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89
388화 혼란이 잦아든 뒤
새롭게 해가 떠오른 황도는 이전과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대일여래가 강림하여 대자대비하신 가르침을 내렸다는 이야기에서부터, 황궁에서 일어난 역모 사건까지.
보통이라면 혼란이 극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도의 분위기는 혼란과 거리가 멀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대일여래(?)가 강림하여(?) 남긴 말이 짙은 영향력을 발휘한 점이 컸다.
선(善)을 행하라.
이를 직접적으로 목도한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이웃을 신경 쓰고 주변을 살피는 일에 주력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의외로 이득을 본 것은 거지들이었다.
가장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
평상시라면 구걸을 위해 쪽박을 들고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녀야 했으나, 뜬금없는 사람들의 도움에 모처럼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이 그리되자 거지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럭저럭 몸이 멀쩡한 거지들은 나름대로 선을 행하기 위해 나섰다.
길거리를 청소한다든가, 부서진 건물을 수리하는 등의 일에 자진(自進)했다.
그렇게 작은 선은 서로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반면 상황이 좋지 않게 된 이들도 있었다.
“천벌이여, 천벌. 대일여래께서 형부상서의 집을 왜 박살 내셨겠어. 자비로운 부처님께서도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썩은 놈들이었으니 그런 거지.”
“하여간 탐관오리 놈들은!”
“이야기 들었어? 황궁에서 역모를 일으킨 놈들이 죄다 박살 났다고 하잖아.”
“천벌이구먼. 천벌이여.”
“암암. 그렇고말고.”
성실한 민초들에게 있어 부패한 탐관오리들은 어느 시대가 되었건 공공의 적이다.
역모가 실패한 것도 대일여래의 천벌처럼 여겨졌다.
당연하게도 그런 탐관오리들의 대척점에 있는 이는 황제였다.
“그간 황제 폐하께선 탐관오리들에게 거의 유폐당하는 수준으로 손발이 묶여있었다고 하더만.”
“어쩐지.”
“아! 그래서 대일여래께서 폐하의 손을 들어주신 거구만?”
“그렇겠지. 이번에야말로 잘 다스려보라는 뜻일 거야.”
그간 황궁 내부의 일들이 하나씩 민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심적으로 약자에게 우호적인 성향이 있다.
황제가 약자라는 것이 어딘가 이상하게 들리지만,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이다 보니 어찌어찌 대치구조가 성립되긴 했다.
대일여래가 탐관오리를 벌했다는 점도 소문에 신빙성을 실어주었다.
오죽했으면 자비로운 부처가 신벌을 내리기 위해 직접 나섰겠냐는 것이다.
그런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황제에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정보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트리지 않은 다음에야 이렇게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전혀 의구심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솜씨는 전문가의 손이 닿았음이 분명했다.
소문의 출처도 문제였다.
아무리 황도라고 해도 황궁 내부의 일이 민간에까지 흘러나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황궁 내부의 관련자들과 연관되어있는 것이 당연했다.
즉, 이번 소문은 용린대와 무림 최고의 정보조직인 개방이 손을 잡은 결과였다.
사람들의 후한 인심에 기분이 좋아진 개방은 지난밤 일에 무종이 관련되어있었다는 정보를 얻자마자 용린대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황도의 분위기가 황제의 편으로 돌아선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 용린대원들은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무종, 무종 그러더니 그자가 정말 대단하긴 하네.”
“쉿!”
단편적인 정보를 얻고 있는 개방과 달리 대일여래의 진면목을 아는 용린대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자라니? 말이 심하군, 자네.”
“어?”
“아무리 생각해도 무공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쩌면 진짜로 대일여래의 화신일지도 몰라.”
“하긴…….”
지난밤 작전에 참여했던 용린대원들은 대일여래가 연청운임을 알고 있었지만, 일개 사람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신성한 모습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용린대원들조차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나 오늘부터 부처님 믿어야 할까 봐.”
“그러고 보니 근방에 절이 있지 않았어?”
“……으음. 나도 같이 가세.”
그러다 보니 뜻밖의 수혜자가 생겼다.
황도에서 갑자기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다.
***
“옘벼어어엉!”
“X이이이발!”
“아, 엿 같네 진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동물학대범이 챙긴다더니!”
“그 야비하게 웃는 누렁이가 지금 얼마나 더 야비하게 웃고 있을꼬?”
