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낮말은 꽃이 듣고 밤말은 나무가 듣는다
꾸와아아아앙!
삐삐삐삐!
연락 없이 찾아온 두 명의 물의 정령사.
누가 물에 환장한 오리 아니랄까 봐.
어른, 응애할 것 없이 오리들은 시원한 둘에게로 졸졸 따라다닌다.
“어머, 얘들 좀 봐! 미친 거 아니니?”
“내가 말했지 언니? 오리가 제일 귀엽다고 했잖아.”
“수아 네가 그렇게 오자고 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구나? 아, 물론 다른 쪽으로도 있었겠지만…….”
“언니!”
꽈악! 꾸와아악!
삐삐삐! 삐에에엑!
뭐, 어쨌든 진우로서는 자식 같은 오리들을 잘 대해 주는 사람들을 나쁘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
거기에다가 한 쪽은 비즈니스, 한 쪽은 프로그맨 혈액의 제공 등.
헌터로서의 인맥 쌓기에는 이만한 이들이 또 없을 지경.
그러나 손님으로 맞이하는 진우의 생각과는 달리 두 소녀는 김장이라는 소리에 서로 돕겠다고 손을 치켜들었다.
“정말 안 도와주셔도 괜찮은데…….”
“아뇨, 마음대로 찾아와 놓고 구경만 하기도 뭣하니까요. 게다가 전성에 납품하려는 상품이잖아요? 저희도 그냥 날 것 그대로 받아서 파는 것보다는 가공하는 쪽을 생각 중이었는데 진우 씨가 맡아 주시면 전성의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죠. 또 그냥 가공도 아니고 아이템 가공이라면 사냥까지는 아니어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죠.”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지금의 김장은 평범한 김장과는 조금 거리가 멀긴 했으니까.
엄연히 따지자면 아이템 가공인 셈.
제작 관련 각성자가 존재하는 것도 그렇고, 실제로 진우의 경우에는 농사짓는 것만으로도 경험치가 획득되었으니 이번 김장에서도 획득할 가능성은 크다.
덧붙여 만약을 위한 업적 달성, 그리고 그에 따른 신용도 획득까지.
물론 그게 진우의 김장을 도와줄 이유는 되지 않았으나 두 소녀의 협공이 가미된 설득은 상당했다.
“안 그래도 한국의 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김장이라니,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오겠어요?”
“……그, 그런가요?”
“게다가 진우 씨에게는 목숨을 빚지기도 했잖아요? 물론 이걸로 퉁치자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꼭 도움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흐음, 정 그러시다면야…….”
해외 문화 체험이라 뭔가 설득력은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잘하실 수 있으려나?’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
둘 다 헤어 스타일만 다를 뿐.
자매같이 똑 닮은 청발 청안의 두 소녀는 백옥같은 흰 피부도 완전히 똑같다.
살아오면서 험하고 궂은일은 손도 대지 않고 자랐을 귀족 집안의 아가씨 그 자체.
허나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처럼.
온실 속 화초 같은 이미지의 선입견이 깨지는 것에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단은 둘 다 각성한 몸이기에 범인보다는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인 것까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농사도 그렇지만 김장이라는 것도 그저 체력이 좋다고 해서 만사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소금물에 푹 절여져 숨이 죽은 배추를 물로 헹궈 내는 작업.
이 부분은 각각 하급과 중급에 달하는 물의 정령사라는 특징 덕분에 딱히 고생할 필요가 아예 없어졌다.
땅속의 흙이나 모래가 노움 그 자체인 것처럼 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운디네와 운다이르.
물의 정령들이 생성해 낸 티 없이 깨끗한 물의 세례는 배추를 아주 적절하게 헹궈 낸다.
‘어르신들이 보면 환장하시겠네.’
혹여라도 저걸 알게 된다면 김장 작업을 할 때마다 부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효과적인 물의 정령사.
반면에 땅의 정령은…….
– 응? 인간. 또 눈을 그렇게 뜬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말해 뭐 할까.
존버의 상징이신데.
물론 그래도 요즘은 건축 쪽 부분의 일 외에도 물건을 나르는 일에도 쓰임새가 출중했으니 따로 말은 안 하겠다.
– 저저! 고마운 줄 모르는 눈빛 좀 봐!
– 어쩌겠어. 흙더미. 물 속성이 너무 유능한 것을.
– 시끄러워 물딩딩이!
– 귀여운 것들.
사이좋게 티격태격하는 두 속성의 하급 정령과 그 모습을 깔깔거리며 지켜보는 물의 중급 정령.
어찌 되었든 절임 배추도, 양념 쪽도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부터가 사실상 김장의 메인이라 할 수 있다.
절임 배추에 양념소를 채우는 것.
너무 과하면 짜고, 적게 넣으면 김치답지 않은 밍밍한 맛으로 인해 적절한 중간 밸런스를 잡는 것부터가 중요한 요령인데 정수아는 딱히 진우가 말할 필요 없이 야무지게 잘도 채워 넣는다.
