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36
136
암계(暗計)를 단번에 꿰뚫어 보는 자는 암계를 쓰는 자뿐이다.
낯선 자의 말속에 ‘남도문’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상대는 북검문 무인이다. 머리가 뛰어난 남무림 사람치고 야광 문턱을 밟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런 사람 같으면 자신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으니 틀림없이 북검문 사람이다.
북검문에서 자승자박지계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남만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현재 남만에 와 있는 사람들 중에 드러난 사람이라면……
‘육능자!’
힘겨운 상대를 만났다.
야광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북검문 삼뇌를 능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야광 총수인 구환자도 삼뇌에게는 한 수 양보하는 처지다. 만사무불통지라는 절대 거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무척 피곤하게 휘둘렸으리라.
“누, 누구…… 누구신지?”
사내는 바들바들 떨며 돌아섰다. 순간,
슈욱!
쇠꼬챙이 같은 게 눈앞에서 번뜩인다 싶었는데 가슴이 화끈거렸다.
협검(狹劍)이다.
검날 두 개를 붙여서 삼각 형태를 만든 기형 협검이다.
이런 검은 상박(相搏)에는 적합하지 않다. 지금처럼 완전히 포획된 먹이를 잡을 때나 유효하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최대한 공포를 느끼면서 죽게 만드는 잔인한 검이다.
사내는 울컥울컥 솟구치는 핏물을 봤다. 피는 협검을 타고 내려가 상대의 손을 적셨다.
“대낮에 초롱을 들었다는 건 화약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 흑살마녀를 속일 정도라면…… 뭐라고 했나? 얼마 전에 사용한 철뢰 정도로는 협박이 안 됐을 텐데?”
“후후후!”
사내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가슴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두려워하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방금 전의 행동으로 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태도였다.
“성급했어. 지금 날 죽여서는 아무 득도 없…….”
“어리석군. 야광에서는 그런 머리도 받아주나 보지?”
협검이 비틀렸다.
“끄으으윽!”
사내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뱃속에서부터 쥐여 짜이는 비틀림은 억누를 수 없었다.
‘그, 그럼 이건!’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만큼이나 크나큰 충격이 뒷머리를 강타냈다.
육능자가 이 시점에서 자신에게 검을 들이댄 데에는 아주 큰 암계가 걸려 있다.
자신의 죽음은 흑살마녀에게 화살이 돌려질 게다. 당연히 야광에서는 암계에 실패했다 여길 것이다.
반면에 육능자는 자신이 쳐놓은 먹이를 가로챈다. 천면겁에 빠진 흑살마녀를 빼돌리는 것은 어린아이 팔목을 비트는 것보다 쉽다. 육능자에게는 더더욱 쉽다.
“큭큭! 죽 쒀서 개 준다더니…….”
사내는 심장이 완전히 반으로 갈린 다음에야 쓰러졌다.
쉭! 쉭쉭!
사내가 쓰러진 자리에 흑의복면인들이 나타났다.
“깨끗이 처리하게.”
“걱정 마십시오.”
“배치는?”
“끝냈습니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겠지?”
“천멸도 놈들을 뚫을 방도가 있어야지요.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추혼단의 동태는 파악했나?”
일부러 목청을 높여서 말했다. 숲에 있는 자들이 들으라고.
그래봤자 소용없다. 추혼단의 보고 체계는 야광 지자가 직접 보고하는 것보다 이틀은 늦다.
‘이틀 안에 잡아놔야 되는데…….’
“꼬리를 붙여놨습니다. 이자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럼 됐어. 그만 가지.”
육능자와 흑의복면인들은 사내의 시신을 움켜잡고 사라져 갔다.
육능자와 흑의복면인들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흑의복면인들이 내려섰다.
“드디어 육능자가 움직였습니다.”
복면인 중에 한 명이 말했다.
“쉿!”
제일 앞에 서 있는 자가 황급히 돌아서며 주의를 줬다.
“죄송합니다.”
“천랑대는 이백 명밖에 안 되지만 무공은 특출나다. 부딪치면 우리가 깨져.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둬. 단, 무엇을 하는지는 똑똑히 봐둬야 한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자식들…… 누구 머리 위에 서려고.”
우두머리인 듯한 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신형을 날렸다.
육능자는 너무 서둘렀다. 흑의복면인들도 너무 빨리 움직였다. 그런 면에서는, 신중한 면에서는 초롱을 든 야광 사내가 더 나았다.
그들의 가장 큰 실수는 천멸도 살수들의 능력을 너무 가볍게 봤다는 것이다.
