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68
267화 이 화창한 날씨에 장강이 범람할 리가 있나(2)
현천상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천상의 뭇 신선들이 보았다면 기함(氣陷)을 할 광경이다.
지상을 뒤집어놓은 일로 일어난 인과의 역풍으로 몰락한 이후 현천상제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에 무감각한 바윗덩어리같이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 현천상제가 웃고 있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서왕모 역시 피식 웃었다.
“신이 나는 모양이구나.”
“날 만하지. 이렇게 힘을 휘두르는 건 오랜만이니 말이야.”
현천상제의 두 손에서 초월적인 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검은 기운이 천상의 근간에 스며들 듯 퍼져나갔다.
재미있는 것은 현천상제의 어깨 위에 서왕모의 손이 닿아있다는 점이다.
“힘 조절에 유의해야 하느니라. 예나 지금이나 지상은 물방울처럼 연약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느니라.”
“알아.”
괜한 참견이라 느꼈는지 현천상제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으레 하던 뒷말이 들리지 않았기에 서왕모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오호? 이젠 할망구라고는 부르지 않는 겐가?”
“원한다면 실컷 해주지!”
“홍홍홍.”
천상과 지상은 유기적인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봉신대결계로 천상의 존재들이 물질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단절이라면 지상의 존재가 죽어 명계로 넘어가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지상을 향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투사할 수는 있다.
하늘의 운행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천상제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칠성검을 잃었다 한들 여전히 강한 신이었지만, 그 힘을 사용할 인과가 부족했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즉, 현천상제에게 부족한 인과를 서왕모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상쾌하군.”
오랜만에 힘을 휘두른 현천상제가 개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천마가 만든 자오경을 비추는 보패가 있었다.
“판은 깔아줬다. 어디 제대로 날뛰어봐라.”
현천상제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만, 옆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태을진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으음…… 괜찮은 거 맞나?”
현천상제 기준에서야 대수롭지 않은 수준이겠지만, 태을진인이 볼 땐 무척이나 과할 정도로 힘이 더 들어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사람이 새끼손톱만 하게 보일 만큼의 거리를 두고 오대세가 연합과 도적 연맹이 대치 상태를 이뤘다.
도적 연맹은 수상전을 상정하고 있는지 대놓고 덤벼보라는 듯 장강 위에 전선을 배치했다.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나 보네.”
“다행이지. 덕분에 편하게 쉬잖아.”
대자로 벌러덩 드러누운 백무호가 행복한 순간을 즐겼다.
수틀리면 당장에라도 피가 튈 전장을 앞에 둔 녀석 같지가 않았다.
“너무 태평한 거 아냐?”
“쉴 땐 쉬어야 하는 법이야. 쉬어야 할 때 긴장해서 몸에 힘을 주고 있는 건 미숙한 애송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연마의 노장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놈은 철들 무렵부터 검을 들고 표행을 다니던 녀석이다.
이놈이 겪은 실전 경험의 다양함은 나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새삼 백무호 녀석이 달리 보였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싸움이잖아?”
“응?”
“비 온다며? 장강이 뒤집힐 정도로.”
“뭐…… 그렇지?”
“네 말대로 된다면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어. 수상전에만 집중하는 놈들의 밑천이 거덜 날 텐데 그걸 못 이기면 병신이지.”
이 여유로움의 근간은 나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기반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니까 저러고들 있는 거야.”
백무호의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고수들은 편하게 쉬며 강행군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인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리 잡아야지. 딸린 식구만 아홉이야.”
“아이구!”
“소가 웃겠다.”
“와하하하!”
“…….”
얼마나 여유로운지 나이 먹은 아재들이나 즐기는 농담들이 오갔다.
백무호 녀석의 말처럼 다들 내가 한 말을 굳게 믿고 있다.
패배를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걸어온 족적, 그 흔적들이 남긴 결실이 신뢰로 돌아오고 있다.
가슴에 묘한 고동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오라버니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내 기색을 읽었는지 그림자처럼 내 곁에 붙어있던 이화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다른 때라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 말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묘한 고동이 일어나는 가슴을 두들기며 불타올랐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누구 하나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긴다.
완벽하게 이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크고 위대한 승리를 이뤄낸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구전되는 전설이 될 결과를 원한다.
“그럼 위대한 일을 해야겠구나.”
나는 이화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뺨을 빵빵하게 부풀리겠지만, 지금은 가만히 받아들인다.
“우욱!”
대신 백무호 이 새끼가 지랄이다.
헛구역질을 하는 백무호 녀석의 마빡에 발자국을 찍어주었다.
“우왁!”
헛짓거리에 대한 보답이었다.
***
하루가 지난 뒤.
내가 공언했던 이레째의 해가 떠올랐다.
폭우가 예정된 날임에도 여전히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다.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를 무렵, 나는 수뇌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가 오면 들이치십시오. 저는 다른 쪽에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설령 비가 올 거라는 내 예언(?)이 빗나가더라도 반대급부 하나는 확실하게 챙긴 상황이라 그런지 큰 반발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폭우가 내릴 것이라 확신하는 내 말에 다들 묘한 얼굴이 되었다.
