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85
184화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최종 목적지는 마교 본단이 있는 천만대산이지만, 현재 목표로 삼은 곳은 곤륜이다.
내가 겪은 여행 중 가장 먼 곳은 사천이었다. 곤륜산은 사천 너머에 있는 만큼 그보다 더 힘든 여정을 각오했다.
“……생각보다 편한데?”
마인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기에 대다수는 주변에 은신한 채로 다녔지만, 내 입에서 뭐가 필요하단 말이 나오는 순간 경쟁적으로 움직이는 천마수신위가 주변에 깔려 있는 상황이다.
비유를 하자면, 다들 열흘 이상은 굶은 사람들 같다.
그동안은 주변의 눈이 있어 자중했지만, 이젠 마음껏 내 지시를 탐닉(?)하는 중이다.
‘뭔가 죄짓는 기분이지만…… 이렇게 좋아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내 편한 대로 물이라도 따라 마셨다간, 버림받은 강아지 눈을 한 천마수신위를 보게 될 것 같아 무섭다.
까놓고 말해서, 솔직히 편하다.
그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여행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편하다.
때가 되면 알아서 밥 나오고, 잠자리도 알아서 다 준비가 된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움직이는데도, 그 흔한(?) 산적도 없다.
녹림칠십이채가 엉망이 되면서 자취를 감췄을 수도 있고, 구파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쓸려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 주변에 그림자처럼 맴돌고 있는 천마수신위들에게 썰려 나갔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나야 걷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그런지 진짜 여행이라도 나온 느낌이다.
[어떠냐? 좋지?]한껏 이 상황을 만끽하는 중에 천마 사부가 말을 걸어오셨다.
달마 사부와 장삼풍 사부에 이어 드디어 천마 사부도 약팔이에 눈을 뜨신 모양이다.
“교에 눌러앉을 생각은 없거든요?”
[흥! 어디 그렇게 되나 보자.]‘뭘, 답지 않게 삐진 척이십니까?’
원하는 걸 안 사 줬다고 삐진 어린애 투정을 듣는 것 같다. 무려 천마 사부가 저러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설아 누나였다면 이미 무장해제 되었겠지만.
“……신교에 머무르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천마 사부와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지, 내 옆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임아형.
삼양현을 찾아온 순천파 마인 중 한 사람.
그나마 나와 가장 대화가 잦았던 자다.
나를 보자마자 덤벼들었던 마인이 적소벽이고, 있는지 없는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자가 염진묵이라고 했다.
내가 마교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굴고 있다.
“이따금 내가 혼잣말을 할 때는 못 들은 척 무시하란 지시를 했을 텐데?”
“아앗……!”
임아형은 대죄라도 지은 것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숙였다.
‘어째 내가 악덕 상사라도 된 것 같냐…….’
이건 임아형의 반응이 과장된 거다.
마교라는 곳이 원래 저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다른 두 마인의 반응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적소벽의 경우는 아예 내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염진묵의 경우는 반응도 적고 말도 적다.
속을 알기 힘들어서 그런지 오히려 눈길이 갔다.
‘뭔가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나겠지.’
간만에 사부님들과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미 이화나 종 노인 등은 이런 내 성향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못을 박고 가야 했다.
“지켜볼 거야.”
“뼈에 새기겠습니다!”
임아형을 필두로 적소벽과 염진묵이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내 뜻을 받았다.
[사람 다루는 솜씨가 제법 늘었구나.]천마 사부치곤 드문 칭찬이다. 그래서인지 약팔이를 위한 밑 작업으로 들렸다.
‘그 약 안 산다니까요.’
역시 약 파는 솜씨는 장삼풍 사부가 제일인 것 같다.
***
연청운을 탐색하듯 바라보는 임아형의 머릿속에는 천마신교의 역사와 그로 인해 변해 가는 성향들이 떠올랐다.
처음 초대 천마가 마를 숭앙하는 교를 열었을 당시에는 힘이 모든 것을 좌우했다고 전해졌다.
철저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가 지켜지는 곳으로 순수하게 강하고, 거칠고, 냉혹했다.
이후 집단을 이루고 그 과정에서 효율을 좇으며 천마신교는 지금과 같은 계급적인 성향을 싹 틔우며 변했다.
세력의 구도도, 개인의 기량에서도 밀리고 있음에도 현 천마가 자리를 부지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계급적인 체계가 자리 잡았음에도 천마신교에는 아직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저에 깔려 있다.
반천파가 그만큼 큰 세를 이루며 융성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온 마인들에게 연청운은 어딘가 이질적인 구석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저분?”
“응.”
“유약해.”
적소벽의 평가는 박했다.
“아직 모르겠는데.”
염진묵은 평가를 미뤘다.
“결국, 호평은 없다는 것이군. 차라리 잘됐나? 야심 넘치는 효웅이었다면 오히려 대하는 게 까다로웠을 거야. 우리 천마님껜 좋은 일이지.”
연청운이 있을 땐 꿀 먹은 벙어리와 같았던 적소벽이 술술 말을 풀었다.
쌓인 게 많은 모습이다.
염진묵 역시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되는지 적소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지만, 이는 내부의 의견일 뿐이다.
