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ulous Genius Musician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독재자
메인 멜로디의 테마만 정해진 악보였다.
밝고 경쾌한 느낌의 가이드라인은 그저 흥얼거림으로도 기분을 들뜨게 했다.
리듬을 조금 늘여 알앤비로 기교 가득한 노래를 만들 수도 있었고.
군데군데 꺾기와 울림을 넣어 트로트로 부를 수도 있었다.
트로트의 ‘쿵짝쿵짝’을 ‘짝쿵짝쿵’으로 바꾸면 자메이카 흑인의 향이 물씬 풍기는 레게 음악이 될 수도 있었다.
음정을 조금 변화하여 감미로운 발라드로 선보일 수도 있었으며.
강렬한 사운드와 16비트의 리듬을 곁들여 펑크로 만들 수도 있었다.
이 멜로디를 훅으로 이용한 힙합, 디지털 악기를 활용하여 믹싱하면 EDM…….
모든 장르에 어울리는 음표들이 그려져 있었다.
인간 회사의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이 악보가 뿌려지기 시작하자 대중 음악계 전체가 들썩였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인간 회사는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 소속 아티스트들이 존재했고, 이번 미국 공연 이후로 지도 역시 세계지도가 추가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온 가수가 몇 있었는데, 그중.
-이거 엄청난 곡이야. 나도 불러도 되는 거지?
바비 댄의 스타그램에 뜬 메시지는 세계의 음악 팬들이 또다시 한국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곧.
-이제부턴 듀엣이야.
유레이시가 연인과 함께 있는 사진을 올렸고.
-나의 신이여! 받들겠나이다.
칼리가 짧고 굵은 멘트를 남겼다.
이렇게 전 세계에 그 악보의 존재가 순식간에 퍼지던 그 시각.
제니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 * *
“난 반가운데…….”
“흠…….”
“서로 간의 오해도 조금 풀어야겠고.”
제니스가 서글서글하게 웃는 스테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세기는 어디다 놔두고…….”
“수리 중이야.”
“흠…….”
“그동안 진행되던 소송이 전부 취하된 것은 알고 있지?”
“뭐… 그렇다더군.”
“일단, 내가 자네를 놓치기 싫어서 오기를 부렸던 부분들은 정중히 사과할게.”
제니스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직접적인 사과를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속으로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굳이 겉으로 표를 내지는 않았다.
“고집이었어.”
“…….”
“베네딕토 신부 그 양반이 데려온 꼬맹이에게는 그런 음악이 어울렸거든.”
“갑자기 자기 고백인가?”
“맞아.”
“시간 많으니까 더 해 봐, 스테빈. 이거보단 흥미로울 것 같으니까.”
제니스가 헤드셋을 목에 걸고, 모니터의 히어로 영화를 정지했다.
“분노와 어두운 감정을 표출할 때의 너는 정말로 굉장했거든. 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으니까. 첫 앨범이 빌보드 1위에 올랐고, 다른 시도는 생각할 수가 없었지. 무조건 대중들에게 먹히는 음악이란 게 확실했으니까.”
“그래서?”
“거기부터 사과하는 거야.”
제니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난 자네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낼 능력이 없었거든.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지.”
확실히 의외의 말이었다.
자신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스테빈이라니.
거기다, 저 사과 한마디가 가진 의미는 지금까지 그의 사업 철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를 더욱 인정하는 거야.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지.”
이 부분은 제법 맘에 들었다.
자신의 우상을 인정하는 말이었으니까.
뭐, 직접 그를 만났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직접 말로 들어 보니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마치 제니스 자신이 칭찬받는 것처럼.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꺼낸 말이라면… 성공했어.”
“진심이야.”
“그래야지.”
눈을 마주친 둘은 동시에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
스테빈이 방긋 웃으며 제니스를 바라봤다.
“흠…….”
“너무 궁금해졌거든, 제니스 너에겐 어떤 의미로 존재해 왔는지.”
제니스가 창밖 파란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날개를 바라봤다.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그와 같은 경이로운 존재는 자신과 같은 천재만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었으니까.
“다시 모호해졌어.”
“음…….”
“‘시계태엽’은 정말로 굉장한 곡이야.”
“인정해.”
