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수상하다
“숙부.”
“왜 그러냐?”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저 왠지 소외당하는 거 같지 않아요?”
삼양현에 마련한 사천당가 분가에서 열심히 약초를 빻고 있던 당사연이 숙부인 당조양을 향해 투덜거렸다.
다소 민감한 내용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한 당조양이 넌지시 말했다.
“경쟁해야 할 이들보다 외모로도, 무공으로도, 인망으로도 부족한 것 같으니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에 주력해 보겠다며?”
“그야…… 그렇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이 여기 없잖아욧!!”
당조양이 한숨을 쉬며 떼를 쓰는 당사연을 다독였다.
“여건이 안 되는 걸 어쩌겠니. 그래도 방향성을 잘 잡은 것만은 분명하니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해 보거라. 네 노력을 알았으니 연 소협도 저걸 알려준 게 아니겠느냐.”
지금 당사연이 만들고 있는 약은 연청운이 알려준 제조법으로 만든 영약이었다.
그것도 무려 편작의 비법이라고 했다.
쉬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연청운이 한 말을 거짓으로 취급할 수도 없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제조에 성공한 결과, 영약이 맞았다.
“그야, 뭐…… 이걸 얻었을 땐 기뻤지만…….”
꾸준히 장복하면 몸이 건강해지고, 기혈이 질겨진다.
게다가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다른 영약들에 비해 쉽게 만들 수가 있다.
소림의 대환단이나, 무당의 태청단 같이 하나 먹었다고 수십 년의 공력을 얻는 계열의 영약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
무인에게 있어 기혈이 질겨진다는 건 보다 편하게 기운을 움직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기경팔맥이 질기고 튼튼한 체질이 무공을 익힘에 있어 큰 재능이 되는 것이다.
후기지수를 키움에 있어 수련을 보조하는 영약으로는 이 이상의 것이 없다 평가해도 무방한 무가지보다.
무공에 대해서는 광적인 면이 있는 장문경의 장담이다.
실제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영약들 대다수가 장문경이 의뢰한 것이다.
정황상 장문경 본인은 물론 명운표국에서 사용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 그간 지켜본 연 소협은 무정한 사람이 아니니 노력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다.”
“에효…….”
당사연이 한숨을 쉬며 다시 약초를 드륵드륵 갈았다.
그렇게 당사연의 풀죽은 모습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당조양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사람이 너무 잘나도 문제구나.”
멀찍이 마을 밖까지 나온 당조양이 홀로 푸념했다.
숙부라는 입장상 당사연을 좋게 다독이긴 했지만, 당조양도 질녀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가에서는 나름 고수라 자부했던 당조양도 이곳 삼양현에서는 왜소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림삼불기의 하나인 소수신마만으로도 기함할 일인데, 마교의 절세고수인 금강철마존과 마주했을 땐 이젠 죽었구나 싶기까지 했다.
야반도주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자칫 심기를 건드렸다간 입막음을 하겠다고 세가까지 박살 내고도 남을 전력이기 때문이다.
어떤 굴욕이라도 감수하리라 각오를 다졌지만, 돌아온 것은 엄청난 가치를 가진 영약 제조법이었다.
일종의 시험 같은 건가 싶었지만, 연청운은 도리어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안해했다.
정파에 한 명이라도 더 뛰어난 고수가 나오면 무림의 홍복이라던가?
그리곤 무안했는지 ‘언젠가 제 도움으로 무당파 장삼풍 사부님처럼 신선의 경지에 오르는 분이 나오게 된다면 무척 보람찰 것 같습니다.’라는 ‘농담’을 하며 밝게 웃었다.
“통이 큰 건지, 남다른 포부가 있는 건지…….”
걸물임은 틀림이 없다.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다.
그랬기에 당조양은 확신했다.
“분명 이곳은 크게 될 거다.”
연청운을 따르는 인맥들은 정‧사‧마가 공존하며 화합하고 있다.
연청운은 새로운 시대를 열 가능성을 품은 인재다.
일이 잘 풀린다면 이곳 삼양현은 장차 미래를 선도하는 거대 세력의 도읍이 될지도 모른다.
“응?”
먼 미래의 가능성을 짚어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당조양의 시야에 적지 않은 무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천자산으로 향했던 백가표국의 수십 배에 달하는 규모다.