살수들은 흑살마녀의 영역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람이 되어 가고 싶은 곳을 떠다녔다. 공기가 되어 은밀한 곳을 들락거렸다. 물이 되어 밀림을 누볐다.
살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공이 아니라 정보다.
천멸도 살수들은 마도나 수검 같은 절정고수들조차 일수에 꺾을 만한 은신술을 지니고 있지만 정보를 수집하려는 노력은 체질적으로 몸에 붙이고 다녔다.
흑살마녀의 영역을 지키는 자들은 팔십일전혼에서 살아남은 스물두 명이다. 십팔밀막검은 초옥 안에서 주요 인물들을 호위했고, 억세게 살아남은 백인수는 눈에 익은 밀림을 뒤지고 다녔다.
그들 중 한 명의 눈에 육능자가 들어왔다.
남도문 무인인지 북검문 무인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 모두들 복면을 하고 있는데, 유독 그만은 맨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녔다.
일종의 자신감이다.
지위가 높은 자, 거물로 지칭되는 자들은 특권을 누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종류의 자만심이 복면을 벗게 만들었다.
천멸도 살수는 그를 따라다녔다.
그의 이름은 육능자. 장이 나빠서 설사를 하고, 물까지 맞지 않아서 두드러기를 일으키고 있다. 세면은 시간 맞춰서 하루에 세 번 하며, 식사를 하기 전에 항상 녹차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삼뇌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점이 많은 자다.
그리고 오늘, 뜻밖의 살인을 봤다.
북검문의 육능자와 천랑대, 남도문의 추혼대가 얽히고설킨 묘한 죽음이다. 또한 한 사내의 죽음이 흑살마녀의 운명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걸 감지했다.
‘보고할 사안이야.’
살수는 흑살마녀의 초옥으로 스며들었다.
팔십일전혼으로 한 겹, 십팔밀막검이 또 한 겹, 무신이 아닌 한 스며들 수 없는 철옹성이 구축되었다.
천멸도주는 철옹성 안에서 수하의 보고를 받았다.
그 자리에는 흑살마녀와 다담선자도 동석했다.
흑살마녀는 최고 존장이니, 다담선자는 얄밉지만 무엇이 마야를 위한 행동인지 판별할 줄 아는 여인이니 동석시켰다.
“흥! 좌우지간 대가리 좋은 놈들은 마음에 안 들어.”
흑살마녀는 살수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이를 바드득 갈았다.
사내에게 감쪽같이 속은 것이 분한 모양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천멸도주가 다담선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당장 천랑대라는 놈들을 쓸어버리고 싶다. 명령만 내리면 밤이 되기 전에 피바다가 될 것이다.
그래도 다담선자에게 물어본 것은 그런 행동은 마야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다.
“생각 좀 해봐야겠어.”
다담선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은 무슨…… 내 이놈들을!”
흑살마녀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일어서는 것을 천멸도주가 막아섰다.
“그자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녜요. 마야의 목숨이 만사무불통지에게 달려 있다는 건 맞는 말이에요. 마야가 뛰어나긴 하지만 무신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어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다.
“흥!”
흑살마녀는 코웃음을 쳤지만 천멸도주의 말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다담선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을 거듭했다.
제5장 제이관(第二關) ― 두 번째 관문
1
소립파의 이용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무신들에게는 있으면 괜찮고 없어도 아쉬울 것이 없어서 존재 가치는 매우 미약했다.
만사무불통지는 소립파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전에 사슴을 키운 적이 있었지. 크고 튼튼한 놈이었는데…… 어느 날,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쓰러지더군. 어떻게 해볼 틈도 주지 않고 죽었어. 왜 죽었나 궁금해서 배를 갈라봤는데, 뱃속이 온통 혹 덩어리로 가득했지. 그 정도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다가 죽은 거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는 그런 걸세.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당하게 되어 있어. 잘 견뎌보게.”
만사무불통지의 눈가에 싸늘함이 감돌았다.
무신 정도 되는 사람이 약자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강자존(强者存)의 정신을 주장한다면 너무 잔인하다. 중원 무인들 대다수에게 얌전히 죽을 차례만 기다리라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만사무불통지는 거침없이 강자존을 요구했다. 이는 옆에서 듣고 있는 삼원로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삼 대 일의 싸움이지만 피하지 않겠다는 정면 도전이라고나 할까?
휘익!
가벼운 소맷바람에 석벽 가루가 분분히 휘날렸다.
