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2
281화 대지약우(大智若愚)
이화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좋을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바쳐 모셔야 할 연청운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화에게 고문 같은 일이었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곤 하지만,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종은 종답게…….”
이화는 그 불만을 내리누르려 노력했다.
마음을 다스리며 숨을 골랐다.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연청운에게, 위대한 천마께 도움이 될 수 있느냐다.
이화 자신의 기분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이화는 무한한 이타심을 보였다.
“내뱉는 숨에서 마기가 느껴졌습니다.”
다만 그 이타심이 보이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연청운에 한해서다.
인적이 드문 어느 산속 공터를 울리는 이화의 목소리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마기를 다스리세요. 그 정도도 못 하는 자들은 그분 주변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화의 앞에는 녹림마인들이 열과 오를 맞춰 내공심법 수련에 한창이었다.
이화의 독설에도 흔들림 없이 내기를 운용하는 것에 집중하는 녹림마인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그분 옆에 서려 했다는 걸 천마수신위들이 알게 된다면 당신들을 찢어 죽일 것입니다. 죄명은 시건방짐이겠죠. 자격도 없는 버러지들이 감히 위대한 분께 달라붙으려 한다고.”
이번에는 주변의 공기가 출렁였다.
흘러나온 마기가 파장을 만들었다.
내공심법 도중에 기운이 흔들리는 것은 이유야 어쨌든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가지가지 하네요.”
이화가 한숨을 내쉬며 질책했다.
“이래서야, 그냥 여기서 자진하는 게 그분을 위한 길이겠어요.”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때마다 흘러나온 마기에 공기가 흔들렸다.
누가 본다면 이화가 수련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분께 도움이 되어야 할 순간에 방관자가 되는 건 싫겠지요?”
그러다 이화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변했다.
이화는 더 이상 녹림마인들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방관자가 될 것이라 했다.
지금의 한마디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야지요.’
이화는 신녀다.
천마신교라는 종교의 정신적 지주다.
그렇기에 교도들이 품는 마음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광신도들에게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광신의 대상이다.
장강에서 기적(?)을 목도하며 광신은 더욱 깊어졌다.
연청운이 바라기만 한다면 스스로의 배를 갈라 창자를 뽑아 바치면서도 기쁘게 웃을 것이다.
진정한 숭배의 대상,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존재를 찾았는데 그에 가까워질 수 없다?
열흘 밤낮을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맑은 샘물을 눈앞에 두고도 손을 대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도움은커녕 짐 덩이가 되어 발목이나 잡는다던가?”
그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다.
녹림마인들은 내부의 힘을 극한까지 쥐어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모든 것이 격발하며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기를 움직이는 것은 의지다. 그리고 광신도들의 의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조차 이것에 비하면 가볍다.
생과 사의 영역조차 넘어선 의지가 마기를 누르기 시작했다.
목숨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을 품고 있는 자가 이를 지키기 위해 의지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광경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만은 확실했다.
녹림마인들의 기도가 순식간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마기를 갈무리하지 못해 새어 나오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흠! 이제야 조금 쓸 만해졌네요.”
흔들고, 버려질 것이라 다그친 뒤 다독인다.
결과는 훌륭했다.
토양 자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 밖으로 쫓겨나 녹림에 자리를 잡은 천마의 혈족 이경천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며 뿌린 씨앗들이다.
비록 불완전했다지만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던 이경천이 뿌린 씨앗들이 삼류잡배일 리는 없다.
녹림이라는 곳에서 인재들을 모은 만큼 잡탕스러운 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 기반은 천마신교에서 나온 진짜 마공이다.
그리고 이경천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정통적인 마공 수련을 유지해왔다.
그 결실이 맺히는 순간이다.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때를 기다리세요. 그리하면 목숨을 바칠 순간이 올 겁니다.”
죽을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감격스럽다는 듯 녹림마인들의 기도가 깊어져 갔다.
만족스럽게 결과물을 지켜보던 이화가 하늘 너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구파에 문제가 많다고 하셨지.”
시야에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이화는 눈앞에 연청운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조용히 예를 갖췄다.
“이화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무당산과 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 이화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사과해야 한다.
남 탓으로 돌린다던가, 발뺌하면서 물타기 하는 짓은 삼대가 빌어먹을 아주 못된 짓이다.
하물며 잘못한 상대가 윗사람이라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진심이 안 느껴진다.]장삼풍 사부 말처럼 천마 사부 뒤끝은 끝내줬다.
‘이 양반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에게 이걸 까발려야 하는데…….’
만에 하나 정말 내가 종교 비스무리한 것을 창시하는 날이 온다면 꼭 기록에 남길 것이다.
-초대 천마는 어린애처럼 잘 삐지고 뒤끝이 심한 양반이다!
어… 음… 좀 위험할까?
나쁜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상사에게 천년만년 갈굼 당할 건수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려 했다니, 미친 짓이다.
‘이럴 땐 화제를 돌려야지.’
마침 좋은 건수도 있다.
“사부님.”
[왜?] [뭐냐?]장삼풍 사부까지 끼어드시니 갑자기 정신이 없어진다.
“현천궁에 대해서 슬슬 이야기해주실 때가 아닐까요?”
설아 누나에 관련된 일이라고 하니 신경이 쓰였다.
