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86
185화 천산(天山)의 신조(神鳥)
그간 천상에서 연청운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장삼풍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가 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다 보면 본업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면, 내일의 내가 피를 토하게 되는 것 역시 순리다.
그 순리에 따라 구멍 난 업무를 처리하던 장삼풍은 자오경을 비추는 보패를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저건 청조(靑鳥)다.
곤륜의 대모(大母) 서왕모의 권속인 신령한 영물.
장삼풍이 사람이었을 무렵에도 천산(天山)에 산다는 신조(神鳥)의 전설은 나름 유명했다.
“이 할망구가 진짜.”
어쩐지 태을진인이 적극적으로 연청운의 곤륜행을 부추기더니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나 보다.
장삼풍은 하던 일을 서둘러 접고 서왕모가 있는 곤륜으로 향했다.
그런데 선객이 있었다.
“아주 재미난 짓을 준비했더군, 할망구?”
“꼬우면 그대도 하면 될 일이니라.”
“내 사정을 뻔히 알면서 그따위로 말한다는 건 싸우자는 소리로 들리는데?”
“인과를 잘못 건드려 권좌에서 내려온 일을 말함이신가?”
“……오냐, 한 판 뜨자.”
쿠오오오오오오오!!!
노기를 드러내는 현천상제의 말과 함께 곤륜의 하늘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대가 검은 하늘의 주인이라 한들, 칠성검 없이는 여에게 대적하는 것은 무리니라.”
그에 맞서는 서왕모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치솟아 하늘로 뻗었다.
콰르릉! 콰르르르르!!
하늘에 닿은 푸른 기운이 벼락이 되어 번뜩이며 날뛴다.
천상의 대신격이 한 판 붙기 직전이다.
“이게 천상이냐…….”
지상의 어린애들 문제가 세계 종말급 대전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목도하며 장삼풍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장삼풍의 옆으로 혀를 차는 인물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이구, 이 뭔 난리인지 원. 자네, 어서 말리지 않고 뭐 하나?”
“…….”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 인물은 태을진인이다.
이 일의 실질적인 실무자라고 해도 무방한 양반이다.
장삼풍 입장에선 어이가 없었다.
“진인이 나서면 될 일 아니오?”
“자네 미쳤나? 건전한 근무 환경을 위해 아부만 하며 살아도 모자랄 판국에, 직장 상사 뒤통수를 후려갈기라고? 안 될 말이지.”
“……혹시 등선할 때 양심은 빼먹고 하셨소?”
장삼풍은 요 근래 자신을 약팔이 보듯 하는 제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여기 진짜가 있다고!
이 양반이 신선이 될 때 인정받은 분야 중에는 분명 얼굴에 철판을 까는 재주가 끼어 있음이 확실하다.
“저 둘이 싸워 곤륜이 박살 나면 일이 더 많아지지 않겠나? 적어도 현천상제 저 양반이 저지른 일은 자네에게 할당될 것 같은데?”
이 양반은 진짜다. 제대로 약을 팔고 있다. 시간이 나면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다.
“수완 참 좋으시구랴. 봉신대결계 너머로 서왕모 님의 뜻을 전한 것도 진인이 진행하셨소?”
“하하하! 천마처럼 우악스럽게 뚫는 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느냐 묻는 겐가? 뭐, 잘만 하면 제자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구만.”
“잘 알고 계시구랴. 그럼 보따리 좀 풀어보쇼.”
본질을 꿰뚫는 태을진인의 말에 장삼풍이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아이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태을진인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야 있긴 하네만, 자네 수준에서 건드릴 영역이 아닐세. 서왕모 님도 권속에게 뜻을 전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니까. 제천대성 그 망나니 놈 같은 ‘변칙성’을 타고난 존재가 아닌 다음에야 봉신대결계를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위험하다네. 당장 현천상제께서 모든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칠성검을 잃고 상제의 권좌에서 물러난 일 역시 봉신대결계와 얽혀 있다네.”
한마디로 안 된다는 거다.
봉신대결계를 건드릴 힘이 있더라도 자칫 일이 뒤틀리면 대신격이라 한들 무시하기 어려운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망스러운 내용에 장삼풍이 어깨를 늘어트리자, 태을진인이 툭 떠밀었다.