현현장은 격산타우(隔山打牛) 정도는 견줄 주 없을 정도로 강하고 부드러웠다.
만사무불통지는 석벽 너머로 사라져 갔다.
삼원로에게도 소립파를 염려하는 마음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또한 만사무불통지가 벌써 움직였으니 곧바로 뒤따라가야 한다. 자칫하면 제이관을 놓칠 우려가 있어서다.
내력 소모가 극심한 중첩수도 한시바삐 거둬야 한다. 하나 그들은 만사무불통지처럼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챙길 사람이 있었다. 귀찮기 이를 데 없는 철부지를.
“눈치 볼 것 없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할 거야.”
석존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군봉과 강금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군봉은 멀쩡했다. 강금산은 혈인(血人)이었다. 우모침을 통해 지금도 꾸준히 피를 쏟아내고 있는 환자였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먹이사슬을 짐작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금산은 서군봉의 먹이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암사마귀에 뜯어 먹히는 숫사마귀처럼.
“죄송해요. 하지만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석존무가 고갯짓으로 행동을 재촉했다.
서군봉과 강금산 또한 망설이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삼원로의 무공이 미덥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력을 쏟아내고 있지만 앞으로 한 시진 정도는 더 석벽을 떠받칠 수 있다. 정작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 것은 먼저 사라진 만사무불통지다. 아니, 그가 먼저 들어설 제이관이다.
쉬익! 휘익!
서군봉과 강금산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는 소립파에게는 일별도 던지지 않은 채 치달려 나갔다.
구구구궁……! 끼이이익……!
중첩수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석벽은 거침없이 밀려왔다.
소립파는 쭈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조금씩 밀려났다.
맞은편 석벽이 다가와 발끝에 닿았다. 무릎이 턱에 닿을 정도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만 석벽은 조그만 공간조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소립파가 몸을 뒤틀었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석벽에 뭉개질 위험은 더더욱 감지하지 못했다.
현재 그의 정신은 육신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육신의 모든 신경을 마비시켜서 천지가 뒤바뀌는 고통마저도 느끼지 못한다. 오장육부가 떨어져 나가고, 살점이 뜯겨져도 편안한 신색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석벽이 건드리는 것 정도는 느낌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몸을 뒤튼 것은 쭈그리고 있던 다리를 쭉 펴기 위해서다.
쭈그리고 있었어도 불편함은 몰랐다. 자신이 어떤 자세로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석벽이 다리를 건드리고, 힘없이 풀린 다리가 펴질 공간을 찾다가 몸까지 뒤튼 것뿐이다.
그그그극……!
석벽은 계속 밀려왔다. 소립파의 몸이 꽉 끼였지만 아랑곳할 리 없었다.
끄끅! 끄으으끅!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소리다.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다.
이런 고통은 기혈이 뒤바뀌는 고통과는 성질이 전혀 달랐다. 자오법신처럼 내부에서 뒤틀리는 고통이 아니라 왕벌에게 쏘였을 때처럼 외부에서 가해지는 자극이었다.
척추가 마비된 사람은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정도에 따라서 다리만 마비되는 경우도 있고, 몸 전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뇌와 육신의 연결 고리가 차단된 증상은 불수의(不隨意)로 나타난다.
소립파가 시전하고 있는 내공심법은 의지로 불수의를 만들어내는 불가사의한 공부였다.
뿌득! 뚜둑……!
뼈가 부러졌다. 살도 짓뭉개지고, 혈관도 터졌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는 모른다. 다쳤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
그의 마음은 평화로웠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오르는 참새가 되었다. 그렇게 자유와 평화를 누렸다.
그그…… 극!
석벽이 움직임을 멈췄다.
삼원로가 중첩수를 펼쳤을 때처럼,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물체가 진로를 가로막아 섰을 때처럼 움직이고자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갔다.
“으헉!”
소립파는 이빨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신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것으로, 무지막지하다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뼈란 뼈는 모두 으스러진 것 같다. 살이란 살은 모두 뭉개진 것 같고, 혈관이란 혈관은 모두 터져 버린 것 같다.
어죽을 끓이기 위해 다져 놓은 생선인가. 완자를 만들기 위해 다져 놓은 고깃덩이인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금방 파악되었다.
첫째, 자오법신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자오법신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양기와 음기는 아직도 양분되어 존재한다. 하지만 자시와 오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났던 지독한 고통, 그 지옥……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낼 수 있다.
둘째, 내공심법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도 고통을 이겨내는 데는 충분하지만 좀 더 가다듬으면 행동하는 데 지장을 받지 않는 단계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