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667
마탄의 사수 (667)
“〈제압〉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까! 제가 팔레오들을 찾아다니면서 용서라도 구하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근데 너무 공세가 심해서 잠깐 피하는 것뿐이고, 그 피하는 길에 별초 여러분이 계시는 건데. 제가 뭘 어떻게 합니까? 팔레오들한테 그냥 죽어 줄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분명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건 이하로선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기정에게 전해 듣기만 했음에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이하였건만,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로 라르크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이나 모레 영물들이 공습을 시작하면…… 끔찍한 일이군.’
신나라를 통해서도 즈마 시티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 듣고 있던 이하였다.
즈마 시티에는 알렉산더와 이지원 등 쟁쟁한 유저들이 이미 모여들고 있었다.
팔레오들이 즈마 시티를 습격한다는 소문이 퍼지기까지는 하루의 시간도 필요치 않았으니까.
‘내 귓말로도 통하지 않았는데, 알렉산더나 이지원이 싸움을 거부할 리가 없어.’
싸움을 막을 명분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영물들을 죽이는 건 싫지만, 즈마 시티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알렉산더와 베일리푸스는 몇몇 영물과 접촉을 진행했었지만, 대화는 결렬되었다고 했다.
이지원의 경우는 그저 신이 나서 칼을 갈고 있을 뿐.
‘이게 푸른 수염의 작전일지도 모른다는 걸…… 아니, 작전이 아니라도 이 순간을 두고 보기만 할 푸른 수염이 아니라는 걸 알아줘야 할 텐데.’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문제였다.
어쨌든 팔레오들의 마음은 이미 돌아선 상황이다. 그것을 다시금 되돌릴 방도가 과연 있을까?
영물들이 존중해 주었던 에인션트 드래곤 베일리푸스조차 대화를 거부당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묭.]“아, 고마워.”
머리가 빠지도록 고민하던 이하를 젤라퐁이 톡, 건드렸다.
어느새 이하는 괴생명체들이 착륙한 장소 인근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독수리의 눈〉’
혹여 스코프의 렌즈가 반사될까, 이하는 스킬을 먼저 사용하며 녀석들을 관찰했다.
“……저게 뭐 하는 거지?”
괴생명체들은 어쩌면 땅에 발을 아예 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하의 머리를 스쳤다.
그들은 땅에 놓인 무언가를 촉수로 감싸 쥐고는 다시 하늘로 이륙하거나, 혹은 이미 촉수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특정 장소에 내려놓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무언가’라는 게 크기와 형태 모두 달라 특정할 수 없었지만, 이하가 보기에 그들의 작업은 ‘현실의 어떤 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저거 설마…… 택배― 택배 상하차는 아니지?”
그곳은 마치 ‘집하장’을 보는 듯, 그 형태가 매우 유사했다.
실제 용도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며 이하는 그런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푸핫, 뭐야, 이게? 몬스터들의 택배― 아니지, 몬스터가 아니라. 음…… 저건 도대체― 흡!”
웃음을 겨우 눌러 참으며 관찰을 계속하려던 이하의 뒤통수에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꼼짝 마.”
갑작스레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이하는 당황했다.
‘뭐야……? 저 몬스터들인가?’
목소리는 거의 인간의 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이하가 당황한 이유는 젤라퐁에게서 아무런 신호도 오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뭔지 모를 생명체가 이하의 등 뒤로 다가와 뒤통수에 무기를 대고 위협하기까지 젤라퐁이 눈치를 못 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의 목숨은 풍전등화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길에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눈을 빼앗겼을 뿐입니다.”
“그렇겠지. 나도 저 녀석들을 처음 봤을 때는 엄청 신기했으니까.”
“어라? 이 목소리― 흡!”
이하의 말에 답한 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제법 익숙해진 목소리.
이하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그의 머리에 두꺼운 두건이 씌워졌다.
당황스러운 순간 속에서도 이하는 침착했다.
아니, 웃고 있었다.
