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8
387화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발아래 닿아있는 대지가 비명을 지른다.
굳건하게 버텨주던 무언가가 펑! 하고 터져나가는 느낌이다.
그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모든 것이 흔들렸다.
“허이구? 이젠 지진도 일으키냐?”
“화려하게도 날뛰는구나.”
할아버지와 어르신들 그리고 황제가 균형을 잡느라 애썼다.
그나마 힘의 여파를 직접 감당하지 않은 이들이 그 정도였다.
내 힘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자들 중 멀쩡한 이들은 전무했다.
일천에 달하던 고수 칠할이 순식간에 핏덩이로 변했다.
“미, 미친…….”
압도적인 숫자의 우위가 뭉개지자 장인태감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이야! 천마놈 제자라 그런지 잘 죽이네.] [꼬라지를 보아하니 사법(邪法)이 골수까지 스며든 것 같은데,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주는 게 자비긴 하네.] [갑작스럽게 일거리가 밀려드니 명부가 무척이나 바쁘겠지만, 내 알 바 아니지!] [우린 휴가니까!] [나만 아니면 돼!!] [와하하하하하!]선계의 어르신들은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신들이 나셨다.
다만, 지상의 다른 쪽은 반응이 크게 달랐다.
“으으으…….”
황제의 것으로 짐작되는 신음이 귓가에 닿아왔다.
하지만 딱히 타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 수백이 일거에 터져나갔다.
당장에 토악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끔찍한 광경이다.
하지만 애써 참고 있다.
온몸에 힘을 주고 필사적으로 버틴다.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바탕은 나쁘지 않네.’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의외로 좋은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다.
어쩌면 그 부족한 점을 할아버지가 잘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상황을 보아하니 황제가 할아버지를 옆에 둘 것은 뻔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다.
할아버지에게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말끔히 치워버리는 것이다.
내 시선이 적들의 중심에 있는 자에게로 향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풍보현이 사색이 된다.
오랜 세월 황궁을 좌지우지해오던 노괴가 궁지에 몰려 발악했다.
“막아! 아니, 죽여! 다 죽여버려!!”
장인태감이 목이 터져라 외치자 그 목소리에 응하는 자들이 진형을 이뤘다.
아직도 삼백이 넘는 고수들이 손에 든 방패와 창, 검에 강기를 두른 채 쇄도했다.
눈에는 검은 귀화가 흐르는 자들.
두려움을 모르고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에 잠깐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손속에 사정을 두지는 않았다.
선계에서의 평가대로 일찍 죽여주는 것이 자비다.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나도 움직였다.
삼백 대 일.
몰려드는 거대한 파도를 향해 한 몸을 던지는 모습이다.
그 격돌의 첫 경계를 가르는 곳에는 강기를 두른 검은 방패가 있었다.
단번에 나를 뭉갤 듯 다가오는 방벽.
그 중심으로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부서진 육신들이 허공에 흩날린다.
피와 죽음이 붉은 꽃처럼 뿌려졌다.
거친 투기(鬪氣)가 휘몰아친다.
“그, 아아아아아!”
“카아아아악!”
그 거친 기운에 휘말렸는지 사법에 이성이 사라진 황궁 무인들이 괴성을 질렀다.
자신들은 인형이 아니라고 외치는 듯한 절규!
혼이 담긴 울부짖음에 나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 좋다.”
피가 흐르는 자들이다!
사법에 조종당할지언정 스스로 무를 담아낸 무인이다!
“덤벼라!”
“캬아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뻗어온 창들이 내 요혈을 노린다.
콰자작!
손목에서 손등으로 이어지는 면.
가볍게 닿아 무겁게 밀어내는 순간 무당파의 요결이 창에 실린 강기를 찢어낸다.
먼지를 쓸어내듯 가볍게 창을 밀어내고 부숴낸 힘이 공간을 만들었다.
“그아악!”
창날이 박살 났음에도 부러진 창대를 들이미는 자들을 밀쳐내며 그 공간 안으로 들어선다.
