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45
244화 다음 표적은 어디입니까?
도시의 성벽이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러면서도 후방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도시와 상당한 거리가 벌어졌을 때쯤에야 나는 발을 멈췄다.
“읏차.”
거세게 달리는 와중에도 용케 잘 붙어 있던 이화를 내려놓았다.
“추적대는 없는 모양이네.”
도시에 자리를 잡고 함정을 팠던 도적 중 채주급 고수는 철공패도가 유일했던 모양이다.
설령 다른 고수가 있더라도 철공패도가 당하는 모습에 뒤를 쫓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당장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태운 말들이 요란하게 멈춰서며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말에서 내린 남궁한을 포함해 열다섯으로 이뤄진 남궁세가 무인들과 개방 고수로 보이는 중년의 거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감탄, 경외가 뒤섞인 눈빛.
요즘 들어 슬슬 익숙해지는 시선들이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아, 이게 아닌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인사를 건네다 순간적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남궁세가의 상황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멋쩍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좀 어리숙하게 보였을 것 같다.
“하하하!”
그런 내 말과 행동에 남궁한이 웃었다.
우습게 본 언행은 아니다.
도시에서 내가 보인 힘과 지금의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낀 탓인 것 같다.
남궁한과 달리 다른 이들은 여전히 말문을 잃은 채 눈을 껌뻑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궁한이 포권을 쥐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연 소협께는 늘 도움만 받는 것 같군요.”
“의기천주의 남궁세가 아닙니까. 응당 도와야지요.”
“……하하하.”
이번에도 남궁한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데 이번 웃음은 조금 전과 느낌이 달랐다.
어딘가에 씁쓸함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아픈 곳을 찔린 것 같은 사람의 반응이다.
“연 소협이라면…… 혹 자네가 소천룡 연청운인가?”
다행히 그 어색함이 짙어지기 전에 개방도로 보이는 중년 거지가 끼어들었다.
“예. 일단 제가 소천룡이라 불리고 있긴 합니다만…….”
“하하하! 이런 인연이 있나!”
개방 고수가 내 대답에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간 찾아다니던 신비 개방 고수를 이렇게 보게 되는군!”
“……예?”
날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건 그렇다 쳐도 개방 고수라니?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추적대가 없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기에 좀 더 거리를 벌리기로 했다.
여유를 가지고 자리를 옮기면서 개방의 고수, 악서의 개방 분타주였다는 용풍개가 나를 신비 개방 고수라 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전 소주로 가기 위해 지나던 길에 남궁한을 도왔던 일로 이상한 오해를 샀다는 내용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무조건 속도 위주로 움직였기에 확실히 당시에는 상태가 매우 안 좋긴 했다.
그래도 용풍개의 말처럼 인연이긴 한 것 같다.
당시 얽혔던 인연들이 이렇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남궁한의 지시에 남궁세가 무인들이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노숙이 익숙한지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들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때가 많이 탔네.’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펼치는 침낭의 상태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때도 타고 많이 낡았다.
하루 이틀 구른 정도로 만들어진 흔적이 아니다.
남궁한을 필두로 이들이 얼마나 활개를 치고 다녔는지에 대한 증명이었다.
이를 보자 철공패도가 말한 ‘유일하게’라는 단어가 다시금 떠올랐다.
민감한 내용 같지만, 이제는 확인을 해야 했다.
안휘의 상황을 해결함에 있어 남궁세가의 정황은 무척이나 중요한 변수였다.
“연 소협.”
“예?”
“몇 번이나 도움을 받은 처지에 이리 말하는 것은 염치가 없지만…… 현재 남궁세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흴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남궁한이 먼저 도움을 청했다.
말끝을 흐리는 남궁한의 얼굴에는 무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안휘의 문제를 해결할 생각으로 온 나로선 환영할 이야기다.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남궁한의 태도 덕분에 오히려 말을 꺼내기가 편해졌다.
“많이 힘든 상황입니까?”
“예…….”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생각했는지 남궁한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남궁한이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남궁세가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이런…….”
말의 서두만으로도 알 것 같다.
철공패도가 했던 말의 의미가 단번에 감이 잡혔다.
“장강에서의 전투에서 남궁세가는 심각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가문을 대표하는 어른들 대다수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의견이 갈렸다는 건…….”
“아예 본가의 이전을 고려하는 의견들이 많아졌습니다.”
“어…… 으음…….”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이다.
지방 토호라 할 수 있는 남궁세가가 가문의 기반이나 다름없는 안휘를 버릴 생각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물론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봉문을 선언하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노린다 해도, 녹림 도적들이 무림의 관례를 무시한다면 오히려 스스로 칼에 목을 들이미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설령 오대세가의 자리에서 밀려나 일개 지방 세가로 몰락하더라도 멸문보다는 낫다는 판단일 것이다.
“허면, 남궁조 대협도…….”
“숙부님은 저와 뜻이 같으십니다. 다만 지금은 가문의 분열을 막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내부 단속에 힘을 쓰고 계신지라…….”
“아!”
다행히 여기 있는 남궁세가 무인들이 항쟁을 택한 파벌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게 전부라면 절망할 뻔했다.
