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5
5화
파락― 파락―
쉴 새 없이 무공서를 넘겼다.
빠르게 넘어가는 옥환묘보의 구절.
누가 보기에는 어린아이가 무공서를 장난처럼 넘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인 천휘는 진지했다.
이윽고 끝에 도달하고.
탁.
고개를 흔들며 무공서를 덮었다.
“그 노파가 펼친 것과 다르다.”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이후 혹시 무공서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위아래로 뒤집었다가, 혹시 모를 옆 구석을 바라봤다가 하기를 잠시.
벅, 벅.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노파가 펼치던 게 옥환묘보가 아닌가? 그건 아닐 텐데.”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무공서의 표지에는 떡하니 옥환묘보라 적혀 있었고, 그 내용은 현려가 펼쳤었던 보법과 딱 일치했다.
그렇기에 이상했다.
옥환묘보는 무당과 소림에서도 탐을 냈었던 절세의 보법이었는데?
예전에 빠르면 되지, 보법에 무슨 이치가 필요하고 깨달음이 필요하나 싶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깨트린 것이 바로 천마신공에 수록되어 있었던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와 곤륜파(崑崙派)의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옥환묘보였었다.
천마군림보에서는 보법에도 압도적인 힘이 가능하다는 것을.
운룡대구식에서는 무공을 펼치는 데 보법의 중요성.
그리고 옥환묘보에서는 보법이야말로 모든 무공의 중심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덕분에 부족했었던 보법을 연구해 다듬을 수 있었는데.
그런데 이게 그 옥환묘보라고?
혀를 찼다.
아직도 머릿속 선명하게 각인되어있는 옥환묘보는 팔괘(八卦)에 비롯된 기묘하지만 독특한 보법이었다.
건(乾), 태(兌), 리(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각각 하늘, 늪, 물, 불, 우레, 바람, 산, 땅을 지칭하는 팔괘는 만물을 창조하는 건. 곤 두 괘와 만물을 운용하는 여섯의 괘가 어우러진 것이었다. 그리고 옥환묘보는 바로 이 팔괘를 이용해 펼치는 보법이었다.
팔과 다리, 이 둘이 건과 곤을 뜻했으며 나머지 육 괘의 이치를 보법으로써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렇게 말이지.’
천천히 왼발을 내디뎠다.
스윽―
천휘의 발바닥이 팔방을 밟았다.
늪처럼 깊이, 물처럼 부드럽게.
불처럼 힘차게, 우레처럼 빠르게.
바람처럼 흔들거리거나 산처럼 굳건하게.
눈 깜빡할 사이에 발놀림이 다채로워졌다. 삽시간에 그가 서 있던 바닥에 발자국이 수십 개가 새겨지고.
탁.
잠시 후 쉴 새 없이 사방을 밟으며 움직였던 그의 발이 멈췄다.
무공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공이 부족해 마지막까지 펼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팔괘가 하나로 어우러질 터였다.
그로 인해 진정한 건곤이 만들어지고 옥환(玉環)을 완성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아는 옥환묘보였다.
그런데 무공서에 적혀 있는 구결에는 중간 부분이 소실되어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세 개의 괘, 불과 우레 그리고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오롯이 속도만을 추구하는 반쪽짜리 보법이 되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빠르냐?
그것도 아니었다.
본래의 옥환묘보가 훨씬 빨랐다.
그런데 거기다 본래 있었던 변화까지 없으니, 자유롭지도 못했다.
‘그 노파는 이걸 읽고, 어떻게 그런 옥환묘보를 펼쳤던 거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의문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중간 부분이 떡 하니 소실된 구결만으로는 옥환묘보를 완성하기는 자신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 노파가 나와 같은 천재였나?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부단한 노력으로 무극지경(武極之境)에 도달했을 뿐, 천재라기보다는 범재에 가까운 자였다.
그런데 이런 무공을 창안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두 개의 답을 내놓았다.
‘무공서에 소실된 구결이 구전으로 전해져 왔거나, 혹여나 누군가 옥환묘보를 훔쳐 갈까 봐, 일부러 반쪽짜리 구결만 남겨 놓은 거겠지.’
어깨를 으쓱였다.
무공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문파는 아직도 존재했고, 이처럼 무공서의 주요 구결은 따로 숨겨 놓는 곳도 존재하니.
‘천마서고에는 자신 말고 익힐 수 없도록 일부러 구결을 비틀어서 적어 놓은 괴팍한 무공서도 있으니.’
눈썹을 찡그리며, 서고를 쳐다봤다.
셀 수 없이 많은 무공서들.
보아하니 저 많은 서책들 중 옥환묘보처럼 구결이 소실된 것이 몇 개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봤자 나한테 소용없겠지만.’
무덤덤하게 무공서를 원래의 자리에 꽂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면 다음을 읽어 볼까?”
이후 흥미로운 눈빛으로 옥환묘보 옆에 꽂혀 있는 서책을 꺼냈다.
“흐음, 이건…….”
