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04
#303화
일주일 전,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네 사람의 반응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생포한 네임드 몬스터를 조종해서 레이드를 해? 으하하! 이런 미친놈!’
‘……너 진짜 미친 새끼니?’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정말 미쳤습니까, 진태경 헌터님?’
‘미치셨군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웃었던 사람은 임꺽정뿐이었다. 송송이와 김 집사, 그리고 최 팀장는 나를 정신병자 보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별수 있나.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언론은 활화산처럼 터졌고 나는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아는 유명인이 되어 버렸다.
“그때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파파파팟!
워로드몬의 전광석화를 보고 있던 최 팀장이 한탄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엎지른 것치고는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하게 수습되었다.
“그래도 잘 넘어갔잖아요.”
철저하기로 유명한 정부 소속의 감사(鑑査)팀조차 이번 일의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당연했다. 거기에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도 있었다.
“마력 측정기로 실시된 마력 분포 조사도 통과. 스켈레톤 워로드가 입고 있던 갑옷 파편에 뼈까지 나왔으니 프리패스죠.”
모든 것에는 흔적이 남는 법.
일섬에 녹아내리거나 박살 난 여타의 스켈레톤과 달리, 단단하기 그지없는 워로드의 뼈는 그 형태를 멀쩡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대한 마력을 고스란히 머금은 뼈들은 네임드 몬스터의 존재와 처치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물로 채택되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사골들, 경매에 부치지 않았어요? 낙찰가가 얼마 정도 되려나?”
– 사골이라니! 내 존귀한 몸을 그렇게 부르지 마라!
“아직도 처지를 모르네. 워로드몬, 몸통박치기.”
퉁! 퉁! 퉁!
테니스공처럼 사무실 벽을 맞고 튕겨 나온 워로드가 구슬프게 턱뼈를 딱딱거렸다.
– 아아, 나의 충직한 병사들이여. 그대들이 보고 싶구나.
“그래서 이번 달 상납 병력은?”
– ……조속히 채우도록 하지.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예술적인 각선미를 자랑하는 다리가 들어서려다 말고 멈칫한다. 나는 엷은 갈색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진태경 이 미친놈아. 너 같으면 말하는 해골로 공놀이 중인 방에 들어가고 싶겠니?”
“응.”
나는 질색하는 송송이를 향해 스켈레톤 워로드를 흔들어 보였다.
“워로드몬. 놀래키기.”
“꺄아아악!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워로드몬, 꼬리 흔들기.”
– 나는 꼬리가 없다.
“그럼 전광석화.”
파파파팟!
– 으어어, 으어어어!
“꺄아아아악!”
소리 차단 마법이 있어서 다행이다.
송송이의 비명과 스켈레톤 워로드의 괴성이 아카펠라처럼 절묘한 화음을 이루던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최 팀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두 잠시만 조용히.”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최 팀장의 입술이 열린 건 몇 분이나 흐른 뒤였다.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내 물음에 최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확실해지면 알려 드리죠. 그리고 송송이 씨.”
“네?”
“일단 다음 주에 예정된 추가 레이드 일정은 취소하십시오. 제가 며칠간 업무에 소홀해질 듯하니, 김 집사님 곁에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지금의 김 집사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이번 사건에 관한 뒤처리만으로도 바쁜데, 길드원들을 통솔하여 레이드도 하는 데다가 진가심법의 수련도 병행하는 중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다른 네 명과 나눠서 하고 있긴 하지만, 명색이 길드장인 만큼 바쁜 정도가 달랐다.
“알겠어요, 그 정도야 뭐. 꺽정 아저씨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던 송송이가 멈칫하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넌 뭐 해?”
“나?”
“그러면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니?”
“워로드몬, 전광.”
“아까 그거 한 번만 더 하면 죽여 버릴 거야. 진심이야.”
“……석화.”
이쯤에서 그만해야겠군.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워로드몬을 인벤토리에 슬쩍 집어넣었다.
“이제 퇴근 준비 하려고.”
“퇴근? 난 오늘 야근인데?”
“볼일이 있어서.”
