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78
377화 깔끔하게 가자
어쨌거나 목표였던 공형서는 죽었다.
창왕 조경후 어르신이 목을 따왔다.
내가 죽일 생각이었지만, 누가 죽이든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그저 그 과정에서 굉장히 어색한 상황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다만, 이야기를 나누기엔 적당한 자리가 아닌지라 합의하에 일단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신처로 돌아왔다.
구악도인의 신당이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은신처에 도달하자 이 어색한 분위기의 핵심이 튀어나왔다.
“어… 음…… 그러니까, 네가 무애의 손자라고?”
“예.”
“으음… 아니, 어릴 때 보았던 얼굴이 남아있기 한데…….”
본의 아니게 친구 손자에게 강기를 날린 꼴이 되어버린 창왕 조경후 어르신이 내 위아래를 반복해서 훑었다.
아무래도 살수처럼 보이는 맞춤 복장이 영 눈에 걸리는 모양이다.
“옳은 일을 하려다 보면 이런 차림을 할 수도 있는 거죠.”
“크흠!”
남 말 할 처지는 아닌지라 세 분 모두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이 차이가 큰 터라 시작부터 하하호호 하며 대화를 나눴어도 어색함이 있을 텐데, 뼈를 발라버리겠다느니, 염치 좀 챙기라느니, 씹어대며 쌈박질을 했으니 어색한 분위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라고 검왕 남기룡 어르신이 분위기를 전환하셨다.
“미안하게 되었구나. 무애의 손자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검을 쓰는 기질에서도 엿보이지만, 참으로 중후한 분이시다.
덕분에 나도 말을 꺼내기가 편했다.
“아닙니다. 제 잘못도 있었으니까요.”
흑살대 살수로 오인 받았을 때 바로 오해를 풀지 않은 것은 나다.
당시 상황에선 그게 맞는 판단이긴 했지만,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어르신들에게 뻣뻣하게 구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음…… 아무튼, 무슨 소린지는 알지?”
창왕 조경후 어르신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이셨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한 편인 걸 알았으니 사나이답게 풀자!”
“사나이?”
“와하하하!”
권왕 천진패 어르신은 손을 맞잡고 우렁차게 말씀하시는 것이 외견과 달리 한창 피 끓는 나이대의 청년을 보는 것 같았다.
뭐랄까, 크게 화통한 성격이시니 삼악도 호걸들이랑 붙여놓으면 잘 어울리실 것 같다.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 상상되어 무서울 정도랄까.
그래도 나쁜 성격은 아니시니…….
“뭔 계집이 이렇게 손이 매워!!”
“흥!”
나와 마찬가지로 묵은 감정을 풀자며 손을 맞잡은 설아 누나와 천진패 어르신의 대화 되시겠다.
어째 손아귀 힘으로 묵은 감정을 풀어내려 한 모양인데, 아무래도 설아 누나가 이긴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그냥 나잇값 못 하는 어르신 같기도 하고.
뭐, 할아버지 친우분들이시니 기본적으론 악인은 아니다.
“허면, 어르신들이 여기 계신다는 건, 할아버지도 황도에 계신 겁니까?”
“그래, 네 생각대로 무애와 함께 왔지.”
“북방에 계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
나는 슬쩍 말끝을 흐렸다.
분명 할아버지는 북방의 일은 맡기라는 서신을 보내셨다.
그랬던 할아버지와 친우분들이 어쩌다 황도로 와서 고관대작의 장원을 습격해 목을 따는 일을 하시게 되었는지 원.
할아버지의 성격상 이런 무리수를 둬야 할 정도로 북방 쪽에 문제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 생각하니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공형서는 이부상서다.
이부는 관리의 인사를 좌우하는 요직이다.
병부가 따로 있는 만큼 직접적으로 군략(軍略)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영향력을 만들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보급이 되시겠다.
사실 이부상서 자리에 황제의 충신이 앉아 있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현 국정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세한 이야기는 자네 조부에게 듣도록 해라. 마침 근방이구나.”
그다지 입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지 남기룡 어르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슬쩍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데,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자는 자네 사람이 아닌 듯하구나.”
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민감한 내용들이 제법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입을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보는 남기룡 어르신의 눈매가 서늘하다.