우득!
가볍게 뻗은 손길이 선두에 있는 자의 머리를 날린다.
‘보인다.’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있다.
나는 기꺼이 창칼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퍼걱!
파가각!
손등이 검면을 흘려내고, 장저가 턱을 꿰뚫는다.
어지러운 선이 난무하는 곳에서 춤추듯 날뛰었다.
무당파의 화경이 선을 휘젓고, 소림의 권격이 섬전처럼 뻗었다.
악귀처럼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자들이 찢겨진다.
보통 사람이라면 숨 쉬는 것조차 끔찍한 자리.
선혈이 낭자한 그 공간 안에서 오로지 나만이 자유로웠다.
그 공간 속에서 기묘한 감각을 마주했다.
‘쉽다?’
적들의 수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평가다.
적들을 부수고 진격하는 이 자리에서 내 손에 담긴 모든 것들을 말함이다.
투로가 쉽다.
손발을 휘두르는 투로라는 것이 참으로 조악하게 느껴졌다.
이제 와서 삼재검법을 휘두르는 기분이다.
무당과 소림의 무(武)가 그렇게 느껴진다.
마치 손안에 들어온 찰흙 덩어리 같다.
내 마음대로 형태를 빚고 모양을 만들 수 있다.
파격을 넘어선 다음 경지가 자연스럽게 담긴다.
종국에는 무당권과 소림권의 경계마저 흐릿해진다.
오행이 키우고 태극이 갈아버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언가를 혼돈이 씹어 삼킨다.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드는 황홀경.
‘알 것 같다.’
투로라는 것은 결국 과정이다.
이미 그 과정을 넘어선 내겐 불필요한 구분일 뿐이다.
그렇다면 버린다.
하나로 합쳐 새로운 길을 연다.
[태극권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애송이가! 와하하하하하!]장삼풍 사부가 기꺼워 웃으신다.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진정한 태극권을 배웠을 때를 기억한다.
극강격을 배웠을 때를 기억한다.
천라무결을 배웠을 때를 기억한다.
선계의 사부님들께 배웠던 무공들은 사소한 것까지도 특별했고, 비기를 펼치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에 집착하고 매달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성장을 거듭함에 따라 그 특별함을 체화하며 일신에 녹여나갔지만,
끝내 극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닿았다.’
마침내 사부님들의 가르침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한데 뭉친 찰흙이 되었다.
“후우, 하아.”
들숨에는 무당의 호흡이 있고, 날숨에는 소림의 호흡이 있다.
어느덧 천지를 들끓게 하던 요동이 멈춘다.
내 주변에는 고요만이 자리 잡았다.
“그으…….”
“가아…….”
나와 한 공간에 있는 사법에 조종되던 고수들이 그 변화에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했다.
“안 되지.”
이제 와서 추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와라, 내 적들아.”
적으로 인정받았다면 끝까지 소임을 다하라.
내 의지가 닿은 것일까?
“하압!”
기합 소리가 들린다.
우렁찬 사람의 외침과 함께 뻗어지는 검격.
그 검격을 향해 주먹을 뻗는다.
극강격을 닮은 권격이다.
본래대로라면 그대로 검을 부수고 나아가야 할 일격이지만.
우득!
검과 주먹이 닿는 순간 검격을 날린 고수의 무릎이 꺾인다.
내가중수법에 당하기라도 한 모습이다.
텅! 우드득!
뒤이어 날아드는 창을 쳐내자 창대가 실처럼 가늘게 쪼개져 터진다.
이 한 수는 태극권이며, 천라무결이고, 극강격이다.
특별한 것을 평범하게 펼쳐낸다.
펼치는 무공에 경계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이렇게…….’
극강격은 전신의 모든 힘을 하나로 모아 치는 수법이다.
그걸 온몸에 두르고 나아가면 어찌 될까.
콰아아앙!
방패를 들고 있던 자가 단단한 묵철과 함께 부서진다.
