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379
마탄의 사수 (379)
그녀가 통화를 시작하기 무섭게 자청이 곁에서 말을 걸어왔다.
“마스터케이 님은 미들 어스에서 별다른 일 없으신지요?”
“네? 아, 그럼요.”
“귀족鬼族 몬스터 퇴치 때 저희와 함께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안 그렇습니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화홍과 별초의 관계라면―”
“이제 그런 과거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렇게 하이하 님이 중간에 떠억 있는데.”
“뭐, 그, 그렇죠. 하하. 하긴, 이하 형이 중간에서 다리를 놔 준다면 저희가 굳이 반목할 이유도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 도시가 많아져서 치안 유지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캐슬 데일을 비롯하여 가끔 한 번씩 들러 주십시오.”
너스레를 떠는 자청의 목적을 이하는 뻔히 알 수 있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람화연의 표정.
어차피 중국어를 못 알아들음에도 그는 람화연과 회장 간의 통화를 엿듣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인맥을 넓히기 위해 기정에게 말을 거는 수완이 바로 자청이 가진 힘이 아닐까.
“후우우우……. 자청, 여기 전화요.”
그사이 람화연은 자신의 부친과 통화를 끝냈다.
람화연이 한숨을 쉬자 곁에 있던 람화정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무슨 일 있어?”
“일이야 항상 있지 않겠어? 하아아…… 하나를 해결해도 또 다음 하나, 또 다음 하나. 심지어 매번 비슷한 일들이 매번 다른 방향에서 날 괴롭히고 있다고. 회장님― 아니, 아빠한테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너무 무력해지는 기분이야.”
람화연은 포크로 떡볶이를 쿡, 쿡 찌르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하긴, 회사 일도 일이지만 그 지시를 하는 대상이 글로벌 그룹의 총수이자 아버지라면……. 힘들 만도 하겠어.’
언제나 강철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던 그녀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에 이하와 기정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하이하 당신이 이런 고민을 알까?”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툭, 던지는 한 마디의 질문. 그저 넋두리 같은 그 말을 들으며 이하는 생각했다.
“응. 알 것 같아.”
“뭐?”
그래도 람화연보다는 삶의 경험이 있는 그가, 저 천하의 람화연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 * *
비단 람화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도 이하에게 쏠렸다. 기정은 놀랐고 자청은 흥미로워했다.
“어, 엉아, 무슨 소리야. 우리 같은 소시민이 무슨― 무슨 저런 거물들의 일을 안다고―”
“아냐, 기정아. 이건…… 단순히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또는 생활수준이 높고 낮음에 따라 생기는 고민 같은 게 아니야.”
기정이 이하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뀌어 버린 이하의 목소리.
차분하면서, 조금은 느릿한 그 음성이 분식집에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이하 당신도 이런 고민을 안다고?”
그것은 단순한 청춘의 고민 따위가 아니다.
손꼽히는 재벌 그룹을 이끄는 중역이 갖는, 또 다른 이름의 ‘중압감’ 이건만.
이하는 그런 람화연을 보며 미소로 답했다.
“람화연 씨.”
“응?”
“우리가 미들 어스에서 밖에 만나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에 대해 조금은 알 거라고 생각해. 특히 내 사격에 대해서라면. 그렇지?”
“어, 으응, 그렇지.”
갑자기 사격? 그러나 람화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든 말든 이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당신은 내가 쏠 때마다 100% 맞춘다고 생각해?”
“거의…… 그렇지 않았나? 특히 중요한 순간에 당신의 활약은― 100% 이상의 적중률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텐데.”
“킥, 아냐.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미들 어스에서도 불과 40m앞의 토끼를 못 맞춘 때가 있었어.”
“뭐? 당신이?”
“응.”
그녀의 단언을 들으며 이하는 작게 웃었다. 그렇다. 람화연의 저 답변이야말로 이하를 향한 또 다른 ‘중압감’일 것이다.
타인의 기대에서 비롯되는 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같은 것 말이다.
