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1
40화 옛 신화의 한 자락(2)
이 힘은 짧게 써야 한다. 적어도 의식이 남아 있을 때 빠져나와야 한다.
절박함이 내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마성과 만났다.
죽여라.
‘알았다니까.’
마성과 함께 터져 나오는 천마무겁수의 힘.
주변의 모든 공간이 내 손안에 들어온다.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성이 일시에 해방되어 날뛴다.
힘을 가진 의지가 세상 속에서 형태를 갖췄다.
선두에 서서 기세 좋게 반월도를 휘두르던 자가 가장 먼저 그 여파를 정면으로 받았다.
우지직!
구겨졌다.
사람에게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카각……?”
하지만 실제로 구겨졌다.
타고 있는 말과 함께 볼품없는 종이마냥 구겨지는 자의 뒤로 비현실의 끝을 달리는 광경이 이어진다.
찢어진다.
으깨진다.
부서진다.
사람의 몸뚱이가 진흙 덩어리라도 되는 것인지 뭉개진다.
비명 한 줄기조차 허용하지 않는 공간 속에 사람의 인지를 벗어난 힘이 세상을 오시하며 날뛰었다.
“……후우우우웁!”
하지만 나는 내가 투사한 힘의 결과를 지켜볼 여력도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압박감이 온몸을 옥죄었다.
심장이 둘둘 말려 쥐어짜내진다.
아득하리만치 깊은 물 속에 들어온 감각.
산 채로 익사 당하는 것 같다.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 몸을 던진 느낌이다.
죽음이 어깨를 타고 올라오는 가운데,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청령한 소리 하나가 들렸다.
쩡!
손목에서 시작된 소리가 흐려지는 내 의식을 일깨웠다.
“쿨럭! 컥! 쿠엑!!”
오장육부를 통째로 찌부러트리는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전신을 때리는 충격이 몸 내부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한 사발이나 되는 각혈이 사방에 뿌려졌다.
“후우! 후우! ……후우!!”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 내가 펼쳤던 힘의 흔적들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피바다다. 내가 토한 각혈은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다.
그 사이로 반짝이는 조각들이 보인다.
“부서졌네.”
달마 사부가 사용했었다는 보패. 마지막까지 내 몸을 지키고 부서진 보패는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조각을 주어 들자 미약하게나마 청량한 기운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몸을 지켜주는 그런 힘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하아…….”
신승 공료가 건네준 것이지만, 나는 마치 천상에 계신 달마 사부가 준 선물처럼 느껴졌었다.
그것이 부서졌다.
백무호를 구하기 위해 처음 천마무겁수를 펼쳤을 때 실금이 가는 정도로 버텨내기에 이번에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이미 그때 한계 상태였던 것이다.
“제대로 실력을 쌓기 전까지 천마무겁수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
범상치 않은 보패의 힘을 빌렸어도 이 지경이다.
지난번엔 펼치는 도중 정신이 날아가 버려서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알았다.
현재 수준으로는 청명심법만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기량이 뒷받침되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다음에 저 영역으로 들어가면 진짜 죽는다.
“이걸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요즘 무공 좀 잘 배우고, 하는 일마다 잘된다고 무모했다. 이렇게 무모하게 깝치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 이런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는 거에 만족하자.
그나저나.
“이걸 뭐라고 구라를 쳐야 속여 넘길 수 있으려나.”
거리를 둔 곳에서 이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백무호의 시선이 느껴진다.
눈빛만으로도 뭐라고 하는 건지 알 것 같다.
감이 좋은 놈이라 어지간한 말에는 속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아, 그게 좋겠다.”
다행히 백무호가 납득할 만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달마 사부의 보패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
“그게 달마 대사님의 힘이 담겨 있던 신물이었다고?”
내가 놀랄 정도로 동그랗게 눈을 뜬 백무호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조각난 팔찌를 보며 소리쳤다.
그래, 달마 사부 이름 좀 팔자.
본업(?)이 바쁘다고 며칠씩이나 제자를 내팽개치는 분들인데, 이름 좀 팔면 어때.
쳇!
