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34
333화 재회
“후우…….”
장소월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한숨을 내쉬었다.
통증과 함께 느껴지는 질척함에 어깨 부근을 묶었던 헝겊을 다시 조였다.
검붉은 얼룩이 가득한 헝겊으로 압박하자 장소월이 눈살을 찌푸렸다.
“공동파 검기가 제법 매섭네요.”
“괜히 구파가 아니지.”
장문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장소월의 어깨에 난 상처는 공동파와의 싸움에서 생긴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꼼꼼하게 치료를 했겠지만, 화산과 종남의 상황이 어떤지 듣고 난 이후이기에 서둘러 퇴각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추격조가 계속해서 공격해오고 있기에 몸을 정양할 여유가 없었다.
“쯧쯧. 아직도 출혈이 멎지 않은 걸 보니 흉터가 크게 생기겠어.”
“무인에게 흉터가 대수인가요.”
“한 명의 무인으로서야 당연한 말이라 하겠다만, 아비로서는 가슴이 아픈 것이 어쩔 수 없구나.”
여성미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딸내미의 대꾸에 장문경이 혀를 찼다.
뭔가 한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였기에 바로 화제를 돌렸다.
“공동파가 혈교와 손을 잡았다지만,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줄이야.”
공동파는 이미 혈교에 완전히 먹혀버렸다.
그래도 정파로서의 가치를 벗어던지기 전까지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혈교의 대법으로 강화된 공동파는 상정한 것보다 몇 단계는 더 강했다.
제갈세가가 나름 분전하였으나 가문의 모든 전력을 동원한 것이 아니다 보니 순식간에 열세에 몰렸다.
그런 상황에서 전황을 백중세로 끌어올린 것은 오롯이 장문경의 무위였다.
홀로 공동파의 전력 사할 가까이를 감당하였으니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여력을 이용해 퇴각을 감행했다.
다행히 공동파 역시 피해가 컸던 터라 즉각 추격을 이어오진 않았다.
대신 다른 자들이 추격해왔다.
“혈교 놈들…….”
안 좋은 기억에 장소월이 이를 갈았다.
***
공동파 대신 뒤를 추격하기 시작한 혈교 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시시각각 암습을 가해오는 것은 차라리 나았다.
악랄함의 진수를 보이겠다는 듯 혈교는 정신이 멍해질 미친 짓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일련의 무인들이었다.
공동파의 속가제자들이었다.
위협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일부 별호를 얻을 법한 고수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이 고작인 삼류였다.
제갈세가 평무사 몇몇으로도 정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울부짖는 외침에 있었다.
“으어어엉! 목숨을 걸어라! 저들에게 상처 하나를 입힐 때마다 가족이 살아남는다!!”
아무리 칼에는 눈이 없다는 무림이지만, 뻔히 상황이 보이는데 학살할 수는 없었다.
“쯧! 개자식들! 가능한 혈을 짚어 제압하라!”
제갈 가주가 빠르게 판단을 내렸지만, 그 역시도 혈교를 우습게 봤다.
“크르르륵…….”
“어! 이게 어떻게!!”
혈을 제압당한 공동파 속가제자들은 순식간에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피에는 허연 점액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머릿속에 있어야 할 것이 칠공을 통해서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이다.
“고독(蠱毒)? 독한 놈들이로다!”
점혈을 통한 제압은 의미가 없어졌다.
“하는 수 없지. 다리를 베어서 기동력을 상실케 하라. 그리고 금창약을 나눠주고 이탈한다.”
하지만 이 또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상처를 입히고 이들을 방치한 뒤 퇴각을 하자 이내 그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화들짝 놀라 그곳으로 되돌아 가보니 부상을 입은 채 방치되어있던 공동파 속가제자들이 피범벅이 된 채 죽어있었다.
편하게 죽지도 못한 것인지 시체는 낭자 되다시피 했다.
어느 하나 온전한 사체가 없었다.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시신들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그 원망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이어지는 추격자들은 단숨에 숨통을 끊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닿을 리 없는 원망이 닿아올 때마다 정신과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
“무림이 무섭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게 놈들의 방식이다.”