“쏴서, 맞추는 것……. 어찌어찌 해낸다 하더라도 이번의 적중이 다음을 보장해 주지 않지. 방금 람화연 당신이 말한 것처럼 ‘매번 비슷한 문제들이 다른 방향’에서 나를 괴롭혀. 그런 걸 생각하면 내가 굉장히 무력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 해내도, 해내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고 해내도, 해내도 불안하다……. 과연 나는 성장을 한 걸까, 이전과 지금의 나는 뭐가 바뀐 걸까. 지금 맞춰 봐야 결국 다음 타겟을 노릴 때가 되면 또 힘들어지지 않을까…….”
이하는 람화연을 보며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만발 사수’라는 듣기 좋은 타이틀이 머리 위에 걸릴수록 방아쇠를 당기는 한 발의 무게는 총알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것.
그간 이하가 살아오며 겪어 왔던 것들.
비록 실전형 훈련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전우’라고 부를 존재 없이 언제나 전장에서 홀로 지내 왔던 스나이퍼만이 가질 수 있는 외로운 중압감의 표현인 셈이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지? 그럴 때마다.”
람화연이 물었다.
이하가 말을 꺼냈을 때부터, 조용해진 분식집에선 수행원과 경호원들조차 그 호흡을 조절하게 될 정도의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이하는 즉각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 더, 밥에 뜸을 들이듯 대답에 맛을 담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람화연의 물음에 답했다.
“그 무력감에 감사하지.”
주변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한국인인 기정조차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한국말이나 다름없었다. 기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와중에 람화연이 귀에 꽂은 번역기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응? 감사한다고?”
“응. 번역 제대로 됐을 거야. 그럴 때 나는, 날 짓누르는 그 무력감에 감사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그토록 무력함을 느끼니까 내가 쏜 한 발이 적중했을 때. 그다음 한 발이 다시 적중했을 때 행복할 수 있는 거거든. 만약 그런 무력감 내지 부담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적중시켰을 때의 행복도 없겠지.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해 버린 사람이 어떤 즐거움을 느끼겠어. 안 그래?”
“인정받을 때의 성취감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후우우…….
이하는 크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성취감과는 달라.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며 무언가를 해냈다! 라기 보다는, 더 근본적인 느낌에 가깝지. 정말로 살아 있다, 라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내가 살아남았다는 그런 느낌…… 뭐, 그런 거야.”
“그런 거라…….”
마치 선문답과 같은 이하의 말을 들으며 람화연은 숨을 내뱉었다.
느낌으로 알 것 같지만 겪기 전엔 와닿지 않는 류의 기분이지 않을까.
그것을 이하도 알고 있기에, 지금 당장 그녀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또 알아듣길 바라진 않았다.
오히려 활기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환기시킬 뿐이었다.
“그러니까 람화연 씨! 당신한테 지금 필요한 것은!”
“필요한 것은?”
“파하아아아―――――― 심호흡 하면서 허리에 힘을 빼는 거지. 자, 자, 허리에 힘 쭈우욱 빼고!”
“어엉?”
이하의 환한 미소를 보며 람화연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곧 사라졌다.
그것은 이하가 람화연에게 알려 주는 일종의 비결이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 말하자면 인정받기 위한 삶의 투쟁 같은 그 압박감.
자신이 지워져 버리는 것 같은 그 기분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자신이 자신으로 남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하여튼…….”
후, 하, 후, 하!
과장된 심호흡을 하면서, 녹아내리는 것 같은 몸짓을 연기하는 이하를 보며 람화연도 풋, 웃음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런 이하와 람화연을 바라보며 자청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지금의 아가씨에게 일에 관한 조언을 해 줄 사람은 천 명도 넘게 있지만, 그 누구도 소용이 없겠지요. 멘탈을 잡아 줄 수 있는 말, 그것도 핵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역시 하이하 님은 그룹 차원에서 필요한 인재입니다.’
삑― 자청은 조심스레 수트 안주머니에 있는 녹음기의 전원을 눌러 껐다.
‘이 대화만큼은 회장님께 꼭 전달해야 하겠군요.’
까불거리는 이하와 당황한 기정, 그리고 그 모습을 훈훈하게 바라보는 자청과 람화정 사이에서 홀로 고민하던 람화연이 벌떡 일어선 것은 그때였다.
