겠다.
불합리한 야근 환경에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목소리를 듣는 날이 오면 아주 잠이 잘 올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악의(?)도 덕풍 윤가에서 보았던 일을 떠올리니 점차 가라앉았다.
장문경 선배와 허도진인 사이의 격돌은 내 미몽을 깨우쳐 주는 계기였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니 부글부글하던 속이 가라앉았다.
‘그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에 맞는 노력을 하는 게 맞겠지.’
안일해지고 싶지 않다.
눈앞이 노래질 만큼 구르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들 것도 같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저를 막 굴리신다고 하셨는데, 저만 구르는 거 아니죠? 치사하게.”
“음?”
나는 도발을 날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뼈마디가 성치 않으신 분도 계시잖아요.”
추가로 한 번 더.
원래 때릴 때는 두 번 때려야 예의라더라.
패기 넘치는 내 대답에 신승 어르신과 장문경 선배가 스산한 미소를 지으셨다.
“각오는 했으렷다?”
“젊은 놈답게 간덩이라도 커 봐야죠.”
나는 내 손으로 퇴로를 끊었다.
활짝 열어 버린 지옥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만 혼자 죽을 생각은 없다.
“아, 그런데 그거 아시죠? 여기 젊은 놈이 저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오호?”
순간 신승 어르신의 눈빛이 위험할 정도로 번뜩였다.
동시에 저쪽 어딘가에서 귀만 쫑긋 세우고 있던 몇몇의 핏기가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 저, 저 주둥이를 찢어버릴 놈이!”
“……엿됐네, 씨벌!”
저 중 하나는 범각이라는 거에 내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
장문경 선배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주 사악무도한 놈을 보는 눈빛이다.
‘뭐 어쩌라고요.’
두 분 어르신이 먼저 가서 앞길을 닦아 주신다면, 저놈들은 내 예비용 뒷주머니(보험)다. 그런 친구들을 그냥 둘 수는 없다.
‘니들도 강해지고 싶잖아? 안 그래?’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더라.
‘다 같이 죽어보자, 얘들아.’
티 없이 맑은 웃음으로 친구들을 환영했다.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우리를 굴리기 위해 신승 어르신과 장문경 선배는 십육식을 선택했다. 범각만 대연기공으로 변경되었다.
십육식은 이전 장문경 선배가 평가한 대로 만 번을 반복하면 절로 형이 드러나고, 십만 번을 반복하면 스스로 태가 잡히는 수련이다.
믿고 쓰는 천상표 무공인 것이다.
신승 어르신조차 감탄한 수련 무공이니 당연한 선택이다.
그리고, 정통 무공의 특성을 가득 담은 수련 무공답게 수련은 단순무식한 반복, 반복, 반복의 연속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로 기초적인 수련의 반복만큼 힘들고 지루하고 사람 쥐어짜는 것도 얼마 없다.
나야 사부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적응되어 있어 버티긴 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저이 쉐…… 개쉐…… 엿먹을…… 후이후…… 히이…… 후에……ㄱ.”
오늘도 십육식의 참맛을 맛보며 파김치가 된 백무호가 땅과 일체화가 되어 절규했다.
대충 들어보면 나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이 듬뿍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그저 욕이려니 하고, 가볍게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시다.
“쟤 뭐래는 거냐?”
대충 욕이란 건 알아들은 것 같지만, 의미는 이해하지 못한 신승 어르신이 번역을 요구하셨다.
“후우…… 후…… 아, 오늘 드실 밥에 약 탈 거라는데요.”
“날조하지 마!”
백무호가 벌떡 일어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혓바닥 잘 돌아가네?”
“……억?!”
요즘 들어 핏기 가시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 같다.
“허허허! 그만큼을 구르고도 아직 입 놀릴 힘이 남았다니, 무림의 미래가 밝도다.”
“히이익!”
해맑게 웃는 신승 어르신께 백무호를 던져 줬다.
‘자, 친구야. 나를 마음껏 욕하렴. 너는 욕해도 돼.’
사실 뻔히 욕하는 거 알아들었으면서도 웃으며 받아 주는 이유다.
[너 백무호 저놈 닮아가는 것 같다?]“몰라요. 안 들려요.”
장삼풍 사부의 인격 모독에 가까운 평가가 내려왔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렇게 다시 십육식과 대연기공을 반복하는 사이.
“……죽……여…… 히익…… 그냥 죽…… 후엑…….”
마침내 백무호도 쓰러졌다.
