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33
마탄의 사수 (33)
때때로 답은 단순한 곳에서 나온다.
“그냥 수도에 가서 생각해도 되는 거잖아?”
어차피 가야 하는 건데, 미리부터 고민해서 뭘 할까?
현금으로 팔 때 팔더라도, 수도에서 파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유동인구라면 초보자 마을인 캔들 캐슬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테니.
미들 어스에 접속한 이하는 잡화점으로 발을 돌렸다.
“사장님.”
“하, 하이하 님, 아니, 하이하 씨 오셨습니까. 헤헤, 오늘은 어떻게 수확이 좀 있으신지……?”
“요즘 부왁 허브가 잘 안 나오데요. 일단 구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으음, 그렇지.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뻔뻔한 연기. 부왁 허브는커녕, 남쪽 숲 근처도 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블랙 앵거를 나오게 만드는 향낭을 마담 루에게 반납해 버렸으니 앞으로 영원히 구할 수 없으리라.
반 대머리인 잡화점 주인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데, 마담 루에게는 어째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 도매업자는요?”
“이제 막 해 떴는데 벌써 오겠― 중이겠지요. 오는 중이겠죠. 헤헤, 조금만 기다려 보십쇼. 어떻게, 커피라도 한잔?”
“주시면 좋죠.”
부왁 허브를 미끼로 달아 놓지 않았다면 또 비꼬았을 것이다.
‘정말 이 아저씨는, 현실에서도 꼭 있을 법한 캐릭터란 말이야.’
킥킥 웃고는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카운터 안쪽에서 풍기는 커피 내음을 맡으며, 이하는 잡화점 내부를 돌아보았다.
“혹시 지도도 취급하나요?”
“그러믄요.”
“가격은 얼마나 해요?”
“캔들 캐슬 근방 지도는 80실버. 퓌비엘 왕국 전체 지도는 5골드.”
“…….”
이하는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얼마라고? 제대로 말한 거 맞냐고 되묻고 싶지도 않았다. 뭔 지도가…….
“지도에 5골드의 가치가 있어요?”
“원래 지도는 고급품입니다. 당연히 비싸지요. 우리 가게에도 각 두 개씩밖에 안 들여놨다고요. 서민들은 살 수…… 크흠!”
“서민들은 살 수도 없는 거라고 말하려고 했죠?”
“누가 그렇답니까? 헤헤, 커피나 드시죠.”
이러니 인터넷에 뜬 지역 정보를 프린트해서 이어 붙이고, 그걸 달달 외워서 플레이 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미들 어스 내에서 지도를 보는 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현 위치가 표시되므로 미개척 지역을 갈 때는 지도가 필수겠지만, 아직 저레벨인 이하 입장에서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과거에 무역과 항해를 하는 게임도 오프라인에서 지도를 외워 가며 플레이 했다는데, 여기도 비슷한 건가?’
이하는 잡화점주가 가져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현실의 밤, 미들 어스의 아침. 묘하게 어긋난 시간대에서 생활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진 이하.
그의 머릿속에 문득 기정이 떠올랐다.
―있냐.
―엉아! 아직 안 자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개골의 울림. 이하는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뭐하십니까, 마스터케이
―큭큭, 렙업 중이지. 길드원들이랑 파티 사냥 중.
―좋겠다. 아참, 나 레벨 12야. 이제 곧 수도로 갈 건데. 거기서는 너 얼굴 좀 볼 수 있냐?
―헐. 형 벌써 12레벨이라고? 어떻게? 검독수리는?
―이미 깬 지 오래다.
―대박……. 엄청 빠르네. 검독수리 잡는 팁 좀 주려고 했더니만.
―내 팁을 들으면 네가 더 놀랄걸?
화약 냄새로 서번트 울프를 쫓아내고, 검독수리를 일격에 죽인 것.
기정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은근히 게임에 대해 잘 아는 비예미가 함께해서 기정의 팁 없이 순식간에 진행했으니까.
