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279
마탄의 사수 (279)
“역시 잘 아는군. 그 녀석들이 있었다. 포 핸드 오우거는 즐비하게 깔린 수준이더군.”
“있었다? 있었다고 했나? 그럼 그, 그 녀석들과 겨뤘다고? 혼자서 말인가?”
루거의 말에 에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NPC는 당연하고 주변의 유저들조차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말이 되나? 포 핸드 오우거만 해도 1개 파티는 있어야 할 텐데.”
“싸이클롭스는 어떻고. 아무리 강하더라도…… 필드 보스급이 일반몹으로 나오는 지역을 어떻게 혼자서 통과하지?”
“트롤마는 대체 뭐야? 윙드-오우거면 날개가 달렸다는 건가? 개끔찍해!”
유저들의 웅성임이 더 커지기 전에 루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33층까지 도달하고 보니 한쪽 벽면이 모조리 새카맣게 되어 있었다. 단순히 밤의 어둠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색, 미들 어스의 그래픽이 깨진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만 구멍. 횃불은 그곳을 비칠 수도 없을 정도였지. 그리고 그곳에서…… 그곳에서 레를 보았다. 너머를 볼 수 없는 새카만 구멍 앞에 놓인 붉은 수정, 그 속에 잠들어 있는 푸른 수염의 모습을. 나는 곧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클리어 하기 위해 쏘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루거의 주먹이 콱, 쥐어졌다. NPC들과 달리 유저들은 이해했다.
퀘스트가 떴다라는 의미겠지. 내용은 아마도 레를 죽이는 것이었으리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모자다.”
“그, 그래서? 레에게 상처를 입혔나?”
에윈의 재빠른 물음에 루거가 고개를 저었다.
* * *
“〈판처 파우스트〉, 〈판처 슈렉〉“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새빨간 수정을 향해 루거의 탄이 쏘아져 나갔다.
코발트블루 파이톤 뒤로 뿜어져 나오는 후폭풍도 엄청났지만 수정에 탄환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먼지는 그보다 더 대단했다.
그러나 그 모든 먼지들은 그래픽이 깨져 보이는, 새카만 암흑 속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루거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위협할 만한 몬스터는 모조리 죽었다. 어디서 자꾸 태어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내려오며 살핀 주기로 볼 때 당분간은 리젠 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후우우……. 실전 사용을 마왕의 조각에게 하게 되다니, 영광이군.”
그리곤 코발트블루 파이톤을 쥐었다.
이미 머스킷 형태에서 〈무기 변형〉 스킬을 사용한 상태였다. 〈블랙 베스: SASR〉이 쏘아 대는 탄만 해도 일반 쇠구슬에 비하면 엄청나거늘, 그보다 큰 탄을 쓰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화포 강화: 평사포平射砲〉“
화아아악―!
코발트블루 파이톤에서 짙은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까보다 굵기도, 길이도 조금씩 커져 있는 자신의 무기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후, 루거는 붉은 수정을 향해 겨눴다.
“메인 퀘스트는 내 거야, 뒤져라, 마왕의 조각.”
그리곤 얼마 전 얻은 자신의 최강 스킬을 시전 했다.
“〈야크트판처Jagdpanzer 카노네Kanone〉“
──────────!
밀폐된 지하였기 때문일까, 폭음의 반향 때문에 루거 자신의 귀도 먹먹해질 정도의 음량이었다. 찌이잉― 하며 울리던 소리까지 연기와 함께 새카만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젠장, 이런 곳에서 쓸 만한 건 아니었군. 개방된 공간이 아니라면 제한이― 음?”
루거는 만족과 불만을 동시에 가졌다.
깨진 수정을 바라보며 마왕의 조각을 잡으라는 퀘스트가 클리어 됐을 거라는 충족감이 있었지만, 새로 얻은 스킬이 너무 시끄럽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상반된 감정의 사이에서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조금 이르긴 하지만……. 고맙네, 청년. 다음에 만나면 한 번 정도 사랑해 주도록 하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루거의 뒤에서 목소리가 나고 있었다.
위엄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묘하게 끈적거리는 말투였다. 분명히 중년 이상의 남성 목소리였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색기가 있어 다소 역겹게 느껴졌다.
그러나 루거는 그 말투에도 크게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툭, 자신의 머리에 얹히는 아주 약간의 무게감이 아니었다면 환청으로 취급해 버릴 정도였다.
“푸른 수―”
휘익!