“수아야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아?”
“응, 잘하고 있어 언니. 어차피 이따가 잘라야 하니까 속에 너무 가득 채우지는 말고.”
“오호, 이거 재밌다.”
그렇게 자기가 맡은 일도 척척 잘 해내면서 옆에서는 열심히 문화 체험 겸 일을 돕고 있는 유리 자이스를 꼼꼼히 챙기기까지.
“…….”
진우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면서 익숙한 일이라지만, 생각 이상으로 완벽하게 해내는 정수아의 모습.
그러한 진우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정수아는 멋쩍게 웃어 보인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시골에서 사셨거든요. 아버지는 일로 바쁘시다 보니 저도 할머니네 집에서 거의 살았죠. 그래서 김장 일은 빠삭해요. 오래되긴 했지만, 몸이 기억한다고 할까요?”
“아, 그러셨군요.”
“몸은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추억이죠. 어떻게 보면 제가 운디네를 만난 것도 다 그때의 경험 덕분이니까요.”
확실히 사람은 겉보기만으로는 모른다더니.
대기업의 무남독녀라고 해서 곱게만 자랐을 거라는 것은 실로 무례한 편견이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자그마치 1,000포기를 가볍게 넘는 절임 배추의 양.
가히 배추의 산으로 보는 것만으로 어질어질할 정도.
진우도 양심은 있다.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이걸 전부 다 할 때까지 같이 해 달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느 정도 힘에 부친 모습이 보이면 멈출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 힘드세요?”
“네. 오늘 의외로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신기하긴 해요. 내 체력이 이렇게 좋았던가?”
아무리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
그 원인은 사실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드루이드의 특성, ‘굳건한 체력’이 활성화됩니다.]* 굳건한 체력 : 활동 시 지치지 않습니다. 주변의 아군에게도 적용됩니다.
활동 시 지치지 않게 만들어 주는 특성인 ‘굳건한 체력’.
그것은 진우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군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정수아도, 유리 자이스도 체력 이상으로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는 뜻.
진우와 허수진 둘이서 했으면 하루 종일 걸렸을 일.
허나 2명의 고급 인력 각성자들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추가 작업에 임하니 1,123포기의 배추 산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휴, 드디어 끝났네요.”
“김장 이거 재밌는데요? 오리들도 귀엽고.”
꾸와아아악!
물과 오리라는 상성 상 찰떡궁합인 영향일까?
정수아 때와 마찬가지로 첫 만남 이후 김장까지 하면서 어느덧 친해진 유리와 오리들 간의 끈끈한 사이.
아무튼 힘든 김장의 시간도 끝났겠다.
한국의 문화.
김장 이후에 찾아올 것은 뻔할 뻔 자 아니겠는가?
“차린 게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고생하신 만큼 많이 드세요.”
갓 담근 김치에는 돼지 수육이 제맛인 법.
덧붙여 오늘 막 수확하고 쪄낸 찐 감자까지.
오로지 농부만이 맛볼 수 있는 신선한 풍미의 새참이다.
* * *
“식사 대접을 해 주셨으니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김장도 도와주셨는데 괜찮습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물의 정령사인 제 쪽이 효율상 더 좋기도 하고요.”
– 고럼, 고럼.
“……그럼 부탁드릴게요.”
간간이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대기업 전성의 무남독녀.
한 기업체를 이끄는 거장의 외동딸이 지닌 패기와 고집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나도! 나도 도울래 수아야!”
“언니는 쉬고 있어.”
“얘는! 나 혼자 쓸쓸하게 내버려 두려고?”
“오리들한테 물이라도 뿌려 줘. 쟤들 간절하게 쳐다보는 거 안 보여?”
“어어…… 오, 오리?”
삐걱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유리의 고개.
꾸와아아악!
삐삐! 삐삐삐삐!
푸드드드득!
자기들을 말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아들은 것인지 농지를 뛰어놀던 팜오리들이 호다닥 뛰어나와 날개를 활짝 편다.
“흠흠! 오리들에게 물을 뿌려 줘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의 세례를 기대하는 표정을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발길을 향하는 유리 자이스.
한국이든 미국이든 간에 심장에 무리를 주는 응애 오리들의 위력은 글로벌하게 적용되는 모양.
그렇게 한 쪽은 설거지를 하고, 한 쪽은 오리랑 놀아 주게 되었다.
물론 진우도 외톨이는 아니다.
꺄아! 꺄아아!
“그래. 나랑 놀자, 천묵아.”
어느새인가 진우의 곁으로 다가온 약초 한 뿌리.
살아 움직이는 약초의 모습을 보면 놀랄 만도 하건만 정수아와 유리 자이스의 반응은 생각 외로 무덤덤했다.
“진우 씨가 보통 농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뭐가 됐던 누구에게나 하나씩 비밀은 있는 법이죠.”
이미 앞서 강남 게이트 때 한 번 보기도 했으니 처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그때 펼쳤던 땅의 정령왕의 힘이 사실은 더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헌터 세계에서 남의 정보를 캐묻는 것은 굉장한 실례로 통한다.
