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3
282화 도를 믿으십니까?
현천궁이라는 무거운 고민거리를 품고 거처로 돌아오자 귀를 찌르는 검격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가 검을 겨루고 있다.
“좋은데.”
천마신교를 다녀온 사이 백무호의 기량은 몰라보게 늘었다.
빠름과 변화에만 치중하던 검에 부드러움을 실으면서 검법 자체가 무척이나 안정적으로 되었다.
극쾌는 아니나 충분히 빠르고, 변화를 그리는 궤적에는 여유가 있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힘은 흘리니 검을 교환할수록 우세를 점하게 된다.
놀라운 건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이뤄냈다는 점이다.
숭산에서 얻은 땅의 신력 덕을 본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저 성취는 충분히 대단하다.
백무호의 설매검을 본 천마 사부가 호평하셨다.
‘하긴 설매검에는 천마 사부의 무공도 일부 지분이 있지?’
“조금 도와주시든가요.”
[내가? 화산파에 말이냐?]천마 사부께서 피식 웃으며 받아넘기셨다.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 까먹은 거 아니냐고 돌려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화산파에 내 심득이 섞인다……. 하! 그것도 재미있을지 모르겠군.]분명한 건 천마 사부도 흥미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내가 무당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화산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은 백무호가 될지도 모르겠다.
[저 절정검도라는 것은 백무호란 녀석과는 반대구나.]반면 장삼풍 사부는 장소월 소저의 검에 주목했다.
[너무 많은 장점을 담았어. 엉성하게 담았으면 또 모르겠는데 짜임새까지 좋아. 그렇기에 벽에 부딪힌다면 넘기가 쉽지 않을 게야. 그만큼 벽이 두터워질 것이니까.]장문경 선배에게도 했던 조언이지만, 벽을 넘는다는 것은 일종의 초월성을 체험하는 일이다.
모든 장점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모든 것에 통달해야 함과 같은 의미이니 벽을 넘기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해낼 수만 있다면 정말 대단한 무공이 되겠지만, 벽을 넘지 못한다면 대단한 가능성만을 품은 채 고사될 뿐이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모든 것을 복잡하게 풀 필요는 없다……라…….’
때로는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어쩌면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역시 세분 사부님의 무공을 폭넓게 익힌 몸이기 때문이다.
참구(參究)할 주제로 마음 깊숙한 곳에 품었다.
“뭐야, 왔냐?”
한참 비무를 하며 검격을 나누던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가 검을 멈췄다.
“관음증 있냐? 뭘 음흉스레 몰래 보고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상의 신선들께서 인과응보에 대해 말하니 가슴에 푹 박힌다.
‘그래요. 누굴 탓하겠습니다.’
아무튼, 사부님들이 기분 좋게 웃으셨으니 좋은 일이다.
그렇게 넘어가자.
뭣보다 눈앞에 친구들이 먼저다.
‘생각 없이 보여준 건 아닌 것 같고…….’
굳이 이 자리에서 대놓고 비무를 한 이유가 무엇일지 짐작이 되었다.
“대놓고 보여준 놈이 말이 많다.”
“뭐래.”
“조언 필요 없냐?”
“조언 감사합니다!”
바로 말을 바꾸는 백무호 녀석이다.
안 보던 사이 철면피신공이 극에 다다랐다.
“그래, 어디 무종이라 불리는 양반의 솜씨 좀 보여 봐!”
“그… 그래…….”
그놈의 무종!
이것도 인과응보인가!
새삼 인과라는 것의 힘을 느끼며 손을 내밀었다.
“검.”
“옜다.”
내 요구에 백무호가 순순히 검을 내놓는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손을 채운다.
무당파 역시 검의 명문이다.
백무호의 청에 나서긴 했지만, 내일 무당파 제자들의 무공을 손봐주기 전 예행연습으로 괜찮을 것 같다.
검의 무게감이 손에 익었다 싶을 즘 내 방식으로 검을 움직였다.
검은 무기를 쥔 손과 팔의 연장선이라는 말을 한다.
경지에 다다른 고수는 어떤 무기를 들든 팔의 연장선과 같으니 종국에는 구분이 없어진다고도 했다.
