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끝나지 않은 일단락
삼재일기공은 장삼풍 사부의 무공이다!
장삼풍 사부가 추구하는 궁극이 천지와 하나 되어 자신의 뜻대로 부리는 것이라면, 지금은 그저 내 안에서 다른 사부님들의 무공과 소통할 뿐인 이 무공도 몸 밖까지 그 힘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삼재일기공의 힘을 외부로 끄집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가능할 것 같다.
우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는지는 몰라도 얼마 전부터 묘하게 천마무겁수랑 잘 어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달마 사부와 천마 사부의 무공마저도 소통시켜 버리는 삼재일기공의 힘이라면 타인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들썩이며 일어나는 사부님들의 무공!
그와 동시에 덮쳐 오는 공격들!
몸이 본능적으로 대처하며 공격들을 비껴낸다.
‘큭!’
불덩이를 맨손으로 쳐낸 것 같다.
손가락 사이로 흥건한 피가 축축한 감촉을 자아냈다.
공격을 빗겨낸 손바닥의 피부가 벗겨졌고, 살점이 뜯겨나갔다.
공격 하나를 비껴낸 대가가 이 정도다.
‘사선(死線)이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저승사자의 경고 같다.
선을 넘어가도 죽인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죽인다.
어쨌든 죽인다.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눈앞에만 몰두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처와 모색,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음에도 전혀 그 효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상화구나.’
내 예상의 답인 듯 잠깐 온몸의 감각이 들썩이며 일어났다.
마치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어디선가 불쑥 머리 하나가 더 생겨 보조해주는 느낌이다.
‘쳇!’
머리를 꿰뚫을 기세로 뻗어온 창날을 피하는 순간, 머릿속으로 강렬한 감각이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다.
연이어 좌우로 덮쳐 오는 공격들 사이에서 나는 사부님들의 무공을 펼쳐냈다.
천라무결!
내가중수법은 필살의 수법이지만, 내공이 강한 상대에게는 효과가 없다.
내공을 이용해서 내부를 뒤흔들기에 이를 이겨낼 수 있다면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거라면 천라무결의 완성형, 방어불가의 내가중수법이 가능할 수도 있다.
‘삼재일기공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그렇게 확장된 영역에서 천마무겁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가능해…….’
삼재일기공도, 천마무겁수도 각각 절기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는 무공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힘을 증폭시켜 준다면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결과물이 다음 이어질 공격에 닿았다.
감각이 극을 달리며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세상 속에서 날쌘 물고기마냥 구불구불 휘어져 들어오는 장창의 일격!
머리를 노리고 찔러오는 찌르기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창대를 움켜쥐자 손바닥에서 아릿한 격통이 격렬한 산불처럼 일어났다.
‘됐다?’
피가 철철 흐를 만큼 살점이 떨어져 나간 손이다.
이 요동치는 상대를 잡는 순간 손이 뜯겨나갈 각오를 했지만, 내 손은 단단하게 창대를 움켜쥐는 것에 성공했다.
갑자기 손바닥을 감싸는 단단한 무언가가 생긴 것 같은 감각이다.
달라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잡았다!’
겉만 보면 창대를 잡은 것이지만, 내가 잡은 것은 그 창대와 하나 되어 있는 어떤 기운이었다.
쇠심줄처럼 질긴 무언가.
어떤 저항감이 손가락 끝을 강하게 잡아당긴다.
‘놓칠까 보냐!’
내 손끝이 낚싯바늘이라면 내 손은 낚싯대다.
그 낚싯대를 부러트릴 것처럼 요동치는 힘을 움켜쥐며 천마무겁수를 운용하던 때를 떠올렸다.
세상을 쥐고 휘두른다는 느낌!
그 감각을 손에 가득 담아 힘껏 잡아당겼다!
투둑!
손가락 관절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대가 상하는 소리다.
한동안 손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뜯어냈다.
완전히 끊어내진 못했지만, 십팔나한진을 통해 저들끼리 주고받던 힘의 흐름을 일부나마 잡고 뜯었다.
