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362
마탄의 사수 외전 (11)
이곳에서 당신은 과거의 미들 어스를 관찰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당신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과거의 일에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시점은 NPC 고정 또는 자유 이동 모두 가능합니다.
단, 자유 이동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메모리얼 던젼은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으며, 특정 상황에 도달 시 종료됩니다.
중도 종료를 원하시면 언제든 ‘이탈’을 외쳐 주세요.
‘알쥐, 알쥐. 이미 봤거든요. 이 묘한 감각도 한 번 느껴 봤고.’
이하는 자신의 팔을 들어 보았다. 분명 움직임은 느껴졌으나 현재 이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 또한 마찬가지. 메모리얼 던젼에서는 ‘의식’과 ‘감각’은 느껴지지만, 자신의 신체는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였다.
‘자유 시점이 디폴트 값이군. 1장의 메모리얼 던젼부터는 주요 인물들로 빙의해서 볼 수 있다는 건가? 신과 마의 경우에는 빙의 자체가 불가능했었는데.’
이하는 메모리얼 던젼의 안내문을 다시 한 번 빠르게 훑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자신의 기억과는 완벽하게 다른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어? 수도잖아? 아엘스톡이네!?’
여기는 퓌비엘의 수도 아엘스톡이었다.
이하도 몇 번이나 와 봤던 수도의 왕궁과 왕궁에 입장하기 위한 내성문이었지만 주변의 세부 요소가 현재와 많이 달랐기에 이하가 낯설다고 느낀 것이다.
‘하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년 전……. 아니다, 20년 전도 아니구나?!’
〈제2차 인마대전〉 기준이 약 20년 전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입장한 기준 시점이 언제인가.
‘이번 메모리얼 던젼의 제목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지. 삼총사라는 개념이 결성되고 명성을 떨치기까지도 몇 년의 시간은 필요했다고 했으니…….’
지금은 20년보다도 더 이전이다.
이하가 보는 어쩐지 뿌연 느낌의 왕성과 그 주변은 〈제3차 인마대전〉은커녕 〈제2차 인마대전〉조차 치르지 않은, 일상적인 수도라는 의미였다.
‘캬……. 좋네. 아직 푸른 수염이나 뭐, 에얼쾨니히 이런 건 신경도 안 쓰고 있을 테고. 즐겁겠다.’
한 번 겪었던 메모리얼 던젼은 사실상 인간의 문화가 발생조차 하기 전의 일이었으므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진정한 메모리얼 던젼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장에서부터 이하는 생경한 감동을 받고 있었다.
이하는 할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 기분을 내며 이동했다.
〈플라이〉 스킬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유저라면 ‘공중을 부유하여 움직인다는 감각’에 그리 낯설어 하지 않으리라.
‘히야, 다르긴 다르네. 뭔가― 전체적인 도로의 구성은 비슷한 것 같은데 건물들도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이 달라!’
수도에서 다녔던 대장간을 비롯하여, 각종 의복 등을 수리할 때 찾았던 재단사나 식료품 조달을 위해 들렸던 점포까지.
이하는 과거를 둘러보는 유령이 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몇몇 NPC들에게 손을 뻗어 보거나 그들과 ‘겹쳐지는’ 행동까지 해 보였건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니, 말 그대로 이곳에서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음, 물론 이동 범위에 제한이 있다고 했었는데, 수도를 돌아다니는 것 정도는 상관없는― 오! 오오! 〈성스러운 그릴〉이 없어! 공터야!’
쥬의 〈성스러운 그릴〉이 없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옥들 또한 그 수가 현재와 다르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마담 루와 마담 쥬의 나이를 생각해 보자면……. 아직 쥬는 어리겠지? 마담 루도 기껏해야 40대 초반쯤 같았으니―.’
지금이 20년보다 더욱 이전이고, 루보다 어린 쥬라면 지금은 10대일 가능성도 높다. 두 사람이 떨어져 각자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흐흐, 그럼 루는 언제 ‘귀요미’를 만나게 되는 걸까. 지금쯤 어디서 요리 수업, 뭐 이런 거 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정보 길드를 수립하기 위한 은밀한 활동 같은……. 잠깐,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구나.’