어쨌거나 남궁세가가 당장 취하고 있는 태세가 어떤지는 알겠다.
‘치고 빠지는 전략이라…….’
힘이 분산된 도적 연맹을 여러 방면에서 괴롭히는 것이다.
정면에서 완벽하게 깨진 데다 대다수의 고수를 잃은 만큼 남궁세가가 택할 수 있는 전략에는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적어도 당장 도적 연맹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다.
문제는 이 전략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안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도적 연맹을 깨트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남궁세가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 중심이 되어야 할 축이 필요한 법이다.
이번 안휘에서 벌어질 도적 연맹과 오대세가의 싸움에서 남궁세가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남궁세가가 발을 빼는 순간 연합의 명분도 정체성도 모두 사라져버린다.
십중팔구 사분오열로 끝나버리는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남궁소협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쪽입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하고요.”
남궁한의 대답에는 강한 결의가 느껴졌다.
“남궁세가의 역사가 천년만년 이어지진 않겠죠. 언젠가 끝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닙니다. 적어도 저 도적놈들에게 패해 무너져선 안 됩니다.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관까지 포섭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낼 안휘의 미래는 어리석은 저라도 쉬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령 남궁세가가 이대로 소멸하는 일이 있더라도 도적놈들이 안휘를 지배하는 일만은 막아야 합니다.”
어려운 길을 스스로 걸으려 한다.
누군가는 어리석다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땐 다르다.
그릇이 다르다.
자신보다 더 큰 것에 목숨을 걸 줄 아는 사람.
영웅(英雄)이다.
남궁한이 입만 산 떠버리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피니 몸에 상처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남궁세가가 무너진 뒤로 남궁한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무공은 미숙할지언정 무인으로서의 결의와 면모만은 날카롭게 담금질 되었다.
하지만 남궁한이 보이는 결연한 의지와 달리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읽었는지 남궁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현재는 가문을 이전하자는 의견이 큽니다.”
“마음이 바뀌었다는 거군요.”
“관의 움직임에 뜻을 달리하신 분들이 늘었습니다.”
“아아…….”
도적 연맹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마당에 관의 움직임까지 기이하다.
마치 관이 도적놈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황궁 쪽 일을 몰랐다면 나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도적 연맹의 배후에 학이 있다면 관리들을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소주에서 목도한 대로라면 학의 수족 노릇을 하는 고관대작들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용린대를 끌어들여 볼까?’
비밀 조직에 가까운 만큼 양지로 드러낼 순 없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들 입장에서도 학이 배후로 있는 도적 연맹이 안휘를 먹어 치우는 일은 피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남궁세가는 분열된 상태로 본거지 이전으로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다.
사천에서의 일로 당가의 핵심 전력은 파견이 어렵겠지만, 나머지 오대세가의 힘이 모인다면 도적 연맹과 다시 한번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문제는 이 싸움을 위해서는 남궁세가의 명맥이 안휘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까지 남궁한은 최선의 움직임을 보였다.
도적 연맹에 패한 후 남궁세가의 이름은 급락했다.
하지만 완전히 땅에 처박히진 않았다.
남궁한이 그 이름의 무게를 지켜냈다.
끌어올리진 못했어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버텨냈다.
동시에 도적 연맹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는 눌러 놓고 있다.
적어도 오대세가의 전력이 모두 모이기 전까지는 현재의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 남은 문제는 간단해진다.
“다음 표적은 어디입니까?”
어디를 어떻게 노리느냐.
오늘 본대로라면 남궁한은 주로 치안을 어지럽히는 도적들을 지워버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위험성은 낮으면서도 외부적 효과를 크게 하기에는 최적이다.
하지만 이 방법의 실질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못하다.
도적 연맹에 있어 가장 큰 장점은 머릿수가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 움직이려면 대체 불가능한 자원에 타격을 입혀야 한다.
“그렇군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남궁한이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탐관오리(貪官汚吏) 그리고 악덕 상인. 어느 쪽이 마음에 드십니까?”
노려야 할 곳을 정확하게 짚었다.
무림인으로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암묵적인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이 생겼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안 그래도 안휘의 관과 군이 보여주고 있는 행동은 저 멀리 사천에서도 씹어댈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면 건드려 볼 만하다.
“악덕 상인이 좋겠네요. 아무래도 그쪽을 털면 탐관오리에 대한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동감입니다.”
뜻이 통했다고 느낀 것일까.
남궁한은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어딘가.
작은 촛불 하나에 의지해 무언가를 읽던 사내가 혀를 찼다.
“어이구. 아주 시작부터 뒤집어 놓으시네.”
내용을 모두 숙지한 사내가 촛불 위로 서신을 올렸다.
종이가 불타며 커진 불꽃이 잠시나마 주변을 밝혔다.
그 불빛에 사내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뭐, 잘된 일이려나? 그 도련님, 실력 하나는 진짜니까.”
그는 용린대 갑조 조장 관중연이었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지.”
앞으로 있을 일을 예측한 관중연이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젠장, 휴가는 날아갔다고 봐야겠네.”
공무에 시달리는 나날에 관중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