“처음 들었을 때 머리에 번개가 내려온 것 같았어.”
스테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그의 음악을 쫓아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그 발자취엔 그가 없었어.”
“응?”
비행기 날개 끝에 머물러있던 시야를 모호한 어딘가로 보냈다.
구름 하나 없는 파란 하늘, 어느 한 곳 특정할 수 없는 공간에 멈춰 선 시선이 갈팡질팡했다. 초점을 맞출 구름 하나 보이질 않았다.
감히 그를 부정하려 하다니.
마치, 성경 속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된 기분이었다.
“모르겠어, 그의 음악들이 향하는 방향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지 않나? 그가 표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완벽해.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 아니었나?”
의외의 대답에 스테빈이 황당한 표정으로 제니스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지금껏 저렇게 당혹스러워하는 제니스의 얼굴을 봤던 적이 있었던가?
자기 자신도 혼란스러워 어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천재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일까?
그와 만났던 이후 그가 지금껏 해 온 음악들을 모두 들었다.
조잡한 영상으로만 남아있는 것부터, 단 한 번 발표된 풀 앨범까지.
그와 함께하는 세션들의 실력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의 음악만큼은 완벽했다.
이번 월드 뮤직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였고.
“설명하기 어려운가 보군.”
만일 생각이 정리된 상태였다면 명료하게 대답했을 제니스였다.
“그의 음악들은 완벽해. 모든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그 메시지도 너무나 따뜻하고, 목적도 뚜렷해.”
“그런데?”
“너무 맑아.”
“응?”
“구름이 하나도 없어.”
“그게 문제가 되나?”
스테빈의 물음에 제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문제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답한 마음인 거지?
이번에도 그 ‘시계태엽’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자신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인가?
그땐 해답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갈피조차 잡질 못하고 있었다.
“그걸 몰라서 지금 한국으로 가는 거야.”
스테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천재를 만나 온 그였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세계가 있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범인인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부분만을 강조했었다.
지금도, 제니스의 저 고민은 결코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건 그냥 내 사견인데… 만약 제니스 네가 뭔가를 느꼈다면 말이지, 그게 대충 맞을 거야.”
아직 정리되지는 않은 듯했지만, 자신에게까지 이렇게 털어놓는 것을 보면 정말로 답답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음악으로 그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 아마도 너일 테니까.”
제니스가 헤드셋으로 귀를 덮었다.
“영화나 볼래.”
기껏 분위기를 잡았더니…….
여전히 건방지고 예의 없는 놈이었다.
그리고, 처음 베네딕토 신부님의 손을 잡고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저 서툰 감정 표현은 여전히 귀여웠다.
스테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기득권.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를 가져다주는 단어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재벌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은 영원한 기득권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기존의 법질서에 따라 사회를 규율하는 법원과 검찰은 태생적으로 기득권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권력과 기성의 언론은 논할 필요 없이 우리 사회 대표적 기득권이었다.
일반적인 대중의 저항은 본질적으로 돈과 권력을 가진 자의 기득권에서 비롯되곤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기득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모든 영역에 기득권은 존재하고.
사실, 모든 사람이 기득권자였다.
모든 어른은 아이들에게 기득권이고, 나이와 세대는 우리 사회 가장 큰 기득권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어느 골목길에서 싸움이 나도 빠지지 않는 한마디가 ‘너 몇 살이야’였다.
잘못한 어른에게 항의하고 지적하는 어린 사람은 싸가지 없는 놈이 되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기성세대의 기득권은 공고했다.
능력이나 숙련도, 업무량과 무관하게 똑같은 노동에도 나이와 입사 연도에 따라 급여를 더 받는 임금구조는 청년 세대에겐 기성세대의 기득권이 된다.
갑과 을도 마찬가지였다.
사장에게 신나게 깨지고 나온 부장은 을임과 동시에 그의 눈치를 보는 과장에겐 갑이었다.
그 과장은 또한 아래 직원들에게는 갑이었으며, 싸한 분위기에 숨죽이고 있던 신입사원도 퇴근길 들린 편의점에서는 갑이 되었다.
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늦은 시간 교대 후 찾은 PC방 직원에겐 갑이었다.