자칫 선입견으로 시야가 가려진 채 내려진 결론이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임아형은 외부에서 의견을 물었다.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은밀하게 주변을 따르는 천마수신위의 한 사람이다.
“뭐지?”
딱딱하게 답하는 천마수신위의 시선은 차가웠다.
따지고 보면 뒷담화를 한 것이다. 내심 찔끔했던 임아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분께서 신교에 남지 않겠다고 하셨을 때, 왜 아무도 나서지 않은 겁니까?”
임아형의 생각에 정말 연청운이 천마고, 그에게 충성하고 있다면 만류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을 정리한 천마수신위가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천마수신위다. 천마께서 계시는 곳이 곧 우리가 있을 곳이다.”
“그건 교의 모든 것을 버리는 일 아닙니까?”
사람만을 따른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따르는 사람이 거하는 곳이 찬란한 권좌가 아니라면, 따르는 이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없다.
무가치한 일이 아니냐는 물음을 돌려 말하는 임아형에게 천마수신위는 피식 웃었다.
“저분은 언제나 스스로를 뛰어넘으시고,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사나이로서 그러한 분을 어찌 따르지 않겠는가. 나는 저분을 따르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차갑고 담담하던 천마수신위였지만, 그 말을 할 때만큼은 달랐다.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자부심이 가득했고, 두 눈은 마치 동심으로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맑게 빛났다.
임아형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천파의 한 명으로, 천마의 지척에 머물며 천마를 호위한다는 천마수신위가 어떤 이들인지 알고 있다.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천마수신위가 입을 닫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주문(呪文)처럼 임아영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
여정을 지체시키는 요소들도 없고, 다들 무공으론 한가락씩 하는 고수들로만 일행이 꾸려지다 보니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사천을 넘어갔다.
이화에게 여기부터가 청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놀랐다.
백무호와 단둘이 여행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인원이 훨씬 많은데, 이게 말이 되나?’
속도도 속도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충돌도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번 사천에 왔을 때는 며칠 걸러 한 번씩 산적들을 만났고,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었다.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벽력탄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심 사천을 지날 때 몇 번은 싸움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 각오를 다졌다.
너무도 수월하게 사천을 지나고 나니, 사천에서 신세를 졌던 인연들이 떠올랐다.
취죽 선생이나, 청성파의 청풍자 장로, 이도천 이청려 남매, 당가의 당천기 가주 등등.
‘뭐, 바로 찾아가긴 구성이 좀 그러네.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걸 고려하자.’
하지만, 이 전력을 끌고 간다는 것은 전쟁 선포다.
오해의 소지가 깊어질 수가 있다.
귀찮아서 짼 게 아니다.
여하튼, 그렇게 다다른 청해라는 곳의 첫인상은 간단했다.
“탁 트여 있네.”
초원이다. 그리고 초원 너머엔 흐릿한 음영으로 흰 봉우리가 돋보이는 설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산과 초원.
야생의 냄새가 나는 땅이다.
“말을 타고 달리면 기분 좋을 것 같네.”
넓게 펼쳐진 초원을 보니 절로 흥이 돋았다.
“준비할까요?”
“괜찮아. 이제 와서 뭘.”
이화의 의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다. 말을 구하기도 어렵고, 설령 구할 수 있어도 비용이 적지 않게 들 것이다.
그렇다고 나 혼자만 말을 타는 것도 영 그림이 안 좋다.
‘다음을 기약해 보자.’
언젠가 다시 찾아올 날도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두두두두두두!!
“……진동?”
땅이 울린다.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이 육중함의 정체는 이전에도 몇 번 느껴본 적이 있다.
역시나 시선을 돌리자 저 너머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근처에 마적들이 있나?”
“제법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해는 서역과 교류하는 길목이니까요.”
“그래?”
저것이 마적이고, 알아서 말을 상납하러 와 주는 거라면 대환영이다.
차후를 기약했는데, 운이 좋은 것 같다.
“응? 마적이 아닌데?”
멀리 보이는 먼지구름은 분명 수십 마리는 될 법한 말들이 달리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먼지구름 중심에 보이는 것은 마적이 아니다.
그냥 말이다.
누구도 태우지 않은 말들이 무리를 지어 달리고 있다.
그런 말들의 상공에서 짙은 청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점차 가까워지면서 그것은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삐이이이이-!
하늘의 색보다 짙은 푸른색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새?”
그것은 새였다.
몸체는 내 신장보다 크고, 펄럭이는 날개에서는 어지간한 사람은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은 바람을 일으켰다.
그 압도적인 위용은 차라리 신령하게 보일 정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새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자 신령한 것은 작디작은 내 팔에 몸을 올리고 앉았다.
‘이게 간택이라는 건가?’
애교라도 부리는 것처럼 리로 내 얼굴을 비비던 푸른 새가 다시 한번 휘파람 같은 소리를 길게 내뻗었다.
삐이이이이-!
그러자 뒤늦게 다가온 수십 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우리 앞에 멈춰 섰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식 밖의 광경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상식이 가출할 것만 같은 임아형의 뇌리에 천마수신위에게서 들었던 말이 재생되고 있었다.
“저분은 언제나 스스로를 뛰어넘으시고,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무의식중에 임하영의 입에서도 그 말이 흘러나왔다.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확신에 차 있던 마지막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