―어쨌든 축하해! 수도 오면 모시겠습니다, 엉님.
―그래, 고맙다.
―아참! 형, 캔들 캐슬이지? 혹시 람화정 봤어? 지난번에 캔들 캐슬에 떴었다며?
기정의 흥분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이하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았다. 보다니? 본 정도가 아니지.
람화정도 보고, 람화연도 보고. 캔들 캐슬의 히든 보스인 블랙 앵거를 한 방에 잡았다. 두 여자가 그걸 보고 친구 추가까지 하자고 했고.
―그으럼. 람화정이랑 람화연이랑 같이 있는 거 봤지.
―아, 아쉽다. 나한테 연락 좀 주지 그랬어.
기정은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너도 람화정, 람화연 팬클럽이냐? 사실 내가―
―그 썅년들 죽여야 되는데. 람화연까지 같이 있었으면 오히려 사냥이 쉬웠을 텐데…… 아까비…….
―어? 어?
그의 목소리가 분노로 얼룩졌다. 기정이 이렇게까지 욕을 하는 성격이 아님을 알기에 이하는 꽤나 당황했다.
―사실 뭐? 형도 당했어? 아, 그 썅년들 정말.
―아, 아니. 해코지는 무슨. 근데 너는 왜?
―우리 길드에서 람화정 실시간 위치 제보 현상금도 걸었었단 말이야. 캔들 캐슬에 있는 줄 알았으면 바로 가서 조졌지.
―그 꼬마…… 숙녀를? 조져?
―꼬마 숙녀? 하긴, 그냥 마을에 있는 모습만 봤으니 그렇겠구나. 그거 완전 미친년이야.
푸른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꼬마 숙녀. 직업명도 동화 같고 귀여운 눈꽃술사.
말수는 다소 적지만, 낯가림이 심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정도가 이하의 기억에 남아 있는 람화정의 이미지.
그러나 기정의 분노는 진심이었다. 이하의 두개골에 기정의 욕이 찰지게 달라붙고 있었다.
―무, 무슨 일 있었어?
―사연은 좀 복잡한데, 하여튼 전쟁 중이야. 형은 그년 마법 쓰는 거 못 봤지? 얼마나 잔인한데……. 나도 당했었어.
―너도?
―길드원들이랑 매복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몸이 얼더라고. 눈은 뻔히 보이는데 몸만 안 움직여지는 거야. 그 상황에, 썅년이 웃으면서 다가와 내 모가지만 부러뜨리더라. 목이 잘리면 어떤 기분인 줄 알아?
―헐…….
―사망판정 되기 직전까지 땅에 떨어진 내 머리로, 쓰러지는 내 몸을 보고 있는 기분이 아주 그냥 판타지야. 사망 페널티는 48시간인데 한 5일 동안 접속도 못했어. 아이템도 떨구고, 레벨도 떨구고. 개 같은 년. 만나기만 해 봐라.
기정은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미들 어스의 PK는 ‘현피’로 이어지기도 한다던데, 진짜 그러고도 남겠다.
당황한 것은 이하다. 두개골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분노. 귓속말이 이렇게 감정까지 담아낼 수 있는 거였던가.
―미안, 형. 형이랑 귓말 하는데 싸가지 없이 욕했네. 죄송함다.
―아냐, 아냐. 얼마나 화났는지 알겠다. 그래서 지금 너네 길드랑 람화정 길드랑 전쟁 중이라는 거지?
―우리뿐만이 아냐. 람화연도 봤다고 했지? 그년이 갑자기 돈 쏟아부으면서 엄청나게 세력을 확장 중이거든. 무슨 대기업 딸이라며.
―응, 그렇다더라.
―그럼 당연히 부딪칠 수밖에 없지. 적당히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데, 대기업 딸이라 그런가. ‘적당히’가 없어. 골목 상권 흡수하는 대기업마냥 쭉쭉 뻗어 나오는데……. 우리 길드랑 몇몇 곳이 연합해도 겨우 상대하고 있다니까. 기세가 엄청나. 조만간 미들 어스 길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몰라.