현재의 미들 어스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NPC들이 당시에 무얼 하고 있을까, 라는 상상으로 음흉한 웃음을 짓던 이하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 자신은 과거의 아엘스톡을 둘러보러 온 게 아니다.
이곳은 메모리얼 던젼이고, 그 목적은 명확하지 않은가.
‘어디― 어디로 가야 되지?’
삼총사는 어디 있을까. 과거의 삼총사들이 처음 만나는 곳은?
이하는 서둘러 날았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브라운 베스 머스킷 아카데미〉가 될 수밖에 없었으나, 그곳에 아카데미 따위는 없었다.
‘……뭐야, 이 판잣집은? 여기 맞는데?’
건물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가설 건축물이 겨우겨우 지붕과 기둥을 이루며 버티고 있을 뿐.
이하는 새삼 초짜 머스킷티어 시절이 떠올랐다.
타 직업군에 비하면 턱없이 허름했던 아카데미 건물에 얼마나 민망했던가.
‘그나마도 나아진 거였구나.’
허탈한 웃음도 잠시, 이곳도 아니라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자칫 메모리얼 던젼에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루거, 키드가 [서장]을 클리어하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와중에 한 발자국을 앞서긴커녕 따라 잡힐 위험이 더 크다는 의미가 아닌가.
‘근데 여기도 아니면 도대체 어디―. 아!? 처음 있었던…… 처음으로 등장했던 장소.’
이하는 새삼 왕성이 떠올랐다. 수도의 한가운데이긴 하지만 어째서 왕성으로 들어가는 내성문 인근에서 자신이 스폰되었던 것일까.
‘거기서 뭔가가 일어나는 거야!’
이하는 다시금 날아올랐다. 퓌비엘의 수도는 결코 좁지 않다.
벌써 특정 이벤트가 다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에, 서두르는 이하의 눈에 무언가가 보인 것은 그때였다.
‘어라?’
무언가가 잔뜩 든 가방을 짊어지고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남성 때문에 주변의 NPC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길을 열어 주고 있는 모습.
“비켜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인데다, 챙이 넓은 모자를 써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이하가 그를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머스킷?’
그는 가방 옆에 머스킷을 매고 달리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이런 날 늦다니, 하필 이런 날!”
이하에게는 다소 앳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더욱 호기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머스킷을 든 NPC라?
이하는 그의 곁으로 내려가 그를 관찰했다.
숨을 몰아쉬고 땀을 뻘뻘 흘리는데다, 달리기로 인해 얼굴이 상기되긴 했으나 앳된 목소리에 어울리는 동안의 얼굴이었다.
‘아니, 심지어 잘생긴 편이야. 10대 후반……은 아니겠지. 그럼 20대 초반쯤이나 됐으려나.’
짙은 눈썹에 또렷한 이목구비. 거기다 잡티도 거의 보이지 않는 뽀얀 피부까지.
‘이런 놈이 무슨 머스킷티어를 한다고…… 김 반장님한테 걸려서 아주 그냥 3박 4일 굴러봐야 정신 차리는데.’
누운 자세로 그의 옆을 날아가며 관찰하던 이하는 괜스레 심통이 날 정도였다.
연예인이라고 봐도 될 사람이 무슨 머스킷티어를 하는가. 그러나 어쨌든 이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가 머스킷티어로 추정된다면 이번 메모리얼 던젼에서 그를 쫓아가는 것으로 올바른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아, 하아, 떨어지면 안 돼.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후우, 떨어지면 영원히 고향에 틀어박혀 있어야 해. 그것만큼은 할 수 없지.”
그는 소매로 땀을 빠르게 훔치며 말했다. 이하는 자신에게 말하는 줄 알고 잠시 움찔했으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NPC의 생각을…… 어느 정도 외부로 표출은 해 줘야겠지. 유저들이 생각까지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메모리얼 던젼]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닐까.그가 이동하는 방향이 왕성 방면이라는 것까지 파악한 이후부터, 이하는 완전히 마음을 놓은 채 그를 관찰했다.
‘으음, 이 얼굴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갓 스무 살쯤 된 잘생긴 얼굴…… 연예인을 모델링한 건가?’
어쩐지 낯익은 것 같은 얼굴에, ‘현시점의 미들 어스’ 세상의 그를 떠올려 보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머스킷티어 직업군에서 잘생긴 사람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가.
