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어느새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단단하게 얼어 있던 땅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던 새로운 생명들이 햇볕이 내리쬐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빼꼼 내밀며 푸르른 싹을 피웠다.
그와 더불어.
개굴― 개굴―
천휘는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흘깃 보다가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갈성현과 일행이 온 지 삼 개월.
계절이 바뀌는 동안 건원동도 아니. 매화칠관 또한 변해 있었다.
“이제야 그럭저럭 구색은 갖췄네.”
천휘의 시선이 매화칠관에 꽂혔다.
입구엔 자그마한 문이 달려 있었고 그 옆의 벽에는 묘하게 눈을 사로잡는 글귀가 있었다.
[매화칠관(梅花七館)]첫날, 검으로 새겨 넣어 둔 것이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나는 내력을 담지 않았는데 말이야.’
무심코 휘두른 검에 저절로 내력이 담기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매화신공이 이제 손과 발에 익숙해진 것일까.
글귀에는 보는 누구라도 사로잡힐 정도로 기묘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매화신공에 이런 기질도 있었나?’
턱을 매만지며 글귀를 노려볼 때.
“소협!”
외침과 함께 제갈성현이 환한 표정을 만면에 지으며 입구에서 나왔다.
“방금 전 소협이 말한 대로 움직이니까 진법이 발동되더군요.”
천휘를 주시하는 제갈성현의 눈빛에는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며칠간 진법이 발동되지 않아 고심했는데 그의 한마디로 해결됐으니.
“그러면 다 된 거죠?”
“일관은 모두 끝났습니다.”
그 순간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아이고야.”
“드디어 끝났구먼.”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먼지를 털어 내면서 우르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야, 그래도 제갈세가인가.
일관이라도 완성하는 데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만큼 설치해야 될 기관진식이 많았고 진법도 쉬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었다.
‘첫날에 당당했던 이유가 있었네.’
“그러면 이제 일관이 제대로 발동되는지 시험할 사람 필요하겠네요.”
“하하. 시험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제갈성현이 눈을 반개했다.
“아무나 시험할 수 없을 겁니다.”
오, 자신감 넘치나 보네.
“그러면 어느 정도면 되죠?”
“최소 절정의 고수는 되어야 할 겁니다.”
제갈성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후후, 화산파의 도사들이라도 이 관문을 통과하는 건 쉽지 않아.’
“음, 최소 절정요?”
그 말을 듣자마자 문득 천휘의 뇌리에 자신의 수발을 드는 두 남녀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좋아요. 데려오죠.”
약 일각이 지난 뒤.
“부르셨습니까?”
“부르셨나요?”
천휘는 자신이 불렀던 적검과 설란을 보다가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온 일행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신의와 소희 군주 일행이었다.
“저 사람들은 왜 왔어?”
마치 불청객을 대하듯 말하는 천휘의 어투에 적검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것이…….”
적검이 힐끗 신의를 보던 중.
“내가 억지로 따라왔다.”
신의가 몸을 들이밀며 말했다.
“최근에 네가 무엇 때문에 바쁜 것인지 궁금해서 말이다.”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치켜든 그는 천휘와 건원동을 번갈아 보며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수염을 움직였다.
‘흥. 뭘 만드나 했더니. 이런 괴상한 것이나 만들려고 안 오는 거였다니.’
신의는 암향단을 만든 이후 자발적으로 의약당주와 함께 이대제자들을 보살피면서 천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천휘는 도림평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뭐냐?”
천휘는 불평을 잔뜩 얼굴에 내비치며 신의를 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관문인데요.”
“관문……?”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표정의 신의를 보던 천휘가 옳다구나 말했다.
“뭐 마침 잘됐네요. 혹시 부상자가 생길지도 모르고.”
말하는 천휘의 시선이 적검과 설란을 향했고 그 시선을 마주한 둘은 알 수 없는 한기에 부르르 떨었다.
‘사형?’
‘사매?’