“어이구, 그러세요? 얼마나 중요한 볼일이길래 남들 일하는데 혼자 칼퇴근을 하실까?”
나는 하품을 쩍 하며 대답했다.
“시험 때문에.”
“시험? 무슨 시험?”
“무슨 시험이겠냐?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몰라?”
잠시 눈을 깜빡이던 송송이가 눈을 크게 떴다.
11월 중순. 아무리 바쁘게 사는 사람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는 알 것이다. 뉴스에서 카운트다운을 해 줄 만큼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니까.
“너, 혹시 수능 봐?”
“미쳤냐? 내 동생이지.”
사무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다섯 시. 슬슬 출발해야 끝나는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만 갑니다. 고생하세요. 송이 너도.”
푹신한 소파에서 등을 떼고 사무실을 나섰다.
수험장 근처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엄마와 열심히 문제를 풀어 나가는 하연이의 모습이 눈앞이 그려졌다.
‘걱정이네. 요즘 나 때문에 공부도 잘 안 됐을 텐데.’
하연이는 최근 몇 달간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었고, 주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야 했다.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에게는 치명적인 일.
‘미안한 일이지.’
부디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수험장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하연이의 우울한 얼굴을 보고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너…… 아니다, 고생했어.”
“그래, 우리 딸.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나와 엄마의 말에 하연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웬일이래. 얼굴 보기 힘든 분이 여기까지 오고.”
“동생이 수능을 치는데 당연히 와야지, 인마.”
“그렇게 변장까지 하고?”
“티 많이 나냐?”
“응. 밤에 선글라스랑 마스크는 진짜 별로다. 오히려 더 눈에 띄어.”
“젠장, 어쩐지 아까부터 사람들이 쳐다보더라.”
“바보야? 그렇게 대놓고 변장하면 쳐다보는 게 당연하지.”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시들시들한 회색빛 웃음. 힘이 쭉 빠져 있는 하연이를 보니 미안함이 더더욱 커진다.
“너, 괜찮냐?”
하연이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미안하다, 나 때문에.”
“만점 받을 줄 알았는데, 영어에서 하나 틀렸어.”
“오빠가 돼서 이런 식으로 피해나 주고. 내가 미안해서 네 얼굴을 볼 면목이…… 뭐라고?”
“하나 틀렸어. 하나 차이로 수능 만점이 날아갔다고!”
퍽! 퍽!
나는 분한 얼굴로 땅을 차는 하연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또라인가.’
수능 전 과목에서 하나를 틀려?
공부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니, 그전에 하나 틀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30분이나 늦게 나온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어쨌든 하나는 확실하다. 이번 겨울은 우리 가족에게 꽤나 따뜻한 겨울이 될 거라는 것.
그리고…….
“하나를 틀리다니! 하나만 더 맞았으면 만점인데 그걸 놓치다니!”
저 또라이를 냅뒀다가는 주위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 천라지망을 펼칠 거라는 것.
“개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놔! 내신 7등급 주제에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볼륨 좀 낮춰라, 제발.”
나는 발작하는 동생의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었다. 인벤토리에 넣어 둔 스켈레톤 워로드가 중얼거렸다.
–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너는 전광석화 100회 확정이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하연이의 수능도 끝났겠다, 우리 가족은 마침내 리모델링을 끝마친 과거 집으로 이사했고 이 예상치 못한 선물에 엄마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아들…… 정말 고마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뭘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나도 고마워, 아들.”
“하연아, 수능 끝난 기념으로 인생도 끝내고 싶니?”
계속 염두에 담아 두었던 일을 해결하자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두기에는 가슴 한구석이 찜찜했다.
‘가족에게 손을 뻗칠 수도 있으니까.’
가족을 인질로 잡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수법.
약점이 있는 이정룡이 그런 방법을 쓸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어차피 돈이야 계속 벌어들일 테니까 아끼지 말자.’
상위 헌터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불릴 정도의 고소득자들이다.
하지만 그 상위 헌터들조차 내 수입에 비할 수는 없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레이드를 끝내는 데다가 솔로 플레이가 잦은 덕분이었다.
헌터의 뛰어난 실력은 곧 부(富)를 부르는 법.
