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7)
117 왕은 어디에
왕은 어디에… 왕은 어디에….
우리는 계속해서 왕을 찾았다.
기다리고 계속 또 기다렸다.
하지만 왕은, 우리의 왕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렸는데.
명령… 그래… 명령이 있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최초의 명령은… 아마 그것이었다.
나의 여자를 지켜라.
왕이여, 우리는 왕이 명하시는 대로 그 인간을 지켰습니다.
왕이 사랑하는 그녀를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켰습니다.
누구도 그 여자 인간을 해치지 못하도록 계속 지켜왔습니다.
왕이 그 여자와 함께 떠나시던 날까지… 아… 그랬나… 아니, 그랬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을까.
왕은 그 여자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찾을 수 없어.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을 사랑하고, 그 여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왕은 그 몸을 공중에 흐트러뜨려 인간의 영혼을 따라갔다.
왕이 떠난 그 자리에 명령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던 것을 기억한다.
기억하고 있다.
[내 아이를 지켜라. 그들이 인간에게 해 입지 않도록, 계속 평화롭도록, 내가 없어져도 행복하도록, 너희가 그들을 지켜라. 내 충성스러운 하인아.]그랬다.
그 명령이 우리를 이 땅에, 이 차가운 철의 몸에 묶어두었다.
왕은 인간 여자를 사랑해, 그녀가 낳은 자식을 지키고 싶어 했다.
왕의 바람은 우리의 소원.
우리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이 땅에 머물러 있었어.
지켰다.
그분의 아이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왕의 기색을 더듬어 찾아가 지켜왔다.
다른 인간들에게 해 입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왕의 기색은 점점 옅어져간다.
적은 흔적조차 더듬을 수 없게 되면서 결국 우리는 태어난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령의 무덤에 사는 것들이다.
정령이 죽은 자리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벌레였던 것도, 이름 없는 작은 풀이었던 것도 있었다.
짐승의 썩은 사체에서 태어난 것도 우리의 일부분이 되었다.
왕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
본래 아무것도 아니던 우리에게 의미를 주었다.
삶을 그분에게 받았다.
그분의 말은 우리 삶의 의미.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왕에게서 오래 떨어져 있는 동안 우리는 점점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갔다.
명령은 우리의 몸에 남아있는데 의미가 사라져간다.
어떤 걸 지켜야 하는지 잊고, 때로는 우리의 존재 자체도 잊었다.
왕의 기색을 잃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우리는 조용히 정령의 무덤, 태어난 곳에서 숨죽여 머물러 있었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
존재조차 희미해지고 있던 때, 우리 중 무언가가 왕의 기색을 깨달았다.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다.
[왕은 어디에….]그것으로 우리의 존재는 다시 깨어났다.
눈이 없는데 눈물이 나고, 심장이 없는데 애절해진다.
왕을 찾아야 한다고, 차가운 철조각이 되어 누워있던 우리는 다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로….
왕의 기색은 느껴지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이 세상 어딘가, 이 땅 어딘가에 있는데, 그분을 찾을 수 없다.
왕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데.
그분이 사랑한 인간의 아이들, 그 피를 지켜야 하는데.
우리는 다시 깨어난 뒤로 어쩌면 오랫동안 찾아 헤매고 있었다.
왕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
인간 여자가 낳은 우리 왕의 존재를 지켜야 한다.
인간이 해를 미치지 않도록.
인간이 해를 미치기 전에.
절그덕거리는 철 몸을 이끌고 긴긴 정령의 숲을 헤매는 동안, 우리는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왕의 기색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우리 중 하나가 기쁨으로 중얼거린다.
[아아… 왕의 기색이 가까워진다. 왕이 이 땅에 계신다.]우리가 철조각 안에서 날뛴다.
우리 몸을 이룬 모든 존재가 왕의 기색을 점점 더 가까이 느끼며 미쳐갔다.
당신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계속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해왔습니다.
하지만 왕의 모습을 뵐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데, 여전히 그분은 없다.
인간의 모습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시간 동안, 우리는 계속 찾아 헤맸지만 왕을 찾을 수 없었다.