“자청!”
“예, 예엣! 본부장님!”
“우리 일정이 언제까지지?”
“원래대로라면 내일 오후 출국입니다만―”
“비행기 바꿔요. 돌아가야겠어.”
“지금 말씀이십니까?”
“응. 아버지― 아니, 회장님은 내일 출국이시잖아요? 그전에―”
쾅―! 람화연은 가볍게 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담판을 지어야겠어.”
“……가기 싫은데.”
“뭐라고, 화정아?”
“아니.”
람화정이 입을 비죽이며 그녀의 곁에서 조심스레 일어섰다. 기정이 어리둥절했지만 이하는 람화연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여튼 추진력 하나는 끝내 준다니까.”
“흥, 당연하지. 속도도 경쟁력이거든! 그럼 하이하, 다음에 또―”
停下来! 停下来!
저리 안 비켜? 아따끄 쌩쁠Attaque Simple, 꾸드르와Coup droit!
啊―!
우당탕탕, 하는 소음과 함께 분식집 입구에서 소란이 일었다.
“무, 무슨 일인가? 누가―”
“하아, 하아…… 이하 씨!”
거구의 경호원 두 명을 제쳐(?) 버리며 난입한 것은 신나라였다.
굵지도 않은 나뭇가지 하나를 든 날렵한 체구. 그것만 쥐어져도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전 세계에 몇 되지 않으리라.
“나…… 나라, 나― 나라 씨가 여길 어떻게…….”
“후우…… 후우…….”
그 정도 수준의 펜서가 이하를 향해 눈빛을 쏘아 대고 있었다.
그 뒤에서 보배가 기정을 향해 ‘어떻게 좀 해 봐요, 미치겠어!’라고 입을 뻐끔거렸다.
* * *
“약속을 미루는 게 이런 이유였어요?”
“어― 아니, 그, 그게― 잠시만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
어떻게 알았지? 라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이미 그녀가 알게 되었다는 것. 이하가 손사래를 치려는 사이, 람화연이 코웃음을 치며 신나라의 앞으로 다가섰다.
“세이크리드 기사단의 여사女士?”
“그렇게 부르지 말아 주시죠, 람화연 씨. 한국 펜싱 국가대표 신나라입니다.”
“어머나, 그러면 람화연 씨라고 부르지 말아 주시죠? 홍콩 람롱 그룹 본사 신사업 발굴 TF 본부의 람화연 본부장입니다.”
두 여자의 눈빛이 공중에서 불똥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타이밍이리라.
“고마웠어, 하이하. 난 이제 ‘이룰 거 다 이뤘으니’ 가 볼게. 미들 어스에서 보자고!”
“어, 으응― 그래.”
람화연이 신나라와 어깨를 가볍게 부딪치며 분식집 밖으로 나섰다.
그녀들을 보며 이하가 당황하는 사이, 또 다른 여성 람화정이 종종걸음으로 이하를 향해 걸었다.
신나라가 황급히 람화정을 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잠깐! 람화정 씨, 당신 무슨―”
“안녕, 오빠. 다음에 또.”
블루블랙 헤어 컬러의 소녀가 이하의 품으로 포옥, 들어간 다음이었으니까.
그 대담한 포옹에 모두의 행동이 멈춰 버린 분식집 안. 이하의 팔만이 공중에서 애매하게 떠 있었다.
“크, 크흠, 아가씨. 어서 돌아가시지요. 아무리 한국이라지만 보는 눈이 많습니다.”
“응.”
정신 차린 자청이 재빨리 람화정을 떼어 냈지만 신나라의 눈은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돌아가자!”
知道了!
자청의 한 마디에 수행원과 경호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들이 애당초 타고 온 버스 크기의 밴이 시동을 걸어 출발할 때까지도, 분식집 안의 신나라와 보배 그리고 이하와 기정은 멍하니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저기……. 나라 씨?”
“…….”
“호, 혹시 떡볶이 좋아하세요?”
이하가 가까스로 내뱉은 첫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