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6)
Chapter 176. 루곤, 산악의 요새왕국
루곤은 본래 고대(古代)에는 바로크 왕국의 성채였다.
에아본 왕국의 멸망, 그로인한 격변은 국경의 성채였던 루곤을 모국으로부터 수십 년간 단절시키고 독자적인 생존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성채도시 루곤, 왕국으로 일어선 루곤이었다.
그리고 다시 교류가 시작되면서 바로크 왕국은 그 독립과 생존을 축하했고, 그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루곤은 북벽산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작은 왕국으로서 유지되어 왔다.
‘저게 산악왕국 루곤이란 말이지.’
도감의 간략한 설명을 되새기면서 투란은 가만히 루곤 ‘성채’를 노려봤다.
그런 투란의 곁에서 쿤토르의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저쪽 기슭을 넘어가면, 성채로 들락거리는 인간의 부락이 있다. 인간, 우리의 여정은 이번에는 여기까지로 끝난다. 왕이 되어 돌아오라, 쿤토르가 숲의 마수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겠다!”
“어…….”
투란은 쿤토르를 보며 어정쩡한 대꾸를 했다.
가죽을 몸에 두르고 그 가죽 틈새에 울버린을 끼워넣은 쿤토르는 이제 홀로 대삼림으로 뛰어들 준비가 끝난 모습이었다.
어느새 쿤토르와 함께 북벽 산맥의 숲 한편을 넘어온 것도 거의 삼십여 일이 지났고, 지금이 바로 헤어질 순간이었다.
투란도 그렇지만 쿤토르 역시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아쉬움 따위는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쿤토르는 지금 불타오르는 투지를 그 적갈색 눈동자에 가득 담고 드러난 어깨와 팔뚝에 힘줄을 불끈거리고 있었다.
그 꼴을 보면 투란은 살짝 미안한 기분이었다.
쿤토르의 투지 넘치는 저 모습이 거의 드라고니아에게 사기당한 것 때문이니까!
쿤토르는 그런 것 모른다는 듯이 투란에게 다짐하고 작별을 할 뿐이었다.
“그럼, 인간…… 눈보라의 높은 산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꼭 왕이 되어라! 쿤토르, 인간을 기다리겠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쿤토르의 우람한 팔다리는 유연하고 부드럽게 변했고, 어느 틈엔가 ‘오크라 켈카르’의 몸뚱이는 누더기 같은 가죽더미로 감싸인 검은 표범처럼 뒤바뀌어 숲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멀뚱히 보면서 투란은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모그와…… 몬스터 엠블럼이랑 정말 관계없는 건가?”
시원하게 쿤토르가 사라지는 풍경 위로 프로브를 반짝거리게 띄우면서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없어. 굳이 찾는다면, 몬스터 엠블럼이 온갖 최상위 마법, 혹은 최상위를 초월한 마법이 집결된 마법이니까 다른 세상의 고대주술이 가진 성질조차 내포하고 있는 탓이라고 해야겠지. 모그와는 철저히 오르카에게 맞춰진 주술이고, 다른 종족의 어떤 마법과도 구별되는 특성을 지녔다. 그러니까, 넌 모그와 못 쓴다고!
“쳇…….”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다.
숲의 바람은 언제나 그렇다는 듯이 투란의 머리카락을 스쳐갔고, 쿤토르가 남겨준 가죽 틈새로 스며들었다. 제대로 된 가죽옷은 전혀 아니었지만, 쿤토르가 오르카의 방식으로 접고 말아 만든 가죽은 훌륭한 사냥꾼의 옷 노릇은 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찬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투란의 살갗을 스쳐가는 듯했다.
―그래서 이제 쿤토르랑도 갈라섰고…… 어떻게 할 거냐?
‘뭘 어떻게 해? 쿤토르 덕분에 단서가 늘어났잖아. 유렐리아를 확인해야지.’
투란은 다시 루곤 왕국을 바라보면서 입을 다문 채로 소리없이 대답했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삐딱한 분위기로 말한다.
―쿤토르의 도움을 얻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그냥 저리 보내는 것보다는…….
‘얀마! 너 그렇게 사기를 쳐놓고 아직 부족하냐!’
투란이 바로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루곤 왕국의 성채가 박혀 있는 듯한 거대한 절벽, 마치 북벽 산맥을 처음 가까이에어 올려다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절벽을 향해 터져 나가려는 으르렁거림을 자제한 투란이 참았던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내겠다는 듯이 계속 소리 내지 않고 말한다.
‘언젠가는 왕이 된다니, 내가 왜 언젠가 왕이 되냐고! 그러니까 올 때까지 기다리라니, 그리고 뭐? 기다리다 뒈져도 몰라라 할 수 있다고? 대체 왜 그딴 기괴한 약속을 네 멋대로 한 거냐고! 대체 왜 내가 왕이 되는데!’
―흠, 투란 너 혹시 왕이란 것이 꼭 나라를 차지하고 공민을 다스리며 책임져야 하는 자라고만 생각하는 거냐? 키린 녀석의 양부(養父)에 대한 이야기 못 들었어? 그는 책임질 공민도 없고 나라도 없다만…….
