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28
327화 영혼에도 군살이 붙는다
시시각각으로 목을 조여 오는 전황에 사독구자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필요에 의해 각을 세우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상황을 바로잡고 무게감을 보여준 거룡제의 위용은 감탄스러웠다.
그야말로 강자의 진면목.
제육천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흑룡회가 자랑하는 고수다웠다.
그랬기에 화산파 잔당들과 함께하는 놈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과감하게 전투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놈들이 예상외로 선전하며 막아섰음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젊은 놈이 개입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어졌다.
어린놈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강맹한 장력을 줄줄이 뿌려대고, 듣도 보도 못한 무공으로 순식간에 전장을 휘저어놓더니 말도 안 되는 이기어검을 구사했다.
그리고 기어이 거룡제까지 격살했다.
한 개인이 전장을 뒤집은 것이다.
“주둥이만 산 늙은이 같으니!”
결국, 나오는 것은 욕뿐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눈앞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급격하게 무너지는 전황에 사독구자는 이 싸움의 끝을 예감했다.
“속수무책이야. 이건 못 이겨.”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얼마나 버틸지도 장담할 수 없는 판이다.
거룡제를 쓰러트린 저 젊은 놈이 개입하는 순간 그나마 버티고 있던 전력은 순식간에 추풍낙엽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퇴각하라!”
악착같이 싸워봐야 남는 것은 죽음뿐이다.
하물며 사파에는, 특히 대흑련에는 자신의 목숨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애당초 거룡제의 무위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던 원정이다.
거룡제가 무너진 지금 더 싸워봐야 개죽음일 뿐이다.
“정파 놈들이 사이한 수법을 사용한다! 반드시 도주하여 이 일을 천하에 알려라!”
등을 보이고 도망치며 사독구자가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가장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뿔뿔이 흩어져라! 한 명이라도 살아나가라!”
‘이렇게 사방으로 도망치면 저들은 쉬이 나를 추격하지 못한다. 나나 다른 놈들이나 위험도와 가치는 동등해진다.’
생존본능의 부추김에 내려진 판단이지만, 사실 현재 상황에서는 가장 적절한 판단이긴 했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우리가 이기는 거다!”
사독구자의 외침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무려 목숨이 걸린 일이다.
대흑련의 무사들은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종남파와 짜고 자신만만하게 섬서 땅에 발을 들였던 사파 무리는 주저 없이 등을 보이고 개미떼처럼 도망치기 시작했다.
***
후방에 있던 놈의 외침에 사파 무인들이 등을 돌렸다.
부채꼴 모양으로 흩어지는 것이 물을 피해 도망치는 개미떼 같았다.
“귀찮게 나오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놓치면 귀찮아질 것이다.
곧 관중연이 종남파의 평판을 주저앉힐 것이다.
그 소문이 힘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괜한 이야기가 물을 흐리면 기대했던 것만큼 파급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였다.
“한 놈도 놓치지 마!”
백무호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 싸움은 여기서 끝낸다!”
이미 한 놈을 뒤쫓아 베어버린 채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악적을 처단하라!!”
사파 무인들의 뒤를 설영과 녹림마인들이 뒤쫓았고,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던 화산파 제자들 역시 추격전에 가세했다.
“나도 움직여볼까.”
열두 자루의 검을 운용하는 지금이라면 저들의 절반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타탓!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까지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전능감이 고조되었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손아귀에 있는 듯한 감각은 여전하다.
“어디 보자, 여기라면…….”
의지가 닿는 곳에 검이 이른다.
그것이 이기어검이다.
이기어검을 펼치는 순간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이 유효 반경인 것이다.
적들의 퇴각을 지시했던 자의 지척까지 다다르자 손을 뻗어 내 안의 의지를 퍼트렸다.
그때였다.
‘어라?’
몸속에서 뭔가 툭!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강대한 힘을 운용하고 있는 내부의 기혈에서 난 소리다.
기운이 폭주하며 내달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탄력감이 순식간에 몸을 휘감았다.
‘위험……!!’
한순간, 기운의 흐름이 끊어졌다.
금방이라도 도주하는 적들의 뒤를 치려던 열두 자루의 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땅! 따당! 차라랑!
그 변화를 느낀 것일까?
도망치던 놈이 나를 돌아봤다.
‘젠장! 무리했어…….’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이라면 천마신교의 난 때 간이로나마 완성된 오행신력으로나 가능했던 숫자였다.
게다가 그만한 이기어검을 운영하면서 따로 거룡제와 격돌하기까지 했다.
그전에는 종남파 장문인의 목을 따기 위해 힘을 폭발적으로 뽑아 썼고, 도주하면서도 적지 않게 힘을 썼다.
게다가 천마 사부에게 배운 새로운 방식의 동화의 법 때문에 출력이 높아진 만큼 몸에 가해지는 부담도 컸다.
공령이 있기에 내공에는 한계가 없지만, 그 내공을 돌리고 감당해야 하는 몸의 내구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만한 힘을 감당했을 기혈과 기맥이 멀쩡할 리가 없다.
‘천지간의 운행과 흐름에 손을 대는 건 상상이상으로 기맥의 부담이 커…….’
새롭게 얻은 힘이 얼마나 기혈을 혹사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눈 한 번 깜빡거릴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말 그대로 무방비가 되었다.
“큭! 얕은수를!”
다행히 간사한 인상의 사내는 뜻 모를 말을 내뱉으며 계속 도주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기어검을 거둔 것이 어떤 책략 같은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우와! 근래 중에 최고로 위험했다…….’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했다.
만약 그 짧은 순간 주변에 있던 놈 중 누군가가 내 상태를 파악하고 공격해왔다면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힘에 취해서 스스로 관조하는 것을 간과했다니!
