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90
마탄의 사수 (1090)
이하는 지도를 펼쳐 놓고 반대쪽 루트에 X표시를 했다.
“낙오된 분 없으시죠? 있으면 손 좀 들어 주세요.”
“형, 화낼 기운도 없다.”
아흘로의 빛기둥이 여전히 하늘로 뿜어지고 있건만, 저곳까지 가질 못하다니.
로그아웃도 하지 못한 채 벌써 며칠이나 수백 개의 루트를 조사하고 있건만 그 어떤 루트에도 크툴루화化 된 몬스터가 없는 곳이 없었다.
“킥킥.”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잠시 침울한 순간, 작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얼레, 람화정 씨가 웃네.”
“요 3일간 제일 힘나는 일이네요.”
기정보다 더 놀란 신나라가 피식거렸다.
람화정은 아주 짧은 웃음을 뒤로하고 곧장 무표정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저들과 마주칠수록 저희의 상태도 악화되고 있으니…….”
“그니까요. 차라리 초반에 뚫고 갔어야 했나. 그냥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가면―”
“안 돼. 기정이 너야 탱커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 빛기둥까지의 거리는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야. 직선거리로 따져도 저리 먼데 중앙에서 포위라도 당하면 전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몰라.”
문제는 유저들의 정신적 타격도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 회복이야 되겠지만 그럼에도 답이 없는 건 변함이 없고, 무엇보다 외부와의 연결이 단절된 점이 조급함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빛기둥을 향한 공략 루트를 찾으려 했던 것이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다가 누구 하나라도 몬스터가 되어 버리면 끝장인데……. 단번에 무너질지도 몰라.’
그나마 업적으로 인한 정신 저항력 상승이 아니었다면 벌써 당했을 지도 모른다.
이하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크……. 저놈들을 모조리 먹어 치우면 되지 않는가.―
“그게 되면 이러고 있겠냐. 테이밍도 안 먹히고.”
용용을 죽이면서 얻은 테이밍 스킬은 물론, 각종 정령 속성 탄을 활용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은 공포의 정령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혼돈이나 무력의 정령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생명체이지만 동시에 생명체가 아니라는 뜻인가? 일종의 무기물이라고 봐야 하는 거야?’
오직 물리적 타격으로 죽일 수 있지만 오래 상대하기는 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도대체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가?
“어떤 방향제시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건 뭐 힌트도 없고, 퀘스트도 없고 엄청 답답하네요.”
“그러게요. 크툴루를 찾아 죽여라, 라던가. 그들이 더 이상 행동하지 못하게, 어떤 뭐, 신전! 신상! 이런 걸 부숴라! 그런 퀘스트라도 떴으면 그걸 공략법으로 쓸 텐데.”
신나라와 기정의 푸념을 들으며 이하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급하게 그린 지도 한 장으로는 정확한 루트를 찾기 힘들다. 크툴루들과 싸우지 않고 가는 길이 없다고 가정하고 그들과 싸워야만 한다면?
끝없는 싸우면서 가는 게 답일까?
하지만 적의 숫자를 생각할 때 그건 그야말로 불가능하다. 아무런 힌트도 없이 우직하게 몸으로 뚫고 가는 건, 현시점에서 둘 수 있는 최악의 수나 마찬가지다.
‘퀘스트라…….’
무슨 스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스킬 창을 뒤적거리던 이하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라? 이게 될 것도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야, 형.”
“어? 아니. 잠깐만.”
기정의 질문을 들으며 이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거 좀 묘하긴 한데…….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뭔데 그래요?”
신나라도 급히 관심을 보였다.
“아, 인던이요. 저한테 인던 생성 스킬이 있거든요.”
“인던?”
“권장 레벨……. 370짜리 인던.”
람화정조차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권장 레벨 삼백칠십!”
“아, 알렉산더 씨가 330쯤으로 추정되고 있지 않나요?”