“자, 다 들었으면 어서 가서 말리시게.”
“……나보고 저걸 어쩌라는 거요?”
“힘으로 말릴 자신이 없으면 제자라도 팔아보면 되지 않겠는가. 사실상 저분들이 저러는 원인이 자네 제자와 관련된 일일 텐데? 가만, 이렇게 생각해 보니 자네가 나서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
악덕 상사의 표본 같은 모습에, 결국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달은 장삼풍이 터덜터덜 폭풍이 일어나는 곳으로 향했다.
“제자야, 사부가 이러고 산다…….”
오늘따라 장삼풍의 어깨가 좁아 보였다.
***
굉장히 황당한 상황이다.
사람보다 큰 새가 팔 위에 앉질 않나, 그 새가 몰고 온 수십 마리의 말들이 질서 있게 정렬하질 않나.
게다가 이 새가 몰고 온 말들은 묘하게 새의 눈치를 보며 떨고 있었다.
‘뭔가 붉은 것이 묻어 있는데…….’
그러고 보니 몇몇 성깔 있어 보이는 말들 머리에 붉은 것들이 좀 묻어 있었다.
그걸 보니 머릿속에서 묘한 장면 하나가 그려졌다.
무시무시한 덩치의 새가 다짜고짜 날아와 저 살벌한 부리로 대가리를 찍는 광경이다.
‘그 살벌한 부리가 지금 내 코앞에 있단 말이지.’
덩치를 생각하면 내 팔은 아주 작은 작대기 수준에 불과할 텐데, 용케 그 위에 올라앉아 있다.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몸을 숙여 내 얼굴에 머리를 부비고 있다.
마치 개나 고양이가 몸을 부비며 영역 표시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삐익?
어느 정도 영역 표시(?)가 끝났는지 내 얼굴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던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팔에서 훌쩍 내려갔다.
털썩.
삐이익!
그리고 바닥에 배를 보이며 드러누워 날개를 파닥거렸다.
‘이거…… 애교 부리는 건가?’
짐승에게 배는 급소이기에 신뢰할 수 없는 상대가 아니면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뭔가 첫인상에서 느껴졌던 압도적인 위용이 좀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이만한 영물이면 이름이 있을 법도 한데?’
이만한 덩치의 영물이 하늘을 날아다니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이것의 정체를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산에 산다는 신조가 저런 일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종 노인의 모습에 바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 녀석에 대해 아십니까?”
“천산산맥, 저희가 십만대산이라 부르는 그 산맥 중 천년봉이란 곳이 있습니다. 천 년 동안 눈이 녹지 않은 산인데, 신조는 그 산의 산주입니다. 도도하고 강인하여 누구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일하게 신조를 따르게 하신 분이 초대 천마셨지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초대 천마께서 길들인 신조의 등에 타고 십만대산을 주유하셨다고 합니다.”
‘……그럼 얘 나이가 몇이야?’
아마도 그 이야기에 나온 신조가 얘 맞을 것이다.
처음 봤을 때 대충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숭산에서 보았던 금모후에 필적하는 존재인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길들인 것은 아니다. 녀석은 본질적으로 서왕모에게 귀속되어 있는 존재였으니까. 일시적인 계약 관계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일이 끝나고 오신 건지, 아니면 이 녀석이 모습을 보이자 일을 내팽개치고 올라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마 사부가 불쑥 나타나 종 노의 설명을 정정하셨다.
‘서왕모님의…… 아!’
천마 사부의 설명에 이 녀석이 왜 나를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서왕모님을 따르는 영물 중에는 청조라 불리는 것들이 존재했다.
서왕모님 곁에 있을 때는 시녀의 모습으로 있으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본 모습으로 돌아가면 크고 사나운 푸른 새라는 존재.
“네가 청조구나.”
삐이이익!
청조라 부르는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 녀석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진짜 영물이다.
[대략 금모후 수준이라 보면 될 거다. 그러니 함부로 다룰 생각은 마라. 금모후가 그랬듯, 이 녀석 역시 이미 반쯤 천상에 발을 걸치고 있는 놈이다. 자칫 인과의 역풍으로 화를 입을 수도 있다.]“……예.”
천마 사부의 충고에 내심 찔끔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마교의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도움을 빌리는 건 괜찮겠지?’