둘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서로 눈짓으로 대화를 나눌 무렵.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나타난 일행을 쳐다보던 제갈성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지금 앞에 있는 이들이 누군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노인은 강호를 불문하고 천하를 제멋대로 다니는 천하제일의원인 성수신의이고.
그리고 그 옆에 고고한 미녀와 소녀, 젊은 청년은 황실의 인물이었다.
게다가 미녀는 청해성주의 여식이며 황제의 피를 지닌 소희 군주였으니.
‘모두 강호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인데 화산파에 모여 있다니.’
어떻게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조합이 화산파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천휘였다.
아니 중심 정도가 아니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던 성수신의 대인과 황실의 인물이 천휘 소협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아니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생각하던 중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지고 생각하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물은 자신이지 않겠는가.
정신 놓았나?
한편 천휘는 홀로 심각해졌다가 허탈하게 웃는 제갈성현을 보다가 말했다.
“이제 시험해 보죠.”
“네, 네!”
화들짝 정신을 차린 제갈성현이 일행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 중에 누가 관문에…….”
“적검, 설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휘는 적검과 설란에게 손가락을 까닥였고.
둘은 후다닥 달려왔다.
“강해지고 싶지?”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네.”
“그렇긴 합니다만.”
“강해지고 싶으면 들어가.”
“들어가면 강해지나요?”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적검과 설란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결연한 눈빛으로 동시에 입구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저벅― 저벅―
이윽고 드리워진 동굴의 어둠이 그들의 몸을 삼키며 사라진 순간.
그그극―
약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건원동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영묘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허어, 신기하군.”
“와아아!”
“이게 진법…….”
멀리서 지켜보던 신의와 소희 군주 일행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음. 제대로야.
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일단 입구에 만들어 놓은 만겁윤회로(萬劫輪廻路)는 이상은 없고.’
만겁윤회로는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 없는 불귀(不歸)의 진법으로, 매화칠관을 만들려고 계획할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며칠 동안 발동되게 해 놨었죠?”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최소 열흘은 꼼짝없이 갇혀 있을 겁니다.”
일단은 그 정도면 충분하려나.
매화칠관을 만들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하나가 바로 실전을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음대로 빠져나온다?
헛소리도 그런 헛소리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실전처럼 느껴지는 관문이라고 하여도 정신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래서 긴장감을 조성할 목적으로 매화일관을 통과할 때까지 최대 열흘 동안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한데 조금 걱정이 되긴 하군요.”
제갈성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밤낮도 알 수 없는 동굴에서 관문의 시련을 받다가 정신이 피폐해지지나 않을지…….”
처음 완성했을 때는 기쁘기만 했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걱정이 앞섰다.
“거기다 관문의 끝에 도달할수록 새로운 기관진식이 발동되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텐데요.”
매화칠관은 인세의 지옥이었다.
한 개가 아닌 총 일곱의 기관진식이 펼쳐지니 아마 대부분의 무인이라면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그거야 통과하면 될 일이죠.”
막상 이 관문을 설계하고 위험성을 알고 있는 천휘는 무덤덤했다.
오히려 조금 아쉽단 말이야.
‘이왕이면 십 일만 갇히는 게 아니라 천마십관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본래의 천마십관은 이렇지 않았다.
통과하거나 혹은 갇혀서 죽거나.
단 두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천마십관에 비하면 매화칠관은 생문이 열리는 아주 평화로운 천마십관의 열화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문인이 허락하지 않을 것은 자명했을 뿐만 아니라 당장에 그랬다가는 안 그래도 소규모인 화산파의 전력이 폭삭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천마십관이 보였던 강렬함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강해지겠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열흘 동안 이어지는 시련을 받다 보면 성장하기 마련일 터.
‘그리고 다른 장점도 있으니까.’
본래의 천마십관은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관문이라 여러 번 도전하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지금 매화칠관은 어떤가.