팽철이 농담 같은 말을 던지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비라도 부르러 가나?”
“뭐, 비슷합니다.”
“쫙쫙 좀 쏟아지게 해 봐.”
피식 웃으며 하는 말이 어째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화창한 하늘을 보면 반쯤이라도 신뢰가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발목이나 확실히 잡아 놓으세요.”
수평선이 보이는 장강의 너비를 생각하면 비가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철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만, 물이 불어나는 속도가 느리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그래, 그래.”
팽철이 손을 휘휘 저으며 받아들였다.
“안전한 곳에 있어.”
“……예.”
데리고 갈 만한 곳이 아니기에 이화는 놓아두고 가야 했다.
불만이 가득 차오른 얼굴이었지만, 이화는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한번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다음 나는 허공으로 몸을 날려 장강 상류로 향했다.
비가 오는 순간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라조화심결에는 하늘과도 소통하는 힘이 있다고 하셨지.’
천지만물과 소통하여 개입하는 힘.
비단 이기어검을 펼치는 것만이 가능한 힘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고자 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강물이라 할지라도.
장강을 고작 강물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격이 다른 것이 맞지만, 어차피 벌어질 일을 더욱 크게 키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능숙하게 등평도수를 펼치며 장강 수면을 타고 상류로 올라갔다.
“어라?”
수면 위를 달리는데, 문뜩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수위가 이렇게 높았나?”
어제보다 수위가 올라간 느낌이다.
물이 흐르는 속도도 한층 더 빨라진 것 같다.
“어디 보자…….”
어느 정도 상류로 올라온 나는 장강의 수면에 손을 올렸다.
이어 익숙한 방식으로 장강과 ‘소통’하려 시도했다.
“으악!!”
이기어검을 펼칠 때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 순간 무지막지한 압력이 엄습했다.
한순간 거대한 압력에 온몸이 짓눌릴 뻔했다.
“으아…… 뒈질 뻔했네.”
생각보다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컸다.
공령을 이용해 소통에 필요한 내력은 충당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을 감당하는 것은 내 기혈, 즉 육신이다.
사부님들에 의해 단련된 몸으로도 무리다.
사실 천마신교에서 날뛰던 때와는 많은 부분이 부족해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일시적으로나마 오행신력을 부담해 주었던 부분을 지금은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실제로 천마신교 때보다 이기어검을 다루는 것이 버거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는데…….”
[당연하지, 이놈아! 검 몇 개 다루는 수준으로 뭘 어쩌겠다고. 어휴!]장삼풍 사부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신다.
내가 하려는 짓을 가당치 않다며 훈계하신다.
[네가 하려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방법이 잘못되었잖냐.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하는 거다.]접근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뤄낼 수 있다고 하신다.
“어떻게요?”
[물은 흐른다. 그리고 흘러간다는 건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지. 네 조막만 한 힘으로 그걸 통제하려 하니 역으로 털리는 거다. 그냥 북돋기만 해라.]북돋는다?
“아아!”
나는 장삼풍 사부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이해했다.
흘러가는 것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흐름이란 올라감과 내려감의 반복이다.
그 흐름의 폭을 넓힌다.
올라가는 순간에 좀 더 키워주고, 내려가는 순간에 좀 더 눌러준다.
작은 힘에 불과하지만 반복하며 그 흐름을 북돋워 준다.
전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흔들어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시도해봤다.
출렁!
처음은 분명 미진했다.
하지만 흐름을 키워주자 점점 수면 위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숨을 쉬는 것 같다.
들숨과 날숨으로 장강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살아나며 꿈틀거린다.
재미있다.
눈덩이가 점점 덩치를 키워나가는 것처럼 파문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어?”
그 순간 등 뒤에서 덮쳐오는 거대한 존재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콰르르릉! 콰쾅!
뭔가가 몰려오고 있다.
“와, 씹…….”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
푸른 뇌광을 품은 채 장막 같은 빗줄기를 쏟아내는 검은 구름들.
너무도 압도적인 모습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일어난다.
구름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일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어떤 거대한 힘의 편린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세차게 다가온다.
태양을 가리며 몰려드는 거대한 구름에 온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어둠에 삼켜진 곳과 아직 화창한 태양의 빛이 남아 있는 곳.
세상이 둘로 나뉜 것 같다.
마치 종말의 순간이 펼쳐지는 것 같은 광경.
“화끈하시네.”
몰려드는 구름 아래로 불어나는 격류의 흐름이 보인다.
산사태라도 일어난 것처럼 황토빛의 격류가 야생마 무리처럼 달려오고 있다.
아무래도 저 위쪽에선 둑 몇 개가 무너진 것 같다.
여기에 내 힘으로 자극을 키워낸다면?
뭔가 엄청난 게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