무인으로서 손에 꼽을 만한 병신 짓이다.
‘눈치챘을까?’
나는 슬쩍 설아 누나가 있는 쪽을 살폈다.
역시나 재미있는 것을 봤다는 듯 웃고 있는 설아 누나가 있다.
‘으아아아아아아!!’
최악이다.
나름 멋진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모조리 말아먹었다.
[얼간이가.]천마 사부의 차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할 말이 없다.
“에휴…….”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몸을 풀었다.
기혈과 기맥이 이 정도로 혹사당한 상태라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긴 하다.
하지만 돌려 이야기하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충분히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더 정확히는 이대로 쉬자니 속이 쓰렸다.
‘영혼에 군살이 붙은 기분이야.’
강한 힘을 휘두르는 것에 취해 기초 중의 기초를 잊다니.
사부님들을 처음 뵙고 수련에 충실하던 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영혼에 군살이 없던 시절로, 가장 순수하게 무를 쫓던 모습으로 돌아가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순수하고 올곧게.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뛰어나간다.
전과 다르게 땅을 박차는 발끝에 무게가 느껴진다.
조금 전 동화의 법으로 천지간의 운행에 몸을 담았을 때는 없었던 감각이다.
좋다. 내 몸이라는 느낌이 든다.
전능하고 위대하지는 않지만, 껍질 속 알맹이처럼 명확한 내 모습이 남아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단순해진 기운의 흐름이 다시 한번 몸을 이끈다.
공기를 가르며 도주하는 상대와 거리를 좁힌다.
“빌어먹을!! 꺼져!!”
그러자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며 암기를 던졌다.
십여 개의 암기가 뿌려졌다.
앞으로 달리는 중이라 쏟아지는 암기의 속도가 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기혈이 좀 찌뿌둥하긴 하지만, 감각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날아드는 암기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턱! 티팅!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쳐낼 것은 쳐내며 공간을 만든다.
날아드는 암기 하나를 낚아채고, 그 암기로 궤적에 있는 다른 두 암기를 쳐낸다.
그렇게 열린 틈새로 몸을 던진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추격한다.
손에 들린 암기를 던졌다.
푹!
“으앗!”
허벅지에 암기가 꽂힌 상대가 바닥을 굴렀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몸을 일으키는 적의 눈에서 독기가 번뜩였다.
“죽엇!”
몸을 튕기며 달려든다.
쇄액!!
뻗어오는 검이 목을 노린다.
날카롭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경시하기 어려운 예리함이 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오로지 살법에만 치중해있는 만큼 투로가 단순해졌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한 나는 뻗어온 상대의 팔을 휘감으며 몸을 돌렸다.
“허접한 수를!”
상대가 자유로운 팔을 휘둘러 내 옆구리를 노린다.
이를 피해 옆으로 돌아가니 자연스럽게 휘감은 팔이 뒤틀린다.
우둑! 우두득!
관절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선명하다.
그래도 몸을 돌리며 휘감을 팔을 휘저으니 그대로 휘말려 몸이 떠오른다.
허공에 떠오른 몸을 그대로 땅에 패대기치며 땅으로 떨어지는 머리를 그대로 후려 찬다.
빠각!
“커……!”
한순간 눈에 힘이 풀리며 목이 뒤틀린 채 땅에 처박히더니 그대로 몸이 축 늘어졌다.
절명이다.
“그래도 한 놈 잡긴 했네.”
이제야 긴장이 풀리며 얕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뭔가 나른한 탄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대로 대지와 하나가 되어 편히 쉬고 싶은 느낌이다.
그런 내 옆으로 설아 누나가 다가왔다.
“수고했어.”
설아 누나가 배시시 웃으며 어깨를 다독였다.
평소와는 손이 올라가는 위치가 다르다.
평상시라면 머리에 손을 올리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어깨다.
“멋있었어.”
“……정말? 진짜로?”
‘왜?’라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처음 전장에 뛰어들었을 때라면 몰라도 방금 전에는 무인으로서 가장 추한 꼴을 보였었는데?
그런 내 반응에 설아 누나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사람의 본성은 위급할 때 나타난다고 하잖니. 그 위급한 순간에 운이는 앞으로 나아갔어. 그 뒷모습이 참 크게 보이더라.”
처지와 상황을 따지지 않고 어려운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설아 누나가 보는 남자다움인가?
그냥 나이기에 설아 누나가 좋게 봐준 것이 아닌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설아 누나가 나를 그리 평가했다면 좋은 것이다.
“쉬고 있어. 금방 처리하고 올게.”
설아 누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기자 하얀 잔영을 남긴 채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서 도주를 택한 자들의 끝을 예감할 수 있었다.
***
추격조는 도주하는 사파무인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격멸한 모양이다.
추격에 나섰던 이들은 저마다 수급을 챙겨왔다.
그렇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백무호가 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야, 지금 싸우면 내가 이길 것 같다?”
뭐가 기분이 좋은지 백무호가 이죽였다.
당연하게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하! 저걸 동생이라고…….”
“…….”
특히 설아 누나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착 가라앉았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찔끔한 백무호가 딴청을 부렸다.
하지만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것이 오금이 저리는 것 같았다.
다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백진성 아저씨? 한산월 아주머니?”
무탈해 보이는 것이 누군가와 격전을 벌인 흔적은 없다.
어딜 갔다가 이제야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그걸 캐묻기엔 두 분의 표정이 너무나도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런 가운데 한산월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와 있었구나. 잘 되었다. 할 이야기가 있구나.”
얼굴에 보이는 딱딱함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