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5
34화 독존(獨尊)의 무공 천마무겁수(天魔無劫手)
이놈이 확실히 어딘가 어긋난 부분이 생기긴 한 것 같다. 장난이라곤 해도 내 몸 어딘가를 잘라 버리겠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해. 예쁜 말이 잘 안 나와.”
“언제는 예쁘게 말했었다고.”
“너무하네.”
백무호가 삐진 사람마냥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저러니까 좀 본래 모습 같네.
“음! 어쨌든 가능한 예쁘게 잘라 볼게.”
“그래, 힘내라.”
응, 아니야.
내가 아는 모습과 모르는 모습이 왔다 갔다 한다.
괜찮은 거 맞나?
천마 사부는 사이한 부분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검흔에 남겨진 흔적을 좇아 다다른 게 저런 모습이라면 어째 안심이 안 되는데.
하지만.
‘믿어야지.’
장삼풍 사부를 믿자.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듣고 배운 바를 믿자. 적어도 나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으실 분이다.
그렇다면 천마 사부도 믿어 보자.
나에게 가르친다는 것도, 백무호의 현 상태를 바로잡는 것도.
난잡해지는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한결 개운해진 눈으로 백무호를 볼 수 있었다.
백무호의 검이 뻗어 왔다.
후웅!
검신에서 벌떼 우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장중무도(莊重武道).
무겁다.
흔히 알려진 화산의 검공이 아니다.
어느 쪽이냐면 오히려 무당파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당파의 무공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이어지는 검로.
휘릭! 사악!
물 흐르듯 검로가 이어진다. 뒤로 물러나는 나를 쫓아 백무호의 검이 유려하게 뻗어진다.
유려함 속에 화려함이 있다.
화려하다는 것은 격렬한 변화가 있다는 의미다.
검 끝이 흐트러지듯 핀다.
이거는 확실하게 화산파의 느낌이 났다.
장중함과 유려함 그리고 화려함.
내 눈에도 단번에 문제가 보였다.
검의는 담았지만, 제각기 따로 논다. 검의를 하나로 일치시키지 못하니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욕심이 많네.”
“그건 인정!”
본인 스스로도 아는지 바로 대답이 나온다.
그런 대답과 함께 뻗어내는 검.
다시 움직이는 검세가 세차게 요동쳤다.
나는 뻗어 오는 그 검을 유심히 살폈다.
사악!
백무호가 펼치는 검법의 바탕.
그 기본은 화산파의 검공이다.
화려한 움직임이 기본이다. 변화가 가득한 가운데 그 변화를 매끄럽게 이끄는 부드러움이 틈을 메운다.
격렬하게 변화를 만들다 보면 초식에는 각이 생기기 마련인데 백무호의 검법에는 그런 각이 별로 없었다. 변화가 매끄럽게 일어난다는 거다.
덜 사나워 보일지언정 더 정확하고 안정적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장중함이 실릴 때다.
부조화가 생겨나는 지점도 거기다.
우선은 백무호의 부조화를 잡아야 하기에 반격보다는 회피에 주력을 두고 공격을 피해냈다.
나아지면서도 퇴보하는 검의 흐름. 백무호의 검이 가진 단점을 파악할 수 있기에 나는 얄미울 정도로 잘 피할 수 있었다.
“야! 한 번만 썰어 보자!”
“이게 정신 나갔나!”
약이 오르는지 검이 점점 더 사나워지는 느낌이다.
저러다 부조화가 더 심해지면 진짜 위험해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천마 사부, 아직 멀었슴까?
언제까지 피하기만 해야 함까!!
[매화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어느 때인가.]‘그건 또 뭔 개소립니까?!’
이게 무슨 선문답도 아니고.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저건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야! 매화는! 언제 가장! 아름답냐!”
연거푸 세 번의 검격을 피하며 내지른 말이다. 제대로 말하긴 했나 싶을 정도로 급격하게 움직이며 말했기에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었겠다 싶었는데.
“어?”
돌연 백무호가 몸을 멈춰 세웠다.
뭐야? 이게 진짜 먹혀? 무슨 천재들끼리 통하는 거라도 있는 건가?
“매화라…….”
진짜 뭔가 감을 잡은 것 같다.
