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225)
#재능만렙 플레이어 225화
선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오빠? 왜 그래요?”
“지금의 너는 선화야?”
선화가 방긋 웃었다.
“당연하죠!”
옆에 서있던 김아영이 인상을 찌푸리고서 김혁진을 쳐다봤다. 뭔 소리야? 말하려다가 참았다. 김혁진의 표정이 장난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김아영은 안다. 김혁진이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는 동생이라는 걸.
“지금의 네가 선화라는 건 알겠어.”
“에이. 오빠. 왜 그래요. 우리 치킨 먹어요, 치킨!”
김선화가 김혁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김혁진은 그런 선화를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캐스퍼냐?”
순간. 김선화의 몸이 움찔했다. 순간,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주차장 바닥, 열리던 자동문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여기저기 얼음결정이 생겼다.
순간. ‘일시정지 권능’이 적용되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일시정지?’
비싼 권능이다.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김선화가 말했다.
“나를 알아요?”
“알지. 중간 관리자. 캐스퍼.”
영체(靈體)형 중간 관리자. 생김새가 존재하지 않는 ‘영체’이기에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플레이어에 빙의해서 중계하는 중간 관리자.’
그래서 이런 형태의 중간 관리자를 통칭해서 ‘캐스퍼’라고 부른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캐스퍼’는 분명히 존재하는 중간 관리자였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인지부조화 능력을 뿜어낼 수 있는 캐스퍼라면.’
캐스퍼 중에서도 악명이 가장 높았던 최상위 악령계 캐스퍼. 인류는 그 중간관리자를 일컬어 ‘악마형 캐스퍼’ 혹은 ‘악마형 중간 관리자’라고 불렀다.
“알고 있다니. 재미있네. 내 인지부조화를 뚫은 거야?”
“어찌하다 보니.”
“이야.”
김선화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서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초보 구간 플레이어에게 내 인지부조화가 뚫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어.”
표정. 제스쳐. 미묘하게 김선화와 달랐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정말 대단해. 독점 중계권을 따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될 정도야. 어떻게 초보구간의 플레이어가 이럴 수 있지?”
김선화가 뒤를 힐끗 쳐다봤다.
“세니아. 당신은 정말 운이 좋네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걸로 김혁진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지금 ‘일시정지 권능’에 ‘중간 관리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세니아도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내 정체를 알았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건 없어. 너는 네 플레이를 하면 되고, 선화는 선화의 플레이를 하면 돼. 오케이?”
김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얼핏 듣기에는 맞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놈이 악마형 중간 관리자라고 가정하고 움직인다.’
캐스퍼들이 다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악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플레이어의 몸을 빼앗고 저희들이 직접 플레이를 하고 싶어하는 사악한 영체들.’
그 영체들은 플레이어의 몸을 빼앗은 뒤, 함부로 굴린다. 어차피 자기 몸이 아니니까. 수호자들이 열광할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도 뽑아낸다.
‘시체술사 바르테리가 그렇게 죽었지.’
시체술사(屍體術師) 바르테리.
경매장에서 봤었다.
‘그리고…….’
또다른 한국의 8영웅 중 한 명이었던,
‘율법 집행자 반기명.’
바르테리와 반기명이 악마형 중간관리자에게 몸을 빼앗기고 요절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지만, 점성술사 이타치도 악마형 중간관리자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지금 내 힘으로는 저 캐스퍼를 감당할 수 없어.’
캐스퍼가 플레이어의 몸을 빼앗으려 시도하는 구간은 ‘고수’ 구간에는 들어가야 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캐스퍼들의 성에 차는 듯 했다.
‘지금은 감당할 수 없어도.’
이후에는 감당할 수 있다. 김혁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튜토리얼 필드에서는 선화가 몸을 던져 자신을 지켰다.
어느덧, 선화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생김새는 그대로인데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지금의 선화는 ‘진짜 선화’다.
선화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내가 지켜 줄게.’
캐스퍼에게 몸을 빼앗기는 일 따위는 없게 할 거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미래의 일을, 지금부터 미리 대비할 수 있으니까.
김혁진이 말했다.
“당신의 정체를 알았다는 것. 그건 내 플레이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김혁진.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훌륭한 플레이어의 자세야.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흐흐흐-하고 웃었다. 김혁진은 속마음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 아이는 탱커. 탱커로서의 활약을 잘 담아주기만 하면 그만이죠.”
“그건 맞아. 꽤 천재적인 구석이 있어. 탐나는 플레이어야.”
탐나는 플레이어야. 저 말이 ‘탐나는 몸이야’라고 들렸다.
‘반드시……. 지킨다.’
* * *
집으로 돌아온 김혁진은 책상 아래쪽에 숨겨져 있는 ‘노란 부적’을 발견하고서 또 피식 웃고 말았다. 누나는 아직도 저 ‘노란 부적’을 작성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저 극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책상 앞에 앉았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김혁진 씨?
말이 안 통했다면 세니아를 불러 통역을 시키려고 했는데, 유능한 정보상인답게 통역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김혁진이 말했다.
-네. 저한테 궁금한 것이 있죠?
사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혁진이다. 용건이 있다. ‘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에 대해 물어볼 거다. 그렇지만 먼저 용건을 꺼내지 않았다. 미끼를 먼저 물지 않고서, 상대가 미끼를 물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안달이 나있던 피에트로가 먼저 물었다.