손에 들린 옥환묘보를 원래의 자리에 꽂은 다음 옆의 서책을 쥐었다.
그렇게 다시 서책을 펼치고 그 안에 있는 내용에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한편 책상 위에 놓인 서책을 수정하던 현청이 일어났다.
“오늘도 해가 저무는구나.”
해가 뉘엿뉘엿 산턱에 걸려 있었다.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
석양은 화산파를 천천히 감싸며 아름다운 색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풍경을 보던 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정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들어왔던 천휘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이내 삼 층에 도착하고, 발걸음이 멈췄다.
바닥에 앉아 있는 천휘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무공서에 몰두해 있었다.
“……무공에 굶주렸었구나.”
쓴웃음이 입가에 감돌았다.
그러다 굳은 다짐을 되새겼다.
‘사제. 내 비록 당시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천휘가 무공을 익히고 싶다면 내 평생 동안 익혀 온 모든 것을 알려 주도록 하겠네.’
현청의 다짐은 놀라운 것이었다.
현자 배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나, 그는 무위로는 화산파에서도 수위에 있는 고수였다. 그런 그가 만경각주가 된 이유는 막내 사제였었던 현강이 명을 달리한 이유였다.
현강은 백귀성의 절대고수인 멸절파검(滅絶破劍)과 동귀어진했다.
화산파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한 무림맹.
팔대세가와 정·사 중간의 문파들이 한데 모여 만든 비천회(飛天會).
그리고 사파와 흑도들이 모여 이루어진 사흑련(邪黑聯).
천하삼분지계, 즉 구주삼패세(九州三覇世)의 시대였다.
그리고 백귀성은 사흑련을 지탱하는 육황문(六皇門) 중 한곳이었다.
그런데 만약 무림맹과 사흑련의 중추인 두 문파가 충돌하게 되면 저절로 두 거대 세력 간 전쟁이 번지게 되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중원을 유지하던 균형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대의를 위한 선택.
그러나 현청은 충격을 받았다.
무당이나 소림이라면 어떠했을까.
바로 전쟁을 불사했을 것이었다.
화산파라 넘어간 것이었다.
만약 본 파의 위세가 예전과 같았다면 결코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만경각에 틀어박혔다.
모든 것은 본 파에서 절대의 고수가 등장하지 않아서라고.
그래서 만경각에 있는 무공을 파헤쳐서 과거 소실되거나, 흩어진 화산파의 무공을 되살리려고 했다.
그렇게 그는 팔 년간 만경각에서 머물며 무공서를 수정하며, 매달렸다.
그런데 그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연약하기 짝이 없던 천휘에게.
‘그 몸으로는 고수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니, 몸을 지킬 정도의 무공을 알려 주면 충분할 터.’
물론 그의 관심은 기대가 아닌 연민이었다.
턱.
때마침 천휘가 책을 덮었다.
“휘야, 이제 닫을 시간이다.”
“알겠습…… 니다.”
아쉽다는 듯 서고를 바라보는 천휘를 보며 웃었다. 곧 천휘는 몸을 돌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난간 너머로 만경각을 빠져나가는 천휘를 본 현청은 경공술이라 적혀 있는 서고를 정리했다.
탁.
그러던 중 바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발자국들이 어지러이 겹쳐 있었다.
“허허, 처음 무공서를 읽어 보고 안절부절못했구나.”
무공서를 읽게 된 기쁨에 들떴을 천휘의 모습이 머리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잠시간 흐뭇하게 웃던 현청은 그 자리를 지나쳤다.
그 안에 그가 그토록 원했던 잊힌 절세무공, 옥환묘보의 신묘한 진의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 * *
탁―
천휘는 책을 다시 또 덮었다.
‘다음.’
벌써 나흘이 흘렀다.
그동안 천휘는 계속해서 만경각의 삼 층을 뒤져 가며 읽고 있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을 읽지 못했다.
만약 이전 자신이었다면 믿지 못할 일이었다.
한 번 읽으면 무공서의 내용은 물론이고, 진체까지 모두 습득하는 뛰어난 오성을 지녔기에.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가 존재했다.
능숙하게 다시 책장으로 향한 뒤, 무공서를 하나 꺼내서 펼쳤다.
쯧쯧, 이것도 엉망이네.
옥녀소심검법(玉女素心劍法).
음기를 중심으로 하여서 펼치는 검법에 전혀 다른 해석이 적혀 있었다.
‘뭐? 옥녀소심검법이 숙녀검(淑女劍)의 상승검법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둘의 성질은 확연히 달랐다.
숙녀검은 검법이라기보다는 육체를 단련하기 위해서 익히는 실전성이 없는 검법, 음기를 화해서 펼치는 옥녀소심검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누가 적었는지, 어이가 없었다.
‘또냐?’
“에휴.”
한숨과 함께 무공서를 덮었다.
이렇게 잘못 적힌 무공서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하나하나 무공들을 되짚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턱.
옥녀소심검법을 다시 꽂았다.