연청운의 활약상을 재미있게 즐기던 선계의 신선들은 갑자기 기분이 곱창 나는 것을 느꼈다.
누가 뭐래도 연청운을 키우는 데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선계였다.
오행, 태극, 혼돈.
사실상 연청운을 키운 힘의 주력은 역시 도가 계통이다.
그런데 그깟 누렁이질 한 번 했다고 사람들이 홀라당 넘어간다니!
“역시 금인가? 금이 최곤가?”
“우리도 신상 만들 때 금칠 좀 해야 하나?”
그나마 농담 삼아 시답잖은 불평을 하는 신선들은 나았다.
“저 새끼는 뱃속에 금덩이를 처넣었나.”
“아니, 양심을 금이랑 바꿔먹은 거지.”
“금덩이가 얼마나 쳐 나오는지 다시 한번 째봐야 하나?”
대다수는 당장이라도 간장과 막야를 가져올 태세다.
실시간으로 험악해지는 선계의 분위기 속에서 간질 환자라도 된 듯 움찔거리는 달마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응?”
달마는 갑자기 날아든 서쪽 높은 양반(?)의 전언에 당황했다.
“……갑자기 웬 성과금?”
정신이 없는 와중이라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중얼거림도 인식하지 못했다.
달마는 그와 함께 스며드는 막대한 인과를 느꼈다.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를 느꼈다.
“흐흐흐흐흐흐흐…….”
괴담에서 귀신이 튀어나왔을 때 흐를 법한 분위기.
공포가 밀려오는 그 공기.
사방이 고요해지는 가운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한 곳으로 돌리는 그 광경.
고개를 돌리는 신선들의 목에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것이 목에 기름칠이라도 해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무튼, 무섭다!
“……허.허.허.”
본인의 말실수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원래 자기 탓보단 남 탓을 하는 게 편한 법이다.
“……나무로 쳐죽일 타불?”
“늦었다, 간자 누렁이.”
달마의 주변으로 신선들이 몰려들어 포위망을 구축했다.
장삼풍이 가장 앞에 나섰다.
“어이구, 성과금 받으셨어요?”
“왜…… 존대… 인가?”
“원래 인과 많은 신선이 형님이래잖습니까. 그래, 제자 팔아서 얼마나 드셨나요?”
아니라고 항변해도 들어먹을 눈빛들이 아니다.
그중 가장 두려운 존재.
서왕모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노기를 내비쳤다.
“네가 여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후비는구나.”
“……억울합니다.”
“억울하기는.”
반론은 거절한다.
선계의 신선들이 일치단결한 의지를 드러냈다.
피할 길이 없음을 직감한 달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간장막야인가…….”
“그 정도로 그쳐서 벌이 되겠느냐. 여봐라, 당장 천상의 뇌공(雷公)들을 싹 다 불러오거라.”
뇌공. 벼락으로 악한 존재를 멸하는 뇌신이다.
“몸에 뇌정을 몇 개나 처박아야 불가(佛家)의 누렁이가 뒈지는지 봐야겠느니라.”
얼마 전 배가 갈려졌던 달마.
오늘은 마른 선계의 벼락 맞을 운세인 모양이다.
***
황도의 분위기와 달리 황궁의 상태는 장인태감 풍보현이 일으킨 역모의 여파가 크게 남아있었다.
좋지 않다는 표현조차 희망적일 정도다.
최악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동창의 수장인 장인태감이 일을 벌인 만큼 동창 전부가 역모에 가담했고, 궁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의 칼질에 그야말로 혈겁이 벌어졌다.
내가 중간에나마 나서지 않았다면 최악이라는 말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싹 다 죽었네?”
황궁의 상황을 점검하던 중 장인태감과 손발을 맞춰왔던 고위관리들 역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작당 모의를 하다 죽었는지 그들의 시신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육부의 상서들을 비롯한 요직에 있던 이들 대부분이 죽어 나갔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역모에 실패한 책임을 지는 걸 두려워해 자결한 것은 아니다.
따로 손을 쓴 자가 있었다.
멸천회주.
이들이 저지른 짓들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과율이 쌓였을 터다.
본래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찌끄레기라도 수거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안 좋은 거야?”
설아 누나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차피 쳐죽여야 할 쓰레기들이 죽은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하긴, 설아 누나가 볼 때는 그렇겠네.’
