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after returning home RAW novel - Chapter 48
48화 C등급 게이트
흔히들 사람들은 말한다.
마법사와 정령사.
둘 다 따지고 보면 마나를 통해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고.
깊이 들어가서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이고, 두 직업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그 종류만 해도 나열하기에 셀 수 없이 많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마법사는 속성이 크게 상반되지 않는 한 레벨을 올리거나 특정한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다양한 속성의 스킬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정령사는 그게 불가능하다.
막말로 불의 정령이 물의 힘이나 땅의 힘을 사용하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자연 그 자체이기에 붙는 속성의 제한.
그 대신 정령사에게는 이러한 단점을 씹어 먹을 정도로 엄청난 장점이 존재한다.
정령은 가장 최약체라 할 수 있는 하급부터 지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
이것으로 인해서 정령사는 전투에 들어설 시 몸이 2개인 것마냥 전투에 임하는 것도 가능하고, 유틸성 부분에 있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진다.
육체를 단련하고 능력치를 찍는 방향성에 따라서는 혼자서 딜과 탱, 혹은 탱과 힐 등.
다양하게 조합시켜서 혼자서 능히 2, 3인분을 소화하는 것이 가능한, 귀족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의 직업.
그런데 만약 그런 정령사가 4대 속성의 정령 모두와 계약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순간에 최대 단점으로 손꼽히는 속성의 한계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거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개사기.
“진우 씨는 대체…….”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일어날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정령사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상태니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정수아.
“부회장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시는 게 사내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까요?”
“아뇨, 제가 직접 처리할게요.”
실수라고 해도 다 같은 실수가 아니다.
가드가 폭력까지 동원한 회사의 이미지에도 중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실수.
그렇기에 그러한 진우를 그저 겉모습만 보고 제대로 된 보고 없이 자신들만의 판단으로 푸대접을 한 직원들을 그냥 넘길 수는 없을 터.
부회장이 직접 내린 해고 통보에 그 누가 감히 대들 수 있겠는가?
‘다음 계약도 반드시 전성에서 가져와야 해.’
애완동물을 보면 주인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늘 갈 때마다 행복하게 맞이하던 팜오리들로 알 수 있을 사람의 됨됨이.
거기에다가 정령사와 농사일.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놀라운 잠재력까지.
회사의 오너가 될 몸으로서 이런 인재를 놓치면 그것이 죄악일 터.
허나 그녀는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계약이 성사된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을 도와줄 이유도, 의무도 전혀 없을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정령들이라는 존재.
– 그런데 인간, 대지모신의 기운이 가득한 땅으로는 언제 가는 거야?
“이번에 사냥 끝나면 바로 갈 거야.”
– 흐응? 그러면 빨리 끝날수록 그곳으로 더 서둘러서 갈 수 있다는 거지?
– 꺄륵! 달리자, 달려! 바람처럼 날렵하게!
– 오오! 불꽃처럼 타올라라!
“……너는 지금 불태우지 말고 이 녀석아!”
– 꺄르륵, 카사 혼난다.
현재 진우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그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공생하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F등급은 F등급의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고, E등급은 E등급과 F등급을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등급보다 낮은 급수의 게이트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자격증을 대변해 주는 헌터 라이센스.
그러나 세상사에는 예외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인 법.
자고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으로 되지 않는 일이란 오히려 찾기 힘들고, 그렇기에 사람 간의 일에서는 부정부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게이트의 권리 대부분을 쥐고 있는 헌터 협회에서는 암암리에 돈만 잔뜩 쥐여 준다면 등급에 상관없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도 짐꾼이던 시절 심심치 않게 들려왔으니까.
뭐,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등급을 무시하고 높은 등급의 게이트를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층은 한정적인 편에 속한다.
자신과 동급의 게이트에서 벌어들이는 금액에 만족하지 못하고 크게 한탕 하려고 하는 부류부터 범법행위로 인해 헌터 자격을 박탈당한 범죄자 신분의 각성자 등.
어차피 입구를 뚫기가 힘들지, 한 번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무법 지대인 게이트에서 뭐가 문제겠는가?
물론 진우의 경우에는 굳이 불법적인 경로나 부정부패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반갑수다. 나정득이오.”