그나마 아예 모르는 새로운 무공은 흥미롭게 읽으며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하나 이처럼 몇몇 무공은 이미 알고 있거나, 견식한 바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까다롭게 비교를 하면서 살피게 되었다.
“완전히 틀려먹었어.”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옥녀소심검법 바로 그 옆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무공서를 집었다.
“낙영검법(落英劍法)?”
과거 소문으로 듣기만 했었던 검법의 무공서를 발견하자, 흥미로운 눈으로 책을 펼쳤다.
집중하며 무공서를 계속 읽어 가던 중 자연스럽게 우수를 들어 마치 검을 파지한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이 부분은 좀 아쉬운데? 이 초식은 쭉 뻗는 것보다는 오히려 거두는 쪽이 위력 면에서 낫지 않나?”
우수를 쭉 뻗었다.
휙―
고사리 같은 손이 벼락같이 쏘아지고, 공기가 찢기며 소리가 터졌다.
파앙―
“이렇게 펼치면 위력적이고, 날카로운데 이걸 이렇게 해석했다고? 내가 알던 그 화산파가 맞아?”
만경각에 꽂혀 있는 무공서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이 샘솟았다.
자신이 알던 화산파는 구파일방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곳이었다.
무당과 소림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그런데 이게 뭔가?
그런 화산파의 무공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허술한 무공뿐이었다.
그나마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이라든가, 암향표(暗香飄) 등 화산파를 대표하는 무공은 흠잡을 곳 없이 뛰어난 절학들이었다.
천마신교에서 손에 꼽히는 마공절학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소수일 뿐.
대부분이 이런 상태였다.
에휴, 이러니 장문인이 그 정도지.
장문인의 무위 수준이 이해되었다.
제아무리 상승무공이 뛰어날지라도 떠받드는 기둥인 기초무공이 받쳐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씨앗을 뿌릴 텃밭이 좋아야, 열매가 탐스럽게 맺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리 척박한 텃밭을 만들어 놨으니 제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려 봤자, 얻을 건 별로 없을 터였다.
차라리 내가 바꾸고 말지. 여기 있는 대부분의 무공을 무공서에 적힌 대로 익히면 제대로 쓸 데도 없겠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던 중.
응?
책장의 가장 높은 곳에 꽂혀 있는 낡은 서책에 눈이 갔다.
멸마검법(滅魔劍法).
도가에 어울리지 않는 패도적인 무공 명에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바로 무공서를 펼치고.
오호? 마기를 되돌린다고?
피식 웃었다.
마기는 절대의 기운.
절대로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런데 마기를 뒤튼다고? 말도 안 되는……? 응? 뭐야? 이거 가능할 것 같은데? 설마…….
촤라락―
홀린 듯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다.
탁.
허공을 보며, 무공서를 덮었다.
짙은 여운이 남았다.
특히나 마지막 검식이.
“이거 미친놈인데? 자신의 진원진기(先天眞氣)를 바쳐 일격을 노려?”
목숨을 바친 동귀어진의 수.
참으로 가관인 검식이었다.
그전에 적힌 파마의 검법에 대해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마지막 수에서는 그 지독함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읽다 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밖에 펼칠 수 없지만 대단한 초식이었다.
과거 자신이 방심한다면 어쩌다 한 번은 당할 정도로.
“아마 죽지는 않겠지만, 상처는 입을 수도……. 그런데 이 무공을 창안한 자는 누구지? 마도를 지독히도 싫어하지 않고서는 이런 미친 검법을 창안할 생각조차 못 할 텐데.”
멸마검법을 창안한 자를 찾기 위해서 무공서를 자세하게 훑었다.
그러다 발견했다.
“상…… 운?!”
당혹감에 두 눈을 부릅떴다.
상운(祥雲)이라면 그 말코도사 놈이잖아!
천휘는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말코도사를 떠올리며 다급하게 무공서를 다시 한번 훑었다.
서책은 상당히 낡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손이 떨려 왔다.
당황도 잠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재빨리 현청을 찾았다.
곧 만경각의 구석에서 평소와 같이 무공서를 작성하는 그를 발견했다.
“사백님.”
자신을 부르는 천휘에 현청은 기대감과 함께 손에 쥔 붓을 놓았다.
“무슨 일이더냐?”
현청은 차분히 머리를 정리했다.
어떻게 무공을 알려 줘야 할지.
하지만 그의 생각은 이어지는 천휘의 말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상운진…… 인이라는 분…… 을 아십니까?”
천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괴팍하고 고약했던 말코도사를 진인이라고 불러야 하다니.’
그때 현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운진인?”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그는 천휘의 손에 들린 무공서를 보더니 화색을 표했다.
“아! 본 파의 이십삼 대 장문인이셨던 상운진인 조사님을 말하는 게로구나. 조사님께서는 삼백 년 전 본 파가 가장 큰 명성을 떨칠 때…….”
현청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천휘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말 중 한 단어가 그의 머리에 파고들어 헤집어 놓고 있었기에.
“사, 삼백 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