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72
171화 영역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은원은 깔끔하게 잊는 겁니다.”
“물론이다!”
“하죠. 십 초식.”
지난번 악군패와 대치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때완 달리 악군패의 연금강을 뚫어줄 고수도 없고, 빈틈을 만들어 줄 조력자들도 없다.
단 십 초식이라고는 하나, 강대한 고수와 단신으로 맞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작년까지라면.’
내 성장 속도는 일반적인 상식을 아득하게 벗어난 수준이었다.
깨달음은 사부님들의 강의가 채워주고, 세월이 필요한 내공은 신력으로 보완하였기에 가능한 성장이었다.
하물며 지난가을부터 겨울이 지나 봄이 될 때까지 전심전력을 다 해 무공을 가다듬었다.
천상에서 사부님들이 내려주신 무공이다.
가다듬고 보완하여 그 진의에 다가갈수록 얻어지는 것들은 절대 가볍지가 않다.
‘여기에 어젯밤 얻은 천마 사부의 무공이 더해지면…….’
천마 사부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영역을 열어버리셨다.
신경(神經).
그 시작을 연 것은 어제저녁에 튀어나온 하나의 질문에서부터다.
***
[내공은 무엇으로 움직이느냐?]기초적인 문답이다. 숨어있는 함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다.
“의지죠.”
[다행이구나. 내공심법 같은 소릴 했으면 봉신대결계를 깨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지상에 강림해서 네 대가리를 깨버렸을 거다.]“하하하…….”
이제 보니 천마 사부도 농담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다.
솔직히 살짝 쫄렸을 정도다.
[그럼 내공은 어디로 움직이느냐?]듣는 순간 직감했다.
이것이 천마 사부가 진짜로 묻고자 하는 문답임을.
“단전(丹田)이 담아내고, 기맥(氣脈)으로 흐르며, 기혈(氣穴)들이 그 흐름들의 중심을 잡습니다.”
[그렇다. 기경팔맥과 십이경락 등이 그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은 그곳을 통해 기가 흐르지.]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강의가 이어지는 와중에 그 문맥에서 한 가지 걸리는 단어를 찾아냈다.
“보통은?”
[연경심법을 수련한 너라면 다른 곳으로도 힘이 흐를 수 있다는 거다.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흐름을 만들 수 있지.]“신경…….”
무림의 고인물들은 기를 물에 비유하곤 한다.
실제로 가장 유사한 형태이긴 하다.
그렇기에 천마 사부의 설명은 정상을 벗어나 있다.
물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격류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무리한 운행으로 기혈이 찢어져 폐인이 되는 무림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기경팔맥이 질기고 튼튼한 체질이 무공을 익힘에 있어 큰 재능이 되는 것이다.
그런 기를 민감하기 그지없는 신경으로 흐르게 한다?
병신 되기 딱 좋은 짓이다.
무공에 대해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친놈이라는 답변을 듣게 될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미친 소리를 천마 사부는 당당하게 하셨다.
[네가 상화라고 이름 붙인 그 아이 덕에 좀 쉬워졌지.]문제는 이 미친 짓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된다.
내 신경에는 나무의 신력을 품은 상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연경심법이 신경을 튼튼하게 다듬어주고 있다.
남들에게는 없는 기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힘을 추구하는 것은 사도다. 그렇기에 장삼풍이나 달마 놈은 가르치려 하지 않겠다만, 나는 그놈들처럼 꽉 막히지 않았다. 사도로 빠진다 싶으면 내 직접 고삐를 쥐어 잡으면 그만이다. 어쨌거나 멀리 본다면 세맥을 활용하는 단계를 일찍 열어내는 길이 될 수도 있으니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만만치는 않을 거다.]***
천마 사부에게서 연경심법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잠깐 그 힘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완전히 뻗어버렸을 정도였다.