‘됐어!’
자신을 구속하려는 자들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히 따라와.”
“조심히 따라오게 하실 거면 두건을 벗겨 주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발밑이 영 안 보여서.”
여성의 목소리에 이하가 웃으며 답하자, 남성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확실히 배짱 하나는 허니랑 닮았군.”
미스터 브라운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하는 아주 약간의 소름이 돋았다.
‘허니라니……. 아직도―’
금슬이 좋단 생각을 하면서, 이하는 마침내 신대륙의 동부에서 엘리자베스와 조우했다.
* * *
“푸하! 일부러 빙빙 돌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 제가 그렇게 입이 가벼워 보였습니까?”
복면이 벗겨지자마자 이하는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미로처럼 한참 동안 ‘뺑뺑이’를 돌았으나, 멀리 가지 않았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멀어졌다고 느껴지게끔 만들려는 일종의 페이크일 뿐.
이하의 말에 엘리자베스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봤지? 봤지, 여보? 얘가 이렇더라니까! 재미있지?”
“……브로우리스가 엄청 싫어할 법한 성격인데. 너, 브로우리스한테 많이 혼났지?”
엘리자베스가 박수까지 치자 브라운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이하는 브라운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주변을 빠르게 탐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동굴……. 아까 그 오징어 괴물들이 있던 곳에서 동굴이 있을 만한 지형이라면―’
절벽 내지 산악 형태의 지형이 근방에 있었던 것을 이하는 기억했다.
불과 10여 분밖에 안 되는 거리로 보였으나, 자신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브라운과 엘리자베스가 철두철미하게 이곳을 숨긴 의미는 무엇일까?
자신들이 초대한 대상이 도착했음에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일단 날 죽이려는 건 아니라는 것에 만족해야 하나?’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끝끝내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 보장이 완전히 느껴지자 이하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후배는? 어디쯤이지? 비슷하게 출발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 루거는……. 제가 토온이랑 싸웠던 그 지점 근처를 지나고 있나 보네요. 워낙 요령이 없어서 여기까지 오려면 일주일은 더 걸릴걸요.”
젤라퐁도 없는 루거는 순수 육체의 활용만으로 온갖 지형지물을 극복해야 한다.
이하가 이틀도 채 안 되어 도착한 거리지만, 이곳까지 루거가 오려면 아직도 한참은 더 있어야 하리라.
“응, 그건 잘 봤어.”
“……아는 정도가 아니라 보셨다고요?”
이하는 황당한 눈으로 엘리자베스를 쳐다보았다.
일부러 ‘토온이랑 싸웠던’ 따위의 말을 한 것은 이들이 토온의 현 상태를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토온이 죽은 걸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봤다고?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난리를 치는데 안 볼 수가 있겠니?”
“자, 잠시만요. 그럼 그때 제 근처에…….”
“응. 있었지.”
아니, 그러면 왜 그때 말 안 걸고? 이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을 꿀꺽 삼켰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엘리자베스를 보아하니, 그런 질문을 해 봤자 이하의 혈압만 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조우한 현 상황에서 중요한 건 지나간 일을 따지고 드는 게 아니다.
이하가 주변을 빠르게 훑자,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카일 찾아?”
“아, 네. 네?”
“지금은 잠든 상태지. 그러니까 우리 둘 다 네 녀석한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거고.”
이하의 어벙한 답변을 들으며 브라운도 입을 열었다.
동굴 같은 곳의 내부 끝은 이하에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곳을 임시 거처처럼 사용하고 있었다면, 동굴 안쪽 어딘가에는 카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
방금 전까지의 농담 같은 상황은 순식간에 굳었다.
브라운은 이하의 곁으로 의자를 더 끌고 와 앉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브로우리스는 뭐라고 하던가?”
“네? 소장님이요?”
“그래. 아무리 늦어도 지금쯤이면 편지를 뜯었을 텐데. 그에 대해 전하라는 말이 없었나?”
“편……지?”