거대한 난공불락의 성벽도 작은 틈에서 시작한 균열로 무너지게 된다.
하물며 저 십팔나한진은 세 사부님께서도 정신 나간 짓거리라 평가할 정도로 엉망인 수단이다.
저만큼 거대한 기운이 흐르는 곳에 만들어낸 틈새는 파탄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크윽!”
진의 기점을 이루던 합산채주가 침음을 흘리며 밀려났다.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십팔나한진을 유지하던 다른 자들도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확연하게 기세가 떨어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쿨럭! 쿠엑!”
크게 피를 한 번 게워낸 합산채주가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무슨 짓을…… 했지?”
“손장난.”
나는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손가락을 바로 잡았다.
뚜둑!
뼈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곧게 펴진 손가락 사이로 찐득한 핏물이 흘렀다.
합산채주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딴 식으로 깰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데, 됐잖아?”
합산채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신승 어르신을 상대로 정통임을 주장하며 여유를 부리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럴 만도 하다.
천마 사부가 재능이 있다 평할 정도의 인재가 그 모든 재능을 갈아 넣은 수단이 어이없이 깨져버렸다.
게다가 사부님들의 생각대로라면 이미 저들의 몸은 회복 불능으로 망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평생을 낭비했다는 허무함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생각해 본다면, 미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다.
“다들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큭!”
무너지는 기운을 추스르면서도 뿜어내는 살기가 엄청나다.
얼굴이 따가울 정도다.
연거푸 도발을 날린 것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손으론 나도 오래 싸우기 힘드니까.’
사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십팔나한진이 깨진 이상 나는 이대로 물러나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럴 수야 있나.
서로 목숨 걸고 싸웠는데, 끝은 봐야지.
“너, 살아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기운이 무너진 여파를 추슬렀는지 합산채주가 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 혼자만이 아니다.
열여덟 무인이 일제히 공세를 펼쳤다.
목숨을 도외시한 돌격!
적어도 나만은 데려가겠다는 집념이다.
“어딜!”
신승 어르신이 중간에 개입하며 저들이 펼쳐오는 공세의 허리를 잘랐다.
방금까지 단단하게 버텨내던 십팔나한진의 진형이 반으로 갈라졌다.
신승 어르신에게 잡히지 않은 아홉의 무인은 여전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걸음마다 기운이 약해지는 것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기세는 여전히 폭풍 같다.
생을 불사르는 자들의 집념!
손이 정상일 때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먹은 못 쥐겠지만…….’
후려치는 거라면 가능하다.
펼칠 무공은 이미 정해 놨다.
‘천라무결의 완성형.’
무당면장이 흑기를 쓰는 무인에게 막혔던 이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일에 죄책감마저 느꼈었다.
미욱한 제자가 위대한 사부의 가르침을 헛되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서 그 오욕(汚辱)을 씻는다!
거친 폭풍 속으로 발을 뻗었다.
이 일격에 모든 것을 건다!
나 역시 불꽃이 되어 몸을 던졌다.
후확!
섬전처럼 뻗은 합찬채주의 일격이 허공을 갈랐다.
직접 당해 본 적이 있는 아라한신권의 초식이었기에 가능한 회피다.
뒤가 없는 일격으로 크게 만들어진 빈틈으로 스며든 내 손이 상대의 몸에 닿았다.
투웅!
아직 신승 어르신의 무위를 감당하던 십팔나한진의 여운이 남아 있는 몸이다.
합산채주는 그 진의 중심이었던 만큼 아직까지도 몸 안에 두터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삼재일기공이, 천마무겁수가 그 기운을 허물어낸다.
그 너머로 파고들어 간 천마무결이 합산채주의 내부를 흔든다.
“푸웁!!”
합산채주의 입에서 각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중심인 합산채주가 무너지자 진형이 완전히 흔들리며 다른 여덟도 몸을 휘청였지만, 최후의 의지를 불태운 창날이 매섭게 내 머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비껴내고…….’
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가볍게 보법을 밟으려는데, 그보다 먼저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이 있다.