즉각 코발트블루 파이톤을 회전시켜 겨누려 했으나 이미 루거의 등 뒤엔 아무도 없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괴물들의 포효만이 끔찍한 사태를 암시하고 있었다.
루거는 잠시 동안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았다.
괴물들의 기뻐하는 포효와 함께 들려오는 하이 톤의 웃음소리. 방금 자신의 곁을 지나간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게 한 말은 무엇인가.
“고맙다…… 고……?”
굳이 깨어져 버린 붉은 수정을 두 번, 세 번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루거의 눈앞을 가리는 알림창만으로 ‘푸른 수염, 레 백작’이 깨어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깨운 건가……? 게다가 이 업적은…….”
새로운 업적이 뜨고 기존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되었다.
변경된 퀘스트의 내용은 즉각 에즈웬으로 향해 교황을 만나라는 것. 복잡한 표정을 띤 루거의 얼굴 위에 푸른 수염의 모자가 얹혀 있었다.
* * *
“푸른 수염은 수정 속에서 걸어 나와 나에게 모자를 씌어 주곤 사라졌다. 그게 전부다.”
[봉인은? 너는 레가 스스로 봉인했다고 말했다. 그 봉인을 레 스스로 풀고 나온 건가.]“그렇겠지.”
루거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마치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듯.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레에게 상처는 입히지 못했고, 레는 너에게 모자를 주고 유유히 떠났다는 말인가.]“그렇다.”
[어째서 레는 너를 공격하지 않았지?]“나도 모른다. 나는 즉시 에즈웬으로 달려갔고, 교황 가이오 4세께서 이 모자를 확인 후 지금의 일이 일어난 거다.”
베일리푸스의 기습적인 물음에도 루거는 청산유수였다. 드래곤과 루거의 대화를 듣던 총사령관들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마왕의 조각의 출현을 직접 목격한 자가 있다. 그 목격을 교황이 보증하며 강화조약의 중재에 나섰다. 남은 일은 간단하다.
“어떻게 할 셈인가, 떠받치는 자.”
“본국 국왕에 대한 암살 책임은 반드시 따져 묻겠지만……. 적어도 그때가 지금은 아니라는 건 나도 알 수 있다, 초원의 여우.”
“언제든 따져 묻게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침공 사유 정도야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뿐일 테니.”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다. 미니스가 기록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게.”
그랜빌의 마지막 말에 에윈이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그랜빌이 조금 더 빨랐다.
“현 시간부로 퓌비엘-미니스는 강화조약 체결 시까지 휴전에 들어간다. 양군은 전역을 불문하고 상호간 국가적 전투 행위를 금하며, 국경 및 영토에 대해서는 강화조약 체결 전 추후 논의하는 것으로 한다. 미니스의 총사령관은 이에 동의하는가.”
“아니, 아니, 대국적 포위망을 갖춘 우리가 너희 퓌비엘 군을 ‘살려 주는 것’인데 어째서 국경 및 영토에 관해 언급을 하는가. 오히려 우리 미니스의 입장에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침공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인데?”
방금 당했던 것을 에윈은 확실하게 갚아 주었다.
초원의 여우는 그랜빌이 은근슬쩍 껴 놓은 조항에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일방적이지 않은 휴전은 막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이하는 두 NPC들의 불꽃 튀는 신경전을 보며 가슴 졸였다.
크라벤의 경우는 쉬웠다. 방어군 승자인 퓌비엘이 침략군 크라벤을 내쫓았으니 국경-영토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선박손실에 대한 것만 이야기해서 받아 내면 된다. 말 안 들으면? 승자인 퓌비엘이 크라벤의 바다로 건너가서 혼내 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누가 이겼는지 확언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만약 이하가 알렉산더를 맞췄다면?
알렉산더가 그 탄을 피했다면? 또는 브레스가 뿜어졌다면?
이지원은 공격할 수 있었는가? 미니스의 다른 정예군은 보고만 있었을 것인가?
벌써 퓌비엘 군 후방 지근거리에 위치한 미니스의 파우스트&크로울리 콤비는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그 벽이 있으므로 미니스 군의 승리라 할 수 있을까? 디케 해변에서 행군의 평원으로 열심히 이동 중일 버크 해전사령관과 그 군사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미치겠네. 그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이하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그 순간 루거가 없었더라면 맞출 수 있었을까. 혜인의 정지 마법 효과 덕을 볼 수 있었을까.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따지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즉흥적인 자리에서는 말이다. 그랜빌이 할 수 있는 말은 몇 개 없었다.