이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브라운과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모험가 녀석. 아예 얘기조차 안 한 건가.”
“자기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했었잖아. 그래도 우리의 의지가 담긴 이상, 교황도 반드시 뜯어 봐야 할 텐데. 영원히 묻어 둘 수는 없을 거야.”
이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브라운과 엘리자베스를 쳐다보았다.
이하도 눈치가 느린 편은 아니었다.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잠시 헷갈렸으나,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금세 유추할 수 있었다.
“브로우리스 소장님께도 편지를 남기셨군요?! 아니, 그게 당연하겠죠. 그래서 키드에게 브로우리스 소장님 곁을 지키라고…….”
“그래. 그 편지 안에 담긴 사실이 밝혀지면 브로우리스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무슨…… 무슨 내용이었죠? 지금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이하가 물었으나 브라운은 고개를 저었다.
엘리자베스는 단칼에 거부하는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말해 주고 싶으나 브라운의 판단이라면 엘리자베스 또한 말할 수 없다는 뜻.
이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보통 고생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여러분은 마魔의 근거지에서 토온의 회복을 도우셨으니까요. 제 입장에서도 적으로 생각하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왔습니다. 여러분들을 믿었으니까. 설사 제가 죽는다 하더라도 한 번 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남겨 주신 쪽지의 조건처럼 다른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온 거라고요. 혼자 오라는 내용 자체가 비밀스럽게 남길 말이 있으셔서 그런 거 아니었습니까?”
“네가 죽어.”
“……네?”
“지금 그 편지 안의 내용을 너에게 말해 주면―”
브라운은 매서운 눈빛으로 이하를 노려보았다.
“―네가 죽는다고.”
엘리자베스의 장난스러운 성격과 달리 진지하기만 한 그를 보며 이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말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면 애당초 우리가 이곳에 있을 것 같나? 우리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여보!”
이를 부드득, 가는 브라운을 엘리자베스가 말렸다.
그러나 브라운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더욱 핏대를 세우는 브라운을 보며 이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조국과 친구를,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은 전우를 버리고 이곳으로 온 게 어떤 뜻인지도―”
“허니? 그만하라고 했따아?”
엘리자베스가 웃으면서 브라운의 어깨를 톡, 톡 때리자 브라운의 표정이 급변했다.
“……넵, 여보.”
방금 전까지 귀기 어린 얼굴을 하고 있던 브라운이 순식간에 동네 바보 아저씨로 변하는 마술!
극과 극을 달리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채 이하는 엘리자베스와 브라운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역시 집에서는…… 부인 입김이 세구나.’
단순히 부인이어서 입김이 센 것인지, 그게 엘리자베스여서 그런 것인지 이하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말을 따라야만 한다는 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부터 뭘 하면 되죠? 이곳까지 오라고 하신 건…….”
“휴, 브로우리스에 대한 건도 있어서 그런 거였는데. 어쩔 수 없지. 너, 다시 돌아가 줘야겠어.”
엘리자베스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하는 화들짝 놀랐다.
“네?! 여,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요! 여기 공간 이동도 안 돼서―”
“공간 이동은 괜찮아, ‘하우스하우스’들이 있으니까.”
“하우스하우스?”
“저것들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동굴 밖 하늘을 날아가는 괴생명체를 가리켰다.
“……저거 몬스터 아닌가요?”
“몬스터라니. 그렇게 말했다가 하우스하우스들이 기분 나빠 할걸? 하긴, 몬스터처럼 생기긴 했다만.”
“말하자면 이곳, 신대륙의 ‘마차’라고 보면 된다. 그것이 물건이든, 생명이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곳까지. 모든 것을 배달해 주는 배달부들이지.”
브라운이 이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물론 단박에 이해될 리는 없었다.
“엥? 저것들이…….”
오징어처럼 생겨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게 배달부라니.
‘아니, 자세히 보면 드론의 비행 방식 같기도 하네. 무인 드론 택배, 이런 느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