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9
228화 섭혼술
구파의 본산제자는 아무나 될 수 없다.
평생을 속세가 아닌 산 위에서 보내야 하기에 기반이 단단한 명문가라면 기피하기도 하지만, 평생을 무공에 바칠 각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라는 자리가 구파의 본산제자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바라는 자리는 경쟁이 뒤따른다.
그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재능은 무재(武才)다.
적어도 사공패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그 경쟁을 이겨내고 본산제자가 된 것에 대해서 사공패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함.
우월함.
평생의 대부분을 산에서 살아가야 하는 신세이지만, 사공패는 그마저도 특별함의 하나로 여겼다.
그랬던 사공패는 납득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났다.
특별함을 뛰어넘는 특별한 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의 무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천재를 만났다.
청성파에서 한솥밥을 먹는 또래들은 최소한 비벼 볼 구석이라도 있었다.
세월이 흐른다면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연청운이라는 존재는 격이 달랐다.
백 년이 지나도 넘을 수 없을 아득한 벽.
스스로를 천재라 생각하는 범재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진짜 천재.
사공패가 받은 충격은 컸다. 마치 연청운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신의 근간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 앞에만 서면 모든 특별함이 사라졌다.
내심 이청려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공패였기에 그녀가 연청운에게 보이는 관심에 마음이 흐트러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불만스러운 가운데,
“너도 불만이 많아 보이네?”
사공패는 당영진을 만났다.
당가의 후기지수인 당영진은 첫 만남부터 오랜 지기처럼 마음이 맞았다.
“우리야말로 특별하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잖아? 그런 우리가 특별하지 않으면 누가 특별한데? 그런 멍청한 소리들은 신경 쓸 거 없어.”
특히 당영진과는 가치관이 딱 맞았다.
마치 비위라도 맞춰 주는 것처럼 듣고 싶은 말만 쏙쏙 골라 말하는 당영진과 빠른 속도로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생을 함께할 친우가 된 당영진과는 여러 가지를 공유했다.
그와 뜻이 맞는 다른 친구들도 소개를 받았다.
그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어떤 소속감까지 느꼈다.
그 무리에서는 모든 열등감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솟아났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했다.
우린 특별하다.
우리 우월하다.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날이 올 거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그렇게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친우에게서 보자는 연락이 오자 사공패는 두말없이 문파를 나섰다.
그 친구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며 하나의 물건을 건네주었다.
“뭐야, 이건?”
“이거 청성파 장문인 식사에 넣을 수 있냐?”
“뭐?”
당영진의 부탁에 사공패는 피가 식는 기분을 느꼈다.
무척이나 위험한 냄새가 짙게 풍겼다.
“그건 좀…….”
“이건 기회야. 우리가 좀 더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
동문서답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특별하다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사공패는 조련된 동물처럼 당영진의 말에서 거리감을 잃었다.
다른 때라면 딱 잘라 끊었겠지만, 지금은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주변의 사고(思考)가 잘려 가고, 오직 하나의 것에만 집중되며 눈의 초점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설명해 봐.”
눈동자가 탁해진 탓일까. 사공패는 눈앞에 있는 당영진의 얼굴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른 때라면 분명 눈치챘을 거다.
당영진의 눈동자에 요사한 붉은 빛이 아른거리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말해서 현실적으로 내가 사천당가 가주가 되거나, 네가 청성파 장문인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너도 알고 있지?”
“그야…….”
“우린 특별한 사람이야.”
“특별한 사람…….”
“그동안 우린 찌꺼기나 받아먹으면서도 감사해야 하는 쩌리였어. 하지만 네가 이걸 청성파 장문인에게 먹이면 우린 특별해질 수 있어. 너는 청성파 장문인, 나는 사천당가 가주. 우린 그 누구보다 특별해지는 거야.”
“청성파 장문인…… 특별…….”
당영진의 말은 묘한 힘이 담긴 채 사공패의 가슴 한편을 쪼개 놓았다.
언제나 특별함을 알려주었던 친구가 하는 말은 사공패를 심연 속으로 끌어당겼다.