인과라는 변수에 대해 모른다면 설아 누나처럼 생각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살아있었어도 죄다 형장(刑場)의 이슬이 되었을 놈들이다.
“좋지는 않아요. 이들이 전부 죽어버린 이상 아무래도 국정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으음……. 그렇구나.”
설아 누나는 그냥 내가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무림인의 관점으로는 딱 그 정도가 맞다.
사실, 그렇게 생각해주는 쪽이 나도 편하다.
‘그래도 최악의 최악만은 면했네.’
멸천회주가 그린 그림은 황제가 폭주하여 모든 고위관리를 쳐내고 멋대로 국정운영을 주도하다가 거대한 과율을 일으키는 것이었을 터다.
하지만 장인태감의 역모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과율의 주체가 바뀌었다.
황제가 아니라 장인태감으로.
여전히 국정운영은 위기상황이고, 단번에 혼란이 수습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수거해갔다면 납득이 된다.
장인태감이 짊어져야 할 과율이 고위관리들에게도 제법 나눠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에게서 수거한 것만으로도 멸천회주는 꽤 큰 인과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 그렇게 따지면…… 내가 먹은 인과는 어느 정도인 거지?’
역모를 주도한 수괴는 장인태감이다.
물론 목은 황제가 땄지만, 그를 잡아다 바친 것은 나다.
게다가 황제가 목을 딸 때 잘 썰라고 도와주기까지 했다.
멸천회주가 그린 큰 그림을 쓱싹 가로챈 셈이다.
이번에 얼마나 많은 인과를 먹었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멸천회주도 그렇고, 천상의 사부님들도 그렇고 인과에 대한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은데, 아직 인간이라서 그런지 감이 오지 않는다.
멸천회주가 말하기 전까진 내가 품고 있는 인과가 그렇게 거대한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신선의 영역에 발을 걸친 힘을 쓸 때는 인과가 소모된다고 하니 아예 신경을 끄고 지낼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딱히 방도도 없다.
그렇게 확인 하나와 의문 하나를 품은 채 돌아간 자리에는 할아버지와 황제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 엉망인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나갈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황제는 한 시신의 앞에 어주(御酒)가 담긴 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슬쩍 다가가서 보니 문사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양팔이 잘렸고, 다리도 멀쩡하지 않았으며, 몸통에도 상흔이 가득했다.
죽는 순간까지 얼마나 처절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끼던 분이셨습니까?”
기억을 더듬는지 내 물음에 황제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한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고 황제의 입이 열렸다.
“유능한 사람은 아니었네. 하지만 마지막까지 충성스러웠지. 짐의 유일한 버팀목이었어.”
소문으로 들었던 황제의 처지와 지금 했던 말, 그리고 시신의 상흔을 조합하자 어떤 사람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지금은 죽은 사람이다.
황제는 다음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황제의 시선이 할아버지에게로 향했다.
“황사, 앞으론 황사가 짐의 버팀목이 되어주게.”
“예, 폐하.”
할아버지를 신임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란 듯이 드러냈다.
이는 할아버지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황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지만, 최적의 선택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의 인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시간이 약간 필요할 뿐, 황궁에 생긴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황제가 직접 권한을 내린 만큼 주도적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갈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약간의 시간도 불필요할지 모른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라면 이부상서를 직접 치기로 결정한 순간 이에 대한 대비를 해뒀을 것이기 때문이다.
“흠흠!”
그런 가운데 슬쩍 헛기침을 하는 관중연이 보인다.
지승태의 희생을 기리는 자리에 괜한 말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닌 걸 알지만 자기도 충신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
물론 그런 행위는 할아버지의 지긋한 시선에 퇴치당했다.
이 자리가 파한 다음 뒤에 가서 뒤통수 꽤나 맞을 것 같았다.
황궁에 기강이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바로잡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 보였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북방의 문제가 남았지.’
황궁의 일을 마무리 짓고 곧장 북방으로 복귀하실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황제가 명을 내린 이상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일단 북방 쪽 상황을 살펴볼까.”
청조의 도움을 받는다면 당장이라도 북방 전선에 당도할 수 있다.
일단 이를 고려해서 몸을 뺐다.
그리고 청조를 부르기 위해 신호를 보냈다.
“……응?”
그런데, 청조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