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66
365화 각성(2)
무언가 거대한 것이 집어삼켰다고 느낀 후,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더 이상 방안이 아니었다.
“우주?”
어두운 공간 속.
마치 밤하늘 한가운데 던져진 것 같았다.
귀신이 되어 밤하늘을 주유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때 저 너머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별처럼 빛나는 다섯 덩어리가 이어져 각기 붉고, 푸르고, 희고, 검고, 누런색을 발했다.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그것들은 서로 보듬고 화합하며 균형을 맞춰나갔다.
어렵지 않게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오행(五行).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자 이 공간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이게 내 내면세계인가?”
관조가 극에 다다르면 이런 현상도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내 몸 안의 기운이 내 의식을 넘어섰을 만큼 거대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부님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깊이 몰입한 상태인 것 같은데…….”
확실히 요즘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진 선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세계를 좀 더 지켜보고 싶어졌다.
“어?”
의식이 움직이니 갑자기 별처럼 빛나는 다섯 덩어리가 코앞에 놓였다.
축지법으로 몸을 옮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의식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것도 되려나?”
가까이서 보게 된 오행의 기운은 나보다 압도적으로 컸기에 한눈에 살피기 어려웠다.
이를 살피려면 내 의식의 크기가 좀 더 커야 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 시야가 달라졌다.
“되네?”
갑자기 시야가 달라졌다.
어느새 오행의 순환을 눈 아래로 볼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갑자기 거인이라도 된 느낌이다.
재밌다.
여기에서라면 뭐든 될 것 같다.
천마 사부의 천마무겁수처럼 정말 이 영역 안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한결 풀린 기분으로 빛나는 다섯 기운의 덩어리를 유심히 살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가진 오행신력은 상당히 불균형했던 것이 사실이다.
불의 신력이 과도하게 높은 편이라 그 영향을 받은 적이 있기도 했다.
그에 반해 쇠의 신력은 너무 미약해서 상생상극의 이치를 활용해도 크게 키우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당시에는 지금처럼 오행신력이 다 갖춰지지 않아 올바른 순환을 이뤄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불균형이 채워졌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난초가 잘 자라 꽃을 피운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결정적으로, 오행순환이 완전해졌다는 건 설아 누나의 상태도 좋아졌다는 의미다.
이 오행순환은 나 혼자서 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응?”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오행순환을 바라보던 나는 그 흐름이 미세한 실타래를 짜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위를 향해 하늘하늘 올라가고 있었다.
이 위로 무언가가 더 있다.
“기왕 들어온 김에 다 보고 가야겠다.”
의식의 방향이 위로 향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무언가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구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
가운데 그어진 선을 바탕으로 서로 물고 물리는 모양을 한 희고 검은 형체다.
태극(太極).
오행과 태극이 연결되어 있다.
“어… 이게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이었던가?”
태초에 혼돈에서 나온 움직임(動)이 양을 이루고, 양동(陽動)이 극에 다다르면 고요함(靜)에 이르니 이것이 음(陰)이다.
양과 음이 맞물려 태극(太極)을 이루고, 오행(五行)을 낳으니, 여기에서 만물이 시작된다.
태극은 오행의 어미다.
오행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내 안의 태극 또한 완전함으로 나아갈 기반을 갖췄다는 의미일 터.
이는 내 기반이 더욱 단단해졌음을 의미할 것이다.
어째서 사부님들이 내 완성을 위해 반도를 연단 할 것을 권했는지 알 것 같다.
오행신력을 이루게 된 것만으로 다른 것들도 완전해지는 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천마 사부가 말씀하셨지. 내 내적세계에 담긴 영역은 워낙 다양해서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 짐작이 안 된다고.”
그럼 이 위로 올라가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천마 사부의 영역으로 짐작되었다.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한번 의식이 부상했다.
그리하여 보게 된 것은 지금까지 본 것들과 달랐다.
칠흑보다 검고 새벽보다 밝다.
색은 색이 아니고, 형태는 형태가 아니다.
무질서한 무언가.
하지만 다시 보면 그 안에 나름의 질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볼 때마다 인식이 달라진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모독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서글프리만치 크고 장엄한,
위대한 것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의식 밖에서 무언가가 다가왔다.
녹빛으로 반짝이는 반딧불 같은 덩어리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내 의식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무언가다.
“상화니?”
반짝!
녹색 빛 덩어리가 반짝반짝 빛나며 사방에 별가루 같은 것을 뿌려댔다.
춤을 추는 것처럼 사방을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뺨에 부비적거리기도 했다.
엄청나게 반가워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직접 의식을 맞대게 된 상화는 활발함 그 자체였다.
번잡한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상화의 이런 환대는 싫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는 날뛰는 상화를 소중한 보석 다루듯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활발하게 이리저리 맴돌던 상화가 그 순간만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이내 빛나는 덩어리가 파르르 떨며 발갛게 변하더니 내 머리 크기만큼이나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이내 작게 파장을 일으키더니 다시 작아졌다.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면 ‘퐁!’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싶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응?”
그때였다.
사방의 모습이 다시 또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주처럼 보였던 주변의 세계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둡기만 하던 검은 공간에 금색의 서광이 몰아쳤다.
위험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경각심도 들었지만, 저 빛을 보고 있노라니 하염없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내 앞에서 상화가 움직였다.
있는 힘껏 몸을 크게 부풀리던 상화가 추우욱 쪼그라들었다.