“너도 봤을 거 아냐. 내가 힘을 쓸 때 이 팔찌가 부서지는 거.”
“어! 그렇지. 그렇긴 했지만…… 그게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너무 신화적인 이야기였던 탓인지 백무호는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아니면 내가 그런 무공을 어떻게 펼쳤겠어.”
“어…… 음…… 그렇긴 한데.”
손짓 한 번으로 궁기병 오십을 타고 있는 말과 함께 뭉개 버렸다.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는 절정고수들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대단한 보물에 담겨 있던 일회성 힘이라는 것이 차라리 말이 된다.
“흠! 하긴 넌 중토신공이란 것도 얻었으니까. 그 팔찌 받고 나서 애지중지하던 걸 생각하면 그 팔찌가 뭔지도 아는 눈치였고.”
백무호도 일단 수긍은 하는 눈치였다.
달리 설명할 방법도 없고.
사실 내 입장에서도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천마 사부의 힘을 쓴 것이지만, 달마 사부의 보패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보패는 달마 사부님 것이 맞다.
“그럼 일단 뒷수습을 하자.”
“뒷수습?”
“시체들 말이야. 이제 곧 마을 사람들 점혈 풀어주려고 화산파 본산에서 사람이 올 건데, 이해하기 어려운 흔적이 있으면 캐물을 수도 있으니까. 함정으로 유인해서 화공으로 일거에 태워 버렸다고 하면 대충 말이 맞지 않겠어? 싹 다 태워 버리면 시체에 남은 흔적들도 못 알아볼 거고.”
묘한 부분에서 예리한 녀석이다.
확실히 화산파 입장에서는 어떻게 궁기병 오십을 잡았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냥 지나가듯 묻는 말이더라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괜히 꼬치꼬치 캐물어 올 수도 있는 일이다.
짜증 나는 일에 신경 곤두서 있는 사람에게 기분을 풀 수 있는 건수가 생기면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지는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정만족 그 사람은 양반이었네.
“불 지를 기름 좀 챙겨올게.”
백무호가 슬쩍 흥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돌렸다.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잠깐 내가 백무호를 탐색하듯 훑어봤다. 그러자 흥얼거리던 백무호가 나와 눈을 마주치곤 히죽거렸다.
“달마 대사님이란 말이지?”
“어, 응.”
“어쩐지. 왠지 그런 느낌이긴 했거든. 그 있잖아, 성성이가 데려갔었던 동굴에서 본 흔적. 그거 달마 대사님이 남긴 거 맞았던 거지? 이야! 벽에 새겨져 남아 있던 검흔의 기운과 네가 힘을 쓸 때 보인 기운이 뭔가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하…….”
왜 갑자기 이 녀석 기분이 좋은지 알겠다. 자기가 달마 사부의 무공을 익힌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이게 설마 그 전설의 달마삼검인가?”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아!
그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천마삼검이라고 불러야 할 거라고!!
그나저나 이거 알아보는 사람 있으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검흔에 남아 있던 기질만을 담아 자신만의 해석을 거쳤으니 원래의 것과는 동일하지 않겠지만, 백무호 이놈의 정신 나간 재능을 생각하면 원본과 극도로 유사해질 가능성도 있다.
“입 조심하자. 이거 어디 가서 알려지면 나 그대로 소림에 끌려가서 머리 깎아야 한다고. 그땐 나 절대 혼자 머리 안 깎는다? 알았지? 입 꽉 다물기야?”
“어? 어…… 그러네. 그래, 무덤까지 입 다물자.”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반야심경이나 외자.
그래, 다 잘될 거야.
후우우우우우! 하아아아아아아!!
***
정만족 그 양반이 상당히 고생했는지 화성촌에 화산파의 고수가 방문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랐다.
해가 슬슬 기울쯤에나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 시진은 빠르게 도착한 느낌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싶었더니, 화성촌에서 수상한 연기가 자꾸 피어올라서 확인하려고 내려오는 고수들과 만났단다.
맹점이었다.
정만족이 힘들게 달려갈 거 없이 그냥 주변에 불이나 잔뜩 피우면 되는 거였다. 화산파 인근에 순찰을 돌고 있는 사람이 정만족 한 명뿐일 리는 없을 테니까.