무기를 제 몸처럼 여겨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검의 간격과 권각의 간격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부님들께서 각자 다른 길로 선의 경지에 다다르셨듯이, 따라 할 순 있어도 본질까지 같을 순 없다.
무엇을 앞에 두어야 하는가!
그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다만 길을 일러 줄 뿐이다.’
하나하나 교정하여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그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당의 유(柔)!
나를 먼저 지킨다.
스으!
검이 움직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중용(中庸)을 지키며 검이 움직인다.
의지가 앞서고, 그 뒤를 검이 따른다.
내 의지가 중심을 굳게 잡으니 검은 나를 휘두를 수 없다.
스으!
검은 휘두르는 것이지, 내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것을 수용하더라도 나를 잃지 않는다.
이것이 본질을 지키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를 지키는 법이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중심에 둔다.
그렇게 나를 지키고.
사악!
나아가 뜻을 이룬다.
무당의 유를 담았던 검에 백무호가 추구하는 변화가 담긴다.
부우웅!
고요하던 검이 변한다.
검 끝에서 벌떼 우는 소리가 울린다.
그만큼 검 끝에 격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무성하게 피어나는 복사꽃.
따사한 날 만개하는 매화의 꿈.
본질인 뿌리는 무당의 유(柔)에 두되, 뻗어나가는 가지에는 무성한 변화를 담는다.
백무호가 넋을 잃고 내 검에 몰입하는 사이.
무수한 변화 속에서 하나의 검이 떠오른다.
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내게 닿는 순간!
콰아!
선이 굵은 일검이 무성한 변화 사이에서 뛰쳐나와 벼락처럼 떨어졌다!
하늘을 가를 듯한 참격.
천마 사부의 본질이 담긴 일격이다.
“후아…….”
혼이 나가 있던 백무호의 넋마저 베어 버렸는지 퍼뜩 정신을 차린 백무호가 떨리는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무언가 느낀 게 있는 모습이다.
지금이라면 조언이 골수에 스며들 것이다.
오래전 천마사부가 남긴 검흔만으로 심득을 얻었던 놈이다.
길을 가르쳐주면 알아서 갈 놈이니 자잘한 말은 필요 없다.
“네 설매검을 보니 무당의 유를 잘 담았더라. 검 끝의 변화에 여유가 생겼고, 힘을 흘리는 방법도 담겼어. 거기까지는 좋아. 하지만 본말전도는 안 되지.”
“본말전도(本末顚倒)?”
“생각이 검 앞에 있단 소리야. 내 검은 부드러워야 해, 변화 속에 부드러움을 담아야 해, 그런 거. 생각과 검이 일치하지 않으니, 미진함이 느껴지는 거야. 검과 네 뜻은 하나여야 해. 그렇기에 검의(劍意)라 하는 것이고.”
백무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한 가지만 묻자. 네가 궁극으로 추구하는 검은 무당파의 유(柔)냐?”
“그건 아니지.”
“그걸 안다면 네 본질을 먼저 분명하게 해. 검에 휘둘리지 마.”
“오우…….”
벌써 감을 잡은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좀 더 오지랖을 부려도 될 것 같다.
“무리하게 무당의 유를 담기 위해 몸의 중심이 많이 올라와 있더라. 자세를 좀 낮춰도 될 것 같아. 지금보다 호쾌하게 움직여봐. 화산파답게.”
“그래?”
내심 답답했던 부분이었는지 백무호가 히죽 웃는다.
“아! 물론 호쾌하게 움직이라고 했다고 빠름과 변화에‘만’ 몰두하란 소린 아니다? 설매검의 장점이 뭔지 잊지 마라.”
“내가 빡대가리냐? 그런 짓을 하게?”
백무호가 투덜댔다.
아무래도 뒷말은 오지랖이 맞는 모양이다.
내게 검을 받아간 백무호가 검날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장소월 소저가 다가왔다.
“저는요?”
땀 냄새가 날 정도로 성큼 다가온 장소월 소저의 접근에 당황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생각해뒀던 조언을 건넸다.