그렇기에 놀랍고 궁금해하기는 해도 방법을 묻지 않는 것.
더군다나 그 대상인 진우는 어떻게 보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우리 수아. 언제 미국으로 올 거야? 수아 없이 나 어떻게 살아.”
“……언니는 따로 동생들도 있으면서.”
“아, 빅터 그 새끼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 줘. 어차피 피도 얼마 안 섞였어. 어찌나 성격이 더러운지 자이스 가문 사람이 맞는지도 의문이라니까.”
“빅터 말고도 많잖아.”
“흐응, 그건 그렇지만 한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잖아?”
자이스 가문.
미국의 헌터 업계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높다고 들었다.
부모부터 자식들까지 전부 다 정령 친화력을 타고났다고 했던가?
배다른 형제들도 많지만 어쨌든 미국에서는 거대 가문으로 통한다고 한다.
솔직히 짐꾼 시절이던 때에는 지극히 먼 나라 이야기.
만날 일 없을 것이기에 그저 존재하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비유하자면 미국 대통령은 누가 당선되었다더라, 올림픽 금메달은 누가 땄다더라.
뭐, 이러한 정도의 관심사 정도?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힘들 정도로 깊게 연관되어 버린 상태다.
“흠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문화 체험이에요! 보답은 꼭 제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하도록 할게요.”
“정말 괜찮습니다. 심해 해일의 프로그맨 혈액도 주셨잖아요.”
“에이, 그건 어차피 버리는 부산물이었잖아요. 저 나쁜 사람 만들지 말아 주세요! 아, 혹시 기자들이나 소문이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때 탱커들에게도 입단속은 단단히 해 두었으니까요.”
“하하…….”
보답을 떠안겨 주겠다는 게 고맙기는 한데 기자들의 유명세에 섞이지 않는다 해도 그녀가 속한 자이스 가문은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은혜는 10배로, 원한은 100배로 갚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가문.
그런 와중에 가장 촉망받는 인재 중 하나인 유리 자이스를 구해 낸 것이 어떻게 감춰지겠는가?
유리 자이스에 대한 암살을 사주한 놈을 찾기 위한 과정을 위해서라도 진우의 존재는 알려질 수밖에 없는 일.
더군다나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자이스 가문과 전성그룹은 정령사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연이 닿은 덕분에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도 협업 관계를 유지 중이라고도 한다.
그나저나 어떻게 자이스 가문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냐고? 그야…….
‘이게 왜 여기 있어?’
불과 며칠 전에 만약을 위해서 확인해 봤던 요정 찻집.
그곳에서 큰맘 먹고 호출한 몰리를 통해서 진우는 보게 되었다.
패러렐 월드.
평행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야 ‘미국’의 ‘자이스’가문은 하나뿐이다.
“이거 우리 쪽에 있는 정보가 맞는 거야?”
– 그 정도야 뭐. 정확히 고객님이 위치한 곳의 정보가 맞습니다.
설마하니 확인차 물어봤는데 진짜 정보가 맞았다.
“아니,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 정보 획득 경로에 관해서는 기업 비밀인지라. 그래도 하나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저희 요정들은 모르는 것이 없답니다.
“……그럼 설마 나에 대한 것도?”
– 제대로 된 값만 치른다면 정보는 누구에게나 제공됩니다. 단! 고객님의 정보는 티타니아 님께서 찾아와도 저 몰리가 책임지고 방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고맙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정보를 수집하는 요정이라.
새삼스레 말조심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던 것도 잠시.
“잠깐만, 그럼 혹시…….”
모르는 정보가 없다는 말은 달리 말하자면 그 사건을 일으킨 원흉.
예컨대 암살을 사주한 자에 대한 정보도 있을 수 있다는 뜻.
아니나 다를까?
[강남 게이트, 프로그맨 서식지에서의 암살 의뢰서 – 목표물 자이스 가문의 유리 자이스, 전성물산의 정수아(중급 요정 릴리)] – 구매 비용 1억 1,500만 원“허어?”
실제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수준급 정보원들이 가득한 요정 찻집.
1억 1,500만 원이라는 값은 나름 여유가 있는 진우에게도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비용이라는 것은 본디 상대적인 법.
“혹시 암살을 사주했던 이들이 누군지는 알아보셨나요?”
“아, 안 그래도 그쪽 부분은 알아보고 있는데 정보를 숨기는 솜씨가 보통 놈들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혹여라도 알게 되고 원하신다면 진우 씨에게도 정보는 제공해 드릴 의사는 있습니다. 보상 부분도 그렇고 저 때문에 피해를 보시긴 하셨으니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혹시 범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제가 제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 그게 무슨…… 대체 어떻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죠.”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은혜는 10배지만 원한은 100배로 갚는 가문이라고.
“그 정보. 가능하다면 저희 자이스 가문이 구매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고로 거대 가문에는 돈이 많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