“특별해질 수 있는 기회야. 너도 바라던 일이지.”
“특별…….”
특별함과 우월함. 사공패라는 사람의 근간.
기초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지는 것들도 무너지듯, 근간이 되는 사상이 부서지면 그 위에 세워져 있는 사공패라는 현재의 존재도 무너진다.
제법 공을 들여 당영진이 주입한 사상을 거부감 없이 모두 받아들인 순간 사공패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특별…… 청성파 장문인…….”
사공패 역시 밑바닥의 한편에선 현실을 인지했었다.
진짜 특별한 존재를 직접 목도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절망감. 당영진의 감언(甘言)이 파고든 빈틈이었다.
“청성파 장문인이 되면 달라질 수 있어. 진짜가 될 수 있다고.”
당영진은 그저 먼 곳의 신기루를 이야기하듯 화려한 결과만을 사공패의 눈앞에 내밀며 흔들었다.
흔들리는 사공패를 향해 당영진은 한 가지 패를 더 꺼내 들었다.
“이청려를 생각해. 네가 청성파 장문인이 되면 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걸?”
“이……청려…….”
“청성파 장문인이잖아. 장문인이 손을 내미는데 누가 거절하겠어?”
사공패는 과거 이청려가 연청운을 접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청려가 자신을 그렇게 보아준다면…….
“아아…….”
행복감이 차올랐다.
가장 원하는 것이 손에 쥐어지는 느낌이 선명하게 닿아온다.
“너나 나나, 많이 힘들었으니까, 이제 보상받을 때도 됐잖아?”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말을 사공패는 끊어내지 못했다.
마치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듯한 사공패의 눈동자가 탁해진 가운데, 요사한 붉은 빛으로 아른거리던 당영진의 눈동자가 더욱 번들거렸다.
“해줄 거지?”
당영진은 씨익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작은 호리병을 내밀었다.
마치 그것이 행복한 미래라도 되는 것처럼.
사공패는 그 미래를 받아들었다.
“그래, 그거야.”
독약이 든 호리병을 받아든 사공패를 보며 활짝 웃는 당영진의 눈동자는 어느새 본래의 검은 빛으로 돌아가 있었다.
파캉!
“지랄들을 한다.”
그들이 그리던 행복한 미래를 상징하는 물건이 박살이 났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돌멩이가 벌인 일이다.
***
청성파 장문인 청경진인은 심히 불쾌했다.
눈앞에 불쑥 나타난 사람 때문이었다.
“당가의 가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어찌 이 무례한 짓인가!”
사천당가의 가주 당천기가 배첩을 통한 방문 예고도 없이 청성파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허공답보까지 펼치며 무단으로 들어와 장문인실로 침입(?)한 것이다.
그야말로 예의를 내팽개친 짓으로, 어지간히 급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심히 불쾌해질 행동이었다.
아무리 같은 정파라고는 하나, 외부인이 청성파의 경계를 무시하고 대뜸 침범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조금 삐딱하게 받아들인다면 선전포고로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다.
무례함이 도를 넘었다.
평소라면 당장 검을 뽑아 제압했을 거다.
그나마 사천당가의 가주이기에 그 체면을 생각해서 변명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럼에도 당천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노기를 드러내는 청경진인을 대했다.
“절차가 뭐 그리 중하오. 사람 목숨이 중하지.”
“사람 목숨?”
“청경진인 목숨 말이오. 지금 같은 시국에 청성파 장문인이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간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오.”
“허어…….”
뜬금없이 나타나 독에 중독되어 죽을 것이라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만독신군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사천당가 가주가 저리 말하니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지금 나를 겁박하는 겐가?”
“아, 겁박은 무슨. 내 말을 못 들으신 게요? 사람을 구하러 왔다고 했소이다.”
맥을 잘못 짚었다 말하는 당천기였다.
하지만 청경진인은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대체 평소 평판이 어떠시기에…….”
“에잇! 시끄럽다!”