점점 더 초조해진다.
왕의 기색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데 왕을 찾을 수 없다.
왕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인가.
지키라 하셨는데 우리가 왕이 말하신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라, 서둘러라.
왕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
인간이 해 입히기 전에, 우리가 지켜야 한다.
왕이 슬퍼하신다.
왕이 우리를 외면하신다.
인간은 우리 왕의 아이에 해를 미치는 존재.
배제하라.
왕의 아이를 지켜라.
인간에게서 지켜라.
인간에게서 우리 왕의 아이를 지켜.
왕의 아이에게서 인간을 배제하라.
인간을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배제하라.
*
두 번째 갑옷 기사가 나를 향해 긴 창을 내밀고 달려온다.
달각 달각 말발굽 소리가 허공으로 울렸다.
다리도 없는데 대체 어디에서 소리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나한테 허벅지가 잘렸던 첫 번째 갑옷은 투구를 다시 쓰고 다른 놈들 뒤로 향했다.
어느새 잘린 창이 붙어 길게 늘어나 있었다.
‘몸통이 붙는 건 그렇다 쳐도 창까지 붙는 거냐.’
이건 좀 대단하다.
놀라서 다시 쳐다보자, 원상 복구된 것처럼 보였던 창에는 가느다란 금이 그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창이 새것처럼 되는 게 아니라 잘린 단면이 붙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면 갑옷도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잘린 도끼 자국이 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이건 좀 힘들지도 모르겠네.’
최악의 경우에는 조각조각 잘라도 다시 붙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어쩐다.
‘그러면 땅에 묻어버릴까.’
나오지 못하게 깊은 곳에 묻어버리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끼 잡은 손에 바람을 모았다.
부웅 부웅 팔에서 바람이 일어난다.
바람의 부풀림과 웅웅 소리 때문에, 거대한 벌통에 팔을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실제 모양새도 조금 이상하다.
바람이 팔 주위에 모여 날아다니는 터라 몸에 붙지 못하고 도끼와 함께 허공에 붕 떠 있었다.
부끄럽지만 다행히 아무도 유심히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다.
호위 몇 명이 어디에서 꺼냈는지 끝에 갈고리 달린 밧줄을 허공으로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걸로 갑옷 기사의 움직임을 막을 생각인 것 같다.
호위 중 일부는 타티아나와 볼크 백작의 마차 주변을 둘러싸고, 몇몇은 갑옷 기사와 싸우는 데에 가세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내 근처에 모여 있었다.
다만 내가 그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은 호위들도 알고 있어,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거리를 약간 띄우고 있었다.
언제든지 나를 위해 몸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타티아나는 마차에서 내려 뭔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짐마차의 옆구리에는 커다란 물통 놓는 자리가 있다.
타티아나의 지시로 짐마차 마부가 물통의 뚜껑을 급히 열었다.
시선을 돌리기 직전, 타티아나가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 보였다.
물통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원래 물통에 있는 물보다 많은 걸 보면 타티아나의 마법으로도 물이 만들어져 더해진 모양이다.
가장 전력이 될 것 같은 불사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령의 갑옷도 움직이지 않는구나.’
조금 전 갑옷 기사와 대처할 때도 팔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내가 위험하면 자동으로 펼쳐질 텐데 이상하다.
‘설마 저놈들도 정령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나는 약간 불길해지는 기분을 누르며 바로 앞까지 닥쳐온 갑옷 기사를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바람을 이용해 몸을 띄운 뒤 크게 팔을 휘둘러 아래로 내리친다.
도끼가 갑옷 기사의 몸에 닿기 전, 팔과 무기 전체를 두르고 있던 바람이 놈을 강하게 쳤다.
거대한 도깨비방망이에 맞은 것처럼 갑옷 기사와 말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콰콰콰, 엄청난 굉음이 울린다.
사방으로 돌과 먼지가 튀었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가까이 있던 호위들이 당황해 뒤로 물러갔다.
깜짝 놀란 말 몇 마리가 갈기를 흔들며 발을 높이 들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바닥이 움푹 파였다.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 나는 다시 바람 두른 도끼를 휘둘렀다.
