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5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55)
조금 고요해진 채로 식사가 끝났다.
시알라 남매는 복잡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배가 부른 투란은 그 모습을 보다가 묻는다.
“음, 왜 그렇게 침울해졌어요?”
이 소리에 시알라가 바로 동생들을 둘러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만히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남매 넷이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줄도 몰랐다!
시알라의 쓴웃음은 곧 페란드를 거쳐서 멜란드, 제란드에게로 이어졌다.
시알라는 그 소리 없는 웃음과 함께 투란의 물음에 답한다.
“상상이 안 돼서…… 상상만 해도 뭔가 끔찍하게만 느껴졌어요. 그랑츄라면…… 작아도 이미터 반은 되는 몬스터이고…… 가끔 특별하게 큰 녀석들은 삼 미터에 가깝다고도 하잖아요. 고블린이라든가 사티로스처럼 대규모로 수천씩 무리 짓는 경우는 없지만, 한두 마리만 뭉쳐 다닌다 해도 최소한 중급 이상의 헌터 파티가 제대로 상대해야 한다는 몬스터인데…… 그런 걸 뻥뻥 걷어차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음, 뭐랄까 듣는 것만으로 기운 빠진다고 해야 하나?”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시알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알라는 결국 자신의 말이 너무 꼬여서 무슨 이야기인지 스스로 포기한 것처럼 한숨을 쉬었고…….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우리가 굉장한 것을 얻었는데, 정작 이곳에는 그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있다니까 당황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으로 말을 맺고 말았다.
시알라에게 조금 어색한 웃음이 떠올랐고, ‘누나가 참 말재주 없어요.’라고 웅얼거리던 멜란드는 자신에게 쏘아져오는 누나의 눈길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페란드나 제란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재주가 없다 하더라도 뭔가 가슴에 닿는 이야기라고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여기가…… 음, 그러니까 이 근처가 그랑츄가 뻥뻥 차이는 곳이 맞기는 한데 말이죠. 여기까지 왔잖아요? 오는 길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오면서 그랑츄 잡아먹거나 찢어먹거나 내던지는 놈이 전혀 없었을 리가 없는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이 말은 시알라 남매를 잠시 멍한 표정을 짓게 했다.
투란은 그런 남매를 둘러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투란의 말에 별로 공감하는 표정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투란은 드레이크의 기억을 통해 알고 있었다.
정말 이 근처란 곳은, 굳이 마그마 로드가 있고 없고를 따질 필요도 없이 험악한 놈들이 서로 몸 사리면서 오락가락하는 지역이었다. 드레이크가 날던 시절과 다르게 변한 곳이 있다고 해도, 전에 있던 것보다 못한 녀석들이 맴돌 리가 없었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들이 흐르는 지형에 따라 나타난다면 모를까!
때문에 드레이크는 자신의 알을 품을 장소로 이곳을 고르지 않았다.
불길에 약한 놈들이 잔뜩 모여 있는 거대한 늪을 고른 까닭이 그 때문이었다.
그곳도 결국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드레이크에게도 뭔가 이상한 것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을 늘 느끼게 하던 곳이 바로 이 근처였다.
그러니 여기까지 어쨌든 왔다는 것은…… 시알라 남매가 어찌 되었든 볼만한 것은 모두 봤고, 견뎌낼 역량이 있다는 의미였다.
한데 왜 이렇게들 모르는 척할까?
투란에게는 ‘왜 몰라?’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드는 모습이었다.
시알라는 투란의 물음에 곤혹스러워하며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고, 멜란드는 ‘음?’ 하며 갸웃거릴 뿐이었다. 제란드는 ‘못 봤는걸.’이라면서 어쩌겠냐는 듯한 태도였고, 페란드가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태도로 대답을 한다.
“오는 동안 겔퍼…… 그 원래 아겔이었다는 마법사가 길잡이 노릇을 했어요. 이상하고 괴상한 것을 보기는 했지만…… 위험한 지역도 건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그랑츄를 수십 미터씩 날릴 수 있는 놈은…… 못 봤거든요. 뭐, 그랑츄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놈이라면 봤지만…… 그건 또 다른 경우라서.”
“에? 그랑츄를 일격에 죽여요? 뭐 하는 놈인데요? 어떻게?”
투란은 바로 왕성한 호기심으로 묻고 있었다.
페란드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멜란드가 냉큼 대답을 한다.
“플레임 불! 아주 느려터진 검은 소처럼 생긴 놈이죠!”
“검은 소?”
투란은 되뇌면서 갸웃했다.
뇌리에는 살짝 드라고니아가 은근히 보태는 말이 맴돌기는 했다.
―플레임 불(Flame Bull), 입에서 불을 만들고 혀로 굴려서 공의 형태로 뱉는 놈이다. 말 그대로 소처럼 생겼지.
‘못 봤다고!’
투란은 눈을 반짝거리며 멜란드를 바라봤고, 멜란드는 신난 모습으로 말을 이어간다.