“웬 놈들……. 연 소협?”
몸에 익은 방식으로 손에 암기를 쥐고 대응할 준비를 하던 당조양은 무리의 선두에서 연청운의 모습을 발견했다.
함께 오는 것을 보니 적은 아닌 것 같지만, 어째 배경처럼 깔려 있는 이들의 복장이 너무도 불량했다.
저건 누가 봐도 산적들이다.
“어? 당 아저씨. 어쩐 일로 나와 계세요?”
“잠깐 바람 좀 쐬려고……. 아니, 그보다 이들은 대체…….”
“백 아저씨가 사업 좀 하시려나 봐요. 그러니까 이분들은 동업자 같은 거라고 보면 되겠네요.”
“……동업자?”
당조양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동업자’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생겨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봤다.
연청운이 백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이라면 분명 백가표국의 국주인 백진성이다.
표국의 국주가 누가 봐도 녹림패거리인 이들과 동업이라니?
업종을 변경할 생각인가?
아니면 사실 백진성은 녹림의 간자였다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한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는 곳이 이곳 삼양현이다.
하물며 백진성의 장녀가 사도의 전설인 소수신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백 아저씨도 나름 생각이 있으신 것 같으니까요.”
“그런가?”
“예, 뭐. 사실 이것도 숫자가 꽤 줄어든 거라서요.”
“으음…… 굳이 알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니네만…… 그렇군.”
태연한 연청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당조양은 이상한 것이 본인인가 싶었다.
“누군가?”
그때 녹림 패거리로 보이는 이가 말을 붙여 왔다.
“아, 인사하세요. 저희 현에 머물고 계신 사천당가 쪽 아저씨입니다.”
“오! 그렇군! 하하! 나 강무채 채주 단야흔이란 사람이오.”
“……사천당가의 당조양이외다.”
녹림이 맞았다.
당조양은 왜 이 산도적 놈과 태연하게 통성명을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태연하게 인사를 걸어 온 산도적 놈이 반가운 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끌어안고 웃어대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
혼란스럽다.
이 삼양현이란 곳은 정말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느낀 당조양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꽤 오랜 시간을 소모한 끝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괜찮은 걸까, 이곳?”
문화충격을 받은 당조양이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벽지심이 녹림칠십이채를 반으로 갈라 버렸을 때, 그리고 천자산에서 각 파벌이 서로를 죽이고 죽었을 때, 처음 구상했던 역참을 이용한 운송업은 파투가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애초에 녹림이 역참을 이용한 운송업에 관심을 보인 것은 대통합을 통해 머릿수가 많아지게 되면 기존의 방식을 이용한 산적질로는 먹고살 수 없는 덩치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내분이 벌어지면서 녹림 대통합이 물 건너간 이상 사업 계획 역시 폐기되는 것이 정상이다.
하물며 우리 측에 붙은 파벌은 딱히 구심점이 없었다.
즉, 기존 산적들의 방식으로 회귀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천자산에서 우리 측에 붙었던 산채들 상당수가 그렇게 흩어졌다.
하지만 열서너 채 정도의 산채는 그대로 우리와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이경천과 마공을 익힌 산채들 파벌과 만산호, 단야흔 쪽의 파벌들, 그리고 악군패 등등이 그들이다.
“생각보다 많이 모였는데…….”
모인 인원수를 생각하면 일개 표국에서 감당할 숫자가 아니다.
인근에 있는 일거리를 모두 쓸어 담는다고 해도 감당이 될지 모르겠다.
결국, 역참 비스무리한 계획을 실행해야 할 것 같다.
‘만 채주나 단 채주 쪽 파벌인 채주들이 호북에 기반을 둔 산채니 어떻게든 되려나?’
어차피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고생할 사람은 백진성 아저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채주.”
“예, 지존.”
아, 부담스럽다.
“……소협.”
내 떨떠름한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이경천이 슬쩍 말을 바꿨다.
천자산에서 그 눈치 없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 천마라고 안 부른 게 어디야.’
사실 이경천이 이렇게 머리를 숙인 이유에는 그의 숙원을 해결할 방도가 내게 있기 때문이다.
이경천의 숙원은 두 가지.
언젠가 마교로 돌아가는 것!