‘괴물왕? 나도 그런 별명을 얻으면 된다고?’
한층 더 어이없어 어깨까지 늘어뜨리면서 투란이 웅얼거렸다.
확실히 반역왕과 괴물왕자, 그 이야기 속에 반드시 끼어드는 인물이 바로 괴물왕이었다. 키린이 괴물왕자라 불리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 자, 열다섯도 안 된 키린을 몬스터 로드로 만든 자.
그리고 몬스터 로드 중에서 최상급이라 불리는 황금날개의 패자(霸者)라 일컫는 이를 키워내기도 한 괴물왕.
저 유명한 벤담 시티조차도 괴물왕의 입김이 있었기에 작은 마을에서 도시가 되었다고 하잖던가!
그런 위업이 있기에 그를 일컬어 괴물왕이라 부르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별명!
‘쿤토르가 말하는 위대한 왕이 절대 그런 것이 아닐 텐데?’
―훗, 투란, 예언을 그 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원래 예언이란 것은…… 이리 붙이면 이런 소리가 되고 저리 붙이면 저런 소리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예언 따라 너를 만나러 왔다는 놈이 굉장히 그럴듯하게 네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려도, 사실은 너랑 아무 상관없는 일인 경우라고 생각하고 따돌려야 하는 거다!
‘너, 계속 궁금했는데 말이야. 오르카 부족, 쿤토르네 종족한테 굉장히 좋지 못한 꼴이라도 당한 것 같다? 그런 일 있었어?’
―무슨 헛소리냐? 난 이 대삼림에 내려앉아 저 답답한 녀석들이랑 웃고 떠들고 팔딱대며 대화하는 시늉을 해본 적 없어! 그런 짓을 하느니 차라리 저놈들 전사랑 결투를 하겠다!
투란은 잠시 멍하니 루곤 왕국, 성채도시의 풍경을 바라봤다.
드라고니아가 오르카란 종족에 대해서 매우 나쁜 관점을 숨김없이 드러내지만, 정작 왜 그러는가는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관점이 투란 자신에게 해로운가를 따지려 하면 그렇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쿤토르가 무슨 예언의 칼을 들고 나선 것은 그 부족 내에서도 말이 많았던 일이었고, 다른 오르카 중에서는 쿤토르를 배신하고 절벽에서 떠밀 정도로 과격한 행동을 하게 한 선택이기도 했다.
쿤토르 역시 그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설마 배신까지 하려나 하면서, 전사의 긍지가 걸린 일이라고 물러서지 못하고 나섰다가 웃기지도 않는 괴상한 함정에 걸려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린 쿤토르가 내린 결론이 ‘칼에 담긴 예언대로 나는 왕이랑 만난 것’이었기에 투란이 질겁했고!
그렇게 예언이 옳으니까 투란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쿤토르를 드라고니아는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한다며, 일단 쿤토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은 적당히 구슬리겠다고 투란을 구슬려놓고…… 사기를 쳤다!
언젠가 투란이 ‘왕’이 되는 날, 대삼림으로 쿤토르를 찾아온다고!
투란으로서는 ‘그런 날이 오겠냐!’라고 발끈할 이야기였다.
듣자마자 깃발 휘날리면서 전쟁한다는 얼간이들 이야기가 바로 팍 투란의 뇌리에 치솟은 때문이었다.
몬스터나 마수랑 싸우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죽어나가는 군단병이 왕국에 가득한데, 대체 뭘 또 인간의 군단끼리 싸우냐는 전형적인 춤추는 산맥의 사람다운 관점에서 인간끼리의 전쟁만큼 얼빠진 짓은 없으니까.
설마 자신이 나라 하나 차지하겠다고 그런 짓을 할까!
물론 반역왕처럼 잊혀진 혈통이 어쩌구 하면서 왕이 되는 이야기를 투란도 좋아하기는 했다. 투란뿐이 아니라 샤오 마을에서 부모가 불분명한 아이들은 다 좋아했다. 먼저 마을을 떠났던 로잭 역시 아닌 척해도 그런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으니까. 물론 부모가 아주 명백한 티아라도 좋아하기는 했다…… 자기가 사실은 어느 나라의 공주인데 이 부모가 납치해서 샤오 마을 같은 곳에서 키운다는 말도 가끔 했었고, 엉덩이를 까인 채로 엄청 볼기를 맞기는 했지만 좋아했다.
그래도 투란은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아주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몬스터 엠블럼을 억제할 부적도 준비했었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애초에 예언이 따른다는 녀석들은 바퀴벌레나 풍뎅이처럼 아무 곳에서나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하거든. 그런 녀석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그런 녀석들한테는 자기네 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라고 권해주고, 넌 네 갈 길 가면 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눈으로 루곤 왕국의 형세를 살피면서 마음으로 쿤토르와의 일을 더듬는 투란에게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
더 생각해봐야 투란에게는 쿤토르를 설득할 방법이 없기는 했다.