내 도끼는 지금 소시지에 밀가루옷 입은 핫도그처럼 바람 두른 도깨비방망이다.
콰쾅!
막 일어나려고 허우적거리던 갑옷 기사와 말이 다시 바람에 얻어맞아 땅에 파묻혔다.
아직 모자란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멀찍이 물러난 걸 확인하고, 이번에는 바람을 조금 더 모았다.
힘차게 다시 박는다.
몇 번 더 바람으로 두드리자, 갑옷 기사와 말은 거대한 웅덩이에 흙모래와 함께 파묻혀 버렸다.
응, 좋아, 이제 기어 나오나 한번 보자.
하지만 마음 놓고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대기하던 갑옷 기사 서넛이 한꺼번에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서 갑옷 기사 넷이 출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위험 분자로 생각하고 집중공격하려는 모양이다.
이놈들은 로테이션으로 공격하는 것 같다.
앞에서 몇 놈이 찌른 뒤에는 곧바로 뒤로 돌아가 대기하고 다음 놈이 나오는 식으로, 연달아 공격해 상대가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실체도 없이 철통만 뒤집어쓴 주제에 똑똑하다.
나는 웅덩이를 떠나 놈들을 향해 곧바로 달렸다.
붕 뛰어올라 말 탄 놈들을 향해 도끼를 휘두른다.
서걱서걱, 바람 두른 도끼는 손쉽게 금속을 잘라냈다.
갑옷 기사들은 되살아나거나 힘은 강할지 몰라도 순발력은 떨어졌다.
그들은 내 속도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조각조각 나 바닥에 떨어졌다.
갑옷 기사도, 말도, 피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속이 비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어진 놈들을 향해 바람을 내리친다.
몇 번 바람으로 후려 패자 놈들 역시 거대한 구덩이에 파묻혔다.
그대로 달려 갑옷 기사들 사이로 뛰어든다.
속이 빈 깡통이라도 인간의 움직임을 따르는지, 놈들이 말고삐를 당겨 긴 창을 움직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둔하다.
내 움직임을 방해하는 놈은 거의 없고, 나는 중구난방으로 날뛰며 놈들을 차례차례 조각냈다.
“저기! 기어 나왔어요!”
타티아나의 목소리가 허공을 찢으며 울렸다.
시선을 돌리자 땅속에 처박혔던 갑옷 기사의 팔이 흙더미 속에서 쑥 올라온다.
타티아나가 거기에 물을 이동시켜 채찍처럼 쳤다.
하지만 내가 하는 것과는 힘이 비교가 안 된다.
갑옷 팔은 한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다시 허우적거리며 땅을 잡았다.
‘쳇, 깊이 묻어도 기어 나오는 건가.’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보지 않는 틈을 타 한 놈이 긴 창을 내 뒤통수에 찌르고 있었다.
내가 도끼로 그걸 막기 직전, 사방의 공기가 파직 파직 일제히 튀었다.
내 머리 주위에서.
마치 손가락만 한 작은 번개가 내 주변에 우글우글 몰려와 있는 것 같다.
물론 어항 투구에 딸린 정령들이다.
“….”
이봐, 좀 위험하지 않니.
아무리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거라고 해도 번개가 머리 근처에서 치면 무섭다.
어쨌든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갑옷 기사의 긴 창은 절반 정도가 담뱃재 부서진 것처럼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일부가 다시 허공으로 떠올라 창에 붙었지만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자성을 잃어버린 자석과 철가루 같다.
다행히 이놈들을 처리할 방법이 생긴 모양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정전기 정령, 혹은 어항이라고 부르는 이 녀석들은 느낄 수 있고, 내 뜻에 따라 어느 정도는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번개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팔에 정착된 방어구는 내 말에 따라 작동하지만, 불행히도 번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지금 가능한 방법은 갑옷 기사가 나를 공격해, 그것도 내 머리 쪽을 공격해서 자동 방어로 번개가 작동하는 것이다.
“….”
어쩌지.
이놈들한테 머리 디밀고 다녀야 하나.