그저 외국 배우의 모델링 때문에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그칠 때쯤 이하에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라미스 소장!’
새롭게 머스킷 아카데미의 소장직을 역임하게 된 NPC!
다소 느끼하게 생긴 감은 있지만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다.
이하 자신은 머스킷 아카데미에 들를 일이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교류가 깊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명실공히 퓌비엘 왕국이 인정한 머스킷티어로서 아카데미의 새로운 소장이 된 자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약~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젊을 땐 이렇게 생겼구나. 근데 오늘 뭐 중요한 날인 것 같은데 이렇게 얼빵하게, 무슨 지각을 하는 거야?’
이하는 괜스레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잘해 준 면도 많았으나 그것과 지금은 별개! 과거에서 즐길 수 있는 건 즐겨야 하지 않을까.
‘흐흐, 오늘이 며칠인지도 알 수 있으려나. 돌아가면 얘기나 해 줘야겠다. 소장님, 그때 뭐 지각하셨죠? 하면 엄청 놀랄 것 같은데. 아! 그렇게 되면 날 스토커로 취급할지도 모르겠는데? NPC의 인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라미스에 관한 생각을 하며 낄낄거리던 이하는 불현듯 새로운 의문을 떠올렸다.
메모리얼 던젼은 이제 막 오픈한 것이니만큼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많았으므로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뭐, 왕실 기록원 어디선가 보고 왔겠거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마 그 정도로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메모리얼 던젼에도 범위 제한을 둔 걸 테니까.’
미들 어스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일부러 이벤트가 벌어지는 장소만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둘러보게끔 만들어 놨다면 그것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해 놨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이하가 철두철미한 구플에 대해 생각할 즈음, 청년이 소리쳤다. 이하는 화들짝 놀라 청년과 그 주변을 보았다.
어느새 왕성 내성문 인근까지 다가온 청년이 내성문을 향해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역시 왕성이었군. 오늘 뭐 하는 날인가?’
이하는 왕성 쪽을 바라보았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갑주를 입은 자들이 탐탁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멈춰 섰다.
“뭡니까.”
“하아, 하아, 아직! 아직 안 늦었죠? 저도― 후우, 지원자입니다!”
“흐음, 시간은 정시…… 원래대로라면 접수 마감 시간이 있어서 안 되는 건데…….”
“죄송합니다! 제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가 없어서! 그, 그리고 수도 숙박비가 워낙 비싸 옆 도시에서 꼭두새벽에 겨우 출발한 거거든요. 시간이 맞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청년은 거의 울먹거리는 태도로 읍소했다.
이하는 머스킷티어의 마음으로 갑주를 입은 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받아 주라고! 이 사람이 나중에 퓌비엘 머스킷 아카데미의 차세대 소장이 되는 사람인데!’
이하의 바람이 통했을 리는 없지만 적어도 [메모리얼 던젼]의 스토리가 변하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이어 그들에게서 나온 발언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까지, 금번 기사단 〈총사대〉 결성 지원자로 받아들이도록 하죠.”
〈총사대〉라는 단어에 이하의 눈이 휙, 돌아갔다.
‘총사대를 뽑는다고? 어라? 엥? 총사대는―.’
찰스와 김 반장이 있는 바로 그 기사단이 아닌가.
국왕 직속의 기사단으로 〈세이크리드 기사단〉만큼 특수한 지위를 지니고 있는 단체일 텐데?
그게 어째서 지금…….
그 순간, 이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라미스?
지금 이 시점에 아라미스?
아라미스는 아무리 많이 쳐 줘도 30대 중반 전후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하 자신보다 몇 살 정도 많은 NPC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상하다. 그때와 지금이 몇 년 차인데.
‘〈제2차 인마대전〉이 일어나기도 전. 그러니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21~22년 전의 과거이고…….’
아라미스라면 지금 겨우 10대 초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25년 전이나 26년 전이라고 본다면 아라미스는 아직 10대도 안 됐을 수 있다!
즉, 눈앞에 보이는 인물은 아라미스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는?
“성함이?”
갑주를 입은 자가 물었다.
20대의 풋풋함과 함께, 싱그러운 미소를 지닌 잘생긴 청년이 우렁차게 답했다.
“리스! 리스 할리데이입니다!”
과거의 브로우리스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