천마 사부와 인연이 있는 영물이라면 상징성이 높을 것이다.
“이화야.”
“예.”
“교에서 이 녀석이 특별하게 취급되니?”
“당연합니다!”
즉답이다.
대답 사이에는 뭔가 취한 듯한 몽롱함까지 섞여 있었다.
이는 이화만이 아니었다. 종 노인을 비롯해 천마수신위들, 게다가 나를 썩 경계하는 기색이던 적소벽까지 같은 모습이다.
이 영향력은 마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종 노.”
“예.”
“곤륜파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역시나?”
구파 중 마교와 가장 가까이 있는 문파가 곤륜파다.
사실상 마교에서 중원침공을 위한 첫 관문이 곤륜파인 것이다.
사이가 좋을 리 없다.
곤란한 일이다.
현재 나는 대규모의 마인을 이끌고 청해를 지나는 중이다. 가능하면 곤륜산을 피해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나는 곤륜산에 용건이 있다.
‘적령초(赤靈草), 영환주(永煥朱), 불하선과(不下仙菓), 천년하수오(千年何首烏)였던가?’
반도의 약력을 제어하기 위한 연단에 쓰일 영약들. 장삼풍 사부는 그 대부분을 곤륜산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곤륜산을 피해갈 수는 없다.
‘청조를 내게 보내신 이유일지도 모르겠네.’
도문의 문파들은 기본적으로는 삼청을 모시는 경향이 강하긴 하나, 대개 그 지역의 신을 따로 극진히 모시는 경우가 많다. 무당파가 진무대제를 모시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곤륜파 역시 서왕모님을 모시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곤륜에서도 신승 어르신이나, 허도 어르신, 당 가주님처럼 천상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틔워 달라는 의도도 있을 것 같다.
곤륜행을 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나도 좋은 일이다.
“잘 부탁한다.”
삐이익!
벌떡 일어난 청조가 기분 좋게 내 몸에 머리를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천마 사부는 이 녀석을 타고 천산산맥을 돌아다녔다고 하셨지? 친해지면 나도 타 볼 수 있으려나?’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것도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이 녀석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경험은 말 그대로 짜릿한 일일 것이다.
그러려면 많이 친해져야 할 것이기에, 청조의 머리를 살포시 쓸어 만져주었다.
***
“흐음.”
얕은 침음을 흘리며 낮잠에서 깨어난 노도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머리카락에 검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나이를 먹은 노도인은 천원이란 도명을 썼다.
천원진인.
곤륜파의 장문인으로 무림에서는 태허검종(太虛劍宗)이라 불렸다.
무슨 꿈이라도 꾸었는지 천원진인은 곧바로 제기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뭔가에 그을린 나뭇조각 몇 개를 꺼내 굴려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천원진인의 그런 행동에 같이 낮잠을 자던 노도인이 넌지시 물었다.
“뭔 일이기에 낮잠을 자다 말고 법보를 굴리는 게요?”
“요상한 꿈을 꿔서 말이다. 귀인이 올 거라나?”
“오! 그거 잘됐구려!”
“뭐가?”
“사형 나이에 찾아올 귀인이면 하나밖에 더 있겠소? 명부에서 온 사자겠지. 곧 뒈지시려는 모양이니 미리 인수인계나 잘해 두시구랴.”
“오호라. 천경이 네놈이 귀천을 원하는 게구나.”
천원진인이 눈을 희번덕거리자 천경진인이 슬쩍 말을 돌렸다.
“것보다, 뭐라 나옵디까?”
“귀인이 오긴 오는 모양인데, 괘가 좀 이상해. 감(坎) 괘에 건(乾) 괘다. 뭐겠냐?”
“물이 위고, 하늘이 아래다? 운무가 자욱한 상이니 차분히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대처하란 소리 아니오?”
“진(震) 괘와 이(離) 괘가 만나면?”
“우레가 치고 밝게 빛나니 결실을 맺는다……. 차분히 인내하고 기다리면 풍성한 결실이 기다리고 있을지어다?”
“그래, 아무래도 성가신 게 오는 모양이다.”
천원진인은 벽조목으로 만들어진 법구를 갈무리했다.
“동쪽이냐, 서쪽이냐.”
무의식중에 검을 만지작거리던 천원진인이 허리를 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