방금까지 미친놈처럼 휘두르던 검이 갑자기 변한다.
그 변화는 너무 극적인 것이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느리다?”
화산검법을 기본 바탕으로 잡고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빠른 쾌속함을 자랑하던 검의 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둔검(遁劍).
사나움을 버린 채 완만해진 검이 자신만의 검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
‘엉망이야.’
손은 손답기에 손인 것이고, 발은 발답기에 발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장점들을 한데 모아도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우스꽝스런 광대놀음이 될 뿐이다.
값비싼 천들을 아무리 모아 봐야 제대로 바느질을 못 하면 화려한 누더기가 될 뿐이다.
장점들을 한데 모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화산의 쾌, 무당의 유 그리고 동굴에서 본 심연의 무저갱과도 같은 무게와 깊이.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세 가지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져 왔다. 두통과 함께 뭔가 안절부절못한 마음이 든다. 피부 위가 근질거리고, 뭔가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끓는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검을 휘두르는 중 백무호는 연청운이 하는 말을 듣고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있었다.
매화는 언제 가장 아름다운가.
‘아!’
그 말과 함께 백무호는 머릿속이 단숨에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둡고 칙칙하기만 했던 심상이 단번에 찢겨나가고 새하얀 풍파가 몰아쳤다.
그 심상의 한가운데 꿋꿋한 생명력을 뽐내는 것이 있었다.
새하얀 배경 속에 붉은 매화 한 송이가 떠오르는 순간 백무호는 그 매화를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춥고 추운 겨울. 세상의 생명들이 숨을 죽이는 시기에 피어났기에 오히려 느껴지는 생명력.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검에 담는다.
서리 눈(무거움)이 매화(화산검로)를 짓누른다.
그러면 어떤가. 내 매화는 혹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가지(유려함)가 있어 꺾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것을.
굳이 빨라야 할 필요를 잊어버리는 순간.
조금 덜 빨라도 된다는 것을 알아버리는 순간.
백무호의 검은 분명 무거움 속에서도 매화를 그렸다.
생기가 넘치는 매화를.
엉뚱한 시기에 피어 버린 매화 한 송이
서리 눈 맞아 무거워진 몸을 누이네
꽃잎 위에 무거운 눈송이 가득해도
꿋꿋하게 핀 그 꽃은 아름답다네
설중매(雪中梅).
겨울 서리에 화사한 봄보다 아름답게 피는 꽃.
새하얀 겨울 속에 피기에 아름답다.
조금 늦게 가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백무호의 검에는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무거움이 실리기 시작했다.
***
“이 새끼, 눈깔이 풀렸는데.”
자신의 검에 완전히 몰입했다.
있는 걱정은 다 시키고, 날붙이로 살풀이 더럽게 부리던 놈이 얻을 건 또 뚝딱 얻어 처먹는다.
뭐 이런 사악한 새끼가 다 있나.
아니, 그것보다.
사악!
뻗어 오는 검의 질이 다르다.
“염병.”
느려졌는데 피하는 건 더 어려워졌다.
[놀라운 재능이다. 살아생전 만났다면 반드시 제자로 삼았을 정도야.]“아! 그러십니……!”
[소리 지르지 말고. 몰입 깨진다.]“하아…….”
버럭 지르려던 소리가 안으로 쑥 들어간다.
여기까지 고생한 걸 날려 먹을 순 없다.
하지만 분명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렸는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소리를 못 질러서?
그러고 보니 배가 좀 아픈 것 같기도.
어쨌든, 일은 해결됐으니 이제 혼자 칼춤이나 추게 두면…….
[상대는 계속해야지. 갑자기 표적이 사라져 버리면 몰입 깨진다.]아! 거!! 되게 까다롭네!!
천마 사부 말대로라면 계속 이렇게 당하기만 해야 한다는 건데.
마음 같아서는 그냥 극강격으로 때려 부수고 싶다.
누가 더 강한지 부딪쳐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나가리다.
진심으로 펼치는 극강격이라면 백무호가 작살나 버린다.
사악! 파라락!
문제는 그전에 내가 죽게 생겼다.
검에 무거움을 실을 줄 알게 되니 그 이후부터는 다시 검에 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재능이 검을 벼리고 있다.
