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0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021)
Chapter 205. 언더섀도우, 신화의 조언
“우리 대화가 좀 필요합니다. 되도록 빨리, 가능하면 선라이트 서클부터 발동시키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비어 있는 두 손을 올리면서 진지하게 말하는 프릿이었다.
비어 있는 눈구멍으로 호르트의 신상이 프릿을 바라보듯 고개를 돌렸다.
투란의 눈동자, 우자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신상의 눈구멍을 열심히 좇아 움직이고 있었다.
부리가 움직이며 프릿에게 대답을 토해 낸다.
“저주받았다 해도 아직 살아 있다 할 수 있는 이들에게 큰 피해가 갈 것이다. 그러니 먼저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햇빛의 축복은 그다음에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옳은 과정이므로.”
―정말로 제대로 생각을 해서 말하는데?
드라고니아가 정신없는 투란에게 놀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으로서는 프릿이 대화를 시도한 것도 어처구니없었지만, 프릿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진지하게 대답하는 신상 쪽이 한층 더 황당한 일이었다.
프릿은 투란처럼 혼란스러운 낌새가 전혀 없이 당당하게, 하지만 조금 조급하게 신상을 향해 다시 요청하고 있었다.
“그 저주받은 녀석들의 피해만큼이나, 그 저주받은 녀석들에게 피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부탁하는 겁니다만. 햇빛이 없는 이곳에서 우린 굉장히 오랫동안 박해받고 피해받았습니다만? 이야기를 오래 하는 사이에 이 성을 찾아와 이런 만남을 이루기 위해 애쓴 우리가 또 피해를 입도록 할 겁니까?”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선라이트 서클이 발동하지 않을 것이며 이 백금의 영역 안에서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하라, 어찌하여 호르트를 섬기지 않는 그대들이 이곳에서 우자트를 품고 이 몸의 오랜 격리를 풀어냈는가, 이야기하라.”
신상이 토해 내는 말과 함께 백금의 도시가 요동쳤다.
그 거대하고 넓은 요동의 의미를 투란은 다급하게 입 밖으로 뿜어내야 했다.
“뭐야, 전부…… 잠겨 버렸잖아! 프릿, 뱀파이어고 인간이고 모조리 백금, 백은의 물 속에 잠겨서…… 죽지는 않았지만 다들 꼼짝 못 하는 꼴이 돼 버렸어요! 이게 대체 뭐야아아!”
“진정해, 투란. 이야기할 시간이 생긴 거잖아. 오래된 신의 화신의 파편의 잔해란 분이 말한 대로.”
프릿은 어딘가 꼬인 말투로, 투란을 돌아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눈을 껌벅이면서 입을 다문 투란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맹렬하게, 지저귀는 새처럼 옹알거리고 있었다.
‘우아앗! 신이란 말이잖아! 황금백금 석상처럼 생겨 먹은 신이라고! 그런 말이잖아, 그렇지? 신전에서 섬기……!’
―아니다. 신전에서 신을 섬기는 대사제 같은 것이지. 신이 아니야.
드라고니아가 멈출 듯하지 않은 투란에게 날카롭게, 무겁게 외쳤다.
가슴을 울리고 문장 깊은 곳에서, 심상의 풍경을 관통하듯 전해 온 외침이었기에 투란은 프릿을 보다가 신상을 보다가 하는 모습으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이런 투란의 모습에 적당히 진정한 것을 확인했다는 듯, 프릿이 다시 신상을 돌아보면서 말하는데…….
“자,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으니 이제 이야기 좀 해 보죠. 뭐 하는 겁니까, 신의 파편의 화신이면서 고대의 유물이고 유해란 분이 이런 곳에서 대체 뭣 하고 있었죠?”
여전히 뒤죽박죽이었고 살짝 삐딱한 말투가 시비 거는 듯했다.
신상은 그런 프릿의 기분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이 대답한다.
“저주를 뿌리치고 축복을 되찾기를 기다렸노라, 그대들처럼.”
“응?”
“음?”
프릿의 머리가 삐딱하게 기울어졌고 투란도 그 흉내라도 내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드라고니아 또한 뜻밖이었는가 살짝 묘한 울림을 투란의 뇌리에 남겼다.
신상이 텅 빈 눈구멍으로, 고개를 갸웃해서 마치 그 눈길을 옮기는 듯한 동작을 드러내면서 프릿과 투란을 번갈아 보는 채로 말한다.
“신의 의지를 이 세상에 강림시키고, 그 은혜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 나란 존재. 그 은혜가 악용되고 저주가 되어 버렸으니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무엇이 그리 이상한가?”
“여태 가만히 있다가 대체 무슨!”
프릿은 성난 음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투란은 문득 신상의 부리가 기묘하게 웃는 듯이 휘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프릿의 말을 투정부리는 어린애의 재롱을 보고 즐거워 웃는 듯한…….
과연 신상의 다음 말은 그런 말투였고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로지 이치에만 휘둘리며 살고 싶은 인간이 존재했던가? 짐승이 본능만을 따르듯이 스스로의 의지를 지니지 못한 삶을 원하는 것이 과연 인간인가? 신의 섭리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그대는 알고 있잖은가?”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프릿을 바라봤다.