폭음과 함께 무너지는 너머로 나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일격에 붕괴시키며 길을 열어낼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에 진결을 담아 깨부쉈다.
최후까지 무인이길 바랐던 적을 대하는 예우였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이 모든 혈겁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장인태감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으…… 아…….”
유일하게 공포심을 드러내는 자.
“오, 오지 마!”
유일하게 추한 자다.
품고 있던 야망만큼이나 각오를 내보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이기에 오히려 살심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부서질 운명임을 알면서도 파도처럼 달려드는 이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황궁 고수들의 진형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괴, 괴물! 으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앞길이 훤하게 열리자 장인태감은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가지가지 하네.”
추악함의 끝을 보인다.
무책임도 정도가 있다.
움직임을 보아하니 상당한 무공을 익힌 것 같지만, 장인태감이 보이는 추한 밑바닥 어디에도 무인으로서의 본질은 없었다.
마지막 확인을 끝낸 나는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능운금광보의 걸음으로 장인태감을 앞질렀다.
“이, 이형환위?”
그저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장인태감의 눈에는 그리 보인 모양이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장인태감은 이내 도주할 길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두 손에 내력을 끌어모았다.
모든 내공을 쏟아부었는지 검게 타오르는 기운이 사람의 크기만큼이나 크게 일어났다.
“주, 죽어라!!”
살아남을 실낱같은 가능성을 걸었는지 장인태감이 펼친 한 수는 상당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푸확! 콰득!!
천라무결의 수법으로 검은 강기를 헤집고 터트린 뒤 양 손목을 잡아 뜯었다.
“아아아아악!!”
사법에 조종당했던 고수들이라면 손목이 뜯겨나갔어도 돌출되어 나온 팔뚝의 뼈를 무기 삼아 찔렀을 테지만, 이자는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고강한 무공을 지녔음에도 작은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그저 허물어질 뿐이다.
“넌 내 손에 죽을 자격이 없어.”
퍼걱! 우득!
“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장인태감의 단전을 부수고 양 무릎까지 박살 냈다.
그렇게 폐인으로 만든 뒤 황제 앞으로 끌고 갔다.
황제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된 장인태감의 모습을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장인태감.”
“흐흐흐흐…….”
장인태감은 광인처럼 웃음을 흘렸다.
“폐하께서 이긴 것 같으십니까? 폐하께선 지금 늑대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 겁니다.”
황제는 장인태감의 도발을 부정하지 않았다.
“짐도 그리 생각한다.”
장인태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호랑이를 불러들였다고 황제가 인정했다.
그렇다면 파고들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수정을 해야겠구나. 호랑이가 아니라 용이니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았으니, 그대가 사라진 이후에도 짐이 실정을 저지른다면 천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미쳤구나!!”
최후의 도발이 실패하자 장인태감이 발악했다.
반면 나는 내심 뜨끔했다.
실제로 황제를 죽일 생각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와 잠깐 눈이 마주친 황제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 중 하나를 들었다.
“장인태감, 네 목을 베어 짐의 부끄러운 과거와 결별하겠다.”
“자, 잠깐……!”
“이것이 짐이 검을 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노라.”
서걱!
그래도 기본은 익혔는지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른 황제가 장인태감의 목을 베었다.
장인태감의 목이 단번에 날아갔다.
사실, 슬쩍 상화에게 황제가 든 검을 움직이게 해서 도와주긴 했다.
이를 모르는 황제는 쥐고 있던 검을 힘없이 떨궜다.
그러나 누구도 황제를 비웃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첫 일보는 있다.
황제에게선 전에 없던 위엄이라는 것이 싹을 보이고 있었다.
잠시 떨리는 팔을 움켜쥐던 황제가 의연하게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무림에선 이렇게 인사를 하던가?”
황제가 나를 향해 포권을 쥐었다.
스스로도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어떤 무림인이 황제에게 포권을 받아봤겠는가.
나도 황제에게 포권을 쥐어 예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