거기에 더해지는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건 바로 유명세다.
“김 집사님, 제 앞으로 들어온 인터뷰랑 광고. 그거 진행해 주실 수 있어요?”
“전부 다 말입니까?”
“아뇨. 중요하고 페이 높은 걸로만.”
수백 개에 달하는 제안 중 극히 일부만 진행했음에도 어마어마한 거액이 계좌로 입금되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내게 가지는 관심은 그만큼 지대했다.
몇 개의 광고와 인터뷰, TV 토크쇼 출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계좌에 박힌 숫자는 고도비만에 걸렸고 평화 길드의 주가도 솟구쳤다.
일타쌍피. 일거양득이었다.
“중요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뭐든 말씀하십시오.”
“경비 업체를 알아봐 주세요. 믿을 만한 곳으로.”
“허허, 맡겨 주십시오.”
엄마와 하연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양옆과 건너편에 이웃한 주택들이 비밀리에 팔려 나갔다는 것도. 화목해 보이는 몇 쌍의 부부가 비밀 경호원이라는 사실도.
다만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아들, 여기 부부들 되게 많이 사는 거 알아?”
“그래요?”
“응. 동네 마트 갈 때마다 마주쳐. 젊은 부부도 있고 나이 든 부부도 있는데 하나같이 자식이 없더라.”
“저출산 시대잖아요.”
“오빠, 옆집에는 남자 둘만 살더라. 서로 팔짱 끼고 다녀.”
“……성 평등 시대잖아.”
그러면 너무 눈에 띄잖아!
업체에게 재배치를 의뢰한 지 며칠 후, 하연이에게 카톡이 도착했다.
〈 진하연
진하연
대박
이번에는 여자 둘이 이사 왔어
맨날 손깍지 끼고 다님;
“…….”
이 경호업체. 믿을 수 있을까.
내 우려와는 달리 경호원들은 일을 훌륭히 해냈다.
30분 간격으로 보고가 들어왔고 늘 가족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레벨 업이었다.
띠링.
– [Lv.70 스켈레톤 아처]를 처치했습니다!
– 극히 소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힘의 차이가 심합니다. 획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극도로 감소합니다.
“오, 쒯. 하느님 제발!”
내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경험치 공장은 더 이상 내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서너 번의 레벨 업. 그것이 고작이었다.
– 후후, 경험치니 레벨 업이니 네가 말하는 것들이 뭔지는 모르지만 잘됐군. 인간이여, 이것이 바로 탐욕의 끝이다!
“하지만 널 소멸시키면 레벨 업 한 번은 더 할 수 있겠지?”
– ……내가 좀 더 애써 보겠다. 제발 그것만은!
“후우. 일단 그건 뒤로 미뤄 주지. 그 대신 상납 병력은 계속 바쳐.”
– 어째서! 이제는 내 병사들을 잡아도 얻는 게 없다면서!
“그거야 내 얘기고. 우리 길드원들은 따로 경험을 쌓아야지.”
– 경험이라니?
“우리 애들 상대로 전투 연습이나 시켜야지. 네 밑에 부하들 시켜서 연기 연습시켜. 봐주는 거 티 안 나게 잘하라고. 물론 우리 쪽에서 사망자 나오면 알지?”
– ……골수까지 빨아먹을 생각이군. 인간이란 종족은 도대체 어디까지 악랄할 수 있단 말인가?
스켈레톤 워로드는 한탄했지만 이미 놈의 목줄은 내가 쥐고 있었다.
신입 길드원들은 훌륭한 조연 연기자인 스켈레톤들을 상대로 실전 아닌 실전 경험을 쌓아 갔다.
‘그래. 열심히 해서 무럭무럭 성장해라.’
그러던 차에 최 팀장이 나타난 것은, 하연이의 수능 날로부터 꼭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다들 오랜만이군요. 하지만 지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이것부터 보여 드려야겠습니다.”
피곤한 목소리. 딱딱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본 그가 품 안에서 USB 하나를 꺼내어 홀로그램 TV에 연결시켰다.
“중국에서 온 영상입니다.”
삑.
서늘한 기계음과 함께 영상이 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