그야말로 지금 신상이 뭔 소리를 하는지 아느냐고 확인하는 듯한 투란의 눈길에 프릿이 냉큼 고개를 젓는다.
“몰라! 모르니까…… 왜 지금 우리가 선라이트 서클로 안전한 곳을 만들면 안 되는가 설명해 달라고! 우리한테 목숨이 걸린 문제라니까!”
신상의 부리가 다시 미묘하게 꿈틀거리며 웃는다고 투란이 느낄 때, 담담하게 다독이는 듯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들의 생명만이 걸린 문제가 아니잖은가? 저주를 품고 있는 모두의 생명을 당장 지워 버리는 것이 그대의 목적이 아니잖은가? 그대는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가?”
“몰라! 대체 왜 뱀파이어랑 함께 살라는 거냐고! 그놈들이 우리를…… 인간을 뭘로 생각하는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해요?”
으르렁거리는 프릿이었다.
투란은 그런 프릿을 보면서 감탄했다.
‘우와, 신이고 뭐고 막 대드네?’
―신 아니라고! 신을 섬기는 대사제 같은…… 대마법사랑 비슷한 힘을 발휘하지만 섬김을 받는 신은 아니라고!
드라고니아도 투란에게 으르렁거렸다.
신상의 머리, 매의 형상을 한 머리가 백금과 황금의 광채를 찰랑이면서 부리를 끄덕이는 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더욱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듯했다.
“먼 옛날…….”
“으아아악! 꼭 그렇게 옛날 얘기부터 하셔야 하냐고! 당장 이곳뿐 아니라 내가 애써 쌓아 올린 도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지어 올린 인왕도가 위험하단 말이야앗! 당장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여기뿐 아니라 그곳까지이이이!”
프릿이 첫마디가 나오기가 무섭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투란이 보기에는 신상의 이야기가 정말 듣기 싫어서 마구 떠드는 듯한 낌새가 섞인 외침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인왕도의 상황이 오는 동안 들었던 것처럼 이 도시와의 전쟁이 시작된 탓에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느끼기는 했지만, 왠지 그보다는 프릿이 신상의 옛날이야기를 정말 싫어한다는 낌새가 더 짙다고 여겨졌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데 한가하게 시간 뺏기는 꼴이 되면 저 정도로 화낼 수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신상을 향해 저러는 것은 별 효과도 의미도 없을 거야. 거의 오타마타에 의한 인형, 지능이 있는 신기한 인형이나 마찬가지니까. 투란, 어쩔 거냐? 신상도 프릿도 제멋대로라면 이대로 얼마나 더 시간 낭비를 할지 몰라.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내게 시간 벌어 주기 같은데? 내가…… 우자트로 신상의 거부를 뚫고 선라이트 서클을 발동시켜 주길 바라는 모양이야.’
투란은 프릿이 머리를 흔들며 요란 떠는 와중에도 간간이 정확하게 자신과 눈길을 마주치며 눈가를 움찔움찔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자트로 신상을 살피면서 어렴풋이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이 신상이 강력하고 신성한 힘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명백하게 지성을 지닌 채로 떠들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가 저절로 움직이는 인형 같다는 점 또한 느꼈다.
무엇보다 백금왕의 피를 통해 얻어 낸 기억, 그 기억 깊은 곳에서 이 신상을 놓고 ‘호르트의 유해’라고 부르며 백금안을 이용해 격리하고 봉인해 뒀다는 점이 투란을 자극하고 있기도 했다.
우자트를 간섭할 수 있고, 이 백금성을 우자트 대신 제어할 수 있다는 왕의 백금안이기는 했지만…… 결국은 우자트의 열등한 모사품이었다니까. 그런 백금안으로 뭘 어찌할 수 있는 신상이라면 투란이 우자트로 어떻게 해볼 수 있잖은가?
하지만 투란이 열심히 관찰하는 사이, 프릿이 쉴 새 없이 투덜거리는 사이…… 신상은 압도적으로 커진 성량(聲量)을 쏟아 내며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세계가 파멸의 숙명 위에 놓였을 때, 혼돈이 찾아왔다. 고통과 절망이 퍼져 나갈 때, 기원이 세계를 울렸지. 그 기원에 응한 신들의 의지가 이 세상에 드리워졌다. 그 성스러운 의지는 파멸하려는 이들에게 구원을, 희망을 전하였지만 세계를 파멸의 숙명에서 구해 낼 수는 없었다. 그 고통과 절망의 혼돈 속에서 성스러운 의지를 본받아 강한 의지를 발휘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힘조차 자신의 것으로 삼아 가며 혼돈에 저항했고, 파멸의 숙명을 늦추고자 노력했다. 나, 여기, 호르트의 유해가 존재하는 까닭이 그 많은 노력이 낳은 여러 결실 중의 하나이니라……. 이 결실을 이룬 이들의 후예가 이 백금의 도시를 건설했고, 황금의 혈통을 이은 자들이니라. 나, 여기, 호르트의 유해는 그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느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죄업을 씻도록 기회를 줘야 하느니라. 심연을 품은 이들이여, 저주를 삼키고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자들이여…… 황금의 혈통을 되살려다오. 저주를 씻어 내고 다시 축복을 입은 자로서 거듭나게 도와다오. 창공의 눈이 드리우는 빛을 받아들여 생명을 키우는 자로서 여기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자들이 되도록 도와다오. 그들이 지금까지 쌓은 죄업을 돌이킬 기회를 다오. 나, 여기, 호르트의 유해는 오직 그 한 가지만을 그대들에게 탄원하노라…….”
