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69)
“투란, 저거 구속주문이잖아!”
제란드가 소리쳤다.
시알라도 세게 투란을 부른다.
“투란! 이거…….”
그러나…….
“웃차! 모두 한 손을 높이 들어! 어서 멜란드! 다들 어서!”
밝고 가볍게 소리 내면서 투란이 오른손을 활짝 펼친 채로 높이 치켜올리고 있잖나! 급한 소리를 내던 제란드와 시알라가 ‘엥?’ 하는 소리를 낼 때, 당장 자기 몸 가까이 들러붙으려는 사슬, 길게 이어지는 금빛 끈을 보면서 멜란드가 얼른 한 손을 높이 치켜올렸다. 페란드도 ‘이게 뭐야…….’라는 중얼거림을 토해내기는 했지만, 곧 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결국 시알라와 제란드도 엉거주춤한 태도로 한쪽 손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투란이 즐거워하는 꼴이 위험하다는 분위기는 전혀 없는 듯하므로!
물론 루케인이 갑작스럽게 터뜨린 이 마법의 분위기는 투란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위험하게만 느껴지기는 했다. 그러나…….
“로열 클래스로 보호되는 비밀은 상아탑이 보호하지! 상아탑이 보호하는 비밀을 근거로 해서 상아탑이 구속할 수는 없어! 구속대상이란 것보다, 로열 클래스가 우선이니까!”
곧이어 투란이 경쾌하게 터뜨린 외침이 루케인에게 닿은 듯했다.
금색이었던 눈동자의 색채가 다시 루케인 본래의 색인 옅은 회색과 짙은 갈색이 섞인 빛을 띠었고, 작게 주변을 둘러보는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곧이어 껌벅거리는 눈꺼풀 틈새로 루케인이 눈동자를 데굴거리면서 상황을 보려는 듯한 낌새가 엿보였다.
그 사이에 금빛 사슬은 길게 이어진 끈처럼 형태를 변화시켰고, 투란이 내민 팔뚝부터 시작해서 네 남매의 팔뚝을 차례대로 휘감으며 금색의 고리처럼 들러붙었다.
루케인의 목소리가 그다음에 느릿하니 울려 나온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뭐라 했나?”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꺼낸 소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말투였다.
투란이 바로 대답해준다.
“할라트, 샤이닝 팔콘.”
“황금의 매!”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 듯, 루케인이 멜란드를 향해 눈길을 박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투란을 보고, 시알라를 보고…… 페란드와 제란드를 둘러보면서 짧은 한마디를 토한다.
“모두?”
“모두.”
투란이 그 한마디를 바로 되풀이했다.
시알라가 눈가를 찌푸리면서 묻는다.
“무슨 일이야, 투란? 루케인, 방금 대체 왜 그런 거예요?”
둘은 뭔가 주고받으며 아는 듯했지만 시알라에게는, 네 남매에게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믿고 그냥 넘기려 해도 팔뚝에 휘감긴 마법은 꽤 강력해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느낌이었으니, 시알라로서는 지금 당장 확인해야 했다.
투란은 시알라에게 괜찮다는 표정부터 지어 보이고 말한다.
“상아탑에서 다른 곳으로 파견되는 마도사에게 대비시켜놓는 오토 리액션의 마인드 트릭이야. 황금매의 문장이 트리거였던 거지.”
“왜?”
시알라는 심각하게, 짧게 되물었다.
이에 투란이 루케인을 흘깃했고, 이를 느낀 루케인이 바로 대답을 한다.
“옛날에 할라트라는 몬스터 로드가 지녔던 엠블럼이니까. 그 황금매가 아니었다면 할라트가 재앙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또다시 황금매가 출현할 경우, 상아탑의 마도사는 바로 그에 대응하도록…… 그렇게 훈련되어 있다. 본인이 그 과정을 느끼든 말든, 그건 전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말이야. 마인드 트릭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서 자기 심리구조에 직접 반영해놓은 주문이라서 뭔가 생각하기도 전에 발동을 건 거야. 하지만…… 로열 클래스가 그보다 우선이라서, 어중간하게 멈춰진 거고.”
시알라는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부터 지었다.
하지만 제란드는 ‘과연.’이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페란드는 ‘그렇게까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멜란드는 자기 가슴을 문지르면서 ‘재앙이라니? 왜?’라고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시알라의 눈길이 잠깐 그런 세 형제를 스쳤다가 투란에게 옮겨졌고, 다시 묻는 말이 나온다.
“투란, 그 할라트인가 하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보호받아야 하는 거였어?”