현천궁이라는 곳에 대해 언급할 때 장삼풍 사부가 보인 태도 역시 심상치 않았다.
지금도 봐라. 내가 현천궁에 대해 언급한 순간 적막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사부님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시는 것 같지만, 그만한 변수를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갈 순 없다.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흐음! 하나하나 전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무척 길어질 거다.]결국,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장삼풍 사부셨다.
“저 시간 많은데요?”
[한 보름쯤 잠잘 생각도 못 하게 해주랴?]“……간단히 요약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네요.”
[쯧!]장삼풍 사부가 마뜩잖은 듯 혀를 차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적막이 감돌았다.
[간단한 설명 정도만 해주마.]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셨는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현시대에서 선도(仙道)를 논하는 곳은 어디냐?]“구파죠?”
[그럼 구파 이전에 선도를 논하는 곳이 없었을까?]“있었겠죠?”
[그게 현천궁이다. 과거 봉신대결계가 존재하지 않아 천상의 존재들이 지상을 거닐었을 때부터 존재했던 곳이지. 현재 선계에 있는 신선들 절반 정도는 현천궁 출신이라 해도 무방하다.]“우와…….”
말만 들어도 굉장한 곳이라는 건 알겠다.
“사실상 신선들의 문파 같은 곳이네요?”
[곤륜을 제외한 구파의 시작은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었으니, 네 표현이 틀리진 않겠구나.]신선들의 문파라.
기준이 되는 눈높이의 수준이 다르다.
신승 어르신이나 허도진인이 입문제자 수준으로 득실득실한 곳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런 곳이라면 전수되는 무공들도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어? 잠깐?’
“설아 누나 무공의 근원이 현천궁에 닿아있는 거 맞습니까?”
[확신할 수 없으나 가능성은 충분한 것 같더구나.]“아무리 생각해도 선도 무공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음한지기(陰寒之氣)를 다루는 무공이라면 사도(邪道)에 가깝지 않나요? 실제로 지상에서는 사도 취급을 받고 있고요.”
천마 사부가 코웃음을 치셨다.
[마선(魔仙)은 선(仙)도 도(道)도 아니라는 거냐?]“어어…….”
[신(神)과 마(魔)는 표리일체(表裏一體). 마 또한 세상을 이루는 이치다.]“……그게 그렇게 되네요.”
현천궁이라는 곳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장삼풍 사부와 천마 사부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뭐야, 그거! 무서워!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곳이 왜 지금은…….”
[잠자기 싫어?]이건 그냥 묻지 말라는 거다.
아마 천상에 계신 사부님들께서 언급하지 않으려는 내용인 듯싶다.
더 듣고야 싶지만, 사부님들의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신선들의 문파라 하니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천상의 비사가 얽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현천궁이라…….’
어쩌면 그 대단하다는 곳이 학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
연청운과 종남파 장로 육영기 사이에 있었던 비무에 대한 소문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억지를 부리며 연청운을 깎아내리던 종남파 장로 육영기가 시비를 걸었다가 패배했다.
그것도 후기지수인 연청운이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쉬이 믿지 못했다.
“허 참! 약관 언저리의 젊은 후기지수가 종남파 장로를 털었다고? 사실일까?”
무당파에서 정식으로 도명을 받은 본산제자 명광은 소문의 진위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만큼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본산제자 명송은 명광과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실이겠지.”
“그걸 믿는다고?”
“사실이 아닌 쪽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무당파 내에서 일어난 일이야. 오래된 일도 아니고. 만약 거짓이라면 높으신 양반들이 즉각 나서서 소문을 가라앉혔겠지.”
“으으음…….”
“하물며 이런 소문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구파 전체를 위해서 가급적 쉬쉬하는 것이 좋지. 헌데, 따로 나서는 분이 없는 것을 보면 차마 감싸 줄 수 없을 만큼 추했던 모양이야.”
명송의 명쾌한 해석에 명광은 입을 다물었지만, 개운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해는 되었지만 납득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랄까.
“속가제자가 젊은 후기지수의 으뜸이라 칭송받는 것이 걸리는가?”
“어허! 날 못난 사람으로 몰지 말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명광은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을 붉혔다.
명광이 경쟁심이 강하지만 나쁜 친구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명송 역시 더 이상 긁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궁금해지는군. 연청운 그가 속가 시절이었을 때 무공을 가르친 것이 명진 자네였었지? 정말 그리 천재였나?”
“……모르겠네.”
명진은 이미 수없이 들어보았다는 듯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역시 대답은 개운하지 않았다.
그것은 명진이 내심 품고 있는 생각과 결과가 다른 부분이 있었던 까닭이다.
연청운이 천재였느냐?
명진이 볼 땐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기억하는 연청운은 둔재에 가까웠다.
하지만 연청운은 종남파의 장로에게 승리를 거두며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해냈다.
게다가 연청운이 무당파를 떠난 계기, 윤시후를 이길 때의 모습은 분명 상식 밖의 성장을 보여준 바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대지약우(大智若愚)라…….”
지혜로운 자는 오히려 어리석어 보인다.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좇았기에 오히려 둔재로 보였던 것은 아닐까?
명진은 이에 대한 답이 궁금했다.
“확인해보면 알겠지.”
소문에 의하면 조만간 연청운이 자신의 무공을 무당파에 돌려주려 한다고 했다.
그때 꼭 확인해보고자 명진은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