“김진우라고 합니다.”
전성 그룹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데 뭣 하러 나중에 쓴소리 날 수도 있을 불법을 이용하겠는가?
높은 등급의 게이트를 이용하는 합법적인 경로.
그것은 바로 해당 등급의 게이트에 들어서는 공략팀 멤버의 길잡이 역할로 들어가는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과정에서는 입구에서 꼼꼼하게 검사를 하기 때문에 범법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들은 결코 이용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요,
제아무리 전성이 힘을 보태 주었다 해도 길잡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애당초에 누구나 길잡이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뭣 하러 불법적인 경로가 존재하겠는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함정이나 발자국 흔적을 쫓을 수 있는 ‘추적자’ 특성을 가진 도적이거나, 궁수의 먼 거리를 볼 수 있는 ’매의 눈’과 같은 특성처럼 탐지에 능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
드루이드인 진우로서는 이 두 특성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대신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러니까 바람의 정령사라고요? 듣기로는 바람의 정령사는 머리와 눈빛의 색깔이 백발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염색했고, 컬러 렌즈입니다. 이 나이에 흰머리는 조금 그렇잖아요?”
“아하!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동감합니다. 혹시 괜찮다면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실프!”
– 나 불렀어? 인간? 꺄르르륵!
“호오, 진짜셨군요. 정령사는 상당히 보기 드문 편인데. 다치지 말고 꼭 생환하시길 바랍니다.”
“네. 말씀 감사 드립니다.”
바람의 정령.
아직은 비록 하급인 실프라지만 설령 죽더라도 소멸되는 것이 아닌.
정령계로 되돌아가는 존재는 상당히 매력적인 정찰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바람 그 자체이기에 흔적을 조사하는 것에도 능하기까지.
그야말로 바람의 정령사는 다재다능한,
어떻게 보면 도적의 상위 호환격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으니 길잡이로 통과가 안 될 턱이 있겠는가?
뭐, 그것도 계급을 너무 껑충 뛰면 얘기가 달라지긴 하는 부분이다.
길잡이라고 해도 E등급의 헌터가 S등급의 게이트에 들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아니, S등급은커녕 B등급에서부터 문전 박대당하기 딱 좋다.
‘지금은 C등급 정도로 만족하자.’
진우도 제 목숨 귀한 줄은 아는 입장이다.
누군가는 겁쟁이라고 말 할 수도 있는 일.
허나 짐꾼 짬밥 3년이면 헌터 세계를 읽는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의 힘에 취한 나머지 오만하게 선을 넘고 행동했다가 요단강으로 직행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해 온 진우다.
신화 등급의 방어구와 높은 능력치가 있다고는 해도 C등급 이후부터는 한 등급씩 오를 때마다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갔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하게, 밸런스 있게 유지하는 거지.’
물론 늘 그렇듯.
중간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들 해도 짐꾼 생활이 진우를 보조해 줄 터.
그 밖에도 진우와 함께 입장한.
사실상 더 강한 각성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허수진까지.
이 정도면 C등급 게이트의 몬스터 정도는 혼자서 충분히 사냥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흠흠. 됐어, 이 정도로 들어왔으면 들킬 일 없을 거여. 텐트 치자고.”
게이트의 내부로 들어선 이후 주변을 힐끗 돌아보고는 말하는 나정득.
베테랑 출신의 멤버들답게 개개인이 짐꾼의 몫도 해내는 그들은 순식간에 게이트 내에 간이 아지트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전성의 내로라하는 대장장이가 만들어 낸 물품.
다만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진우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얘기는 부회장님한테는 다 전해 들었수다. 몸 조심히 다녀오쇼.”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길잡이 명목으로 데려왔지만 진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앞서 말했듯 혼자서 사냥을 하는 솔로 플레이.
애초에 공략팀 멤버의 쓰임새는 입장 이후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전성의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힘을 대놓고 보이는 것도 좀 그런데다가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전리품은 못 참지.’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을 경험치와 마정석은 물론이요,
그 밖에도 게이트 내에 존재하는 자연 식생과 광물 등.