여기까지 와서, 굳이 수백 닢의 금전을 써가면서 상아탑의 보호를, 연계된 헌터 길드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한 까닭을 투란은 가보면 안다고 얼버무려 왔다. 하지만 지금 마법사의 반응을 보니, 이게 아무래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 같잖은가!
한데 투란은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할라트는 나도 잘 몰라. 내가 걱정한 일은 황금매를 실험하려던 마도사야. 루케인, 상아탑에서 아겔페스라는…….”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가 바로 황금매의 각인을 조작해낸 작자지. 대마도사가 되기 위한 연구가 어긋나면서 황금빛 매의 문장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어. 하지만 그 문장을 전이받은 할라트는 그게 왜 재앙인가를 증명했지. 그런데…… 할라트를 모른다면서 아겔페스는 어떻게 알지? 그 옛날이야기를 안다면, 둘 중 하나만 거론되는 일은 없을 텐데?”
루케인이 품은 의문에 대해 투란은 살짝 웃었고, 시알라는 의아해서 되묻는 소리를 해야 했다.
“옛날……? 루케인, 아겔페스와 할라트가 옛날이야기에 나온다고요?”
“수백 년 전 이야기잖아. 당연히 함께…… 무슨 일이야?”
루케인은 대꾸하다가 이상해지는 시알라의 표정, 덤으로 세 형제도 뭔가 아연해지는 광경을 보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루케인을 향해 투란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면서 대답한다.
“세란드가 마도사를 죽였어요. 그때 마도사는 자신을 아겔이라고 했죠. 그 아겔은 세란드를 자기 마법의 실험대상으로 삼았어요. 제대로 되지 않은 이상한 황금의 매를 세란드에게 새겨줬으니까요. 아마 할라트인가 하는 사람 때에 잘못된 뭔가를 고치려 한지도 모르겠군요. 그걸 알게 된 세란드가 마도사 아겔을 죽인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를 찾아온 마도사가 있었어요. 그냥 흔한 마법사 흉내를 냈던 그는…….”
“겔퍼? 겔퍼 얘기야?”
루케인이 금색 무늬가 맴도는 눈가를 찌푸리면서 확인하려 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 둘을 세우면서 말을 잇는다.
“여기 넷에게 황금매의 각인을 심었어요. 역시나 세란드 때처럼 불완전하고 이상한 각인이었죠.”
“황금매를 다루는 마도사는 아겔페스뿐이었어! 아겔페스에게는…… 마법의 전승자도 없었는데? 상아탑의 기록에는 아겔페스의 마법은 누구에게도 전해진 적이 없다고 했는데!”
루케인은 가늘어진 목소리로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투란은 세운 두 손가락을 흔들며 거침없이 다시 이야기를 잇는다.
“세란드가 아겔을 죽인 것처럼, 겔퍼도 우리가 죽였어요. 그런데…… 그때, 겔퍼가 그러더라고요. 다시 만나자고. 몸이 박살 나서 흩어지면서도 낄낄거리는 꼴로, 세란드에게 죽었다가 돌아왔다면서 또 만나자고.”
“뭐?”
루케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투란이 말한 대로냐는 듯이 시알라를 바라봤고 곧 눈길을 세 형제 쪽으로도 흘렸다.
시알라가 조금 불편한 표정과 함께 그 눈길에 답한다.
“우린 정신을 잃고 있었고…… 투란이 마무리 지었어요.”
루케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한다.
“아겔페스는 수백 년 전 사람이야! 대단한 마도사이기는 했지만, 세월을 뛰어넘는 마도사는 아니라고! 그런 아겔페스를…….”
“그 부분이 상아탑에서 잘못 알고 있는 얘기일 거예요.”
투란이 루케인의 말을 자르면서 세 번째 손가락을 폈다.
세 손가락을 세워 흔드는 투란을 루케인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서 설명하라고 재촉하는 듯한 루케인의 눈빛에 답하듯이 투란이 이야기한다.
“아겔과 겔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둘은 똑같은, 한 명의 마도사란 거예요. 마치…… 아겔이란 몸이 죽고 나서 겔퍼란 새로운 몸이 생겨난 것처럼, 그렇게 세월을 속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마법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둘은 한 사람이었고…… 세란드가 만났던 아겔 이전에도, 아겔페스는 또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겔 이후에 겔퍼가 나타났던 것처럼,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고 말이죠!”
“이런 젠장!”
루케인의 얼굴 위에서 금색 무늬가 일그러지는 표정이 떠올랐다.