치를 떠는 장소월과 달리 장문경은 침착했다.
하지만 장소월은 아버지의 말에 짙은 분노가 숨어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네 어미를 잃을 때도 같은 수법을 썼지.”
혈교의 대법은 제물로 삼은 자의 피를 통해 재능을 흡수한다.
상대가 펼치는 검을 보고 곧바로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장문경이다.
혈교에게 장문경은 매력적인 제물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문경은 반려(伴侶)를 잃었다.
장문경이 혈교에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한을 가지게 된 이유다.
“지금까진 아버지 혼자 싸우셨지만, 이젠 아니에요.”
굳은 결심을 내보이는 딸을 장문경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놈들은 꾸준히 공격해왔다.
쉴 만하면 공격을 해오는 통에 도통 쉴 수가 없었다.
공동파 속가제자들이 모두 소모된 이후에는 사파무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들 역시 딱히 고수급들은 없었지만, 살수들도 있었고, 종종 혈교 고수들이 사파 무사들 사이에 숨어 기습을 가하기도 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약한 곳을 노렸다.
공동파와의 싸움,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퇴각전에서 부상을 입은 이들을 공격했다.
마치 촉진을 하는 것 같았다.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약해졌는지 공격을 해올 때마다 가늠하는 느낌이다.
순조롭게 방어해냈지만, 사냥감 취급을 당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뭔가 오는구나.”
가뜩이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장문경의 경고는 장소월의 얼굴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뭐가 오든 베어버리면 그만이죠.”
표정만큼이나 차갑게 말하며 장소월이 검을 뽑아들었다.
장소월은 상처 부근이 다시 축축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검을 들었다.
비단 장소월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독기 어린 눈으로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습격은 없었다.
쾅! 콰쾅!
“어억!
챙! 채챙!
“크악!”
퍼펑! 퍼퍼펑!
“아아아악!!”
오히려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가 났다.
“반가운 얼굴이군.”
인기척을 읽고 대응할 태세를 갖추던 장문경이 접근해오는 이를 보고 반색했다.
연청운을 본 이들은 활짝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장소월만이 달랐다.
“하아아아…….”
장소월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몇 번이든 휘두를 수 있을 것 같던 검이 무겁게 느껴졌다.
갑자기 몸 안에 있던 힘이 죄다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어깨가 아파왔다.
***
암습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은밀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표적에 몰래 접근하거나, 표적이 오는 길목에 몰래 숨어서 대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암습은 나와는 영원히 연관이 없는 단어가 되었다.
이미 이전에도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으로 주변의 모든 흐름을 잡아낼 수 있었다.
여기에 동화의 법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대라조화심결을 운영한다면 천하제일 살수라도 내 이목을 흩트리고 접근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문제는 유지력인데, 이기어검을 다발로 움직이는 것 같이 급격하게 출력을 올리지만 않으면 지난번처럼 무리가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모조리 읽어내 파악한 뒤 앞으로 튀어 나갔다.
쿠웅!
도약하여 내려서는 순간 힘주어 발을 굴렀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질척한 검붉은 것이 눈높이까지 튀어 오른다.
흙과 뒤섞인 피와 살이 너저분하게 흩날린다.
땅속에 숨어있는 놈들을 흙과 함께 뭉개버린 결과였다.
그렇게 숨어있는 놈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나는 사정없이 땅을 구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쿵! 쿵! 쿵! 쿵!
움직일 때마다 축축한 흙냄새 사이로 역겨운 피비린내가 섞였다.
혈교 놈들이다.
“씁! 두더지도 아니고.”
그렇게 다섯 걸음을 걷자 땅속에 숨어있던 놈들 몇몇이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하지만 기습이 아닌 상황에서 땅속에서 튀어나와 봐야 좋은 표적일 뿐이다.
기세를 담아 뻗은 권경이 바람처럼 쏘아졌다.
퍼걱!
수박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날아갔다.
가볍게 혈교도 하나를 죽인 뒤, 나를 관조하며 주변을 살폈다.