게이트의 내부는 말 그대로 보물 낙원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것을 겸상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뭐, ‘부회장이 말했으니까’라는 이유가 있다지만 반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근데 정말로 보내도 괜찮은 거 맞아요? 짐꾼 하나만 달랑 붙여서 사냥이라니. 그냥 사람 둘 죽으라고 보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네.”
“라이센스 보니까 E등급이던데. 이거 괜히 인재 한 명만 잃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러니까. 정령사면 희귀한 인재잖아.”
실프를 다루는 진우의 모습에 아까워하는 이들부터,
“냅 둬요. 지 인생 지가 살겠다는데. 참견할 이유가 있나? 원래 한번 크게 데여 봐야 정신을 차린다잖아요?”
“근데 여기서 데이면 그냥 개죽음 아닌가? 킥킥킥.”
대놓고 비꼬는 이들까지.
원래 헌터.
몬스터를 사냥하는 각성자들에게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기 마련인 법.
애초에 이 정도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던 바이다.
“이 자슥들이 뒤질라고! 적당히들 안 허냐?”
“저는 괜찮습니다. 어르신.”
전성에 속해 있다고.
또, 부회장과 친하다고 해서 우호적으로만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는 그러한 것에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이들이 더 적지 않은 법이니까.
그리고 좋게 말한다고 해서 다 우호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섣부른 오산이다.
어떻게 보면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내뱉은 말일 가능성이 높을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두가 입장권으로서의 노릇만 한 것은 아니었다.
“거, 젊은 친구. 이거, 받아 둬.”
나정득이 던져 주듯 건네주는 솜인형.
엉성한 것을 넘어서 잔뜩 망가진 것이 어떻게 보면 저주 용품이라고 해도 믿을 법할 정도.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니 아이템도 아니다.
“……이게 뭐죠?”
“우리 딸래미가 만든 부적. 예쁘제?”
“아……예.”
정정하겠다.
이 정도면 인형 공장을 차려도 될 정도로 잘 만들었다. 아마도?
“클클클, 괜히 무리하다 죽어서 몬스터 배때지 불려 주지 말고, 사냥하다가 배고프거나 목마르면 언제든지 아지트로 오라고. 사람 둘 정도는 먹어도 문제없을 정도로 넉넉히 챙겨 왔으니께.”
“아하하, 알겠습니다.”
나정득.
이건 뭐라고 해야 할지.
일단은 공략팀 멤버의 리더만큼은 진우에게 질투심도, 우호적으로도 나오지 않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당히 독특한 괴짜였다.
* * *
진우와 그 곁에서 속도를 맞추며 걷고 있는 허수진과,
– 바람처럼 날렵하게!
꾸준히 이동속도를 올려 주는 실프의 잔잔한 버프 효과에 덧붙여서,
“실프. 주변에 몬스터나 시선이 느껴지면 바로 알려 줘.”
– 응, 당연하지!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다 보고 있다고!
길잡이 역할다운 정찰까지 착실하게 일당백으로 해내는 실프.
거기에다가 진우에게는 공략팀 멤버와 입구의 관리자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제2의 정찰병도 존재했다.
(수상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아요.)
진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맑은 목소리.
그것은 진우와 동화 중인 신비의 나비 시오의 것이다.
하나도 아닌.
무려 2개체에 달하는 정찰병의 실시간 탐색.
다른 이들로부터의 시선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인지한 진우도 슬슬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자, 이제 나와도 괜찮아 얘들아.”
허공을 뒤적이며 말을 내뱉는 진우.
그 반응과 함께 용혈 가방의 안 속에서 대기를 타고 있던 정령들이 우르르 튀어나온다.
– 흐으! 그리웠다고! 인간!
– 대지모신의 기운을 내놔아아앙!
– 인간의 품이 그립게 느껴지게 될 줄이야~
– 너어 실프. 혼자만 자유롭게. 치사해!
– 그럼 너도 바람의 정령하던가~
– 이씨? 나도 바람의 정령 맞거든!?
– 아, 그럼 너는 제비뽑기 잘하던가~
나오자마자 시끌벅적하게 진우의 곁에 들러붙고 자기들끼리 소란 법석을 떨어 대는 정령들의 모습.
사방에서 재잘거리는 것이 순간 여기가 게이트 내부가 아닌 시장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