프릿이 뭐라 입을 벙긋거렸지만, 투란은 주변의 모든 소리…… 모든 음역이 신상의 부리가 토해 내는 성량에 잡아먹히듯이 짓눌렸기에 전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기껏해야 그 입술이 달싹거리는 모양을 보고 뭔 말을 하는가 짐작해 볼 뿐인데, 프릿의 입술은 너무 빠르고 사납게 벙긋거려서 투란은 전혀 무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신상의 텅 빈 눈구멍이 윙윙 울리면서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 건장한 몸의 압박 때문에 프릿의 입술 모양을 오래 볼 수 없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그나마 투란이 이해할 수 있던 부분이 있었으니, 이는 드라고니아가 열심히 그 이야기를 해석해서 다시 들려준 탓이었다.
―엄청나게 고대의 상황인데, 그건 무시하고…… 수은 핏방울을 흘리던 놈들은 원래 흡혈종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인 상태에서 흡혈 능력을 부여받았을 뿐인 모양이다. 그게 뭐가 잘못되어서 그냥 완전한 뱀파이어가 된 모양인데…… 어째서 신으로부터 기원한 축복이 괴물을 만드는 저주로 변했나는 모르겠다. 그것도 일단 넘어가고…… 이 백금 도시의 뱀파이어를 다시 인간 쪽으로 돌이킬 방법이 있는 모양인데? 투란, 네가 프릿이랑 함께 선라이트 서클을 발동시키면 그게 안 되나 봐. 이러쿵저러쿵 떠들지만 결국 너랑 프릿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셈이고…… 음, 선라이트 서클을 발동시키기 전에 어떻게 사전 처리를 하고 싶다는 말 같군. 사전 처리를 통해서 이 백금 도시의 뱀파이어들에게 다시 인간으로서 살 기회를 주자…… 이런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같군. 프릿이 성질부릴 만도 해. 인간을 식량으로 보는 뱀파이어 노릇을 하던 놈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란 말이니까. 투란, 어쩔 거냐? 이대로 신상의 조건을 무시하고 강행할 거야? 거의 다 접근했잖아?
‘그래, 우자트랑 백금안의 힘을 합쳐서 간신히 닿기는 했어, 닿기는.’
투란은 고개를 숙이고 날개를 접으며 한 걸음 더 다가온 신상을 다시 살폈다.
매의 머리, 커다란 날개, 사람의 몸과 팔다리…… 그랑츄보다 살짝 더 커 보이지만 3미터는 넘을 리가 없어 보이는 체격인 백금과 황금으로 이뤄진 신상의 눈구멍은 여전히 채워질 리는 없어 보였지만, 그 안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눈길은 기묘할 정도로 선명했다.
마치 의지만으로 사물을 보는 듯한 느낌…….
어딘가 드라코눔 마법의 비전이라는 윌 라이트와 닮은 듯도 했다.
그 느낌 속에서 투란은 프릿의 팔을 슬쩍 잡았다.
의지가 낳은 마력이 곧바로 투란의 말을 프릿에게 전했다.
‘프릿, 내 말 들리죠? 선라이트 서클, 적어도 도시 절반을 덮을 정도는 바로 발동시킬 수 있어요. 어떻게 해요, 그 정도라도 발동시켜요?’
프릿이 움찔하며 투란을 돌아봤다.
순간, 거대하게 울리던 신상의 이야기 소리가 싹 사라졌다.
프릿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느릿하게 흘려 내는 소리가 또렷하게 투란에게 울려 왔다.
“몇이나 죽을 것 같아, 투란? 뱀파이어가…… 발동하면 몇이나 살아남을 것 같아?”
투란은 바로 뭐라 답하기가 애매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냥 스쳐 보며 세기에는 너무 많았으니까.
“어, 그게 그러니까…….”
일단 무슨 말이든 해야 할 듯한 압박이 신상의 비어 버린 매의 눈구멍과 프릿의 선명한 눈동자 속에서 풀풀 휘날렸기에 투란은 입부터 열었다. 한데 그 모호함에 투란의 말이 흐릿해질 듯하니, 바로 신상의 부리가 달칵거리며 잔잔한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창공의 눈을 지닌 자가 의도한다면, 모두 죽일 수 있다. 모두 살릴 수 있듯이…… 궁금하구나. 우자트를 품은 이여, 그대는 왜 창공의 눈을 감고 있는가?”
“도대체 뭔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게 좀 이야기하라고요!”
투란은 신상, 호르트의 유해를 향해 프릿처럼 성질을 담아 볼멘소리를 내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