몸이 가볍다.
감각은 신경 가닥이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생생하다.
기혈을 타고 흐르는 기운은 대하(大河)처럼 깊고 넓게 흐른다.
동화의 법과 대라조화심결이 하나가 되니 모든 몸의 기능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근육 한 올 한 올에 내력이 심어지는 느낌이다.
몸에 부담도 거의 없다.
손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붉은 선을 그린다.
손가락 끝에서 뽑혀 나온 실처럼 가는 다섯 개의 강기 가닥이 땅속을 파고든다.
꿈틀거리는 뱀처럼 땅을 헤집는다.
순식간에 주변이 붉은 강기의 실로 뒤덮인다.
혈라강선!
천마신교에서 구사했던 천마 사부의 무공!
하지만 동화의 법과 대라조화심결을 터득한 뒤 펼치는 혈라강선은 과거와 다른 차원의 수준을 보였다.
푸그그그극!
화려하게.
잔혹하게.
살과 뼈를 가르는 강기의 난도질이 내 감각에 잡힌 적들을 모조리 찢어버렸다.
콰콰콰콰콰콰!!
주변의 흙이 검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숨어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인 뒤에야 내력을 거뒀다.
“이 정도면 됐나.”
적들이 남아있지만 그건 이화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이 처리할 거다.
그렇게 뒤를 맡기고 장소월 소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몇 번 도약한 것만으로 먼 거리를 단번에 접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많이 힘들었는지 다들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눈 밑에 그늘이 가득한 것이 잠도 제대로 못 잔 사람들 같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장문경 선배조차 피로를 감추지 못했다.
부상자들도 많았다.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 까닭이 이해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모기처럼 달려드는 적들에게서 부상자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자들을 옮기며 행군을 거듭해야 했다.
운기조식이나 제대로 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나야 공령에 의해 소모되는 내력이 즉시 채워진다지만,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소모한 내공은 운기조식을 통해 다시 채워 넣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당연히 상태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일단 휴식을 취하며 운기조식을 하든 못 잔 잠을 자든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장소월 소저에게 다가갔다.
핏기가 번들거리는 어깨에 눈이 갔다.
“많이 다쳤네요.”
“예.”
장소월 소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카락 하며 평소의 단정함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의연해 보이는 모습이 평소의 장소월 소저다.
강하고, 아름답고, 올곧은.
어딘가 설아 누나를 닮아있는.
“어디 보자…… 소림에서 받은 약이…….”
일단 상처를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에 품을 뒤지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몸이 멈췄다.
“울어요?”
표정은 여전히 의연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흐른다.
눈물과 장소월 소저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운다.
“아프니까 울겠죠?”
장소월 소저의 대답을 들으니 뭔가 되게 멍청한 질문을 한 기분이 들었다.
우는 걸 보고 우냐고 묻다니.
생각지 못한 걸 보고 당황한 탓인가 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장소월 소저도 이상했다.
의연해 보이는 얼굴로 저리 울며 아프다고 한다.
“아픈 걸 감추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아플 땐 아프다고 해요.”
나는 살짝 타박하듯 말했다.
그런 내 말에 장소월 소저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멋이 없잖아요.”
“……이제야 좀 장 소저 같네요.”
멋있는 사람이다.
무림의 젊은 후기지수들이 그녀를 동경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아무튼, 소림에서 쓰는 약이 있어요. 부러진 뼈도 붙일 정도로 외상 치료에 효과가 좋…….”
“발라줘요.”
“……예?”
갑작스럽게 끊고 들어온 말에 나는 잠시 뇌가 정지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깨에 난 상처에 약을 바르려면 상의를 어느 정도 벗어야 하는데, 외간 남자가 그래도 되는 건가?’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장소월 소저가 보챘다.
“갑자기 팔이 안 올라가요.”
날아드는 칼날에는 대응하는 법을 잘 알고 있지만, 이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그런 내 등 뒤로 장문경 선배가 다가왔다.
“흉터 남으면 책임질 거냐? 얼른 가서 발라주고 와.”
장문경 선배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