베르나르가 높아진 톤으로 물어볼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하 또한 이 스킬을 얻었을 때 저런 반응이었으므로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형! 지금 그걸 ‘그러게 말이에요’로 퉁치려는 거야? 370짜리 인던이라니!”
“아아, 잠깐만 기정아.”
이하가 가만히 목청을 가다듬었다.
“사우어 랜드가 아직 오픈되지 않은 월드라고 말씀드렸던 거 다들 기억나시죠? 정확히 말하면 아직 열려선 안 되는 지역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그 다음이잖아요. 즉, 업데이트 전의 업데이트 다음 지역이라고 해야 하는데…….”
굳이 추가적인 설명조차 필요 없는 일이었다.
사우어 랜드도 아직 열려선 안 되건만 그 너머의 라퓨타, 그 너머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하물며 그 너머의 ‘고대 미들 어스’에 떨어진 자신들은?
이하는 다시 한 번 스킬 창을 살폈다.
신神과 마魔가 미들 어스에서 모습을 감춘 직후,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를까요? 당신은 태고의 에너지를 지닌 물체의 힘 덕분에 당시의 세계를 유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얻은 정보와 새로운 흔적들을 기반으로, 현재의 미들 어스를 분석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결코 지금의 세상처럼 평화롭고 안전할 거라 생각 마세요.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닙니다. 태고의 에너지에 감춰진 힘들은 당신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요. 모험의 준비가 되었나요?
효과: 인스턴스 던전 생성 (0/5회)
―생성자가 지정한 4인과 던전 입장 권한이 있는 유저에 한하여 출입
―총 출입 인원 한도 10명
―던전 생성 이후 15일 내 미션 실패 시 자동 폐쇄 및 추방
(로그아웃 시에도 인스턴스 던전에 위치됩니다.)
―권장 출입 레벨: 370
공룡이었다면 분명히 무슨 말이 있었을 것이다.
사우어 랜드라는 이름과 사우르스 족이라는 명칭까지 전부 드러난 마당에 굳이 ‘태고의 괴물’이니, ‘태고의 에너지’니 하는 단어를 쓴 이유가 대체 뭘까?
이하의 고민은 거기에 닿아 있었다.
‘우리가 지금 공략 못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이 인던 안에서 저런 놈들이 나온다면 어쨌든 체계적으로 공략해서 잡을 수 있긴 할 거야. 지금 이곳에는 목표와 구성도 없이 저런 게 엄청 흩어져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이미. 여기. 370. 이상.”
“저도 람화정 씨와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긴……. 불행 중 다행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저레벨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건데…….”
“신에게 다가갈수록 강력한 몬스터가 나올 확률이 높겠죠.”
변한 짐승형 몬스터들은 불행 중 다행히도 본래의 능력치와 레벨 수준이다.
그러나 현 위치에서 빛기둥까지의 거리가 아직도 까마득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가면 갈수록 강력한 몬스터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것 또한 당연하다.
“아마 우리가 죽일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가 있을지도 몰라요. 뭐, 도망치면 되겠지만, 우리보다 빠른 몬스터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감안해야겠죠.”
“하긴, 이 녀석들이 지금은 단순 공격만 하고 있지만, 감염이나 스킬을 가진 놈들이라도 나오면 막기 어려울 거야. 내가 그렇게 대단한 탱커도 아니고.”
“대단한 탱커 맞아. 기정이 네가 막을 수 없는 공격이면 지금 미들 어스의 누구도 막지 못한다고 봐야 해.”
거의 모든 속성 저항력에 더해, 물리적 공격이라면 상당한 수준으로 막아내는 탱커가 고전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크툴루에 감염된 몬스터들이 뿜어내는 묘한 공격 방식은 레벨 350 또는 레벨 400 이후에 생기는 특별한 저항 속성 중 하나일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많은 건 바라지 않는다. 정신 감염에 대한 저항만 있으면…….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면서, 최대한 싸우지 않고 빛기둥을 향해 달리면 돼.’