“……양국 간 갈등에 대한 모든 것은 추후 강화조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주요 증인을 포함하여 결정하는 것으로 한다. 그러면 되겠나, 에윈.”
“그래야 합당한 것이지. 미니스의 총사령관은 퓌비엘의 총사령관에 제의에 동의하며, 양 당사자 간의 명예와 국가의 위신을 걸고 약속한다.”
뒤로 미루자는 것. 당장 손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 그랜빌과 에윈이 손을 맞잡자 모든 유저의 머릿속에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미니스 왕국과 퓌비엘 왕국의 일시적 휴전이 성립되었습니다.]휴전 기간: 강화조약 체결 시까지
협정 체결자
: 퓌비엘 측―총사령관 떠받치는 자, 그랜빌
미니스 측―총사령관 초원의 여우, 에윈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 * *
[국가전 발발]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전쟁기여도 4,611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참전 유저의 징집이 해제되었습니다.
전쟁 상대국 유저와의 관계가 평시로 회복됩니다.
이후 무차별 공격은 PK로 취급되며 모든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습득 기여도에 따른 보상은 추후 공고될 예정입니다.
누적 습득 기여도: 35,857
각국별 기여도 최상위권 유저에 대한 논공행상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끝났다아아아!
“워어어어―! 대애바악! 내 기여도!”
“씨벌! 기여도 먹어도 -80이잖아! 며칠만 전쟁 더 하지!”
“어후우우, 마이너스 겨우 다 깠네. 개아슬아슬했다. 너 몇 먹었냐?”
“나 마지막에 97 먹음. 잭팟! 최종 기여도 283에서 마무리했다.”
“와, 님 기여도 엄청 높으시네요. 저 192인데.”
“흐흐, 행군의 평원에서부터 딱 한 번 죽고 계속 버텼는데요! 이 정도 못 먹으면 말도 안 되죠.”
퓌비엘, 미니스를 가릴 것 없이 유저들은 들떴다.
방금 전까지 마왕의 조각과 관련된 끔찍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유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보다는 당장 눈앞의 잿밥에 집중했다.
‘마지막 그 전투까지는 보상해 주는구나. 그래도 양심은 있네.’
이하는 눈앞에 주르륵 뜨는 홀로그램 창을 여유롭게 읽었다. 공성전의 키스톤 파괴를 진행했던 퀘스트 당시 얻었던 기여도가 3,000포인트 전후였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 한 번에 4,000이 넘는 포인트를 얻었다. 이하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알렉산더와 골드 드래곤의 진격을 막은 것. 그들을 끌어들이고, 데미지를 입힌 게 퓌비엘의 입장에서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해석이겠지? 이거, 참. 좋아하기도 민망하네.’
협동 작전이었지만 최종적으로 베일리푸스에게 치명타를 입힌 건 이하였다.
덕분에 엄청난 기여도를 얻었다는 의미인데, 데미지를 입힌 정도로 4,000포인트의 기여도를 부여하게 만드는 존재인 알렉산더와 베일리푸스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다는 얘긴가.
넋 놓고 좋아하기엔 당연히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난 건가.]“완전한 끝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는 일은 없을 것이오, 드래곤이여.”
베일리푸스의 말에 그랜빌이 답했다.
강화조약이 체결되어야 진정한 종전이다. 휴전은 말 그대로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교황이 관여한 이번 사건은 휴전만으로도 종전에 준한다고 봐야 했다.
[음…….]“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골드 드래곤의 태도를 보며 키드가 조용히 읊조렸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무언가를 말하려 했던 알렉산더다. 당연히 그 알렉산더의 말은 베일리푸스에게서 들은 것일 터. 골드 드래곤은 주변의 떠들썩한 유저들과 평온한 유저들을 순식간에 선별해 내었다.
―조용히 듣거라, 인간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살려 두었던 이유를 말해 주마.
“혀, 형?”
“쉿. 기정이 너도 들리나 보네.”
단순히 레벨이 기준일까. 아니면 태도의 문제일까. 어쩌면 스탯의 총합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선별된 인원에게만 들리는 골드 드래곤의 전언을 이하와 기정은 조용히 들었다.
―내가 나의 교우와 함께 너희들의 쓸모없는 전쟁에 나선 것은 얼마 전 레어에서 사라진 드래곤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는 컬러 드래곤, 그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레드 드래곤의 일족이다. 그리고 나의 오랜 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