언제부터인가 불완전하게 전수되기 시작했던 천마신공을 온전한 형태로 복구하는 것!
‘천마무겁수의 하위호환이라…….’
이경천이 알고 있는 천마신공은 천마 사부가 사람의 경지에 머물던 시절의 무공이다.
천마 사부 역시 미숙한 시절이 있었고, 점차 경지를 높여 가며 다듬은 무공이 천마무겁수라는 것이다.
‘어쩐지, 입문부터 심검지도 수준의 경지가 튀어나오는 무공이 뭔 말인가 싶더라니…….’
하지만 사부님들은 맛보기로 개념만 잡아주려는 걸 넙죽 받아먹은 게 문제였다고 하셨다.
어쨌든 천마 사부가 미숙하다 말하던 시절의 무공인 천마신공은 따로 들어 두었으니 차근차근 가르칠 수 있을 거다.
슬슬 당소저에게 가르쳐줬던 영약 제조도 성과가 나왔을 거고.
천마신공을 전수해 주면서 겸사겸사 십육식도 수련시키면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 거다.
“저만 믿고 따라오면 쑥쑥 성장하실 수 있을 겁니다.”
“따르겠습니다!”
***
“돌아가 봐야겠다.”
삼양현에 돌아오자마자 신승 어르신께서 날 찾아와 하신 말이다.
“소림에 무슨 일이라도…….”
“천자산에서 본 것들, 소림의 무공이 유출된 것이 마음에 걸려서 말이다. 아무래도 내부 단속을 해 봐야겠다.”
‘그거 유출된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놈들의 역사는 길다.
천자산에서 본 그들의 무공 역시 하루 이틀로 이뤄낼 완성도는 아니었다.
아마 소림 무공이 빼돌려진 것은 상당히 오래전의 일일 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 신승 어르신이 소림을 뒤집어놓는다고 해도 성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문을 걱정하여 저리 말씀하시는데 괜히 초를 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신승 어르신의 판단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용의주도한 놈들이니 어쩌면 소림 내에 아직 놈들의 끄나풀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혈교의 대법을 받은 후기지수를 종남파 장문제자로 꽂아 넣으려는 시도도 있었으니까.’
확실히 한 번쯤은 털어볼 필요가 있다.
기왕이면 소림뿐만이 아니라 구파를 비롯해 무림 전체를 털어봤으면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정말 소림에서 흔적이 나온다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거라면 잡을 수가 없겠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 문제가 생기면 꼭 연락 주시고요. 작은 힘이나마 꼭 보태겠습니다.”
“오냐, 알았다.”
신승 어르신은 간단히 대답하며 몸을 돌리셨다.
그러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을 무렵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그간 즐거웠구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지 신승 어르신의 몸이 그 자리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무뚝뚝한 분이었던 만큼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바깥 날씨는 완연한 봄인데 내게 좋은 날은 다 지나간 것 같다.
그렇게 이경천을 비롯한 마인들을 어떻게 조질지 생각해 보는 가운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겠느냐?]달마 사부의 목소리다. 한동안 바쁘시다더니 근래에는 좀 여유가 생기신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괜찮겠냐니?
“문제가 있나요?”
[천마신공 가르치는 걸 주변에 보여도 괜찮겠냐는 거다.]“어…….”
어차피 설아 누나에게 들킨 마당이니 괜찮지 싶었지만, 달마 사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 편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삼양현에 모인 눈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종 노인을 비롯한 마인들이 자리를 잡고는 있지만, 그건 내부적으로 암암리에 넘어갔을 뿐이다.
마인들에 대한 억제력(?)이 되어 주셨던 신승 어르신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마공을 수련하는 것은 선을 넘는 짓이다.
여기에 이경천 휘하의 마인들이 사고라도 친다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종 노인에게 단단히 단속을 지시해 놔야겠다.
그리고 달마 사부에게도 의견을 구해봤다.
“뭔가 방도가 있을까요?”
[흠흠! 그러니까 말이다. 잠깐 수련 여행 좀 다녀온다 치고, 곤륜산이라도 가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인적이 드문 곳이니 조용히 수련할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만…….]“…….”
‘뭐지, 이거?’
삼류 약장수 냄새가 나는 느낌이 드는데, 착각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허허. 그러려무나.]어째 달마 사부 동태가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