이하의 눈을 보며 유저들도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지금처럼 무모하게 빛기둥을 향해 달리는 방식이 먹힐 리는 없다.
탈출구가 될지, 함정이 될지 모르지만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면 그곳을 탐험하는 수밖에.
“으음……. 근데 이거 시간제한이 있거든.”
“얼마?”
“15일. 아마……. 여기서 로그아웃 한다고 갑자기 사우어 랜드에서 덜컥 나타나게 되진 않을 테니까. 우리 딱 미들 어스 시간으로 하루치만큼만 쉬고 올까요?”
약 네 시간여의 휴식을 갖자는 이하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로그인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피로도는 엄청나게 쌓인다. 거기에 지난 며칠간 쉬지도 못하고 괴상망측하게 생긴 괴수에게 쫓겼으니 지금의 피로도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 정확하게 타이머들 맞추시고. 잠시 후에 뵙죠.”
다섯 명은 동시에 로그아웃했다.
* * *
잠을 청하기 위해 씻고 나온 이하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자신의 휴대전화였다.
기정에게서 여러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별초 사람들이 이런 걸 참 잘한단 말이지.”
혜인은 사우어 랜드에서 모든 인원이 확정되자마자 그 사실을 기정에게 보내 놓은 상태였고, 기정은 자신이 확인하기 무섭게 이하에게 전달한 것이다.
‘일곱 명으로 카일을 상대할 수 있으려나.’
키드와 루거가 있다.
루거의 코발트블루 파이톤이 신화급으로 올라갔을 동안 키드도 놀고 있진 않았을 터, 분명히 크림슨 게코즈도 신화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결코 좋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남은 마탄은 4발. 그중 타인에게 사용 가능한 것은 3발.
그러나 이하는 카일이 마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했다. 고작 일곱을 상대로 마탄을 쏠 필요는 없다.
언젠가 내기에서 보았던 압도적인 능력!
카일은 이미 속사보다 빠르고 관통보다 강한 공격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도 그는 브로우리스의 죽음을 목격한 키드에게 맞서 엄청난 속사 능력을 보여 줬다고 했다.
그 결과조차 참담했다.
키드는 일곱 군데에 부상을 입었고 카일은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심지어 근거리에서.
눈이 멀어 분노에 찬 키드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사와 움직임을 보이는 게 현재의 카일이다.
자미엘에게 침식당할수록 그 능력이 겉으로 발현되는 게 강력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의 카일은 이미 그때보다 강하다. 우리가 신화급이 되었다고 해서 쉽게 볼 상대가 아냐. 아니 철저하게 전술을 세워도 당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게 가지는 딜레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전략이 미흡하다면 카일에게 역으로 당하게 된다.
그러나 능력이 뛰어나고 전략이 촘촘하여 카일을 궁지에 몰아넣는다면?
‘키드와 루거가 더 불리해지겠지.’
혜인이나 비예미, 루비니, 라파엘라, 프레아 등 쟁쟁한 유저들이 있다지만 결국 카일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 뿐일 것이다.
당연히 카일―자미엘 페어도 두 사람만을 노릴 게 뻔하다.
궁지에 몰린 카일은 어떤 선택을 할까?
‘마탄을…… 쏠 거야.’
마탄으로 키드나 루거를 죽이는 건 괜찮다. 차라리 그들은 그것을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탄은 사람에게만 사용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미 키드와 루거도 보았던 사실이 있지 않은가.
‘엘리자베스의 총기를 없앤 적이 있어.’
《마탄》을 만약 〈코발트블루 파이톤〉이나 〈크림슨 게코즈〉에 사용한다면?
정신없는 카일은 그 정도의 생각까지 못할 수 있다.
지금은?
자미엘에게 먹혀 버린 카일이라면?
‘하고도 남지. 이미 블랙 베스가― 아니, 정확히는 블랙 베스와 파이톤, 게코즈가 하나의 원형일 때부터 자신에게 지닌 분노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
자신을 노리는 이빨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