“뭐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자 상화가 똑바로 보라는 듯 내 눈에 몸통 박치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최대한 몸을 부풀렸다.
“따라 하라고?”
반짝!
“크게?”
파르르르!
다시 한번 별가루를 화사하게 뿌려대는 걸 보니 맞나보다.
크게 부풀려라.
“아!”
뭘 하라는지 알겠다.
나는 곧장 의식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오행순환을 보기 위해 했던 경험을 떠올리자 이내 내 의식의 크기가 하염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상화의 존재가 모래알처럼 작아졌다.
마지막으로 상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때, 상화는 나를 향해 계속 별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그저 하염없이.
“다시 또 보자.”
아쉬움이 드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 마음을 가슴에 품고 다음을 기약했다.
반드시 다시 보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커지던 내 의식은 어느새 내 내적세계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내 안으로 거대한 힘들이 몰려와 내 존재를 무한히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이 광대한 내적세계를 가득 채우고도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확장이 극에 다다른 순간.
팽창하는 내 의식의 크기가 무언가를 깨트리고 나아갔다.
그 끝에서 보았다.
“……검?”
일곱 개의 별을 박아 넣은 검[七星劍]을.
***
선계 자오경 앞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신선들이 모여 있었다.
연청운이 보았다면 기겁을 할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호오?”
“허!”
자오경을 바라보는 신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흥미로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오행에 태극에 혼돈까지?”
“저 중 하나만 완성해도 우화등선은 보장인데, 그 셋을 다 품었다고?”
“미친놈이네, 저거. 감당이 돼?”
자오경을 통해 보이는 연청운의 모습은 신선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부공삼매(浮空三昧).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기본에, 사방에서는 삼화취정을 넘어 만개한 꽃들과 오기조원의 증거인 다섯 기운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다.
“저 주변에 있는 녀석들도 선근 하나씩은 박히겠는데?”
“아마 그렇겠지. 이야. 일꾼들이 많이 생기겠어!”
“키우는 것은 지들이 할 일이라지만, 저만한 가능성이 생긴 게 어디야.”
“저것만으로도 수당 꽤나 나오겠다.”
신선들은 희희낙락했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신선도 있었다.
“저거… 설마 이대로 선계로 넘어오는 거 아냐?”
“그건 좀.”
“그 잡놈은 때려잡고 와야 할 텐데…….”
다만 몇몇 신선들은 연청운의 성취가 상상 이상이기에 걱정을 하기도 했다.
달마가 옆에 있는 장삼풍에게 물었다.
“이걸 보고 싶었나?”
과거 장삼풍이 말한 바가 있었다.
“인간은 육신을 가진 상태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과연 육신을 가진 인간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
장삼풍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만족 그 자체였다.
미숙하고 모자랐던 제자가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아.”
“허허…….”
천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입술이 찢어져라 입꼬리가 올라간 천마의 모습은 기쁨을 넘어 기괴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다 문뜩 장삼풍이 달마를 바라보았다.
“한데 자네는 생각보다 기뻐 보이지 않는군?”
달마는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도가적인 깨달음으로 선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니 마냥 좋아하지 못할 수는 없겠지만, 달마가 그 정도로 속이 좁진 않았다.
달마가 침음을 흘렸다.
“높은 양반에게서 좀 신경 쓰이는 전언이 와서 말이야.”
“높은 양반?”
장삼풍이 고개를 갸웃하며 위를 가리켰다.
하지만 달마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배 째…… 라는데…… 이게 뭔 소린지…….”
달마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의 본질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거!!”
자오경에 비치는 연청운의 주변이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색의 서광을 두른 연청운의 주변에서 적색과 금색의 향연이 만개했다.
무수히 많은 좌상이 연청운의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며 장엄한 형태를 그렸다.
“금강계(金剛界)?”
“삼마야계(三摩耶界)…… 만다라(蔓陀羅)!!”
무수히 많은 좌상들은 불가의 본존들이었다.
불문에 속한 본존들이 이뤄낸 일종의 만신전(萬神殿).
저것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의미는 하나뿐이다.
연청운의 소속이 더 이상 도문만이 아니라는 것!
불문의 존재이며 도문의 존재.
달마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소중한 보물을 나눠야 하게 생겼다.
“이게… 어떻…게…… 된… 일… 이지?”
장삼풍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이어졌다.
천마는 말 그대로 달마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봤다.
둘 뿐만이 아니라 모여 있는 모든 신선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 달마가 있는 곳에 멈춰 섰다.
“어… 그… 천마가 만든 보패가 서방정토 쪽으로도 제법 흘러갔다고 들었…… 그, 여래께서 요즘 즐겨보시는 중…… 그, 뭐지?”
공포에 질린 달마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쪽의 높은 양반이 전한, 배 째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버렸다.
“배 째……라…… 하하하…….”
“그 야비한 웃음이나 짓는 누렁이 새끼가 그리 지껄였단 말이렷다?”
서늘한 미소와 함께 드러난 서왕모의 송곳니가 선명하게 반짝였다.
달마는 순식간에 포위당했다.
분노로 가득 찬 신선들은 파벌과 소속에 관계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의견을 일치시켰다.
“칼 좀 가져와.”
“그…….”
“간장으로 빌려올까? 막야로 빌려올까?”
“뭐가 됐든 큰놈으로.”
“…….”
오늘이 달마 배 갈라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