“장 소저가 펼치는 검은 완벽해요.”
“제가요?”
“예. 과연 절정검도. 장문경 선배의 검이네요.”
천하십검의 일좌 천의무봉 장문경 선배의 성명절기에 걸맞은 무공.
검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장점이 상생하여 힘을 만든다.
백무호도 검에 많은 것을 담았지만, 장문경 선배의 절정검도는 그야말로 검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장점의 총화라 불릴 만하다.
그야말로 천재의 검.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입문조차 못 할 무공이다.
“다만 그 검은 장 소저의 검이 아니죠. 검을 쓰는 것은 장 소저인데, 검의 주인은 장문경 선배입니다. 그저 검이 있을 뿐 거기에서 장 소저가 보이질 않았어요.”
“아아…….”
장소월 소저의 재능은 백무호 못지않다.
장문경 선배의 절정검도를 통째로 집어삼킨 재능이다.
하지만 삼키기만 했지,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무호와는 다른 의미로 검에 휘둘리고 있어요. 검에서 자신을 찾으세요. 이대로라면 언젠가 벽에 부딪혔을 때 절대 그 벽을 넘지 못할 겁니다.”
냉정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가감 없이 평가했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영문도 모른 채 성취가 답보상태를 이루다 종국엔 완전히 멈출 것이다.
좌절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장소월 소저가 무너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당장 아프더라도 쓴소리를 하는 편이 낫다.
‘싫어하려나?’
정곡(正鵠)을 찔렸을 때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다음 이어질 말이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럼…….”
그런데.
“…도와줄 거죠?”
장소월 소저가 내 손을 꽉 잡으며 열의를 보였다.
온몸에서 무공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거리감 어디 갔어?’
아니, 그보다.
[퉤!] [좋을 때다.]저거 침 뱉은 쪽이 장삼풍 사부 같은데.
다른 때랑 비교하면 반응이 반대 아닌가?
왜 이쪽 관련 일에는 그리 부정적이십니까, 장삼풍 사부?
“안 도와줄 거예요?”
“……아뇨, 도와줄게요.”
“헤헤헤.”
장소월 소저가 아이처럼 웃는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언제나 늠름한 여장부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열기가 옮겨온 건지 손이 뜨겁다고 느껴졌다.
***
그 뒤로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는 몇 차례 더 비무를 행했다.
조언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변화가 보였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진짜 재능이란 이런 거다.
한순간에 본질에 닿는 것!
둔재로 지낸 세월 때문인지 두 사람의 재능이 눈부셨다.
내 성취는 모두 사부님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을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했는데, 천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문제네.’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하려 하니 벌써부터 걸리는 부분이 나온다.
나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렁슬렁 익혔지만, 남들은 다를 거다.
“편하고 빠른 길을 가느냐, 다소 늦더라도 바른길을 가느냐…….”
장삼풍 사부의 제대로 된 무공을 전수한다고 해서 과연 저들이 단시간에 소화해낼 수 있을까?
재능이 있다면 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많은 시간을 수련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학의 위협이 코앞까지 닥쳐왔는데 완성까지 오랜 시간을 들이는 무공을 전수하는 게 과연 맞을까?
이리 생각하니 무당이나 소림의 무공이 왜 뒤틀리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기완성의 부산물이 아닌, 눈앞의 싸움을 위한 실전적인 성향을 우선시하다 보니 구파 무공은 비틀어졌다.
그 폐해를 아는 나조차 이런 생각을 떠올렸을 정도다.
당장 눈앞의 위험만 넘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아냐. 이런 식이라면 평생 못 고쳐.”
시작이 틀어지면 결과도 틀어지게 되어있다.
바로잡을 것이라면 시작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빠른 성취를 끌어내야 하는 부분이 문제이긴 하지만 방법이 있다.
구르다 보면 다 되게 되어있다.
이건 사부님들이 증명해 주셨다.
어디서 들은 건진 모르겠지만, 왠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말이 있다.
-도를 믿으십니까?
안 믿으신다고요?
그럼 구르셔야겠네요.
“우리 좋은 데 한번 가봅시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