“감히 어느 안전에서 건방을 떠느냐!!”
퍼억!!
섬전처럼 날아든 창이 저들 중 하나를 꿰뚫었다.
이경천의 목소리다.
긴 고민이 있었는지 내가 지정한 시간보단 늦었지만, 나를 높이는 말에서 그가 품은 결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와 함께 무지막지한 것들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아아아!
흡사 자연재해와 같은 힘이 남은 자들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들이다.
합산채주를 쓰러트리는 것으로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다.
아니면 이경천이 개입하는 것에 자극을 받았던가.
게다가.
‘설아 누나와 설영들까지?’
설아 누나와 설영들 역시 전투에 개입했다.
다만, 다른 집단과는 다르게 쳐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제압하여 다른 곳으로 훌쩍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내 손에 쓰러진 합산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너처럼…… 그들 눈에…… 띄지 않았다면…….”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목소리인 탓일까? 듣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거운 추가 달리는 기분이다.
‘학이라…….’
점점 정체가 드러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이만한 재능마저도 고작 실험용으로 쓰는 자들.
그런 자들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면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상상하기도 무섭다.
‘새로운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저들을 막기 위해선 모을 수 있는 힘은 다 모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뭔 잘난 척을 하고 있냐? 손을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장삼풍 사부의 질책이 떨어졌다.
‘기대했던 평점은 아닌데…….’
극찬까진 아니더라도 칭찬 정도는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째 평가가 무척 인색하다.
“어? 나름 잘하지 않았나요?”
[고작 저딴 거 잡으면서 손을 그 꼴로 만들어?] [괜찮다. 좀 구르다 보면 나아지겠지.] [슬슬 내가 굴릴 차례가 온 건가?]사정이야 어쨌든 손이 거의 망가질 정도로 싸운 건 감점이라는 것 같다.
“하하…….”
칭찬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이해되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사부님들이 이분들이라 정말 다행이다.
***
뜬금없이 나타나 우리 앞길을 막아선 자들. 껍데기만 녹림도일 뿐, 제대로 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들에게 발목을 잡혀 있던 우리는 전열을 정비한 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했다.
“뭐야, 이거?”
거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불길뿐이었다.
나름 역사가 있던 산채인 천신채가 통째로 불타고 있다.
“기름 냄새가 나는데…….”
“아예 산을 통째로 불태울 생각이었다고?”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의미다.
게다가 불길은 이미 산 곳곳으로 번지며 대형 화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불을 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튀었어?”
“허, 참…….”
추정해보건대, 천신채를 중심으로 모인 파벌은 서른 채가 좀 넘는 정도다.
천자산에 모여있는 녹림 세력의 절반에 좀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합산채주 같은 학의 고수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면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전력인 것이다.
그만한 전력을 가지고도 싸움을 회피하며 물러났다.
우리와의 상잔을 피했다는 느낌이다.
그 전력이 중히 쓰일 곳이 있다는 예상이 되었다.
막연한 추론이지만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황제마저도 두려워하고, 신승 어르신과 맞상대가 가능한 전력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자들이 이토록 정성을 들이는 계획이라…….’
왠지 속이 울렁거렸다.
***
백설아와 한영 그리고 설영들은 열여덟 중 셋을 잡았다.
하지만 한적한 곳으로 옮기는 사이 그들은 빠른 속도로 생기가 흩어졌다.
“살릴 순 없나요?”
“기맥이 다 망가졌습니다. 선천지기에 구멍이 나 있어 백방이 무용한 상황입니다.”
“그런가요.”
백설아는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역시…… 맞는 것 같죠?”
“이런 상식 밖의 일을 태연하게 해낼 곳이라면…… 거기뿐일 겁니다.”
“그래요. 제 생각도 같아요.”
백설아는 몸속에 흐르는 피가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수백 년 묵은 원한이 몸속에 흐르는 음한지기만큼이나 차가운 냉기를 흘렸다.
“이번에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내도록 하죠.”
소수신마의 후예들은 다시 무림에 발을 들여야 할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