사부님들이 깔아놓은 기반은 감히 인세에서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 무림 최정상이라 할 수 있는 신승 어르신이나 장문경 선배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 기반이 한계를 맞이해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사부님들을 만난 이후로는 느끼지 못한 무척이나 오래간만에 맞이한 감정이지만, 오히려 의욕이 샘솟았다.
나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아무튼……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자.’
상대는 강신공의 고수다. 하물며 특기인 연금강은 방어 자체가 공격으로 되돌리는 까다로운 수법이다.
게다가 소림에서 출발한 무공인 무상곤의 묘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자이기도 하다.
신승 어르신의 설명에 따르면 무상곤이란 망아(忘我), 자신을 놓는 것에서 시작해 무의식의 영역을 겉으로 끄집어내는 무공이라 하셨다.
무의식까지 동원한 극한의 감각으로 영역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쳐내는 무공인 것이다.
그렇기에 투로는 단순해 보여도 펼쳐내는 자의 역량에 따라 무상의 영역을 열 수 있는 무공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소림의 가르침에 충실한 무공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의외인 것은 신경까지 활용해 역량을 강제로 끌어올린 천마 사부의 무공과도 일부 맥이 닿아 있다는 느낌이다.
‘그럼 천마 사부의 연경심법과 소림의 무상곤의 격돌인가?’
그렇다면 이기는 쪽은 어느 쪽일까?
다만 이번 비무는 악군패에게 불리한 점이 있다.
바로 지난해 나와 겨룬 경험 때문이다.
그의 기억과 확연히 다른 내 움직임에서 생기는 괴리감은 생각 이상으로 클 것이 분명했다.
속도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교정하느라 애먹었을 정도였으니, 악군패가 나와 싸운 기억에 따라 대응하려 한다면 크게 낭패를 볼 것이다.
정말로 무상의 영역을 열어낸다면 모르겠지만, 덩치에 비해 감각적이긴 했으나 무상의 영역을 언급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빈틈을 찌를 수 있다.
‘초반에…… 승부를 본다.’
“뒷배를 믿고 건방 떨지 말아야 할 거다.”
악군패가 엄포를 놓았다. 신승 어르신이 두려워 내 머리통을 깨부수지 못할 거란 기대를 버리라는 소리다.
“기대도 안 했네요. 수하들에 대한 도리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어르신께 맞섰던 호걸에게 그런 걸 바랄 만큼 멍청하진 않아요.”
“큼!”
잠깐이지만 악군패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감정이 번졌다.
“아부한다고 해서 안 봐준다.”
금방 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다는 걸 느끼고 거두긴 했지만.
덩치에 비해 순박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성격이니 죽은 수하들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이리라.
“갑니다.”
십 초식 이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해 둔 제한이 없으니 생사결이나 다름이 없지만, 형식 자체는 비무다.
예의를 갖춰 포권을 쥐며 비무의 시작을 알린 나는 기수식을 펼치며 어제 배운 것을 바로 사용했다.
‘개방(開放)!’
화아아아아아!
전신에 뻗어 있는 신경으로 차갑고 빠른 무언가가 뻗어나가는 것 같다.
핏속에 알 수 없는 것이 흐르는 느낌이다.
온몸을 엄습해 오는 이질감.
마치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는 감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사부님들은 잔업 할 때마다 이러나?’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칠 정도였다.
쌓여 있는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감각을 최고조로 올려 움직이는 것으로 체감 시간을 늘린다던 장삼풍 사부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예습인 거 같은데…….’
천상에 올라오자마자 부려먹겠다는 천마 사부의 음습한 의지가 느껴졌다.
발끝이 땅을 박차며 잡념이 사라지고 눈앞의 상대에 모든 감각이 집중된다.
후확!
머릿속에서 귀를 멍하게 만드는 소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해서 울린다.
온몸을 누르는 부하(負荷)가 천근만근처럼 무겁다.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라고 비웃는 것 같다.
‘짜릿한데…….’