옆에 있던 청년이 한소리를 하자 당천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청년을 본 청경진인이 눈가에 이채를 띠었다.
당천기는 분명 허공답보로 청성파의 영역을 가로질러 왔을 것이다.
그런 당천기를 따라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저 젊은 청년 역시도 허공답보를 펼쳐 이곳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어지간한 내공과 경공술이 아니면 펼치기 어려운 수법을 태연히 펼치는 청년의 존재에 깊은 호기심이 생겼다.
흥미가 생긴 청경진인은 좀 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다른 인물들의 정체에 깜짝 놀랐다.
“혹여, 천원진인과 천경진인이 아니신지…….”
“허허. 원시천존.”
“아니, 곤륜파가 어찌…….”
같은 구파답게 청경진인은 바로 곤륜파의 천원진인과 천경진인을 알아보았다.
“마지막 만남이 머리가 희게 세기도 전의 일인데 바로 알아봐 주시니 얼굴이 뜨뜻해지는구려.”
“하하하. 도호가 닮지 않았소이까. 절로 기억이 되더이다.”
“허허허.”
청경진인의 말에 천원진인도, 천경진인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허면, 저 청년은?”
“처음 뵙겠습니다. 연청운이라 합니다.”
“소천룡?”
한 문파의 장문인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쑥스러운지, 소천룡 연청운의 얼굴에도 천경진인과 비슷한 멋쩍은 웃음이 떠올랐다.
당천기만 아니라면(?) 다들 정대함으로 무림에 명성이 높은 이들이었다.
특히 소천룡 연청운의 경우는 청풍자 장로가 대단한 기재라며 귀가 아프도록 극찬한 일이 있어 눈길이 갔다.
또한, 흑애무천을 방문했을 당시 무당파 허도진인과 흑애천주 사이에서도 언급되었던 이름이었다.
사천의 운명을 가르는 화의의 대가로 그 후기지수의 이야기가 언급되었을 때는 크게 놀랐었다.
그런 구성을 보고 나서야 청경진인도 생각을 달리했다.
이 정도 손님이라면 아무리 늦은 시간에, 설령 배첩이 없다고 할지라도 방문을 환영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대들 정도 되는 사람들이 청성파의 담장을 이리 넘은 것이오?”
“아, 건망증이라도 드셨소? 사람 목숨 구하러 왔다니까!”
본인을 대하는 태도만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 탓인지 당천기의 어투가 사나워졌다.
청경진인은 더 이상 그런 당천기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함께하고 있는 이들의 구성이 가볍지 않았다.
“들어봅시다.”
청경진인이 경청할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이 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소천룡이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다.
“허어…….”
이야기를 다 들은 청경진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정적인 반응이다.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연합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배후 세력들의 결과물이고, 그들의 손발이 되는 간자들이 구파와 오대세가에 스며들어 있다니? 게다가 청성파의 제자 공패가 내 목숨을 노린다고 하셨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요.”
한솥밥을 먹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다 보니 구성원들의 이름과 얼굴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다.
하물며 사공패라면 청성 제일의 후기지수 정도는 아니라도 미래가 기대되는 기대주 정도는 되는 인재다 보니 청경진인이 모를 수가 없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다. 스승은 부모와도 같다.
당연히 스승 역시도 제자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을 뿐 자식과도 같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고 하니 청경진인은 본능적으로 이를 부정했다.
더 이상 청성파의 제자를 모욕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듯 서릿발 같은 기운을 뿜어냈다.
당천기가 피식 웃었다.
“정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면 될 일 아니오. 마침 두 놈이 멀지 않은 곳에서 작당모의 중이외다.”
“……내 확인해 볼 것이외다. 허나 만약 거짓이라면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청경진인이 거칠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뒤.
“그래, 그거야.”
천리지청술로 멀리서 오가는 대화를 엿듣던 청경진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당천기가 흡족한 표정으로 위로를 했다.
“억장이 무너지시겠소.”
“…….”
“이럴 땐 원흉을 찢어 죽이는 것이 특효약이라오.”
막 주운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당천기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