목숨의 위협이 없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계속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지금 강해지고자 하는 화산파와는 딱 맞는 상황이었다.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와 승부욕이 있다면 충분히 강해지고도 남겠지.’
이대로만 되도 괜찮겠지.
그때.
“응?”
제갈성현이 갑자기 눈을 찡그렸다.
“뭐지? 저 기관진식은 나중에 움직여야 되는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건지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이게 왜?”
“사, 삼공자님!”
순간 누군가가 급하게 소리쳤다.
천휘와 제갈성현이 갑작스러운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제갈세가의 일행 중 한 명이 새하얗게 변한 안색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거의 네발로 뛰듯 달려온 그를 본 제갈성현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무,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지, 지금!”
사내가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진식이 날뛰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바로 제갈상현이 허겁지겁 달렸다.
재빨리 건원동에 설치한 기관진식에 도착한 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관진식을 보던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런 젠장!”
제갈성현이 주먹을 쥐었다.
원래라면 차례대로 진행되었어야 할 기관진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 번에 발동되다니! 이, 이러면 안에 있는 두 사람이 위험해!”
조급한 표정으로 엄지손톱을 물어뜯던 제갈상현이 서둘러 외쳤다.
“지금 뭣들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멈추지 않고!”
“그, 그게…….”
상황을 보고했던 사내가 이를 악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반응을 지켜본 제갈상현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설마…….”
“멈…… 추지 않습니다.”
“……젠장.”
제갈상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제대로 욕설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 죽기라도 한다면…….’
눈앞이 깜깜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안에 들어간 두 명이 아사(餓死) 혹은 폭주한 기관진식에 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다.
‘저 두 명이 죽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거늘.’
이 일로 인해서 벌어질 참사를 생각하자 그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러다 책임을 물으면…….’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던 그때.
“뭡니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고개를 돌리니 언제 왔는지 모를 천휘가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그게…….”
순간 머리가 복잡해진 제갈상현이 말을 내뱉지 못하다가 이윽고 침음을 흘리면서 현 상황을 털어놓았다.
“……두 번째 설치한 진법이 폭주해 원래면 차례대로 움직여야 했을 기관진식이 동시에 발동했습니다.”
뭐?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매화일관의 기관진식이라면 설란과 적검 둘이서 충분히 통과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말이 달랐다.
“아까 전에 제대로 완성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죄송합니다.”
눈을 질끈 감은 제갈성현이 고개를 숙였다. 이 상황에 대해 사과 말고는 대체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래도 잘못은 아네.
천휘는 거듭 사과하는 제갈성현의 뒤통수를 노려보다 휙 몸을 틀었다.
“뭐 일단은 됐고. 이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이야기하죠.”
“소협?”
더 이상의 추궁도 없이 떠나는 천휘를 본 제갈상현이 당황할 무렵.
저벅― 저벅―
천휘가 입구로 걸어갔다.
“어, 어디 가십니까?”
“일단 구해야죠.”
“네?”
“혼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제갈상현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만겁윤회로는 발동 중에 들어갔다가는 해진을 하기 전까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진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최악이었다.
만겁윤회로는 엉켜 버려서 해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소협까지 죽게 할 순 없어!’
다급하게 천휘를 막으려던 순간.
쩌적!
이어진 광경에 몸이 굳어 버렸다.
매화일관은 오랜 시간을 공들였고 제갈세가의 비법과 새로이 얻게 된 기관진식과 절진을 합친 것이었다.
그때 천휘가 손을 뻗었다.
마치 공중에 있는 벌레를 잡는 것처럼 그가 주먹을 쥔 순간.
쩌엉!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어둠 속에 물든 동굴의 내부가 드러났다.
“……!”
제갈상현이 입을 떡 벌렸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일행도 신의도.
그리고 무료하게 쳐다보던 소희 군주의 일행들도 경악에 휩싸일 때.
저벅―
천휘는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으아아악!”
“사형! 저쪽으로 피해요!”
저쪽이네.
메아리치는 둘의 외침을 듣던 천휘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