겨우 투란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는 듯했고, 그 때문에 놀란 듯한 루케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투란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확실하지는 않아요. 세란드는…… 죽음에 이르러서 겨우 황금매의 완성된 형태를 찾아냈고, 내게 전해줬어요. 아겔, 그 이름을 쓰던 금색의 마도사에게서 오래된 마도구를 빼앗아 겨우 해낼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어쩌면 아겔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었죠.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거의 마지막 농담인가 했는데, 설마 세란드의 동생들을 끌고 겔퍼가 나타나 버렸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못된 건지, 세란드를 그렇게 괴롭혀놓고 동생들까지 끌어들여서…….”
“적성자(適性者)의 혈통 때문이겠지.”
“에? 적성자?”
갑작스럽게 툭 던져진 말에 투란이 갸웃했다.
루케인은 한숨부터 쉬고, 반짝거리는 금색 무늬 속에 가려진 듯한 얼굴을 진지하게 꾸미면서 말한다.
“하나씩 교환하자고. 우선, 세란드가 빼앗았다는 마도구…… 황금의 매에 대해 세란드가 어떻게 할 수 있도록 해준 그 마도구는 어떻게 되었지?”
“내가 세란드랑 만났을 때는 없었어요. 꽤 위험해서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뭔지 알아요?”
투란이 살짝 눈을 가늘게 하면서 캐묻는 듯이 말했다.
루케인은 흘깃 시알라 남매를 바라보고 나서 대꾸한다.
“리틀 옴니무스. 금색의 마도사란 호칭이 생겨나게 한 마도구야. 금빛을 가득 머금은 듯한 모양이라더군. 그래서 아겔페스를 금색의 마도사라고 불렀다더군. 늘 그걸 지니고 다녔으니까.”
“흠…… 그랬나…… 그런데 적성자가 뭐예요? 혈통이라니?”
투란은 다시 갸웃하면서 묻고 있었다.
루케인이 씁쓸하게 시알라 쪽을 다시 흘깃하며 대답한다.
“황금의 매는 불완전했어. 할라트라는 새로운 계통의 몬스터 로드를 탄생시키기는 했지만, 할라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황금의 매를 각인받은 다른 이들에게는…… 몬스터 엠블럼의 특성이 없었다는 거야. 즉, 황금의 매는 특별한 체질을 지닌 자에게 각인될 때만 몬스터 엠블럼으로서 기능하는 거지. 그 체질을 지닌 이들이 바로 적성자, 황금매의 적성자란 거야. 아마 세란드에게서 몬스터 엠블럼의 특징이 드러났다면…… 한 핏줄인 형제자매에게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겠지.”
“과연…… 세란드 앞에 인질로만 내세울 생각은 아니었단 얘기군요.”
투란이 납득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매는 인질이란 한마디에 꽤 불편한 표정을 짓고 말았지만!
루케인은 그런 표정을 살피다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그런 일에 휘말려서 상아탑이 신분을 위조해주고, 신변정보를 감춰주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랑 엮어서 로열 클래스로 지정받으려 했다는 이야기로군. 말이 되기는 하네…… 근데 대체 어디서 들었지? 이 로열 클래스는…….”
“그건 비밀. 내 비밀이라기보다는 내게 그 얘기를 해준 사람에 대해서 내가 뭐라 할 수 없다고요.”
투란은 다시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대면서 고개를 젓는 채로 대꾸하고 있었다.
이는 루케인이 낯을 잠깐 구기게 했지만, 결국 납득시킨 모양이었다.
“그렇겠군. 그 사람도 로열 클래스에 지정되어 있다면, 여기서 들어봐야 어차피 비밀이고…… 아예 듣지 않는 편이 좋기는 하겠어.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투란, 자네의 숨겨야 할 비밀 중에 한 가지는 확실히 하자고. 자네도 황금매의 적성자인가? 그렇게 봐도 돼?”
“아닐걸요. 세란드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난…… 으흠, 황금매에 대해서 가능한 한 떠들지 않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황금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은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겠군. 아, 젠장…… 이거 내 선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네.”
루케인이 느릿하니 손을 움직여 허공에서 맴도는 금색 무늬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투란이 바로 물었다.
루케인은 스윽 투란부터 시알라를 거쳐 모두를 둘러보며 말한다.
“할라트가 일으킨 재앙이 가볍지 않다는 뜻이야. 그 덕분에 황금의 매에 대한 어떤 단서가 나타나면, 일단 상아탑에 제대로 보고를 해둬야 해.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지! 로열 클래스의 정보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은폐시켜야 할 정보가 되는 거야. 한데 내가 아직 중급 마도사로서 완전하지가 않거든. 로열 클래스의 지정, 황금의 매에 대한 단서. 둘을 하나로 묶어서 동시에 처리할 수가 없어. 내 능력이 모자란다고. 게다가 저 금까지…… 하아, 하핫……. 지난번 승급에 성공했으면 그럭저럭 어떻게 되었을 텐데……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