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05
#304화
모든 빛을 차단한 사무실 내부. 어둠 속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자 나는 문득 현장에 있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이곳은…….’
사방이 온통 잿빛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는 독수리의 커다란 날개를 보고 난 후에야 영상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늘.’
이 모든 광경을 담고 있는 드론은 대기에 가득한 미세 먼지를 피해 빠르게 하강했다.
휘이이잉.
세찬 바람을 헤치며 얼마나 내려갔을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화염에 휩싸인 도시였다.
꽈앙! 쿠구구궁!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매연을 내뿜던 공장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커다란 빌딩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작은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아비규환(阿鼻叫喚).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얼핏 눈에 보이는 이들만 수천 명이다. 카메라가 미처 담지 못한 이들까지 더한다면 수만은 될 것이다.
“이게 도대체…….”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공장 폭발 사고 때문에?
아니다. 미로처럼 복잡한 도시를 누비며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존재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쿠르르륵!」
「크아아!」
거대한 동체. 괴물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힘과 민첩성.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사방을 훑더니 이내 괴성을 내지르며 표적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왜 저기에?’
의문도 잠시, 나는 곧 스스로 답을 깨달았다.
이런 경우는 단 한 가지밖에 없으니까.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대격변 당시, 게이트는 마계라 불리는 이계와 지구를 잇는 통로였다.
그러나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소멸한 뒤 몬스터의 힘은 약화 되었고 게이트는 인간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게이트 내부의 마력이 수용 한계치를 넘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둑이 무너지면 물이 쏟아진다.’
그것이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고, 그 결과가 지금 홀로그램 영상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키야아아아악!」
「사, 살려……!」
퍼걱!
클로즈업된 카메라는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는 도심을 그대로 비추었다.
거침없이 살육과 파괴를 자행하는 몬스터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는 인간들.
누군가는 몬스터의 발톱에 꿰여 죽었고, 누군가는 도망치는 군중의 발에 밟혀 압사당했다.
그 혼란의 구렁텅이 속에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한 모녀(母女)가 눈에 띄었다.
「빙빙! 엄마 손 꼭 잡아!」
여성이 다급하게 외친 그때였다.
쐐애애액! 푹!
컴컴한 골목길에서 날아온 창이 여성의 가슴을 관통하고 지면에 틀어박혔다.
울컥, 한 차례 핏물을 뿜어낸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어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컴컴한 골목길에서 쏟아져 나온 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도망치는 시민들의 퇴로를 막아서는 적절한 위치.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오크가 울고 있는 아이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쉬이이익! 서걱!
「크륵?」
우두머리가 의문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도끼를 들고 있던 두꺼운 팔이 팔꿈치 아래로 싹둑 잘려 나가 있었다. 눈을 부릅뜬 놈의 앞에는 어느새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몬스터 주제에 감히 중화의 인민을 건드려?」
츠츠츠츠! 서걱!
눈부신 오라가 우두머리의 목을 베었다. 놈의 머리통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내의 입에서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공안 무력부(公安武力部)!」
「예!」
쩌렁쩌렁한 대답.
사내는 혼자가 아니었다.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갑옷에 새겨 넣은 공안 무력부 소속의 헌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전장으로 합류하고 있었다.
사내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외쳤다.
「저 악취 나는 놈들을 모두 죽여라!」
「인민을 위하여!」
쉬쉬쉬쉭!
거대한 함성과 함께 천여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달려 나갔다.
대격변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음에도 여전히 십수 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다.
개개인의 실력은 미지수지만 동원할 수 있는 헌터의 숫자는 세계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조리 쓸어 버려라!」
「와아아!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한 덩어리가 되어 돌격하는 천 명의 헌터.
그것을 가만히 손 놓고 지켜보고 있을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도심을 휩쓸고 있던 온갖 괴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그 역시 천 마리를 우습게 넘겼다.
「그워어어어!」
「캬우우우!」
두두두두두!
몬스터와 인간. 인간과 몬스터.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파도가 서로를 향해 쏟아졌다.
굳게 빛나는 눈동자와 적을 죽이려는 살의(殺意).
홀로그램 영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박력이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드론은 하늘 위에서 서로를 향해 빠르게 가까워지는 두 집단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500m, 300m, 100m…….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과 함께 격돌이 이루어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겁화의 불꽃으로 멸망하라. 파이어 레인(Fire Rain).」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스산한 목소리. 그와 동시에 잿빛 하늘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키이이이잉.
그건 지금껏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드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30여 미터 상공, 마치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허공이 한 꺼풀 벗겨졌다.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소용돌이에서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화염 덩어리였다.
화아아악!
자신들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 중국 헌터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이건…… 꿈이야.」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에게 그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쩌저적, 직경만 수십 미터에 이르는 화염 구체가 네 조각으로 갈라졌다. 네 개의 조각은 각기 수십 개로, 수십 개는 수백 개의 파편이 되었다.
그렇게 불의 비가 지상을 강타했다.
후우웅. 콰아아앙!
드드드득!