이처럼 세상은 ‘기득권’과 ‘갑’ 천지였다.
마치 돌고 도는 먹이사슬과도 같이 누군가의 갑은 누군가에 을이고, 누군가의 을이 누군가에겐 갑이었다.
진혁이 감았던 눈을 떴다.
세상이 답답하고 팍팍해진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기득권과 갑이 사라지는 날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날.
기득권이자 갑은 음악 하나로 족했다.
그렇게 모두가 평등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혁명일 터.
한 달에 단 하루.
완전무결한 독재자가 되리라.
기타를 들고 세상에 뿌린 그 음표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음악의 방향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마냥 즐겁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가사들이 그대로 기타 소리에 휘감겼다.
음표들 사이사이 진혁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세상은 자기 하나 챙기기도 바빴다.
강제적으로라도 사람들에게 여유를 심어 줄 셈이었다.
그렇게 생겨난 여유는 남을 돌아볼 수 있는 감정을 깨워 줄 터.
그리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을 알게 될 것이었다.
열아홉 진혁이 25년 전, 그때부터 생각했던 목표였다.
즐거움으로 물든 세상.
‘이해했지?’
어둠 속 마흔넷 진혁을 바라봤다.
‘당신은 나니까.’
눈 감은 열아홉 진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 * *
“아, 그렇다면 정부는 더 이상 부정적인 메시지를 내기가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주희준이 패널로 출연한 정치학 박사를 바라봤다.
“네. 남아 있는 임기나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대놓고 부정적으로 나서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첫 시작이 문화체육관광부 곽채군 장관의 개인 SNS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패널의 말을 듣던 주희준이 터져 나올 뻔한 실소를 겨우 참아 냈다.
그 SNS 메시지가 나오게 된 배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 측 인사가 먼저 말을 꺼냈고, 그에 정부는 즉각적으로 말도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왜 시행할 수 없는지 요목조목 설명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었다.
즉, 그 부정적인 부분들만 충족된다면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민간 기업들이 모여서 재단을 하나 만들더니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했다.
정부에선 꺼내지도 못했던 파격적인 계획에 여론의 무게 추가 완전하게 기울어 버렸다.
이에 어느 정도의 법리적 해석이 필요한 애매한 구간에서 공권력이 쉽게 나서지 못할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보다 시행할 수 없었던 –자신들이 부정적으로 얘기했던- 사항들이 해결된 지금, 얼른 숟가락을 얹고 싶지 않을까?
“정부는 임시적이라도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자신들은 불가능하다고 한 상황에 민간에서 이런 엄청난 규모의 전국적 이벤트가 성공하게 된다면 정부로서는 꽤 부담스러운 전례를 남기게 되어…….”
패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정치학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주희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모든 걸 계산했다는 말인가?
그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생방송임을 잠시 잊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입꼬리를 올려 버렸다.
“저… 앵커님?”
오해한 패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국민적 이벤트에 정부도 끼어들 수 있다는 말이시죠?”
주희준이 서둘러 표정을 정리했다.
“아… 네……. 아무래도 대중들의 눈도 있고, 해외에서도 꽤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다 차려 놓은 밥상을 엎어 버릴 수는 없겠죠. 더군다나 첫 아이디어가 정부에서 나왔으니 명분도 있고요.”
“역시 교수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주희준이 방긋 웃으며 동의하자 굳어 있던 정치학 박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미 시행하는 것은 날짜를 정하는 것만이 남은 상황입니다. 이런 때 정부의 역할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또 모시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네. 저도 반가웠습니다.”
뉴스가 끝날 무렵.
곽채군은 침을 꼴깍 삼키며 정부 청사 입구에 서 있었다.
옥상을 바라봤다.
시동이 꺼지지 않은 헬리콥터 하나가 보였다.
흰색과 파란색 그리고 붉은색 띠가 어우러진.
마린 원이었다.
‘후우.’
심호흡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결국 경질인가.
축 처진 어깨를 이끌고 청사로 들어갔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조금 전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생각 없이 막 던지는 것 같아도 뭔가 의지가 되는 말이었다.
어차피 쫓겨나는 건 예상했던 일.
처진 어깨에 힘을 줬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은 최후지.’
가슴을 펴고 최상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