남들 십수 년을 고련해야 얻을 성장을 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따라잡는 것이 보인다.
이대로라면 몰입이 깨지고 자시고, 내가 살기 위해 부숴야 할 판이다.
[내가 전하는 것은 공(空)이다.]예! 그러니까 그 공이 뭔데!!
[겁(劫)이란 무어냐.]거 선문답 같은 말 되게 좋아하시네!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없어 죽겠는데 무공이랍시고 전하는 말은 두루뭉술 그 자체다.
화두 던져 놓고 알아서 생각하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 때도 그랬지만 무공을 가르칠 때는 사부님들마다 각자의 방식이 있었다.
나를 몰아세우는 것이 천마 사부의 목적이라면 오라질 소리 나게 잘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맞출 수밖에 없다.
사악!
다시 한번 공격을 피하며 나는 생각했다.
겁(劫).
불가에서 말하는 개념으로 무한히 긴 시간을 이야기한다.
“시간!”
사악!
모든 집중력이 극도로 치솟아 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런 머릿속의 상태를 따라 손끝의 신경이 바짝 타오르는 느낌이 들 만큼 온몸의 신경이 미친 듯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런 가운데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럼 겁이 없음이란 무엇이냐.]반응이 늦었던 만큼 피부 위로 따끔한 통증이 번지는 게 느껴졌다.
겁이 없음이란 무어냐?
무겁(無劫)?
시간이 없다?
아니다. 이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공(空)을 알면 허(虛)에 이르고, 허에 이르면 세상을 바르게 본다. 시작은 아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니.]선문답 같은 말은 여전하다.
여전히 이해해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사악!
다음 이어진 백무호의 검격이 이상하리만치 간단하게 피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이할 정도로 그 검격이 파악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했는데, 나는 무언가를 깨우쳤다.
나와 나.
같지만 다르다.
머릿속에 뭔가가 쏟아진다.
깨닫지 못한,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다.
전혀 알아먹지 못한 다른 나라의 언어 같은 것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졌다.
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져 범람하는 무언가.
그러나 ‘나’와 달리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끈!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이성의 끝이 마지막으로 감지한 것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지독한 두통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씩이나 느껴 본 적이 있었던.
처음 장삼풍 사부의 인도를 따라 경(勁)을 펼쳤던 그때처럼.
그렇게 흐릿해지는 정신의 끈 너머로.
[나의 영역 안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천마무겁수(天魔無劫手)다.]독존(獨尊).
오로지 독존.
홀로 높으며 홀로 존귀하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라면 시간마저 지워 버리겠다는.
쿠우우우우우!
그런 이치가 내 손에 어렸다.
***
천마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오경 속 연청운을 바라봤다.
“뭐냐, 저놈?”
천마가 가르친 것은 그저 자신이 가르칠 무공이 어떤 무공인지, 그 본질을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이것은 터득하라고 가르친 게 아니다. 수박 껍질이라도 핥아 보라고 던져 준 거다.
그런데 터득해 버렸다.
본능적으로 이해해 버렸다.
무공의 본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터득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면 세상에 고수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도 아니지.”
“극강격.”
장삼풍의 말에 천마는 뒤늦게 깨닫고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극강격은 달마가 천상에 오른 뒤 대력금강장의 미진한 부분을 마저 다듬어 만든 무공이다. 천재라 불리는 족속들이 일평생을 걸어도 일초반식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할 것이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배웠더라도 연청운이 극강격을 펼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천지소통이 이뤄진 재목이라 해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 유배된 신의 화신체라도 되는 건가?”
장삼풍이 천마를 보며 짙은 웃음을 그렸다.
“요즘 달마가 자리를 비운 것도 그 때문이지. 알아보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기준에서도 저건 확실히 상식 밖의 범주니까.”
“흐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나. 단순하게 생각해. 저 녀석은 우리 제자야. 제자의 재기가 기쁘지 않을 사부는 없지. 순수하게 기뻐하면 그만이야.”
“제자…… 제자라…….”
익숙하지 않은 말이 천마의 입안에서 되뇌어졌다.
“그래, 너와 나 그리고 달마. 우리의 제자다.”
장삼풍이 그 말을 받았다.
결코, 감출 수 없는 가득한 감정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