“털이 엄청 긴 소였는데, 뿔도 꽤 길게 돋았고…… 음, 살도 무지막지하게 찐 놈이었죠! 근데 성질은 생각보다 얌전해서, 건드리지 않고 빙 돌아서, 거리를 두고 움직이면 괜찮다고 해서 그 녀석 주변을 돌아서 지나쳤는데…… 그때 인형 바위가 나타나서 어슬렁거리며 그 소같이 생긴 놈, 플레임 불에게 시비를 걸었어요! 무슨 일이 생겼나 짐작 가요?”
“전혀! 인형 바위라면…… 머리, 팔, 다리가 달린 채로 걷는 바위 괴물이잖아요? 그거 크기가 어느 정도?”
투란은 멜란드의 말에 바로 응답하면서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신난 멜란드와 어울리는 투란을 보면서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시알라는 막내가 팔딱대는 듯한 모습에 두통이 생긴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와 눈가를 가리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멜란드는 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즐기자는 듯…….
“으흣, 그 인형 바위는 사람만 한 놈이 아니었다고요! 투란, 사 미터 넘는 바위 괴물이 사람처럼 뚜벅뚜벅, 발소리는 쿵쾅거리면서 살찐 검은 소에게 다가간 거예요! 어떻게 되었겠어요?”
“모르겠어! 어떻게 되었죠?”
4미터가 넘는 바위 괴물이란 말에 투란은 ‘오옷!’ 하는 소리부터 냈고, 이어 나온 묻는 말에는 세차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멜란드는 손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검은 소가 음매에에 하는 것처럼 혀를 날름거리면서 입을 열었는데, 그 입속에서 불길이 좔좔 흘러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불길이 돌돌 뭉치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동글동글한 공이 되어서는…… 에, 그게 뭔 소리였지? 제란드 형, 그 소리 낼 수 있어?”
자기 입으로 하려다가 안 되는 것에 좌절한 표정으로 멜란드는 제란드를 이야기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우선 한숨부터 쉬고, 제란드는 가볍게 입술을 오므리며 세찬 휘파람 소리를 내고 말한다.
“이런 소리 다음에 뭔가 펑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지.”
“와! 그래서요?”
투란은 제란드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대는 멜란드를 보며 재촉했다.
멜란드가 제란드처럼 휘파람 소리를 내려다가 포기하고, 말을 잇는다.
“사 미터짜리 인형 바위가 뻥뻥 뚫렸어요. 그 검은 소가 입으로 동글동글한 불덩이를 몇 개 불어냈더니, 인형 바위에 구멍이 나 버린 거예요! 돌인데, 불에 맞아서 완전히 뚫리고 박살났죠! 불에 닿은 바위 부분이 벌게져서 녹아내리기까지 하더라고요! 굉장하잖아요?”
“굉장해! 바위를 뚫는 불덩이라니!”
“그런데 더 굉장한 것은…… 그 인형바위가 몸통이랑 목이랑 배를 그렇게 뚫리고 조각났는데, 조각난 것이 다시 꿈틀거리면서 머리랑 팔다리를 쑥쑥 펼치는 거였어요! 사 미터짜리 덩어리가 겨우 일 미터, 이 미터짜리 조각이 되었는데도 인형 바위는 작아진 채로 다시 어슬렁거리며 걸을 수 있는 몰골이 되더라고요.”
“헐? 그렇다면! 그대로 도망쳤어요?”
“아, 그게 웃기더라고요. 팔다리 쪽에서 좀 큰 덩어리가 남아 생긴 인형 바위는 검은 소에게 달려들었고, 머리라든가 뚫린 탓에 깨져서 아주 작아진 쪽에서 나온 인형 바위는…… 진짜 애들이 갖고 노는 인형 크기가 된 녀석들은 도망치는 거예요. 설마 그럴 줄은 몰랐는데…….”
“우아아! 그래서, 검은 소를 팼어요?”
“어? 아니, 뭐…… 검은 소가 계속 불덩이를 뿜어냈어요. 그래서 박살나고 녹아버리고 하면서…… 도망치지 않은 인형 바위가 더는 팔다리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이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말았죠.”
멜란드는 결말이 너무 싱거웠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투란은 아직 남은 부분을 더 캐내겠다는 듯이 묻는 소리를 이어낸다.
“그래서, 그 인형 바위의 조각을, 삼켰어요?”
“에? 아…… 가까이 못 갔어요. 겔퍼가…… 인형 바위라는 거는 작게 조각났다고, 끝장난 게 아니라고 해서요.”
“조각나서 더 이상 팔다리, 머리를 못 내놓는데 끝난 게 아니라고요?”
“어, 그랬어요. 그리고 봤어요. 작게 조각난 것들이, 바위가 아니라 자갈 더미처럼 들러붙고 뭉치더니…… 덜렁거리고 가끔 몇 조각씩 흘리는 이상한 꼴이 되어서…… 인형 바위가 아니라 인형처럼 뭉친 자갈더미처럼 되어서 도망가더라고요. 음, 그때는 검은 소한테…… 플레임 불한테 더 덤빌 수 없다는 걸 겨우 안 모양이었어요.”