이미 떠났기도 했지만, 함께 오는 동안에도 예언에 대한 엄청난 신뢰를 품은 쿤토르를 설득할 말을 찾을 수 없어서 드라고니아의 사기 치는 이야기에 대해 뭐라 하지 못하기도 했으니.
‘그래, 이제 와서 뭘 어쩔 수는 없지, 그보다 루곤 왕국, 저 성채가 도시이고 나라란 말이지? 절벽에 딱 붙여놓은 저 모양이…… 원래 성채가 반 토막 난 탓이라고?’
투란은 쿤토르와의 일을 마음 한편에 덮어두면서 다시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입고 있는 가죽은 ‘벌써 잊으려고?’ 하며 따지듯이 쿤토르가 만들어줬다는 것을 강조하는 냄새를 바람과 함께 투란의 콧속으로 찔러넣는 중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더 빨리 더 깊이 쿤토르를 파묻어버리기로 했다. 오르카에게는 그냥 넘길 수 있는 듯했지만, 사실 생가죽을 벗기고 쥐어짜내서 덜렁 몸에 걸치고 그 냄새를 맡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북벽 산맥과 춤추는 산맥은 원래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지반이 쪼개지고 갈라지면서 한쪽은 변화하는 지형으로, 한쪽은 변화하지 않는 지형으로 바뀌어버렸지. 그리고 그 첫 번째로 일어났던 대지진은…… 멀쩡한 성채를 반 토막 내서 한쪽은 위로 끌어올리고 한쪽은 그 단면에 들러붙는 몰골을 만들어낸 셈이지. 고대왕국 에아본의 멸망할 무렵이었을 테니…… 이것도 어영부영 천 년 전 격변의 유산인 셈이다.
‘쪼개졌는데 그걸 계속 보수해서 저 모양이라, 여기 사는 사람들도 한 성질 하는 모양이네.’
투란은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루곤의 풍경을 멀리 보면서 툴툴거렸다. 보통 살던 곳이 저리 토막 나고 주변이 엉망진창이면 어찌 되었든 안전한 곳으로 탈주할 생각부터 할 텐데, 루곤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성채를 수선하고 자리를 지키면서 아예 눌러앉았다. 절대로 얌전하거나 상황에 순응할 작자들이 선택할 짓은 아니다.
그 후손은 과연 어떨까?
과연 투란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겠다고 하면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를 할 것인가?
끼에에에에!
절벽 높은 곳에서 거칠고 사나운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성채의 곳곳에서 작은 소란을 피우며 돋보였다.
투란이 귀를 쫑긋하니, 그 소란의 효과인 것처럼 굵고 긴 창이 울부짖음을 향해 성채에서 쏘아지고 있었다.
‘발리스타?’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고 저 창이 사실은 대형 쇠뇌살이란 것을 확인했다.
성채 곳곳에 설치된 대형 쇠뇌, 발리스타로부터 쏘아진 쇠뇌살은 허공에서 섬뜩한 울부짖음을 일으키며 절벽 높은 곳에서 하강하고 있는 마물(魔物)…… 투란이 보기에는 와이번인가 싶은 것을 꿰뚫으려 날고 있었다.
―마이너 와이번이군.
‘마이너?’
―머리에서 꼬리까지 다 해봐야 7, 8미터 안쪽인 놈들이다. 가늘고 긴 목이랑 꼬리를 생각하면 체격이 큰 말이나 소 주준인 녀석들이지. 몬스터로서의 성질도 거의 사라져서 그냥 마수 취급받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저건 확실히 몬스터라 해도 좋을 듯하군.
‘어? 어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과 함께 마이너 와이번, 체격이 작아서 마이너라고 하는 것인가 마수에 가까운 경우라 마이너라 한 것인가 애매한 와이번이 입으로 뭔가를 토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날아든 쇠뇌살 여럿이 그 토사물에 부딪혔고 바로 증발해버렸다.
‘애시드 브레스? 슬러쉬가 쓰는 거 아닌가?’
문득 강력한 용해성을 지녔다는 구토를 해대는 몬스터를 떠올리며 투란이 갸웃했다. 와이번이 무슨 브레스를 뿜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드래곤 브레스라고 통칭되는 불꽃 뿜어내기이지 저런 희끄무레하고 괴상한…… 딱 배 속에서 삭힌 뭔가를 토해낸다는 이야기는 낯설었으니까.
―포이즌 브레스, 독극물을 토해낸 거다. 와이번 품종 중에 열에 넷은 독을 뿜어. 불길이 아니라. 하지만 저놈은 그보다 더하군. 특수하게 처리된 강철 쇠뇌살 같은데 그걸 녹이네.
‘흐흠, 그렇다면…… 못 잡는 건가?’
―잡을 수도 있어 보인다. 저 쇠뇌살은 그냥 미끼이니까, 투망에서 녀석의 주의를 떼어내려고 쏜 것이니 말이야.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루곤 성채에서는 쇠뇌살에 이어 그물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투란이 보기에는 그것도 그냥 녹아버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