“저자가 입을 여는 일은 없을 겁니다.”
“확신하느냐?”
“예. 누군가에겐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거든요.”
[암! 그렇고말고. 하계에서 뒤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이쪽 동네엔 널려있지.] [이보셔, 그거 우리 이야기야.] [아, 씹! 좀 쉬면서 잊나 했더니 정말! 아오!!]요즘은 사부님들보다 다른 신선분들의 이야기가 더 자주 들리는 것 같다.
단체로 휴가를 받으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죄다 자오경이란 기물 앞에 모여있기라도 한 건가 싶다.
어쨌든 요지는 하나다.
인간의 삶은 기껏 해봐야 일백 년.
죽음 뒤의 사후세계는 그보다 길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그 기나긴 사후세계가 끔찍한 나날로 확정될 수 있다.
“그렇지?”
“물론입니다! 이 비천한 것이 귀인께 누가 되느니 만 번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나이다!!”
영안이 트여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 짓거리로 돈벌이를 한 걸 보면 토지신이나 신령들과 계약을 통해 과율을 피할 어떤 방법이 있는가 싶지만, 나를 통해 천상 신선들의 눈에 띈 이상 그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 구악도인은 쌓여 있는 과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상태다.
실제로 오체투지를 한 채 머리를 찧으며 조금이라도 더 비참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구악도인의 모습은 살인멸구를 고려한 남기룡 어르신이 아연실색할 만큼 처절했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하군.”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호기심을 드러내는 남기룡 어르신의 말을 적당히 잘라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나 뵈러 가죠.”
***
공형서의 장원이 박살 나고, 목이 사라진 상황이라 그런지 관병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방을 들쑤셨다.
그 실질적인 범인(?)인 만큼 대놓고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일행 중에 일개 관병에게 걸릴 정도로 미숙한 사람은 없다.
한명 한명이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들이다. 작정하고 기척을 죽이면 눈앞으로 지나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다.
“어? 여기 혹시 용린대 비밀거점 같은 곳입니까?”
“와 본 적 있느냐?”
“아뇨. 와 본 적은 없지만 딱 그래 보여서…….”
여기는 황도다.
관리들도 널렸고, 뼈대 있는 가문들도 많고, 돈 좀 있다 싶은 상인들이나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구밀도가 높다.
그리고 인구밀도가 높으면 자연스럽게 땅값이 비싸다.
그 와중에서도 돈을 쓰는 것에 거침이 없는 작자들은 그 비싼 땅에 주저 없이 으리으리한 장원을 올린다.
반대로 눈앞의 건물은 사람의 눈을 피하기 딱 좋게 생겼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크기에 비해 창문은 많지 않아 외부에서 살피기 어렵다. 게다가 주변의 눈에 띄지 않는 건물들과 내부로 연결되어있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몸을 빼내기 수월하다.
아무리 봐도 비밀거점이다.
‘용린대라…… 걸리는데…….’
다른 장소에 다른 때라면 용린대의 존재가 오히려 반갑겠으나, 지금은 곤란하다.
그런 내 행동이 드러났는지 조경후 어르신이 피식 웃으셨다.
“왜? 뭔가 찔리는 일이라도 한 적 있느냐?”
“제 문제는 아닙니다만……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제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어이구, 자네도 말을 어렵게 하는 성격이구먼. 무애랑 판박이야 판박이.”
골치 아픈 이야기는 질색이라는 듯 조경후 어르신이 투덜거리셨다.
반면 나는 복잡해지려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별수 없지.’
황도로 향하려 결정했을 때부터 용린대와의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북방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 할아버지 앞에서는 상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길이 없다.
내 절대명제는 하나다.
황제의 폭주는 자칫 멸천회주의 족쇄를 푸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상황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결심과 함께 비밀거점으로 발을 들이자 주변에서 긴장한 기척들이 느껴졌다.
‘열여섯.’
적진 않지만, 많지도 않다.
‘안쪽에 다섯.’
할아버지의 친우분들과 필적할 기도를 품고 있는 분들이 추가로 느껴진다.
그 가운데 평범한 기척이 할아버지일 것이다.
무림 최정상급 고수로 일곱이다.