“에엣! 그거 한 조각이라도 낚아채서 삼키지!”
투란은 몹시 아쉬워했다.
멜란드도 이 이야기와 함께 회상하며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런 광경을 보던 제란드가 혀를 차며 한마디 한다.
“인형 바위란 몬스터는 돌이 된 채로 움직이는 재주가 전부라고 했어요. 그랑츄의 주먹질이라든가…… 힘센 장정이 휘두르는 망치질에도 깨져나간다고요. 뭐, 그때 마법사가 완전히 정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 얘기는 나도 들은 적 있어요. 움직이는 돌덩이라 신기하고 위험하기는 한데, 그렇게 사냥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이유가 그 탓이라고. 망치질이나…… 웬만큼 힘센 사람이면 맨주먹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근데, 그것도 덩치가 그렇게 크면…… 아하핫!”
투란은 대꾸를 하다가 갑자기 몇 미터짜리 괴물을 떠올리고 좋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을 듣고 투란을 보다가 페란드가 조용히 말문을 연다.
“오는 동안…… 그렇게 보기만 해도 굉장해 보이는 괴물을 몇몇 봤지요. 그럴 때마다 마법사는 우리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피해가는 길을 골라냈어요. 그때도 좀 이상하고 애매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우리가 새로운 몬스터를 삼키는 것을 꺼린 듯한 기분도 들 정도였어요.”
“아마도…….”
페란드의 말에 시알라도 천천히, 차분한 태도로 입을 열고 있었다.
“그 마법사는 우리를 통해서 세란드 오빠를 잡으려고 했었으니까. 혹시라도 우리가 강해져서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수작을 부린 거라고 생각해. 오빠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이어받은 투란이 있었지만…… 마법사는 그런 줄 몰랐잖아. 그러니까, 음, 그 전의 자신을 죽이기까지 했던 세란드 오빠의 경우도 있으니까 우리를 적당히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는 수준에 묶어두려고 했겠지.”
제란드와 멜란드가 고개를 끄덕였고, 페란드도 입을 다물며 인상을 찌푸린 표정인 채로 동의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 세란드 형이 해준 말대로라면, 황금매의 문장이 불안한 상태에서도 일단 몬스터 엠블럼이라서 몬스터를 삼킬수록 강해졌다고 했으니까. 마법사는 그런 형의 문장을 빼앗으려 온 거지, 우리를 강하게 해서 형을 만나게 해줄 생각은 아니었겠지.”
말이 끝나고 조금 숙연하고 분해하는 분위기가 남매 넷을 맴돌았다.
속아서 왔고, 이용당하기만 한 듯한 과정이 되새겨보기만 해도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는 듯…….
인형 바위 이야기에서 심각하게 돌려진 말을 듣던 투란이 살그머니, 조용히 입을 열어 묻는다.
“그러면, 여기 오는 동안에 삼킨 몬스터가 없어요? 어쨌든 황금매의 문장을 새겼으면, 그래도 한두 가지 몬스터는 삼켰어야 할 텐데?”
시알라부터 눈을 깜박거렸고, 동생들을 둘러봤다.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가 그런 누나의 눈길을 마주 보다가 ‘어.’라든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멜란드가 씁쓸하게 답을 한다.
“딱 한두 가지였네요, 투란. 마법사는…… 정말 우리에게 한두 가지 몬스터만…… 산맥 안으로 들어와서는 거의 도망치고 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였고, 경계도시 쪽에서는…… 이미 지닌 마법만 못한 몬스터를 삼켜봐야 우리가 지닌 그릇만 낭비하는 셈이라고, 잘 고르라면서 삼키지 못하게 했었어요.”
“딱 한두 가지라…….”
투란은 눈매를 좁히면서 중얼거렸고, 곧 다시 묻는다.
“그 한두 가지, 아직 남아 있어요?”
“에? 아니요, 난…….”
멜란드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곧 멜란드는 누나와 형들을 바라봤다.
멜란드 자신에게는 남은 것이 없지만 누나와 형들까지 그럴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알라도 말없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곧 제란드도 ‘없어요.’라고 짧게 답했고, 페란드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답한다.
“남겨질 수가 없었던 것 같군요, 투란. 이 새로운 황금매가 새겨질 때…….”
페란드의 손끝이 자신의 가슴을 살짝 더듬으며 말이 이어진다.
“그 전의 황금매는, 몬스터 에센스를 간직한 그대로 둥근 고리 너머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어요.”
시알라도, 제란드와 페란드도 곧 ‘그랬어.’ 하며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는 곧 투란에게서 ‘어라?’ 하는 소리를 꺼내게 했다.
“둥근 고리 너머? 모두?”
투란이 알기로는 그럴 리가 없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