-LA의 경매장에서 큰 일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요?
-저는 정보를 다루는 정보상인이니까요.
-세상에도 알려질까요?
-아마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 경매 자체가 비밀리에, 최상위 랭커들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부자들만 참여했던 경매였으니까.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랭커들은 알음알음 알고 있죠.
-제 팔다리가 부러지고 플레이어로서의 힘이 모두 박탈당했다고 알려져 있겠죠?
-유감스럽게도 그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태극방패 수행원이라 하더군요.
그 경매에 태극방패에 ‘수행원’이 간다?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니 피에트로도 믿을 수밖에 없던 정보였다. 그렇지만 피에트로는 놓치지 않았다. 이게 너무나 작위적이라는 걸.
‘애초에 이상하지.’
태극방패의 수행원이라는데,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이름조차 안 알려졌다. 게다가 쉬신의 ‘플레이어 자격 박탈’이라는 이슈에 가려져서, 그 누구도 ‘수행원’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처럼.
‘촉이…… 온다.’
이상하다. 비밀이 있다.
-혹시…… 지금 괜찮으십니까?
-컨디션은 굉장히 좋습니다. 물론,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은 그대로고요.
피에트로는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미셸과 김혁진이 짜고서 다른 랭커들을 속인 거군.’
그 상황이 머릿속이 전부 그려졌다. 하나의 단서로 모든 것을 유추했다.
‘속일 수 있을 만한 능력을 사용했고. 둘은 모종의 거래를 했다. 그리고 수행원의 존재는 랭커들 사이에서 잊혀지겠지.’
그 거래가 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트로는 김혁진을 또다시 새로 볼 수밖에 없었다.
‘쉬신의 능력을 정말로 폐기시켜버린 미셸이, 김혁진에게는 한수 접어줬다.’
이건 뭘 의미할까?
‘쉬신보다, 김혁진이 훨씬 위험해서겠지.’
쉬신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김혁진을 우군으로 삼겠다는 군주의 판단일 것이다. 피에트로는 눈치가 빨랐다.
-저 역시. 비밀로 해야겠군요. 그 수행원은 미셸에 의해 폐기당했고, 지금의 김혁진 씨는 완전히 다른 분이니까요. 저는 과거의 김혁진은 모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혁진 씨.
김혁진이 피식 웃었다. 말을 잘 알아듣는다. 이쪽에서 이미 ‘신상’에 대한 정보를 줬다. 정보상인끼리는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이다.
-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 여전히 공략인원을 모으고 있죠?
-그렇습니다.
피에트로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정보를 얻었으니. 이쪽도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내놓는 게 맞다.
-저도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김혁진 씨가요?
-네. 거기에 관심이 생겼거든요.
-김혁진 씨 같은 실력자가 참여한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어떤 문제죠?
-곧 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를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제한 조건이 ‘궁수 관련 클래스’ 혹은 ‘궁신지체의 서’를 흡수한 플레이어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혹은 저처럼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나.
피에트로는 원래 김혁진을 ‘궁수’로 파악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활을 잘 쏘는 군주’였다. 어찌됐든 클래스는 ‘군주’라는 뜻이다.
-그거라면 별문제 없겠군요.
-김혁진 씨는 군주 아니었나요?
-군주 맞습니다.
피에트로는 잠시 생각했다.
-설마…… 궁신지체의 서를 흡수했습니까?
-아뇨.
아직은 안 했다. 곧 할 예정이다.
-그럼 어떻게 입장하실 생각이시죠?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인 것 같네요. 제가 몇 명 더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얼마나요?
-두 명입니다.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미셸 사단의 마크. 그리고 한국의 현정화. 둘 입니다.
현정화와 거래한 내용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던전’과 ‘상암 월드컵 경기장 던전’에서 함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혁진은 현정화가 자신과 함께 갈 것이라 확신했다. 만약 함께하지 않겠다면 함께하도록 만들면 된다. 그게 김혁진의 능력이다.
피에트로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시죠? 둘은 안 됩니까?
-아, 아니. 아닙니다. 날개 잃은 천사상 게이트 공략은 일주일 뒤입니다.
피에트로는 전화를 끊었다.
‘후.’
숨을 들이마셨다. 의자를 뒤로 한껏 젖히고 반쯤 눕다시피 해서 앉았다.
“김혁진. 도대체…… 그 인간은 뭐하는 인간이지?”
그의 책상에는 ‘거절’한 궁수들의 리스트가 있었다. 첫 번째로 ‘현정화’였고 두 번째로 ‘마크’였다. 둘 모두 피에트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던 궁수들이다.
‘무슨 수완으로 이들을 설득한 거야?’
궁수를 유혹할 수 있는, 어떤 강대한 패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패를 알고 싶었다. 그것만 안다면 적어도 궁수들에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뭘까.’
알 수 없었다.
‘알고 싶다.’
한편, 김혁진은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현정화 씨. 저와 함께 하시죠. 새로운 게이트입니다.
아까는 설득한 상태가 아니었다. 마땅한 패도 없다. 그냥 이제부터 설득하기로 했다.
-좋아요. 많이 배울 수 있겠네요.
설득이 아주 쉬웠다.
이틀이 지났다.
경매에서 돌아온 송기열이 김혁진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다. 재미있는 건, 개망나니 송진철과 함께였다.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문 열어.”
문을 열어보니,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의 송기열과 자신만만한 표정의 송진철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