그렇게 엄청난 사람들이었구나.
확실히 이하도 인터넷 상에서 람화정, 람화연을 욕하는 댓글들을 보기는 했었다.
그저 시기와 질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한국인 길드들과 전쟁을 하는 상태였다면 람 자매가 마녀처럼 보일 수밖에.
‘그러면 나는? 기정이네 길드로 들어가면 람 자매랑 싸워야 하는 거고. 람 자매네 길드에 들어가면 기정이랑 싸워야 하는 거야?’
어디라도 들어가서 도움을 받을까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일단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건가.’
람 자매가 기정이와 싸우는 것은 싸우는 것이고. 이하는 람 자매와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실질적 길드마스터인 불꽃술사 람화연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은데다가, 친구 추가까지 직접 해 주지 않았던가.
‘그런 랭커들이 친구 추가를 아무한테나 하지는 않으니까.’
친구 창에서는 추가된 사람들의 현재 접속 상태와 대략적인 위치가 보인다.
즉, 이하는 지금 당장 기정에게 람화정, 람화연의 위치를 말할 수도 있다.
“아, 머리 터지겠네, 진짜.”
“왜,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께 하는 말 아녜요. 하하. 커피 맛있네. 근데 그 도매업자는 언제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가볍게 울었다.
“사장님, 물건 들어왔습니다!”
이마에 끈을 동여맨 덩치 좋은 남성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보브 씨! 일찍 왔구먼!”
“오늘 누구 소개시켜 주신다면서요? 늦을 순 없죠. 하핫.”
그가 중개상임을 이하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아, 이분이?”
보브라고 불린 활기찬 남성은 반 대머리의 잡화점주를 돌아보았다. 어색한 듯, 불편한 듯. 잡화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화약을 그렇게 많이 구입하신다면서요? 앞으로 제가 철저하게 납품하겠습니다. 보브라고 합니다.”
“많이는 아니어도, 직업 상 꼭 필요하니까요. 하하, 저렴하고 질 좋은 놈으로 부탁 드립니다.”
“그럼 얼마나 구입하려고 하십니까? 지금, 어디 보자……. 대충 화약 500봉지 정도 있는데.”
500개! 50실버 어치. 이하의 전 재산을 털어도 살 수 없는 분량.
모름지기 화약과 탄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이하에게 500세트의 화약과 탄은 엄청난 안정감을 줄 것이다.
“그게, 지금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여기 납품가 정도로 해서 주신다면―”
“에헴, 크흐흠! 그런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하이하 씨? 저희 가게에서 나가서 하시는 게……. 우선 주문한 물건부터 볼까요, 보브 씨? 안으로 들어오시죠.”
반 대머리의 잡화점주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말을 끊었다.
데록데록 굴러가는 눈동자. 머리숱이 없는 이마에선 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뭐야? 불안해하는…… 건가? 왜?’
잡화점주는 보브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자, 잠시 만요!”
“네?”
이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두 사람만 들어가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하를 빼놓고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뇌리에 스치는 의문.
“화약!! 그거 얼마죠? 여기 납품가 말이에요!”
“그야―”
“으아! 으아아아!”
버둥거리는 잡화점주. 어떻게든 말을 못하게 막으려는 것 같지만, 보브는 벌써 입을 열었다.
“개당 4코퍼입니다.”
“4코퍼? 한 봉지에 4코퍼?”
“그, 그렇습니다. 뭐 잘못된 일이라도……?”
보브가 어리둥절 얘기하자 잡화점주의 몸이 덜컥 굳어 버렸다.
“그럼 쇠구슬은요?”
“개당 1코퍼요.”
“…….”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이하는 흰자를 모조리 드러낸 채 잡화점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
개당 4코퍼에 화약을 사서 개당 10코퍼에. 개당 1코퍼에 쇠구슬을 사서 개당 4코퍼에 팔았단 말인가? 호구도 보통 호구 잡힌 게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