굉음과 함께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휘청이던 드론이 마침내 균형을 잡았을 땐, 이 엄청난 광경을 만들어 낸 존재가 드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간의 물건이로군.」
어떤 높낮이도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푹 눌러쓴 그가 손가락을 뻗어 드론을 가리킨다.
「모조리 죽이고 빼앗아 주마. 내 영토에 발을 들이는 자,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치지지직!
오래된 고목 뿌리 같은 그 손가락이 움직인 순간, 노이즈와 함께 영상이 끊겼다.
그와 함께 미세 먼지가 가득한 잿빛 하늘도, 멸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지상의 광경도 모두 사라졌다.
그렇게 홀로그램이 사라진 사무실 내부는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나였다.
“저 새끼, 도대체 뭡니까?”
“이번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아니, 사람이 아니니 장본인이라는 단어는 어폐가 있군요.”
최 팀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임드 몬스터 리치(Lich). 그것이 놈의 정체입니다.”
* * *
리치.
타락한 대마법사. 수많은 언데드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군림하는 최상위 몬스터다.
대격변 이후로 종적을 감췄다는 그 리치가 나타났다. 스스로 수십 년 만의 등장을 자축하듯 엄청난 참사를 일으키며.
최 팀장이 USB를 뽑으며 말했다.
“11월 5일. 오늘로부터 정확히 열흘 전 중국 정보부 소속 정찰 드론이 쓰촨성 난충시 인근의 소도시를 촬영한 영상입니다. 지금까지의 추정 사상자는 약 30만 명. 정확한 집계는 아직 파악할 수 없습니다.”
쓰촨성.
내게는 구파일방에 속해 있는 청성과 아미. 그리고 오대세가의 일원인 당문이 위치한 사천(四川)으로 더 익숙한 지명이다.
물론 무림은 중국의 모습을 띤 완전히 다른 세상이고, 홀로그램이 보여 준 것은 엄청난 대참사였다.
“30만이라고요?”
“예.”
“이런 미친…….”
“그것도 웨이브가 발생한 뒤 24시간 동안의 기록입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단 하루 동안 추정된 사상자만 해도 30만이다. 인류가 대격변 이후 몬스터 웨이브로 이 정도의 피해를 입은 적이 있던가?
“원래 리치가 이렇게 강한 몬스터인가요?”
내 질문이 향한 곳은 최 팀장이 아닌 김 집사였다. 우리 중 유일하게 대격변을 겪은 산증인.
그의 눈동자는 파문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직접 본 대격변 당시의 리치들은 분명 하나같이 강력한 존재들이었지만…… 저놈은 차원이 다릅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화염 마법이더군요.”
김 집사는 화염 계통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A급 마법사다.
대격변을 통해 산전수전까지 다 겪은 그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이번에 등장한 리치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불타는 도시와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대지에 작렬하던 거대한 불의 비는 말 그대로 재앙, 그 자체였다.
나는 마지막 순간, 카메라를 향한 놈의 선언을 떠올렸다.
‘모조리 죽이고 빼앗아 주마. 내 영토에 발을 들이는 자,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나는 달랐다.
시스템의 일부인 [통합 언어팩]이 적용된 덕분에 놈의 말을 똑똑히 들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저 무자비한 언데드 몬스터는 결코 소도시 하나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30만 명? 놈이 보여 준 힘이라면 지금쯤 사상자는 그 열 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발…….”
중국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대참사를 보고 쌤통이라며 웃는 사이코는 존재하지 않을 거다.
무력하게 죽어 가던 사람들, 엄마를 잃고 울던 꼬마 아이가 생각나 입맛이 씁쓸해진 그때였다.
‘잠깐만.’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상한 일이다. 이 정도의 대참사가 벌어진 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세상은 평온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 팀장은 이런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지?’
아레스 길드라면, 이정룡이라면 모르겠다. 그들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길드고 정보력도 뛰어나니까.
하지만 최 팀장은 일개 중견 길드의 팀장에 불과하다. 그가 알 정도라면 이미 전 세계의 방송에서 쓰촨성 참사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와야 했다.
‘뭔가 있다.’
이 생각을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최 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최 팀장이 아니었다.
“일주일 전, 뜻하지 않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연이의 수능이 끝난 날이다.
그날, 한참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최 팀장은 중요한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비웠었다.
“중국에서 온 연락이겠네요.”
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히는 한 사람을 향한 러브콜이었죠. 이번 사태에 참여해 달라는.”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저를 콕 집어서 요청했다고요? 중국 쪽에서?”
“네. ‘그’가 원했습니다.”
“그가 누군데요?”
최 팀장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샤오 양.”
“으헉!”
“샤오 양?”
“도련님. 그게 사실입니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방 안에 있던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딱 벌린 채 최 팀장을 바라보던 나는 가까스로 입을 뗐다.
“샤, 샤오 양이 저를요?”
“예.”
“그런데 샤오 양이 누구예요?”
“……!”
표정 왜 저래. 모를 수도 있지.
한참이나 눈꺼풀을 파르르 떨던 최 팀장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샤오 양은 중국 중앙위원회 총서기입니다.”
“종석이요?”
“총서기! 국가 주석, 국가 주석이라고!”
오메, 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