놀랍게도 백무호보다 오래 버틴 사람이 있었다.
“하아…… 하악…… 하아…….”
찰나의 차이지만 장소월 소저가 백무호보다 오래 버텼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백무호는 천마 사부가 인정하는 재능에 땅의 신력까지 품고 있다.
오늘 하루지만, 장소월 소저는 그런 백무호보다 더 버텼다는 거다.
다만, 그것이 내게는 뭔가를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많이 서먹해지긴 했지.’
장소월 소저와는 이전처럼 대화도 나누고 가깝게 지내긴 하지만 은연중에 선을 긋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등 뒤에 장문경 선배가 있을 땐 뒤통수가 따갑다.
“쯧쯧.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뻗은 백무호를 내려다보던 신승 어르신이 저기 진즉에 뻗어있는 범각을 노려보며 혀를 차셨다.
처음에는 당사연 소저도 함께했었지만, 단 하루 만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도주해버린 탓에 동급 최약은 범각의 차지가 되었다.
독기를 품은 채 수련을 하는 장소월 소저와 비교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범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놈도 많이 컸어.’
신승 어르신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굴던 녀석이 이젠 배 째려면 째라는 배짱을 보이고 있으니, 괄목이라는 평가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이젠 우리 차례구나.”
그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나와 신승 어르신, 장문경 선배만이 남자 다음 수련으로 넘어갔다.
“자, 극강격을 펼쳐봐라.”
신승 어르신 또는 장문경 선배를 상대로 한 자유 대련이다.
다만, 신승 어르신의 경우 내가 펼치는 극강격을 본 다음부터 이 무공에 대해 낱낱이 해부하는 시간으로 변모했다.
대연기공이나 십육식과는 달리 이 무공은 고절하기 그지없는 무공이라, 할아버지 서책 중에 있던 비급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 둘러댔다.
덕분에 무공을 터득했다는 녀석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 아주 깔끔하게(?) 설명이 되어버렸다.
물론, 본래라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될 일이지만, 의외로 신승 어르신이나 장문경 선배는 쉽게 믿었다.
두 분 눈에 나는 고금제일의 천재 같은 것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천재라는 허명이 처음으로 유용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몸이 깨우친 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상황이기도 했다.
신승 어르신은 현 소림 무공의 정점이다.
그런 분에게도 극강격은 쉬이 깨치기 어려운 수준 높은 무공이었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니 나름 감을 잡아가셨다.
그리고 그 소득을 내가 알기 쉽게 전해 주셨다.
“허허! 대력금강장을 이런 식으로 재창조하다니! 대체 어떤 고인이기에…….”
거듭 감탄을 하던 신승 어르신이 보고 느낀 것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빠지셨다.
[성장하는구나.]장삼풍 사부의 평가는 놀랍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정말로 조만간에 천상에서 신승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흐흐.”
“뭐냐, 그 음흉한 웃음은?”
아무래도 잠깐 속마음이 드러난 모양이다.
“어험! 제가 뭐 했습니까?”
“흐음…….”
“극강격 한 번 더 보실래요?”
“좋지!”
다행히 내 사특한(?) 속내는 잘 얼버무려 넘길 수 있었다.
***
충실한 나날이 이어졌다.
다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것만 잘 풀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천상에서도 보물로 취급받는다는 반도.
지상에서 자라 천상에 비하면 급은 떨어진다지만, 천하에 이 이상의 영약은 없을 보물이다.
그 효용이 무림에 알려지면 모르긴 몰라도 대규모 혈겁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셨다.
다만, 제대로 효과를 얻으려면 적지 않은 수고와 노력을 들여 정련할 필요가 있다 하셨다.
뭐가 필요한가를 듣고 알아봤다가 뒤집어질 뻔했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설령 매물이 있어도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버릴 귀물들이 줄줄이 나열되었다.
만약 돈으로 해결해 보려면 악사도왕의 별호에서 뒤에 두 글자는 분명 내 것이 될 게 분명했다.
사부님들이 일러주는 곳에 가서 직접 캐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었다.
“에휴.”
아쉬움을 삼키며 꺼냈던 반도를 다시 나무상자 속에 넣었다.
그때였다.
“응?”
내 안에 자리를 잡았던 나무의 신력이 움직여 반도에 스며들었다.
일시적으로 반도와 연결되었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안으로 쓰윽 들어왔다.
나무의 신력을 타고 들어온 이질적인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내 머릿속을 향해 움직였다.
“뭐야,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