평범한 기준으로 보면 정신 나간 전력이긴 하다.
‘그래서 더 문제이긴 한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거다.
“괜찮아. 할 수 있어.”
할아버지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설아 누나가 내 어깨를 다독였다.
어깨에 묻어나는 온기가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으로 좀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장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가 나를 발견하고 놀라셨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삼양현에서 뵐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시다.
올곧은 풍모는 그대로지만, 그 가운데 날이 선 느낌이 존재한다.
황제의 비밀조직인 용린대 수장으로서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할아버지. 무림의 일을 행함에 있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생겨 황도로 왔습니다.”
“무림의 일로 황도에 왔다……. 흐음…….”
무림과 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이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계가 흐릿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놓고 황도의 일이 무림과 연관이 있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 살짝 침음을 흘리셨다.
“때가 좋지 않구나. 좋은 이야기가 아니야.”
“예, 소손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 어인 일인지 이야기해보자꾸나.”
할아버지는 조용히 웃으시며 분위기를 풀어내고자 하셨다.
하지만 나는 좋은 분위기의 끝이 여기라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지금 내가 품고 있는 것을 푼다면 결코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있을 수 없다.
“검왕 어르신.”
“음?”
“아까, 신당에서 말씀하셨지요. 그자는 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고요.”
남기룡 어르신이 몸을 굳히셨다.
내 말이 그 상황을 비유함을 느낀 탓이다.
“너어…….”
남기룡 어르신이 뭔가 언급하려 했지만, 그 전에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용린대는 할아버지의 사람입니까?”
“……위험한 말이구나.”
용린대는 황제의 비밀조직이다.
그 구성원을 할아버지의 사람이라 인정할 수는 없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인정해선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확인해야 했다.
“황실에서 위험한 짓에 손을 댔습니다. 국가의 명운이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천하의 명줄을 미친놈의 손아귀에 넘겨줄 만한 짓을요.”
터무니없게 들릴 말임은 알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납득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하던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네가 허언을 할 아이는 아니지.”
그리고 뭔가 알아차리셨는지 말을 이으셨다.
“네가 해야 할 일에 용린대가 거슬리는 일이 있더냐?”
“예.”
내 대답과 함께 주변에서 날카로운 기세들이 솟구쳤다.
주변에서 몸을 숨기고 지켜보던 용린대 무인들이 드러낸 기세다.
할아버지 친우분들도 슬슬 눈빛이 변했다.
대화로 넘어갈 모습들이 아니다.
[깔끔하게 해라, 깔끔하게.]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천마의 무(武)를 이은 제자답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시다.
‘예!’
평소에는 그런 모습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지만, 지금은 천마 사부의 요구가 옳다.
“할아버지께서 용린대를 통제할 수 있으신지, 그 여하에 따라…….”
나는 의념을 일으켰다.
이 건물 전체를 감싸기 위해서다.
각성 후 내 힘은 엄청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함부로 현실에 그 힘을 드러낼 수 없을 정도다.
그를 위한 대비를 마친 뒤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제 손으로 황도의 모든 용린대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입을 다무신다.
주변에서 느껴지던 용린대의 기세가 살기로 변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에 맞춰 나도 힘을 드러냈다.
“조.부.께.서.”
오행신력이 움직인다.
설아 누나의 미숙한 그것이 아니라 진짜 신력.
신들의 힘이 사방을 가득 채운다.
“말.씀.하.시.기.전.이.다.”
태극이 움직이고, 혼돈이 요동친다.
공간을 가득 채우다 못해 터질 것 같은 힘의 요동이 공간을 일그러트린다.
“자.중.하.라.”
할아버지께만은 그 여파가 닿지 않게 조절했지만, 다른 이들은 배려하지 않았다.
“커억!!”
“쿨럭! 쿠억!”
“무, 무슨…….”
그저 힘을 드러낸 것만으로 몸을 엎드리는 자들.
그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할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무 과한 행보가 아닌가 싶지만, 황도에 들어섰을 때 최악을 가정하며 결심한 것이 있다.
황제가 선을 넘는다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멸천회주가 황제를 죽여 인과를 처먹기 전에.
‘내 손으로 황제를 죽인다.’
그렇기에 나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