하지만 그만둘 수 없다.
‘뛰어드는 것은 내 몫이다!’
거친 폭풍을 가로지른다.
덮쳐오는 압력을 헤집고 나아가는 그런 감각이다.
내 앞의 압력을 찢고 달렸다.
“……!”
경악하는 악군패의 얼굴이 보인다.
‘잘…… 보이네…….’
순식간에 파고들어 악군패의 영역을 헤집는다.
무상곤의 묘리를 따라 도끼질이 떨어져 내리지만, 내 주먹이 더 빠르다.
‘내가 반…… 박자는 더 빨라…….’
지금의 내 움직임은 찰나의 틈조차 놓치지 않을 수준이다. 반 박자의 차이는 승패를 가르기에 충분하다.
힘이 늘어나면 위력은 그만큼 올라간다.
하지만 속도가 늘어나면 위력은 몇 배로 늘어난다.
속도가 달라졌다는 것은 펼쳐내는 무공의 위력이 차원을 달리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잠깐이지만, 무림 최정상에 있는 절대 고수들의 영역을 넘보는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극강격의 힘을 담은 내 주먹이 악군패의 가슴 한가운데를 쳤다.
쿠웅!!
주먹이 사람 몸을 때렸을 때 나는 소리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연금강을 펼치며 힘을 흡수하는 것이 보인다.
평상시라면 짧게 들렸을 신음 소리가 길게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단단한 것을 때리며 느낀 주먹의 아릿함보다 그것이 더 신경 쓰였다.
‘이번엔 나 혼자 부순다.’
연금강을 부순다!
고수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내 몸은 그 자체가 흉기나 다름없다.
주먹을 때려 박은 기세를 담아 몸을 던진다.
몸통 박치기로 때려 박는다!!
퍼억!!
이번에는 사람 몸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연금강의 굳건함에도 금이 갔는지 악군패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사악!
내 머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지던 악군패의 도끼질이 그 여파로 흐트러졌다.
‘여기서…….’
그 일격을 피하며 몸을 역동적으로 틀어낸다.
악군패를 들이받은 충격을 축으로 삼아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킨다.
우드득!!
급진과 선호. 충돌과 충격
종에서 횡으로 선을 달리 그린다.
갑작스럽게 힘을 비틀어내자 그 모든 압력이 몰려든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온몸의 모든 관절이 터질 것처럼 굉음을 냈다.
‘발끝에 무게를 실어서…….’
박차 오른 다리에 천근만근의 무게를 싣는 느낌으로.
모든 힘을 발끝에 모아!
“부순다!!”
날카로운 창이 된 발을 힘차게 뻗어낸다!!
우직!
“커헉!”
깔끔하게 악군패의 옆구리를 가격하여 육중한 거구를 날려버린다.
악군패의 몸은 더 이상 연금강을 펼치지 못했다.
연금강을 부쉈다!
하지만 끝내 악군패의 몸을 꿰뚫지 못한 것을 보면 아슬아슬하게 겨우 부숴낸 느낌이다.
‘더럽게 강하네, 진짜!’
하지만 악군패는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악군패가 무너진 직후, 천마 사부가 가르쳐준 비법이 끊어지는 순간, 내 속에서 부풀어 오른 수십만의 거품들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전신을 때렸다.
“하아…… 하아…….”
악군패로서는 여러 가지 악조건들이 있긴 했다.
어제 신승 어르신께 박살이 나며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라든가,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파악하지 못해 완전히 허를 찔렸던 것이라든가.
하지만 그런 요인들이 있다고 해도 이긴 것은 나다.
“후우…… 이걸로…… 은원은 더 없는 겁니다? 후욱!”
뭔가 따고 배짱이지만, 꼬우면 이기든가.
그렇게 좀 더 숨을 고르니 주변의 모습이 보인다.
“…….”
“……헐?”
하나같이 놀란 눈으로 나를 향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