물론 그 연기를 보고 올 사람이 점혈을 풀어 줄 수 있을 정도의 고수냐는 운에 맡겨야 하니 정만족의 노력이 아예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많이 힘들었어요?”
“하여간 저 새끼랑 엮이는 일이나 인간이랑은 상종을 말아야 하는데.”
다독거릴 생각으로 물은 내 말에 정만족이 잔뜩 짜증을 담아 쏘아붙였다.
나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왠지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게 슬픈데.
“그나저나, 네 꼴을 보니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할 소리 같다만?”
“아, 이거요.”
거리낌 없이 백무호를 까던 정만족도 내 모습에 방금 자신이 한 말이 떨떠름한지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겉으로 보이는 내 상태가 많이 안 좋기는 했다.
화살들이 만든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 일부러 스쳐 맞다 보니 상처 면적이 넓었다.
그런 상태에서 천마무겁수의 압력이 가해지니 갈라진 상처가 펑펑 터져나갔다.
덕분에 아주 전신이 피칠갑인 상태다.
거기에 각혈도 제대로 했으니.
대충 소매로 쓱 문질러 닦긴 했는데 얼굴 피부가 좀 뻑뻑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제대로 안 닦였나 보다.
확실히 보기 안 좋은 모습이겠다.
“별거 아니에요. 보기만 그래요.”
“……그래, 잘 알았으니까 가서 쉬어라.”
상처가 다시 터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어깨를 다독인 정만족이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짠데.”
거짓말 아니다. 백무호 저놈이 대련 때 그렇게 털리고도 멀쩡한지 알 것 같다.
성성이가 주고 간 기운은 확실히 몸을 보호하는 힘이 있었다. 주변에 눈이 많아 정확하게 확인은 안 해 봤지만 이미 벌어졌던 상처가 꽤 아물어 있는 느낌이다.
거기에 중토신공의 힘이 성성이가 남긴 기운과 손을 맞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터라 몸 상태는 빠르게 호전 중이다.
오히려 정신적인 피로가 더 문제시될 것 같을 정도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과하게 걱정하는 것 같으니 좀 씻어야 하려나.
“아, 아파요?”
하지만 마음먹은 바를 실행하려는데 나를 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눈높이가 허리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가 울먹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동생 청우가 생각났다. 내가 표행에 합류하겠다고 할 때 딱 저런 눈빛이었는데.
나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대답해 주었다.
“아니, 하나도 안 아파.”
“정말요?”
“그럼, 이거 봐.”
별거 아니라는 걸 보여 줄 생각으로 오른팔을 살짝 들어 올렸는데, 옷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는지 찌익 찢어지며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흐잉…….”
당연한 소리지만 가까이에서 그것을 본 아이의 얼굴이 더욱 울상이 됐다. 글썽거리는 눈망울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저거 터지면 대형 사고다.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적어도 한 시진은 그치지 않는다.
청우가 딱 그랬었다.
“흐윽……!”
뭐라고 달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내 뇌리에 한 가지 말이 떠올랐다.
“괜찮아.”
이미 한 번 했던 말.
“이제 다 잘됐어.”
그때였다. 아이의 뒤로 적혈랑의 점혈법에서 해방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아이의 뒤로 한 어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뚝뚝, 눈물이 메마른 바닥을 적셨다.
“고맙……습니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 역시 고개를 숙였다.
울먹임에 말은 부정확했지만, 그 말에 담긴 마음은 가려짐 없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얼굴 가죽이 간지러웠다.
“허허.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싸운 겐가? 대단하구먼. 정파에 대단한 협객이 났어.”
마을 사람들을 돕고자 모여든 화산파 본산제자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도인이 얼굴 가득 웃음을 담으며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부님들이 계셨으면 뭔가 조언을 들을 수 있었을까?
[거하게 오지랖이라도 떨었던 거냐? 이게 뭔 시장통이야?] [선재, 선재라.]그때다. 더없이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린 것은.
사부님들이다!
[그런데 꼴이 왜 이래?]“하하…….”
사부님들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